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생물I·동물·인체/동물의 분류/멸종동물/공룡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공룡 |
(恐龍 dinosaur)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출현하여 쥐라기와 백악기에 크게 번성하다가 백악기 말에 멸종한 동물이다. 파충류는 중생대의 지구상에서 바다·육지·하늘 모두에서 크게 번성하였기 때문에 이 시대를 파충류시대라고도 한다.전통적으로 공룡은 용반목과 조반목의 두 종류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이들 공룡이 헤레라사우루스라는 훨씬 초기 공룡으로부터 진화했다고 믿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반목의 동물이 용반목의 동물의 수를 넘어섰고 새로운 공룡들이 두 집단에서 진화되어 나왔다. 이들 새로운 공룡들은 생존에 보다 잘 적응하여 먹이를 얻고 적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익숙했다. 용반류는 도마뱀의 골반을 닮고, 조반류는 새의 골반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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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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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반목 |
수각류 |
알로사우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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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각류 |
플라테오사우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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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목 |
조각류 |
아구아노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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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류 |
스테고사우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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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룡류 |
노도사우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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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룡류 |
트리케라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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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용반목 [편집]
龍盤目 용반목 공룡의 허리는 도마뱀형으로 장골, 치골, 좌골이 세 방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좌골에서 치골이 앞으로 향하는 것으로 식별된다. 용반류에는 대단히 큰 공룡들과 아주 사나운 공룡들이 포함된다. 용반류는 다시 수각류와 용각류로 나뉜다.〔수각류〕 발로 서서 걷는 육식 공룡으로 새 같은 몸과 긴 꼬리뼈를 가지며 대부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다. 또한 비늘을 가지며 발톱으로 무장되어 있다. 꼬리는 근육질로 길다란데, 뒤쪽으로 꼿꼿하게 뻗어 있어 몸의 균형을 잡아 주었다. 앞다리가 가늘었으며 턱이 강하고, 이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어떤 것은 병아리만 하여 작은 사냥감을 쫓았으나 대부분 대형으로 코끼리만큼 체중이 나갔다.〔용각류〕 공룡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큰 무리이다. 긴 목과 큰 몸으로 특징지어진다. 긴 꼬리와 두꺼워서 기둥처럼 보이는 다리를 가졌다. 대부분 꼿꼿이 섰을 때 키가 4.8-12m였고 다 자라면 몸무게가 9-27t에 이르렀다. 이들은 코끼리처럼 육중한 네 발로 걸어다녔으며 목이 길고, 머리가 작았다. 또 꼬리가 길며 가슴이 넓었다. 이빨은 잎을 뜯어먹는 데 사용되었는데, 잎은 위 속에 들어 있는 돌에 의해 갈아진 후 장 속의 세균에 의해 화학적으로 분해되었다. 용각류의 공룡은 높은 나무의 새싹을 먹기 위해 뒷다리에 의존했다. 쥐라기에 번성했던 초식공룡으로, 백악기에 들어서는 다른 초식공룡에 비해 번성하지 못했다.
조반목 [편집]
鳥盤目 조반목의 공룡은 나무나 풀을 뜯어먹고 살았던 공룡으로 입에는 부리처럼 생긴 뼈가 발달했으며, 대부분 몸에 골판(骨板)이 붙어 있었다. 허리는 새형으로 치골이 좌골에 평행하며,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잎 모양의 치관을 가진 초식동물로 어떤 것은 앞니가 없으나 대체로 강력한 어금니를 가졌다. 또한 척추를 뻣뻣하게 하는 튼튼한 힘줄도 가졌다. 백악기에는 조반목이 가장 중요한 초식공룡이었다. 조반목은 크게 조각류·검룡류·곡룡류·각룡류로 나뉜다.〔조각류〕 두 발 혹은 네 발로 걸으며 새의 골반을 갖고 있었다. 식물을 먹는 공룡으로 파충류시대 내내 생존했다.〔검룡류〕 긴 뒷다리와 짧고 빈약한 머리, 큰 몸집, 하향꼬리를 가진 초식 공룡으로 약 1억 5000만 년 전에 살았다. 몸은 철갑을 두른 것 같았으며, 쥐라기의 스테고사우루스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몸길이 4-10m, 몸무게 약 2t이나 되었으며, 짧고 굵은 네 다리로 천천히 걸어다녔다. 등에는 삼각형 골판이 좌우로 어긋나게 두 줄로 돋아 있었고 꼬리에는 골침이 박혀 있었다. 이 골판과 골침은 적을 위협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 지금의 북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살았으며 그 밖에는 중국·인도·아프리카·유럽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살았다. 머리는 작고 목은 매우 짧았다. 뒷다리는 앞다리보다 훨씬 길었으므로 머리가 거의 땅에 닿아 있었다. 모두 머리가 작아서 뇌가 특히 작은데, 이에 비하면 뇌하수체는 컸다. 뇌하수체는 몸집을 크게 하는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몸이 거대했다.〔곡룡류〕 등과 옆구리에 가시를 가지고 플래이트와 스터드로 무장하였다. 몸길이 4-10m이고 등에 비늘 모양의 단단한 껍데기와 가시 모양의 돌기가 있었다. 이것은 안킬로사우루스라고 하는데, 적의 공격을 받으면 아르마딜로처럼 몸을 웅크려 둥글게 되거나, 땅바닥에 납작하게 뻗어 방어한 것으로 여겨진다. 백악기에 지구상의 여러 지역에서 살았다.〔각룡류〕 백악기 후기에 나타난 머리에 뿔이 있는 공룡이다. 삼각형 모양의 머리뼈와 주름지고 두꺼운 목을 가졌다. 머리에 뿔이 달려 마치 코뿔소처럼 생겼으며, 네 발로 걸어다녔다. 몸길이는 1.8-7.6m였고, 머리가 매우 컸다. 머리 뒷부분에는 커다란 장식뼈가 목을 감싸고 있었다. 공룡 무리 가운데 가장 늦게 등장한 공룡으로 백악기 후기에 오늘날의 아시아와 북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번성했다.
공룡의 생활 [편집]
恐龍-生活 화석 기록을 보면 20종이 넘는 공룡이 같은 시기에 일정한 지역에서 함께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공룡은 목초지대에 무리를 이루어 살았다. 아파토사우루스나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종류는 평생을 거의 혼자 지내거나 작은 무리를 지어 생활했다. 곡룡류·각룡류·검룡류 등은 바닷가나 탁 트인 곳의 키 작은 식물을 뜯어먹고 살았다. 알로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 등의 커다란 수각류는 주로 거대한 초식공룡을 잡아먹었다. 일부 작은 수각류는 곤충이나 알을 먹었고, 또 다른 종류는 포유류나 작은 공룡, 또는 다른 파충류를 잡아먹었다. 작은 수각류는 매우 활동적이고 행동이 재빨랐다. 공룡이 어떤 방법으로 번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어, 적어도 몇 종류는 다른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알을 낳았음이 분명하다. 암컷은 땅을 파서 둥지를 만든 후 12-24개의 알을 낳았다. 그 중에는 알에서 깬 새끼를 일일이 돌보는 것도 있었고, 새끼가 제 나름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있었다. 1978년 미국의 몬태나주에서 공룡의 알껍데기·새끼·집·뼈 등 수많은 화석이 발견되었다. 지금으로부터 8000만 년 전에 살았던 오리부리룡의 것으로 밝혀진 이 화석들로부터 공룡의 집·알·새끼 등에 관한 것뿐 아니라 그 일상 생활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알의 크기는 약 20cm쯤 되었고, 모양은 서양배와 비슷했다. 갓 태어난 새끼의 몸길이는 35cm였다. 공룡의 집은 각각 7m쯤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이로 보아 이 공룡들은 새들처럼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것 같다. 집 근처에 조금 자라서 이빨이 닳은 새끼의 화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태어난 새끼는 집 안이나 집 근처에 머무르면서 자랐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공룡은 어느 만큼 자란 다음에는 성장이 멈추는 포유류와는 달리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자란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공룡의 머리 속에 있는 뇌하수체가 기형적으로 발달하여 생장 호르몬을 너무 많이 만들어 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룡의 수명은 같은 파충류인 거북 등과 비교해 볼 때 약 100-200년 정도로 추측된다. 공룡의 화석을 조사, 연구한 어떤 학자는 그것이 200년쯤은 살았을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공룡의 크기나 생활양식에 따라 그 수명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룡의 멸종 [편집]
恐龍-滅種 과학자들은 공룡의 멸종을 설명하는 많은 가설을 세웠다. 단지 확실한 것은 백악기 말에 지구에 일어난 변화에 공룡이 적응하지 못해 멸종한 것만은 분명하다. 공룡 멸종 원인의 첫번째 주장은 백악기 말에 지구의 기온이 점차 내려갔는데, 공룡이 살아남기엔 너무 추웠다. 공룡은 몸집이 너무 커서 동굴 속에 들어가 추위를 피할 수가 없었으며, 추위를 막을 만한 털이나 깃털도 없었다. 추위는 또한 공룡의 자손 번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파충류의 성별은 온도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데, 온도가 평상시보다 높거나 낮을 때 태어나는 파충류의 새끼는 암수 어느 쪽이든 하나의 성(性)만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당시 지구의 기온 하강으로 공룡의 새끼들은 모두 같은 성을 갖고 태어났을 것이다. 결국 공룡은 짝을 찾지 못해 멸종한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은 백악기 말에 커다란 운석이 지구에 충돌함으로써 수십억 톤의 먼지가 대기중에 방출됐고, 그 먼지와 연기에 빛이 차단되어 수개월 동안 빛이 땅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암흑기 동안 식물의 씨와 뿌리는 썩지 않고 남아 있었지만, 생장은 중단됐다. 식물의 감소로 많은 초식 공룡이 죽어갔으며, 초식공룡을 잡아먹고 살던 육식공룡의 수도 감소했다. 또 빛이 차단된 6-12개월 동안 지구의 기온은 영하 상태였고, 이 시기에 작은 포유류나 조류는 털이나 깃털로 추위를 막고, 식물의 씨나 열매, 썩은 식물을 먹으며 살아 남았을 것이다. 그에 비해 공룡은 무방비 상태였다. 세 번째 주장은 초식공룡이 백악기 동안 번성한 새로운 식물들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굶어 죽었다고 생각한다. 초식공룡이 줄어들면서 이들을 잡아먹고 살던 육식공룡도 감소했고 결국 모든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공룡이 먹이 경쟁에서 포유류에게 뒤져 생존할 수 없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공룡의 화석 [편집]
恐龍-化石 과학자들은 공룡의 뼈·이·알·발자국 등의 화석을 연구함으로써 공룡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북아메리카의 서부·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공룡 화석이 대규모로 발견됐다. 공룡화석의 산지로는 미국의 유타주, 중앙아시아의 몽골 지방, 유럽의 벨기에 등이 유명하다. 특히 미국 유타주의 클리블랜드에서는 많은 공룡화석이 출토되었다. 중국의 북동부 지방에서는 소형이면서 두 다리로 걸어다닌 열하공룡의 발자국이 64㎡에 4,000개 이상이 같은 방향을 향해 있어, 이들이 당시에 동쪽으로 대이동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 미국의 애리조나주나 유타주에서도 대형 공룡 발자국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쥐라기와 백악기의 지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1973년에 경북 의성군 탑리 부근에서 공룡의 뼈 화석이 발견된 이후 1977년부터 이 '공룡 골짜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어 많은 공룡 화석을 발굴해 냈다. 1983년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는 조반류의 알껍질 화석이, 또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평리에서는 약 360개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 발자국은 대부분 조반류의 두 다리로 걸은 공룡의 것이나 일부 용반류의 것과 네 다리로 걸은 공룡의 것도 있다. 그 밖에 경남 고성의 해안 및 함안·통영·울산 등지에서 수천 개나 되는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합천·진주·군위 등지에서도 크고 작은 많은 초식공룡과 육식공룡 등의 화석이 발견되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공룡의 완전한 뼈대 화석이 발견될 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