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사기/권013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사기/권013에서 넘어옴)

1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오제(五帝)와 삼대(三代)의 (사적의) 기록은 역시 (아주 오래되어 자세히 알기 어렵다.) 은(殷)나라 이전(以前) 제후국의 (사적은 자료를 구했으나) 보첩(譜諜)으로 편집할 수가 없었고, 주(周)나라 이래로 와서야 다소 저술이 가능했다. 공자(孔子)는 역사서를 근거로 삼아 『춘추(春秋)』를 연대별로 편찬했는데, 이것은 노(魯)나라 은공(隱公)의 즉위 원년을 비롯해 사시(四時)와 일월(日月)이 정확하게 적혀 있어 참으로 상세하다. 그러나 『상서(尙書)』를 편찬할 때에는 오히려 연월(年月)을 간략하게 만들었다. 어떤 부분은 다소 연월이 있는가 하면, 많은 부분은 누락되어 기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의문이 있는 부분은 의문을 남긴 채 전했는데, 이 또한 참으로 신중히 했다.

2 내가 『첩기(諜記)』를 읽어보니, 황제(黃帝) 이래는 모두 연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한 역대 보첩과 5덕(五德)에 따라 계승되었던 것을 앞뒤로 고증해보니, 고문의 기록이 모두 일치하지 않고 괴리되거나 차이가 있었다. 공자가 그 연월의 차례를 논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유 없이 그랬겠는가! 그래서 나는 『5제 계첩(五帝系諜)』과 『상서』에 기록된 황제 이래 공화(共和) 시기까지의 기록을 집성해 「세표(世表)」를 지었다.”

삼대세표[편집]

제왕의 세대와 국호 전욱의 혈족 곡의 혈통 요의 혈통 순의 혈통 하의 혈통 은의 혈통 주의 혈통
황제(黃帝)

국호 유웅(有熊)

황제가 창의(昌意)를 낳음 황제가 현효(玄囂)를 낳음 황제가 현효를 낳음 황제가 창의를 낳음 황제가 창의를 낳음 황제가 현효를 낳음 황제가 현효를 낳음
제 전욱(顓頊)

황제의 손자로 황제로부터 전욱까지 3대

창의가 전욱을 낳았으니, 고양씨이다 현효가 교극(蟜極)을 낳음 현효가 교극을 낳음 창의가 전욱을 낳고, 전욱이 궁선(窮蟬)을 낳음 창의가 전욱을 낳음 현효가 교극을 낳고, 교극이 고신을 낳음 현효가 교극을 낳고, 교극이 고신을 낳음
제곡(帝俈)
황제의 증손으로 황제부터 고신까지 4대, 국호 고신(高辛)
교극이 고신을 낳았으니, 제곡이다 교극이 고신을 낳고 고신이 방훈(放勛)을 낳음 궁선이 경강(敬康)을 낳고, 경강이 구망(句望)을 낳음 고신이 이(禼)를 낳음 고신이 후직(后稷)을 낳았으니, 주(周)의 시조이다
제 요(堯)
황제부터 곡의 아들까지 5대, 이름은 당(唐)
방훈이 요이다 구망이 교우(蟜牛)를 낳고, 교우가 고수(瞽叟)를 낳음 이는 은(殷)의 시조이다 후직이 부줄(不窋)을 낳음
제 순(舜)
황제의 현손의 현손, 국호는 우(虞)
고수가 중화(重華)를 낳았으니,

그가 바로 제순이다

전욱이 곤(鯀)을 낳고, 곤이 문명(文命)을 낳음[1] 이가 소명(昭明)을 낳음 부줄이 국(鞠)을 낳음
제 우(禹)
황제의 이손(8대손), 국호는 하(夏)
문명, 그가 바로 우이다 소명이 상토(相土)를 낳음 국이 공류(公劉)를 낳음
제 계(啟)

유호(有扈)를 정벌하고, 《감서(甘誓)》를 지음

상토가 창약(昌若)을 낳음 공류가 경절(慶節)을 낳음
제 태강(太康) 창약이 조어(曹圉)를 낳고, 조어가 명(冥)을 낳음 경절이 황복(皇僕)을 낳고, 황복이 차불(差弗)을 낳음
제 중강(仲康)

태강의 아우

명이 진(振)을 낳음 차불이 훼유(毀渝)를 낳고, 훼유가 공비(公非)를 낳음
제 상(相) 진이 미(微)를 낳고, 미가 보정(報丁)을 낳음 공비가 고어(高圉)를 낳고, 고어가 아어(亞圉)를 낳음
제 소강(少康) 보정이 보을(報乙)을 낳고, 보을이 보병(報丙)을 낳음 아어가 공조류(公祖類)를 낳음
제 여(予) 보병이 주임(主壬)을 낳고, 주임이 주계(主癸)를 낳음 공조류가 태왕(太王) 단보(亶父)를 낳음
제 괴(槐) 주계가 천을(天乙)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은의 탕(湯)이다. 단보가 계력(季歷)을 낳고, 계력이 문왕(文王) 창(昌)을 낳음, 역괘를 덧붙이다.
제 망(芒) 문왕 창이 무왕(武王) 발(發)을 낳음
제 설(泄)
제 불항(不降)
제 경(扃)
불항의 아우
제 근(廑)
제 공갑(孔甲)
불항의 아들로 귀신을 좋아하고, 음란하여 덕을 좋아하지 않음. 용 두 마리를 돌보지 못함
제 고(皋)
제 발(發)
제 이계(履癸)

그가 바로 걸(桀)이다
우로부터 걸까지 17대이고, 황제로부터 걸까지 20대

은탕이 하씨를 이음

황제로부터 탕까지 17대

제 외병(外丙)

탕의 태자 태정(太丁)이 일찍 죽어 아우인 외병이 옹립

제 중임(仲壬)
외병의 아우
제 태갑(太甲)

옛 태자 태정의 아들, 음란하여 이윤(伊尹)이 동궁(桐宮)으로 3년 간 추방하였다가 스스로 허물을 뉘우치고 책망하여 이윤이 다시 복위시킴

제 옥정(沃丁)

이윤이 사망

제 태강(太庚)

옥정의 동생

제 소갑(小甲)

태강의 동생[2], 은의 도가 쇠하여 제후들이 조회하지 않는 경우가 나타남

제 옹기(雍己)

소갑의 동생

제 태무(太戊)

옹기의 동생, 상곡(桑穀)이 발생하여 중종(中宗)이라 칭함

제 중정(中丁)
제 외임(外壬)

중정의 동생

제 하단갑(河亶甲)

외임의 동생

제 조을(祖乙)
제 조신(祖辛)
제 옥갑(沃甲)

조신의 동생

제 조정(祖丁)

조신의 아들

제 남경(南庚)

옥갑의 아들

제 양갑(陽甲)

조정의 아들

제 반경(盤庚)

양갑의 동생, 하남으로 천도

제 소신(小辛)

반경의 동생

제 소을(小乙)

소신의 동생

제 무정(武丁)

꿩이 정(鼎)의 손잡이에 올라 울고 부열(傅說)을 얻었으니 고종(高宗)이라 칭함

제 조경(祖庚)
제 갑(甲)

조경의 동생, 음란하였음

제 늠신(廩辛)
제 경정(庚丁)

늠신의 동생, 은이 하북으로 천도

제 무을(武乙)

천신(天神)을 업신여기다 우레 소리에 놀라 사망

제 태정(太丁)
제 을(乙)

은이 더욱 쇠퇴

제 신(辛)

그가 바로 주(紂)이다

시해됨, 탕으로부터 주까지 29대이고 황제로부터 주까지 46대

주 무왕이 은을 정벌

황제부터 무왕까지 29대

노(魯) 제(齊) 진(晉) 진(秦) 초(楚) 송(宋) 위(衛) 진(陣) 채(蔡) 조(曹) 연(燕)
성왕(成王) 송(誦) 주공(周公) 단(旦)

첫 봉건, 무왕의 동생

태공(太公) 상(尚)

첫 봉건, 문왕과 무왕의 스승

당숙(唐叔) 우(虞)

첫 봉건, 무왕의 아들

오래(惡來)

주(紂)를 도움, 아버지는 비렴(飛廉), 힘이 셈

첫 봉건

웅역(熊繹)

아버지는 육웅(鬻熊)

첫 봉건, 문왕을 섬김

미자(微子) 계(啟)

첫 봉건, 주(紂)의 서형

강숙(康叔)

첫 봉건, 무왕의 동생

호공(胡公) 만(滿)

첫 봉건, 순(舜)의 후손

숙(叔) 도(度)

첫 봉건, 무왕의 동생

숙(叔) 진탁(振鐸)

첫 봉건, 무왕의 동생

소공(召公) 석(奭)

첫 봉건, 동성 제후

강왕(康王) 쇠(釗)

40여 년 동안 형별을 시행하지 않음

노공 백금(魯公伯禽) 정공(丁公) 여급(呂伋) 진후 섭(晉侯燮) 여방(女防) 웅애(熊乂) 미중(微仲), 미자 계의 동생. 강백(康伯) 신공(申公) 채중(蔡仲) 9대를 내려와 혜후(惠侯)에 이름.
소왕(昭王) 하(瑕)

남쪽으로 순행을 가서 돌아오지 않았으나 부고하지 않고 숨김

고공(考公) 을공(乙公) 무후(武侯) 방고(旁皋) 웅담(熊黮) 송공(宋公) 효백(孝伯) 상공(相公) 채백(蔡伯) 태백(太伯)
목왕(穆王) 만(滿)

보(甫)가 형벌을 만듬, 황복(荒服) 지역이 조현하러 오지 않음

양공(煬公), 고공의 동생. 계공(癸公) 성후(成侯) 대궤(大几) 웅승(熊勝) 정공(丁公) 사백(嗣伯) 효공(孝公) 궁후(宮侯) 중군(仲君)
공왕(恭王) 이호(伊扈) 유공(幽公) 애공(哀公) 여후(厲侯) 대락(大駱) 웅양(熊煬) 민공(湣公), 정공의 동생. 섭백(疌伯) 신공(慎公) 여후(厲侯) 궁백(宮伯)
의왕(懿王) 견(堅)

주나라의 도가 쇠해지자, 시인들이 시를 지어 헐뜯음

위공(魏公) 호공(胡公) 정후(靖侯) 비자(非子) 웅거(熊渠) 양공(煬公), 민공의 동생. 정백(靖伯) 유공(幽公) 무후(武侯) 효백(孝伯)
효왕(孝王) 방(方)

의왕의 동생

여공(厲公) 헌공(獻公)이 호공을 시해함. 진후(秦侯) 웅무강(熊無康) 여공(厲公) 정백(貞伯) 이공(釐公) 이백(夷伯)
이왕(夷王) 섭(燮)

의왕의 아들

헌공(獻公), 여공의 동생. 무공(武公) 공백(公伯) 웅지홍(熊鷙紅) 이공(釐公) 경후(頃侯)
여왕(厲王) 호(胡)

간언을 듣기 싫어하여 난이 일어나 도망쳤다가 마침내 체(彘)에서 사망함

진공(真公) 진중(秦仲) 웅연(熊延), 웅홍(熊紅)의 동생. 이후(釐侯)
공화(共和), 두명의 백(伯)이 정치를 행함. 무공(武公), 진공의 동생. 웅용(熊勇)

장부자(張夫子)와 저선생(褚先生)[편집]

장부자(張夫子)가 저선생(褚先生)에게 물었다. “『시경(詩經)』에서는 설(契)과 후직(后稷)은 모두 부친 없이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전기(傳記)를 살펴보면, 모두 그들에게는 부친이 있었고, 그들의 부친은 바로 황제(黃帝)의 자손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시경』의 기록과 설마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선생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설이 알에서 출생했고, 후직이 사람의 발자국에서 출생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천명의 정성을 구현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귀(鬼)와 신(神)은 스스로 형성할 수 없으며, 반드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즉, 어찌 설과 후직이 부친 없이 태어났겠습니까?

하나는 그들에게 부친이 있었다는 학설이고, 또 하나는 그들에게 부친이 없었다는 학설입니다. 믿음은 믿음을 전하고, 의심은 의심을 전해, 이렇게 두 가지 학설을 낳았던 것입니다. 당요(唐堯)는 설과 후직이 모두 현명한 사람으로서 하늘이 그들을 보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에게 70 리의 봉토(封土)를 주었는데, 설은 그 후 10여 대를 거쳐 탕(湯)에 이르렀고, 마침내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당요는 후직의 자손이 앞으로 제왕의 업을 성취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후직의 봉토를 1백 리까지 늘려주었더니, 그의 후손이 천 년에 걸쳐 내려오다가 주 문왕(周文王)에 이르러 비로소 천하를 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탕의 선조는 설이나, 설은 부친 없이 태어났다. 설의 모친이 그녀의 자매들과 함께 현구수(玄丘水)에서 목욕을 하는데, 제비 한 마리가 입에 알을 품고 떨어져 내려왔다. 설의 모친은 알을 얻어 입에 물고 있다가 삼켜 설을 낳게 되었다. 설은 매우 현량해, 요는 그를 사도(司徒)로 임명하고 자(子)라는 성을 주었다. 자는 바로 자(玆)를 가리키며, 날로 강대함을 뜻한다. 시인은 그를 찬미하고 칭송하기를, 은(殷)의 땅은 매우 넓구나! 하늘이 현조(玄鳥)를 내려 보내 상(商)을 이루었도다라 했다. 상은 바로 질(質)을 가리키며, 질은 은의 미칭이다.

주 문왕의 선조는 후직인데, 후직도 부친 없이 태어났다. 후직의 모친 강원(姜嫄)은 문밖에 나가 거인의 발자국을 보았는데, 발자국을 밟자 산기를 느끼고 후직을 낳게 되었다. 강원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없다고 여기고 그를 경시해 길가에 버렸으나 소와 양들이 모두 그를 밟지 않고 피했다. 그래서 산 속에 버렸지만 산 속에 살던 사람이 그를 길렀다. 이에 다시 큰 못에 던졌더니, 새들이 덮고 받쳐 들며 키웠다. 강원은 매우 이상히 여기고, 이 상황으로 보아 그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판단해 데려와 양육했다. 당요는 그가 현재(賢才)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를 대농(大農)에 임명하고, 희(姬)라는 성을 주었다. 희는 즉 본(本)을 뜻한다. 시인은 그를 찬미하고 칭송해 말하기를, 그 처음은 백성 이래에 있었도다라고 하며, 충분히 수련하고 날로 성취했던 후직의 시작을 칭찬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말하기를, ‘이전에 당요가 설을 자씨라고 명한 것은 탕이 있었기 때문이며, 후직을 희씨라고 명한 것은 문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왕(大王)은 은의 계력(季歷)을 자신의 계승자로 명해 하늘에서 내린 상서로움을 표명했다. 태백(太伯)이 오(吳)에 이르자, 주 문왕과 주 무왕(周武王)이 천하를 얻어 주 왕조를 대대로 잇는 근원이 생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뜻은 알기 어려운 것이지만, 성인이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순(舜), 우(禹), 설, 후직 모두는 황제(黃帝)의 자손입니다. 황제가 하늘의 명을 받고 천하를 다스렸는데, 그의 덕이 깊어 멀리 후세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손이 천자로 세워진 것은 하늘이 덕 있는 자에게 보답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 도리를 모르고 제왕이 모두 보통 사람에게서 생긴 것으로 여기는데, 보통 사람이 어찌 까닭 없이 흥기해 천하를 군림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하늘의 뜻을 얻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부자가 물었다. “황제(黃帝)의 후세가 어떻게 이토록 오래 천하를 군림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저선생이 대답했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천하의 군주는 만민의 원수(元首)로서, 그들은 하늘에 백성의 생명을 연장하기를 간구하며, 왕위에 올라 그 복을 만대에 전한다고 했습니다. 황제(黃帝)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5정(五政)을 밝히고, 예의를 닦았으며, 하늘의 기회에 따라 군사를 일으켜 정벌해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왕위에 올라 그 복을 천대에 전했습니다.

촉왕(蜀王)은 황제의 후손으로서, 지금까지 한(漢)나라의 서남쪽 5천리 밖에서 찾아와 자주 한나라 천자를 뵙고 공물을 주기적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이는 어찌 그의 조상이 덕행이 있어 그 덕이 후세까지 전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덕을 수행함에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군왕은 모두 이에 유의해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한나라의 대장군(大將軍) 곽자맹(霍子孟)은 이름이 광(光)으로 역시 황제의 후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지식이 밝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배움이 얕은 사람들과는 함께 논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고대의 제후는 나라로서 성씨를 삼았습니다. 곽(霍)은 국가의 명칭입니다. 주 무왕이 그의 제숙(弟叔)을 곽에 봉했는데, 후세까지 이어지다가 진 헌공(晉獻公)에 의해서 곽공이 멸망했습니다. 그리하여 곽공의 후손은 평민이 되어 평양(平陽) 일대를 왕래하며 거주했습니다. 평양은 하동(河東) 지역에 있었는데, 하동은 진(晉)나라의 영토에 속해있었으나 그 후 위(衛)나라로 나뉘어졌습니다.

『시경』에 의하면, 이들 또한 주나라의 자손이며, 주나라는 후직에서 시작했고, 후직은 부친이 없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대세전(三代世傳)」에 따르면, 후직에게는 고신(高辛)이라는 이름의 부친이 있었으며, 고신은 황제(黃帝)의 자손이라 했습니다. 『황제종시전(黃帝終始傳)』에 말하기를 ‘한나라 왕조가 흥기한 지 백여 년이 되었을 때, 적당하게 키가 큰 한 사람이 백연향(白燕鄕)에서 와서 천하의 정사를 담당했다. 당시 어린 황제가 있었으나, 그는 어린 황제의 수레를 위축시켜 물러나게 했다.’라고 했습니다. 곽장군은 본래 양평에 있는 백연향에 거주했습니다. 신(臣)이 낭(郎)을 지낼 무렵, 일찍이 방사(方士) 고공(考功)을 시정의 술집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방사가 내게 곽장군의 이러한 상황을 말해주었습니다. 어찌 그가 위대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원문[편집]

역주[편집]

  1. 표의 앞 열에는 8대손으로 되어 있어 하의 혈통 열과 차이가 있다. 주석에서는 《한서》를 근거로 곤이 전욱의 5대손이라 밝히고 있다.
  2. 〈은본기〉를 비롯한 다른 기록에는 태강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라이선스[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