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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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국기와 개요[편집]



'공식명칭:
Republic of India

정치체제:연방공화제

수 도:뉴델리(New Delhi)

인 구:10억 3,000만명(2002)

면 적:328만 7,263㎢

소 득:1인당 GDP 1,800달러(2001)

공 용 어 :힌두어, 영어

화폐단위 :인도루피(rupee / Re)

주생산물 :감자, 땅콩, 면화 / 가죽제품, 양탄자, 설탕 / 석유, 철광석



인도의 자연[편집]

India-自然

인도는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지대와 중부의 인더스강 및 갠지스강 유역의 인도 평원 및 남부인 반도부의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표고 8,000m에 달하는 고봉을 포함하는 북부의 산악지대는 티베트와 인도의 경계를 이루며 북부인도와 파키스탄을 흐르는 갠지스강과 인더스강의 발원지가 되어 있다. 이 2대 하천의 유역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농업지대로 상류는 밀의 산지이고 중류와 하류는 쌀의 주요산지이다.인도반도부(部)는 고기지괴(古期地塊)로 전체가 고원상을 이루고 있다. 서쪽에는 서(西)고츠 산맥이, 동쪽에는 동고츠 산맥이 있는데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이 산지 사이를 누비며 나르바다강과 타프티강이 아라비아해로, 마하나디강, 고다바리강, 크리슈나(키스트나)강의 벵골만으로 흘러든다. 아라비아해상의 래카다이브 제도와 미얀마 남방해상의 안다만제도의 섬들도 인도에 속한다.

인도의 기후[편집]

인도는 국토의 대부분이 열대에 속하나 곳에 따라 기후가 달라진다. 동부와 서부는 특히 강우량에서 차가 심한데 동부의 페라픈디는 연간강우량이 1만㎜ 를 넘어 세계 제1이지만 서부에서 강우량이 200㎜ 에도 미달한다. 북부와 남부에서는 기온의 변화에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예컨대 뉴델리에서는 연중 가장 더운 달과 추운 달 사이에 19.8

나 온도의 차이가 생기지만 남쪽의 마드라스에서는 8.2

에 불과하다.

히말라야 산맥[편집]

Himalaya 山脈

인도 북부를 동서로 달리는 대산맥으로 제3기에 형성된 새로운 조산(造山)지역이며, 대규모의 습곡운동(褶曲運動)의 결과 탄생한 것이다. 해발 8,000m 급의 고봉이 14개나 있으며 동서 2,500㎞ 에 미치고 있다.

난다코트산[편집]

Nanda Kot山

인도 북부 네팔의 서경 가까이 위치하는 해발 6,867m의 준령. 바로 북쪽에 가후와르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7,817m의 난다데비산이 있다.

카라코람 산맥[편집]

Karakoram 山脈

카슈미르 지방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에는 인더스강을 사이에 끼고 서부 히말라야가, 서쪽 및 서남쪽에는 파키스탄을 사이에 끼고 서부 힌두쿠시 산맥이, 북쪽에는 투르크스탄, 동쪽에는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있다. 세계 제2의 고봉 K2봉을 비롯해서 히돈 피크, 갓샤부름, 브로드 피크 등 8,000m급의 준령이 솟아 있다. 남쪽에는 발트로, 비아포, 초골그마, 히스파 등 수십 km 에 걸치는 대빙하가 있다.

K2봉[편집]

-峰

카라코람 산맥에 있는 에베레스트 다음의 고봉으로 해발 8,611m. 카라코람에 처음 도전한 고드윈 오스턴의 이름을 따서 고드윈 오스턴봉이라고도 불린다. 빙하에 깎인 험준한 산정이나 빙하에 덮인 산록(山麓) 때문에 등반은 극히 곤란했으나 1954년 데시오가 인솔하는 이탈리아 등반대가 정상을 정복했다.

초골리사산[편집]

Chogolisa山

카라코람 산맥이 있는 해발 7,654m의 고봉. 1958년에 일본 등반대가 정복했다.

힌두스탄 평원[편집]

Hindustan 平原

인도 북부를 동서로 달리는 대평원. 주로 갠지스강과 인더스강 유역에 펼쳐지는 양하천의 퇴적작용으로 생긴 충적(沖積)평원. 인도의 총면적의 약 1/3을 차지하며, 서부의 건조지대를 제외하면 가장 조건이 좋은 농업지대로 인구밀도도 높다. 동부는 비교적 강우량이 많아 도작(稻作)이 이루어진다. 서부로 감에 따라 차츰 건조도가 높아져 소맥이 많이 재배되나 서부의 타르사막에 이르면 완전한 건조지대로 농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에 특히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유역에서 관개 사업이 잘 되어 소맥과 면화(綿花)의 재배면적이 늘어가고 있다.

갠지스강[편집]

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하여 인도 북부를 동쪽으로 흐르다가 비하르주(州) 동쪽 경계에서 갑자기 남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벵골 평야를 지나 벵골만에 흘러드는 전장 2,400㎞ 의 큰 강이다.중류부(中流部)에서는 손, 얌나, 고구라, 갠다그 등 많은 지류가 합류한다. 유역에 비하르 주도(州都) 파트나, 성지(聖地) 바라나시, 구도(舊都) 아그라, 수도 뉴델리 등이 있다.하류의 벵골지방은 인구밀도가 높은 삼각주 지대이다. 갠지스의 옛 본류인 후글리강은 인도 최대의 공업도시 캘커타시를 흐르지만, 그 하류에서 합류되는 다모다르강의 유역에는 탄전이 있어 신흥공업지대가 형성되고 있다.

인도 반도[편집]

India 半島

인도양에 역삼각형으로 내밀어져 있는 대반도. 전체가 고원상으로 서쪽은 서고츠 산맥의 단애(斷崖)가 아라비아해에 면하고 있으나 동쪽에서는 동고츠 산맥의 분단된 산지와 구릉이 벵골만에 면해 있다.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이들 산지를 누비고 나르바다와 타프티의 두 하천이 서쪽으로 흐르고 마하나디, 고다바리, 크라슈나 등의 강은 동쪽으로 흘러 유역에 농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반도부에서 이들 하천유역 외에 연안부가 잘 발달해 있는데 특히 남부의 코로만델, 말라바르 해안일대는 예부터 유럽인들과 접촉이 있어 비교적 근대화가 되어 있다. 반도의 최남단은 코모린곶(串)으로 북의 8

의 낮은 위도선상에 있으며 힌두교도의 성지로서 유명하다.

데칸 고원[편집]

Deccan 高原

인도반도부는 전체가 고원상을 이루어 데칸 고원이라고도 불린다. 고기암괴(古期岩塊)로 형성되며 북서부는 데칸 용암으로 덮이고 단단한 부분은 용암탁상지(熔岩卓狀地)로서 남아 있다. 이 풍화토는 흑색 면화토(黑色綿花土)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면화재배에 적합하다.하계의 강우량은 서고츠 산맥의 서쪽 사면(斜面)이 흡수해 버려 고원상에는 비가 별로 안 오는데 조와르 바지라, 라기 등지에선 잡곡이 생산된다. 나르바다, 타프티, 마하나디, 고다바리, 크리슈나 등 각 하천 유역에는 예부터 관개시설이 있었으나 최근 대규모의 댐이 건설되어 근대적인 관개시설이 발달되어 있다.

안다만 제도[편집]

Andaman 諸島

미얀마 남방 벵골만상에 있으며 북·중·남·소(小)의 각 안다만섬과 약 200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남쪽의 니코바르 제도와 함께 예전에는 인도의 유형지(流刑地)로서 이용되었다. 섬의 대부분은 정글이며 원시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으나 최근에는 남안다만의 보트브레아를 중심으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인도양상의 전략적 요지이다.

니코바르 제도[편집]

Nicobar 諸島

미얀마 남방, 벵골만상에 있는 섬들로 안다만 제도의 남쪽에 위치한다. 19개의 섬 중 12개의 섬에 주민이 살고 있다. 코코야자 외에는 이렇다 할 산물이 없다.

인도의 역사[편집]

-歷史

고대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강 유역 일대에 드라비다 민족의 문화가 개화하여 하라파나 모헨조다로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정연한 도시생활이 영위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 지방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아리안인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인더스 문명의 형성지라고 생각되는 드라비다인들은 남쪽으로 쫓겼다. 처음 유목민이던 아리아인들은 이 지방에 침입하면서부터 농경생활로 정주하여 기원전 1,000년경에는 그 지배권을 갠지스강을 따라 동쪽으로 확대시켜 기원전 6세기경에는 몇 개의 국가를 형성하였다.기원전 4세기에는 찬드라 굽타가 북부 인도를 지배하는 마우리아 왕조를 창건했으며 그 손자인 아소카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불교를 보호함과 동시에 인도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남부의 인도에서는 드라비다인의 안드라 왕조를 일으켜 모아리 왕조의 쇠퇴를 틈타 북부 인도로 진출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얼마 동안 위세를 떨쳤다.이 무렵부터 북인도에 굽타 왕조가 일어나 한때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으나 북서이민족의 침입과 더불어 차츰 쇠망하여 소국가가 분립하는 통일성이 없는 사회로 변했다.그후 힌두교가 일어나면서 인도의 문화는 크게 변하기 시작하고 카스트라는 신분계급제도가 확립되었다. 8세기에는 남서 아시아의 이슬람 교도가 침입하여 차츰 그 세력을 확장하다가 13세기에는 델리에 이슬람 왕조를 건설했다. 16세기에 바베르가 일으킨 무굴 제국은 제3대의 악바르에서 제6대의 아우랑제브에 이르는 시기에 가장 성했다. 지금도 이 시대의 영화를 생각게 하는 화려한 유적이 인도 각지에 남아 있다. 제5대의 샤자한이 건설한 타지마할은 말할 수 없이 우미한 대리석 건축물이다.오랫동안 계속된 이슬람의 지배도 아우랑제브왕이 죽으면서부터 차차 쇠퇴로 동양진출의 기회를 엿보던 유럽 열강의 침입을 촉진하게 되어, 18세기 후반부터는 영국의 강력한 지배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인도 내의 분란을 이용하여 그 세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19세기 중엽에는 인도를 완전히 자국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후 인도가 독립하기까지의 장구한 기간,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고 착취하여 영국 번영의 기틀로 삼았다. 간디 등이 영도하는 대중의 반영 독립운동은 1947년 인도연방과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함으로써 그 결실을 보였다.

인도의 주민[편집]

-住民

민족구성은 복잡하나 북부일대에 분포하는 인도 아리안계와 남부에 분포하는 드라비다계로 대별된다. 인도 아리안계는 키가 크고 코가 높고 눈이 커서 유럽인과 유사점이 많다. 드라비다계는 키도 작고 펑퍼짐하며 피부색도 한층 더 검다. 인도 아리안계와 드라비다계 이외에 벵골 평야 주변에 몽골로이드계가 있고, 데칸 고원 내 특히 그 동북부에 오스트로아시아(문다어족)계가 있다.언어는 북부의 아리안계 주민은 산스크리트에서 발전한 힌두어를 사용하고 남부의 드라비다계 주민은 이와는 전혀 다른 드라비다어를 사용한다. 게다가 이 두 가지 언어가 다 많은 방언으로 나누어지고, 거기에 따라 문자도 달라진다. 주요한 방언을 들어 보면 전자의 경우는 펀자브어, 비하르어, 벵갈리어, 오리아어, 구자라티어가 있고, 후자의 경우는 타미르어, 테르그어, 카나다어, 마라얄람어 등이 있다.힌두어를 국어로서 보급시켜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용어 반대가 심해 공식석상에서는 여전히 영어가 사용된다.인도는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며 국교는 없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애니미즘과 힌두교를 신봉하며 이슬람신자는 수마트라섬 북부 쪽에 많다. 기독교도는 많지 않다.

인도의 사회[편집]

-社會

주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층인 인도사회는 수많은 인종, 빈부격차, 복잡한 언어, 이질적인 종교, 카스트제도 등 이질성과 다양성, 현대성과 전근대성이 혼재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인도사회에 뿌리를 박은 이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각 계급간의 유혈충돌도 빈번히 발생하여 1997년 7월 뭄바이에서는 하층민 독립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암베드카르 동상의 목에 신발장식이 걸려져 하층민의 폭동이 일어났으며, 12월에는 인도 동부 비하르주 라크쉬만푸르 지방에서 최하층 천민이 살고 있는 마을에 상류층 카스트 지주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총과 칼을 들고 난입, 인간사냥을 벌여 61명의 천민이 목숨을 잃는 사태도 있었다.카스트제도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되는데 이 네 단계란 브라만(신관), 크샤트리아(왕족, 무사), 바이샤(농·공·상), 수드라(노예)를 말하며 각 계급은 다시 많은 신분계급으로 세분된다. 카스트는 가족적, 종족적, 직업적인 집단이며 결혼, 직업, 식사 등에 관한 특별한 규제가 있어 다른 카스트들과 구별된다.인도의 신헌법은 카스트의 철폐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 실현까지에도 오랜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 불가촉천민은 카스트 제도의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최하위의 천민으로 총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며 비천한 잡역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아왔다. 농촌에선 본촌(本村)과 분리된 별촌에 한 집단을 이루어 생활한다. 간디는 이들을 하리진(신의 아들)이라고 불러 그 해방에 힘썼다. 현재 이들을 위해서 특별장학금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인도의 정치[편집]

-政治

25주와 6직할지로 이루어진 연방제이다. 상원의 정원은 245인 이하로, 대통령이 지명하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8명 이외에는 각 주의 하원의원이 선출한다. 임기는 6년으로 2년마다 3분의 1을 개선한다. 하원의 정원은 545명으로 먼저 2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고 나머지는 각 주·직할지로부터 선거로 선출한다. 대통령은 연방의회 의원·주(州)하원의원이 선출한다. 수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각료는 수상의 권고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고(故) 네루 수상(1893

1964)은 비동맹, 중립의 외교노선을 지켰다. 어느 한 진영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인도는 동서의 대립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중국과의 평화 5원칙이 그 자세를 가장 잘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티베트 점령,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 티베트 난민의 인도 이주 등으로 중·인 친선관계는 깨지고 네루 사망 후에는 중국군이 인도의 북변을 침범하는 등의 사태를 빚어 계속 냉각상태를 보이다가 1976년 10월에 대사 교환이 성립되어 긴장완화가 이루어졌다.한편 1947년 인도가 오랜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했을 대 힌두교가 지배적인 인도에서 회교도 지역이 분리해서 파키스탄을 세웠는데, 카슈미르의 번왕(藩王) 자신은 힌두교이나 주민은 대다수가 회교도여서 번왕은 카슈미르의 인도 귀속을 원했으나 주민 가운데는 파키스탄과의 병합을 원하는 자가 많아 양쪽이 제각기 인도와 파키스탄에 지원을 요청한 결과 양쪽 군대가 진입하여 이곳에서 충돌했다. 결국은 유엔의 개입으로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갔다가 1965년 파키스탄과의 접경지대에서 다시 대충돌이 일어났다. 또한 1971년에도 인·파전쟁으로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어 오다가 유엔과 소련의 중재를 거쳐 1976년 5월 양국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외교 관계를 재개하였다. 1976년 8월 콜롬보에서 열린 제5회 비동맹 제국 수뇌회의에서 인도는 비동맹운동 리더의 지위를 과시하였다.지난 91년 6월 총선을 통해 출범한 라오정부는 96년 임기 만료 때까지 비교적 안정된 정국을 운영했다. 96년 6월 고우다를 중심으로 한 신내각이 출범했지만 정국 혼란이 계속되는 진통끝에 97년 4월 구즈랄 총리가 취임하기에 이르렀다. 99년 10월 바지파이 총리가 취임했다.

인도의 산업[편집]

-産業

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 여기에 임업, 수산, 가내공업 등에 종사하는 자들을 보태면 국민의 90%까지가 비근대 부문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산업별 국민소득을 보면 전소득의 약 40%가 농업이며 비근대부문의 직업을 합계하면 약 60%가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농업국임을 말해주나 농업을 포함한 비근대부문 산업의 소득이 근대부문의 산업에 비해서 얼마나 낮은가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한편 인도는 1951년 이후의 다섯 차례에 걸친 5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철강·기계공업 등이 구소련의 원조로 크게 개발되었다. 1976∼77 회계연도 예산 규모를 보면 총 152억 5,000만 달러 가운데 개발에 관련된 지출이 92억 달러로 전체 예산규모의 60%를 차지하였다. 1991년 이후 무역자유화가 이루어졌고 증권시장이 개방되었다. 기업에 대한 정부규제를 완화하고 관세를 대폭 인하하는 한편 외국자본 도입 등을 시행해 아시아의 신흥경제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인플레율 11.5%는 개방정책을 실시한 이후 각국이 앞다퉈 투자하는 가운데 인도정부가 정력적으로 산업진흥에 투자한 결과이다. 제8차 5개년 경제계획(1992∼97)에서는 기업들과 제휴 및 합작을 통해 국제경쟁력 강화를 꾀하였다.

농업[편집]

農業

국민의 약 68%가 종사하는 농업은 자급적 성격이 강한 인도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몬순이 시작되면서 파종하고 몬순이 끝날 무렵에 수확하는 하기작(夏期作)을 ‘칼리프’라고 하며, 몬순이 끝날 때 파종하고 건조기에 수확하는 동기작을 ‘라비’라고 한다.주요 농산물은 쌀, 사탕수수, 밀, 주트(마), 면화 등이며 경작면적이 가장 넓은 쌀은 벵골, 비하르, 오리사, 아삼 등 동부의 습윤기후지역에서 재배된다. 사탕수수의 생산은 세계 제1인데, 그 주산지는 우타르프라데시주이며, 비하르와 동(東) 펀자브 주가 그 다음에 온다. 그러나 함당률(含糖率)이 낮고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에 생산은 소련 다음으로 2위이지만 그래도 상품농작물로서 중요하다. 밀은 동 펀자브, 우타르프라데시주 서부에서 많이 나며 한때는 유럽에도 수출했으나 현재는 수입국의 위치로 전락했다. 주트는 갠지스 삼각주에서 재배되는데 이 지역은 방글라데시와 더불어 세계 최대의 주트 산지이다. 면화는 사탕수수 및 주트와 더불어 중요한 상품작물이며 흑색 면화토(黑色綿花土)가 분포하는 데칸 고원 북서부에서 많이 난다.

임업·수산업[편집]

林業·水産業

삼림면적은 국토의 20%를 차지한다. 마디아프라데시, 히마찰프라데시, 오리사, 케랄라 지방 등에 많으나 수종(樹種)이 많고, 비경제적 수림이기 때문에 임업은 활발치 못하다. 수산업은 보잘것없어 수산물은 수입에 의존한다.

광업·자원[편집]

鑛業·資源

주요 지하자원은 석탄, 철, 석유, 망간, 석회석, 금, 운모(雲母) 등으로 매장량이 비교적 풍부하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탄으로 2000년 통계에 의하면 총 2억 8,700만t 을 산출하고 있다. 다모다르강 유역의 비하르주 남부에서 서벵골주 서부에 이르는 지역이 그 주산지이다.철광석은 마디아프라데시주 동부에서 비하르, 오리사 양주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해 있는데 매장량은 세계 총매장량의 25%에 달한다. 철광과 석탄의 산지가 비교적 근접해 있는 유리한 입지조건을 기초로 비라이, 잠셰드푸르, 룰르케라 등지에 대규모의 제철소가 건설되었다.석유는 예부터 아샘지방에서 채유(採油)되었으나 최근에는 서부의 가자라트주에서도 나오기 시작하여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다. 석유 채굴에는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등의 자본이 많이 투입되어 있다. 망간은 산출고가 세계 제1위, 운모는 세계 총산출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업[편집]

工業

예전부터 견(絹)과 면(綿)을 중심으로한 가내공업이 성했는데, 특히 2차대전 후는 면공업의 발달이 괄목할 만했다. 서부의 봄베이, 아마다바드 등지는 그 중심으로 유명하다.이 밖에 선철·철강업은 중화학공업의 육성으로 좋은 전망을 보인다. 그러나 석탄·알루미늄 공업 및 설탕·식물유(植物油)·종이·화학비료·시멘트·자전거·소다회·석유제품 등은 인도로서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며, 1951년 이후 대부분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인도의 무역[편집]

-貿易

인도의 국제수지의 추이를 보면 수입초과의 비율이 증가일로를 걷고 있어 외환사정은 좋지 않다. 이 경향은 공업화에 따르는 기계류의 수입증가와 식량부족을 완화하기 위한 식량수입에 기인한다. 그래서 인도는 각종 경제개발에 필요한 금융재원을 외국의 공식 및 민간 자본원조에 크게 의존해 왔으나 최근 핵실험에 따른 경제제재, 정치적 불안과 정책의 투명성 결여 등으로 외국인 투자 인가가 33억 달러에 그쳤고, 1999년 들어 24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 승인이 이뤄졌다.상품별 수출입의 동향을 보면 1차산품과 가공품이 압도적으로 수출품목을 점하고, 공업제품이 수입품목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 보합세를 보여온 수출은, 농산물 등의 수출증가에 따라, 1999년 3월 10%, 4월 2%, 5월 12% 등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수입은 3월 2%, 4월-9%, 5월 2% 등으로 계속 둔화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9년도 인도의 무역수지는 1998년과 거의 비슷한 39억불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무역에 있어서는 서방제국 특히 미국과의 관계가 깊다.

인도의 교통[편집]

-交通

철도교통이 가장 잘 발달해 있다. 철도가 인도에서 처음 개설된 것은 영국지배하에 있던 1853년이었으며 현재 철도의 총연장은 약 6만 ㎞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철도교통은 항상 혼잡하다.자동차교통은 도로망이 정비되어 있는 데 비해서 보급률이 낮다. 수상교통은 캘커타, 마드래스, 봄베이 등의 항구를 중심으로 한 해상교통과 갠지스강, 브라마프트라강, 인더스강 등의 대하천을 이용한 하천교통이 있는데 상당히 먼 내륙지방까지 기선의 항행이 가능하다.항공교통은 국제선 에어 인디아(AIL)와 국내선 인디언 에어라인즈(IAL)가 있어 비교적 잘 발달해 있다.

인도의 도시[편집]

-都市

인도는 예전부터 도시가 잘 발달된 나라이다. 갠지스강 중류 지방에서는 기원전 많은 도시국가가 번영했다. 마우리아 왕조에 의한 국가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는 수도 파탈리푸트라(현재의 파트나)를 비롯해 각 지방에 중심도시가 생겼다. 아리안인이 건설한 고대도시는 방형 또는 장방형의 윤곽과 바둑판같이 질서정연한 도로망을 갖고 중앙부에 사원과 왕궁을 둔 계획 도시였다.영국인들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마드라스, 캘커타, 봄베이 등 유럽풍의 대도시를 연안지방에 새로 건설했다.독립 후에는 인구가 대도시로 집결하고 있다.

뉴델리[편집]

New Delhi

1911년 인도의 새 수도로 정해진 후 20년간에 걸쳐 완성된 계획도시로 넓은 도로망이 펼쳐진 정치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29만 4,783명(2001).야무나강 우안(右岸), 델리의 남부에 위치한다. 델리쪽에 가까운 북부에는 콘노트프레스라고 불리는 광장이 있어 주변에 고급 레스토랑과 상점이 즐비하고, 광장을 중심으로 넓은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방사되어 있다. 시의 서부지구에 정부관서, 국회의사당, 대통령관저 등이 있으며 남서지구에는 각국의 대사관이 몰려 있다. 동부에선 야무나강 연변에 간디(1869

1948), 네루(1889

1964) 등 인도의 지도자들의 묘가 있다. 뉴델리 남방엔 크타브미나르라는 높은 석탑이 있다. 1220년 노예왕조의 창건자인 터키인 크토우브 딘 아이바크( ?

1211)를 기념해서 세워진 높이 71m의 이 탑은 뉴델리 시가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델리[편집]

Delhi

인도 북부에 있는 도시로 연방 직할지구이다. 면적은 1,483㎢, 인구는 약 981만 7,439명(2001) 명으로 인구의 대부분은 올드델리와 뉴델리에 집중해 있다. 델리 직할지구는 올드델리로 알려진 델리, 뉴델리와 그 주변 지역이다.올드델리는 13세기 후반부터 역대 왕조의 도읍으로서 발달하고, 이슬람 세력의 침입과 더불어 영화를 누렸다. 무굴 왕조의 제5대왕 샤자한(1592

1666) 시대에 가장 융성했는데 이 시대에 도성(都城) 레드포트(Red Fort)가 건설되었다. 레드포트 남서에는 자마마스지드라고 불리는 대회교사원이 있어 예배자의 발길이 그칠 사이가 없다. 시가는 뉴델리와는 대조적으로 좁고 불규칙하며 낡은 건축물이 즐비해 있다.

우타르 프라데시주[편집]

Uttar Pradesh州

북부의 갠지스강상·중류 유역에 위치하며 인도에서 네번째로 넓은 면적을 갖고 있다. 주명은 북쪽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구는 1억 6,605만 2,859명(2001)으로 각 주 가운데서 가장 많으며, 인구밀도도 각 주 가운데서 가장 높다. 주민은 75%가 농업에 종사하며 서부에서는 밀, 동부에서는 쌀이 주로 생산된다. 이 밖에 농산물로는 수수와 콩류가 있다.

아그라[편집]

Agra

무굴시대의 수도. 무굴왕조 제3대의 악바르가 세운 아그라훼트와 제5대 샤자한(1592∼1666)이 죽은 왕비를 추모해서 세운 타지마할 등의 화려한 건축물이 있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전자는 적색사암(赤色砂岩), 후자는 대리석의 건조물이다.

러크나우[편집]

Lucknow

우타르 프라데시의 주도(州都)이다. 갠지스강 지류 굼티강에 연하는 이슬람 문화가 개화한 도시로 옛 회교사원과 묘묘 등의 유적이 있다. 세포이의 반란(1857∼59, 인도의 병사와 농민이 영국의 통치에 항거해서 일으킨 반란)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며 인도 민족운동이 중심지였다.

칸푸르[편집]

Kanpur

우타르 프라데시주 최대의 도시로 인구 253만(2001). 갠지스강 우안에 있으며 영인군(英印軍)의 기지로 있는 동안에 발달한 도시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면공업이 발달했고, 현재는 양모공업과 피혁공업이 성하며 병기창도 있다.

알라하바드[편집]

Allahabad

바라나시의 서쪽 약 100㎞, 야무나강과 갠지스강의 합류점에 있는 교통, 종교, 상업의 중심지로 고 네루 수상의 출생지이며 정치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양하천의 합류지점은 산감이라고 불리며 매년 1

2월 메타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큰 제사가 있어 수많은 신도들이 몰린다.

비하르주[편집]

Bihar洲

인도의 북동부, 갠지스강 유역의 농업지대, 남동부의 중공업지대, 남서부의 고원지대를 망라한다. 인구는 인도의 각 주 가운데서 제2위로 8,287만 8,796명(2001)이다. 갠지스강 유역 일대는 주로 도작지대이나 수해와 한해가 잦아 영세농가가 많다. 남동부는 석탄과 철광이 많은 인도 최대의 중공업지대이다.

파트나[편집]

Patna

갠지스강 유역의 비하르주의 주도로서 갠지스강 연변에 위치한 도로·철도교통의 요충지이다. 서쪽의 신시가는 관청가로 주정부의 주요 기관들이 늘어서 있고, 동쪽은 예부터 시가지로 순전한 인도풍의 거리이다. 남부에선 마우리아 왕조의 수도 파탈리푸트라 궁전자리가 발굴되었다. 농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아샘주[편집]

Assam州

인도 북동부의 차의 명산지로 수도는 디스푸르이다. 중앙부를 브라마푸트라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고, 그 남북은 산지와 구릉이다. 하천유역에서는 수도(水稻)가, 구릉지대에서는 차가 재배되며 인구의 약 90%가 농업에 종사한다. 차 이외에 아샘 실크라는 고급 견직물도 유명하다. 이 지방에는 몽골로이드계(蒙古人種)의 트라이브(원주민)가 살고 있어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혼교하고 있다.

마니푸르[편집]

Manipur

아샘 주의 동부, 미얀마와 접경하는 중앙정부의 직할령이며, 수도는 임팔, 도작을 주로 하는 농업지대이다.

서벵골주[편집]

西Bengal州

갠지스강 하류에 위치한 농업, 공업이 다 같이 성한 지방으로서 인도 최대의 인구 밀집지역. 주도는 캘커타, 쌀과 주트(麻)가 주요 농산물이며 그 생산고는 아샘 주 다음 간다. 서쪽의 마하라슈트라 주와 비견할 만한 공업주로 캘커타를 중심으로 고무, 금속, 기계공업이 성하다.

캘커타[편집]

Calcutta

갠지스 삼각주를 흐르는 후글리강 좌단에 위치한 인도 제2의 도시 봄베이와 겨루는 항구이자 공업도시이다.1911년까지 인도의 수도로서 번영했는데 주요 가로에 면한 건물은 대부분의 영국식이다. 후글리 강변에 광대한 마이단(廣場)이 있는데, 여기에서 영국이 인도지방의 근거지였던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이 있다.그 남동에는 영국의 인도지배를 말해주는 대리석의 빅토리아 기념관이 있다. 독립 후 방글라데시에서 난민이 쇄도하여 시 전체가 슬럼화해 버렸다.

다르질링[편집]

Darjeeling

네팔의 동부, 서 벵골의 북부에 있으며 피서지로서 발전했다. 해발 2248m의 히말라야 산속에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맑은 날은 칸첸중가를 조망할 수 있다.

히마찰 프라데시[편집]

Himachal Pradesh

인도북부 중앙정부 직할지. 주요 언어는 서(西)파하르어(語). 수도는 피서지로 유명한 심라로서 히말라야 산록 일대를 점하여 살구, 복숭아, 사과 등 과일이 많다. 한편 중앙정부의 직할지로서는 면적이 가장 넓다.

펀자브주[편집]

Punjab州

인도 북서부 밀도 주산지. 인구 1,667만. 펀자브는 힌두어(Panchcs 라는 뜻)와 Ab(물)의 합성어이며, 이 이름대로 인더스강의 다섯 지류(체나브, 수틀레지, 젤룸, 베아스, 라비)가 이 주를 흐른다.주도는 찬디가르. 밀 외에 면화·대두·옥수수가 생산된다. 주민의 80%가 농민이다.

라자스탄주[편집]

Rajasthan州

자연조건이 나빠 대부분이 사막 또는 황무지이다. 주민의 80%가 농민이며, 1인당 경작면적이 펀자브주 다음 가는데 단위면적당 생산고가 낮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낮다. 주요 농산물은 밀과 바지라라고 불리는 수수 종류이다. 번왕 시대에 세워진 성이 각처에 있어 당시의 영화를 생각게 한다.

자이푸르[편집]

Jaipur

라자스탄주의 주도. 도로와 철도 등 교통망이 정비된 상공업 중심지이다. 18세기에 건설된 사각형의 계획도시로 거리 전체가 핑크빛 일색이어서 핑크 시티라고도 불린다. 시 중앙에 자이싱왕이 세운 궁전이 있고 그 안에 천체 관측소가 있다.

조드푸르[편집]

Jodhpur

라자스탄주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시는 연장 10km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고 부근에는 화려한 사원이 많다.

마디아 프라데시주[편집]

Madhya Pradesh州

인도 중앙부에 있는 인도 최대의 주로, 수도는 보팔. 인구는 6,614만(1991).

전형적인 농업주로 주민의 82%가 농업에 종사한다. 쌀·밀·잡곡을 생산하는데 쌀은 남부에서, 밀과 잡곡은 북에서 많이 나며 남서부의 마르와 대지에서는 면화가 재배된다. 동부에는 석탄, 철광석 등의 자원이 있어, 그 개발이 현재 진행중이다. 이들 자원을 배경으로 동부의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비라이는 소련의 원조로 건설된 신흥 제철도시.

인도르[편집]

Indore

마디아 프라데시주 서부에 위치하며 곡물과 연초의 집산지로서 인구 258만 5,321명(2001)의 도시. 구 인도르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다.

오리사주[편집]

Orissa州

인도 동부 벵골만에 면한 전형적인 후진지역이다. 평균소득은 인도에서 최저이나 마하나디강 유역의 평야는 미작(米作) 지대로 농산물은 비교적 많이 난다. 비하르주에 가까운 북부지방에는 철·망간·석탄 등의 지하자원이 많고 루르켈라에는 독일의 원조로 건설된 제철소가 있다. 구수도 카타크 남쪽에 신수도 부바네스와르가 건설되었다.

구자라트주[편집]

Gujarat州

인도 서부에 있으며 면적은 19만 5,984㎢. 전에는 남쪽의 마하라슈트라주와 함께 봄베이주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언어문제로 1960년에 분리, 구자라트어를 쓰는 북반부가 아마다바드를 수도로 하여 구자라트주로 독립했다. 북부는 쓸모없는 습지이나 남부는 기름진 평야여서 쌀·면화·보리·담배가 많이 난다.

아마다바드[편집]

Ahmadabad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최대의 도시로 인구는 351만 5,361명(2001)이다. 사바르마티강 연변에 전개된다. 15세기에 아마드 1세가 건설한 도시인데, 시내에는 자마마스지드 이슬람교 대사원과 아마드샤의 묘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건축물이 남아 있다.19세기 후반부터는 인도의 면공업 중심지가 되었으며, 봄베이와 맞먹는 근대 공업도시로 발전하였다. 20세기에는 인도 민족운동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으며, 간디의 무저항, 불복종의 독립운동 본부가 있었다. 사바르마티 강변에 남아 있는 간디 수도원과 간디가 독립운동의 지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했던 구자라트 대학도 이 도시의 유서깊은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마하라슈트라주[편집]

Maharashtra州

데칸 고원 서부에 있으며 전에는 북쪽의 구자라트주와 함께 봄베이주라고 불리다가 1960년 언어상의 문제로 분리되었다. 인구 9,675만명. 주요 산업은 농업이며 주민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로 면, 밀, 쌀, 수수류가 재배되지만 푸나의 딸기와 동부의 나그푸르에서 나는 밀감도 유명하다. 주도 봄베이를 중심으로 하는 상공업, 특히 푸나의 신흥공업 등 공업화를 위한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봄베이[편집]

Bombay

인도 서해안 북부에 위치한 인도 최대의 도시. 해안에 점재(點在)하는 섬들을 연결한 인공(人工)반도와 우수한 항구를 가지고 있다. 도시 전체가 영국풍으로 동쪽의 캘커타와 마찬가지로 영국인이 건설했으며 인도 최대의 상공업도시로서 발전해 왔다.

수라트[편집]

Surat

봄베이 북쪽 약 200km, 탑티강의 하류에 연한 도시로 차례차례로 포르투갈, 무굴,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영국의 인도지배 초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현재는 상공업도시.

안드라 프라데시주[편집]

Andra Pradesh州

남인도의 동부, 하이데라바드가 수도인 농업주이다. 쌀, 조와르, 담배가 많이 산출되는데 특히 키스트나강 하류의 담배는 전국 생산고의 약 1/3을 차지한다. 최근 중화학공업의 공장이 건설되었고, 벵골만에 임하는 비자가퍼탐에는 조선소, 제유소(製油所), 비료공장 등이 있어 공업지대로서 기대되고 있다.

하이데라바드[편집]

Hyderabad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수도. 인구 344만 9,878명(2001). 구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수도로, 16

8세기에 세워진 많은 회교사원은 당시의 영화를 생각케 한다. 중앙부를 흐르는 무시강의 북안이 시의 중심지로 정부기관, 학교, 공원 등이 있다.

카르나타카주[편집]

Karnataka州

남인도 서부에 위치하는 인구 5,273만 3,958명(2001). 옛 이름은 마이소르(Mysore) 주. 교육, 문화 수준이 다른 주에 비해서 높고 근대화의 주도 역할을 하고 있다. 주도 방갈로르와 그 남서의 마이소냐는 예부터 이 지방의 중심지로서 연구소, 대학 등의 문화시설이 많고 최근에는 공업화에의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 주산업은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공업이며 쌀과 조와르 외에 상품 작물로서 커피가 생산된다.

방갈로르[편집]

Bangalore

카르나타카주의 수도. 인구 429만 (2001). 고지대에 있기 때문에 기후가 쾌청하며,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 청결하다. 특히 외국인이 많은 시빌 라인(영국시대의 관청, 주택구)은 정연한 거주지역이다. 교외에는 근대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하여 놀라운 속도로 공업화에의 길을 걷고 있다.

마이소르[편집]

Mysore

구 마이소르 왕국의 수도. 인구 621만(2001). 화려한 궁전이 있고 대학도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타밀 나두주[편집]

Tamil Nadu州

인도 남부 벵골만의 코로만델 해안에 위치하는 인구 약 621만 1,839명(2001). 주도는 마드라스. 인접한 케랄라 주와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유럽인들과의 접촉이 있어 문화·교육 수준이 높다. 쌀·기장·땅콩·사탕수수·면화·목재를 산출하고, 망간·마그네슘·크롬 등 지하자원도 많다. 1965년 마드라스주가 성립했다가 1968년 개칭되었다.

마드라스[편집]

Madras

인도 남부 동해안에 면한 항구도시. 인구 약 384만(2001)이고, 타밀 나두주의 수도이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의 근거지로서 17세기에 개설된 후 상업중심지로서 급속히 발전했다. 도시는 해안에 연하여 있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북동부의 세인트 조지 포트를 중심으로 시의 주요기관이 즐비해 있다. 해안에 연한 마리너비치로드는 시민들의 휴식처이고, 하늘과 바다의 푸름과 하얀 모래사장의 아름다움은 인상적이다.

퐁디셰리[편집]

Pondicherry

1674년에 설치된 프랑스의 인도지배의 근거지. 타밀나두주 동부, 벵골만에 면한 곳에 있으며 현재는 중앙정부의 직할지.

케랄라주[편집]

Kerala州

인도의 남부. 아라비아 해에 면해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면적이 작은 주. 일찍부터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세력이 강하고 진보적이라는 의미에서 인도의 특이한 도시이다. 인도에서 처음 공산당 정권이 출현한 것도 이 주이며 교육수준이 높으나 인구밀도가 높고, 농업생산이 거기에 따르지 못하므로 일반적으로 생활수준이 낮다.

코지코드[편집]

Kozhikode

케랄라주 북부, 옛 이름은 캘리컷(Calicut). 아라비아 해에 면해 있는 인구 43만 6,527명(2001)의 도시.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가마(1469?∼1524)가 기항한 곳이며 옛날부터 이름난 무역항이었다.

잠무 카슈미르[편집]

Jammu and Kashmir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 북부의 지방이며 이곳의 귀속문제는 인도 독립 이래 파키스탄과의 분쟁의 초점이 되어 왔다. 대부분이 카라코람 산맥과 그레이트 히말라야 산맥의 산악지대이며 주민은 산간분지나 계곡엣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있다. 교통이 불편해 지역간의 교류가 별로 없고, 주민의 기질은 폐쇄적이다. 중심부는 수도 스리나가르가 있는 카슈미르 계곡인데 여기에 길이 130㎞, 폭 30

40㎞의 비교적 넓은 평지가 있어 쌀, 밀, 보리, 옥수수, 살구, 포도 등이 재배된다. 주변 산지에서는 산양이 방목되는데 그 털로 짠 캐시미어 직물은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시킴주[편집]

Sikkim州

인도의 서 벵골주 북부에 있는 시킴은 영국의 보호령을 거쳐 1950년 인도의 보호국이 되었으나 인도는 1973년 5월 시킴 왕국을 주민들의 반대운동을 무릅쓰고 22번째 주로 공식 합병시켰다. 위치는 히말라야 산맥 및 그 산록을 차지하여 기후는 고도에 따라 한대성에서 열대성까지의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인접한 부탄과 같이 식물과 곤충의 종류가 많아 생물의 보고라고 불린다. 주민은 티베트미얀마계 레프차인으로 레프차어를 사용하나, 예로부터 티베트·네팔 등지로부터의 침입이 있어 티베트계·인도계의 인종과 언어가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쌀·수수·차 등이 생산된다. 면적 7,096㎢, 인구 약 45만(1992), 주도(州都)는 강토크이다.

스리나가르[편집]

Srinagar

잠무 카슈미르주의 주도로 인구 약 89만(2001). 카슈미르 계곡의 중심지로 해발 1,600m의 고도에 있기 때문에 피서지로 유명하다. 도시에서 다르호(湖)가 내려다보이며 동안(東岸)에는 매우 험한 빙식곡(氷蝕谷)의 산이 보이고, 호안(湖岸)에는 무굴 왕조 5대의 샤자한 황제의 정원이 있다. 시내에는 운하가 종횡으로 뻗어 있어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인도의 관광명소[편집]

-觀光名所

해마다 세계각지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나라 인도. 오랜 역사와 신비한 정신문화에 비해 후진국이어서 네루의 말대로 혐오스러운 것과 숭고한 것을 동시에 가진 나라이지만 타지마할을 비롯해 볼거리가 많은 나라이다.

엘로라[편집]

Ellora

아우랑가바드를 지나 서쪽으로 가다 데칸고원으로 들어서면 동굴처럼 늘어서 있는 엘로라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바위언덕이 물결치고 있는 듯 보이는 인상적인 카이라사나타 사원은 거대하고 정교하며 약 1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를 합쳐 34개의 석굴암이 있고 석굴암 내부에는 많은 석조(石彫)들이 있다. 엘로라 유적지 근교에는 18세기에 세워진 시바신의 사원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남자의 경우는 상반신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다.

타지마할[편집]

Taj Mahale

타지마할은 너무나도 유명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 거대하고 신비로운 무덤은 1631년 무굴제국의 왕 샤 자한(Shah Jahan)이 부인을 위해 짓기 시작하여 22년만인 1653년에 완공시켰다. 가로 300m, 세로 530m의 당당한 정문은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고, 정문의 아치를 빠져나가면 넓은 마당에 수로(水路)를 둔 전형적인 무굴양식의 정원과 분수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앞에는 완벽한 좌우대칭의 미를 보여주는 타지마할이 우뚝 서 있다. 맑은 날이면 흰 대리석의 몸체는 더욱 눈부시며 햇빛이 대리석을 비추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보는 모습도 가히 환상적이다.

아잔타[편집]

Ajanta

불교 동굴 사원으로 기원전 1세기경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어진 전기 동굴과 5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지어진 후기동굴이 있다. 인도의 풍속이나, 불교에 관한 것들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필치로 벽면만이 아니라 기둥, 대들보, 천장 등 광대한 공간의 구석구석에까지 묘사되어 있다. 8세기 들어 불교가 쇠퇴함에 따라 약 1000년 이상 버려졌다가 1819년 영국군에 의해 발견되었다.

라지가트와 간디 기념 박물관[편집]

Mahatma Gandhi 記念 博物館

라지가트는 간디 거리에 있는 간디의 화장터이다. 1948년 1월 30일에 극우파 힌두 청년에게 암살당한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곳으로 잔디밭 중앙에는 검은 대리석의 네모난 대좌가 있으며 그 중앙에는 간디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인 ‘오 신이여!’가 새겨 있다.간디 기념 박물관은 간디에 관한 자료, 유품, 사진, 도서가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최후의 순간에 입고 있던 검소한 의복이 진한 감동을 준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네루 집안의 3대(네루, 산자이 간디, 인드라 간디)의 화장터 인 샨티바나가 있으며, 더 북쪽으로는 제2대 수상의 화장터인 비자이가트가 있다.

붉은 성[편집]

Lal Qila;Red Fort

무굴제국시대(1639∼1648)에 건립된 빨간 사암의 성벽이 인상적인 성이다. 지을 당시에는 보석과 귀금속으로 장식되고 아름다운 휘장이 드리워져 있으며, 궁전 안으로 연결된 수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영국점령군에게 수없이 침략당하여 볼품없이 변해버렸다.정문인 라호르문과 남쪽에 델리문이 있으며, 정원 안쪽에는 흰 대리석 궁정인 디와니 암이 있다. 박물관이 있어 무굴제국시대의 회화와 무기 등을 볼 수 있다.

쿠트브 미나르[편집]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양식이 혼합된 높이 73m의 5층석탑이다. 1층은 흰두양식, 2·3층은 이슬람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노예왕조의 쿠트브 딘 아이바크가 델리 정복기념으로 1199년에 건립을 시작하였다. 각층 사이에 발코니가 있고, 내부는 나선형의 379계단이 있다. 부지 안에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쿠와툴 이슬람 모스크, 4세기에 세워진 높이 7.2m의 철주(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 등이 있다.

국립박물관[편집]

國立博物館

인도 4,000년의 역사 유물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각지의 유물을 광범위하게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인 하라파의 출토품과 간다라의 불상, 마우리아 왕조와 굽타 왕조의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무굴제국의 세빌화오라 수사본, 각종 민예품이 높여 있다.

인도문[편집]

India Gate

1911년 영국왕 조지 5세 내외가 인도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워진 봄베이의 상징적인 건조물이다. 타지마할 호텔 앞 봄베이만의 아폴로 부두에 서 있는 거대한 문이며, 16세기 구자라트 양식으로 높이 26m인 문 양옆에 보조문이 있다. 인도문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봄베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엘레판타 섬[편집]

인도문 앞 아폴로 부두에서 9㎞ 정도 떨어진 해상에 떠있는 작은 섬이다. 높이 약 200m의 바위산에 석굴을 파고 힌두교 사원이 조성되어 있다. 굽타 왕조 후기인 6∼8세기에 조성되었는데, 힌두교의 신들과 라마야나 신화의 이야기를 양각해 놓은 것이 신비롭다. 섬에는 일곱 개의 석굴이 있으며, 7세기에 만들어진 시바 사원에는 ‘춤추는 시바’ 등의 조각이 있다.

칸헤리 석굴[편집]

서인도 최대의 석굴 불교사원으로 봄베이 북쪽의 간디 국립공원에 위치해 있다. 2∼8세기에 조성된 109개의 석굴에는 불상을 비롯한 조각들이 많이 있으며, 특히 석가모니 입상과 불탑 등이 뛰어나다.

인도 박물관[편집]

Indian Museum

1814년에 창립한 인도 최고의 박물관으로 인도 각지의 대규모의 출토품, 뛰어난 조각들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가운데에 하루후토의 스토아빠 둘레를 싸고 있는 탑문과 난관의 부조조각(기원전 2세기)도 소중한 유물이다.

센토매 사원[편집]

Cathedral of San Thome

마도라스대사교가 관장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인데 19세기말에 그때까지 만들어져 있던 포르투갈의 교회를 계승해 이루어져 네오 고딕양식으로 세워졌다. 건물은 옛날부터 산토메의 묘가 있다고 믿는 동굴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