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삼국사기/권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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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 이사금[편집]

(원년(356년) 4월) 내물(奈勿)혹은 나밀(那密) 이사금(尼師今)이 즉위했다. 성은 김(金)이고, 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각간(角干) 말구(末仇)이고, 어머니는 김씨(金氏) 휴례부인(休禮夫人)이다. 비(妃)는 김씨(金氏)[1]로 미추왕(味鄒王)의 딸이다. 흘해(訖解)흘해 이사금가 죽고 아들이 없어 내물이 그를 계승했다.말구와 미추이사금은 형제이다.

논(論)한다. 아내를 얻음에 동성(同姓)을 얻지 않음은 엄히 분별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노공(魯公)이 오(吳)나라에서 (아내를) 얻고 진후(晉侯)가 희씨(姬氏) 성(姓)의 아내 넷을 두매, 진(陳)나라의 사패(司敗)[2]와 정(鄭)나라의 자산(子産)[3]이 그것을 매우 나무랐다. 신라에서, 같은 성씨(의 아내)를 취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형제의 자식과 고종·이종 자매까지도 모두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이 각각 풍속을 달리하더라도, 중국의 예(禮)로써 이를 꾸짖으면 크게 사리에 맞지 않는다. 흉노(匈奴)의 풍속에서, 어미를 증(烝 :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간음하는 것)하고 자식을 보(報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간음하는 것)함은 이보다 더 심하다.

2년(357년)[편집]

2년(357년)

봄에 사자를 보내 홀아비·홀어미·고아·자식 없는 늙은이[鰥寡孤獨]를 위로하여 각각 곡식 3곡(斛 : 10말)을 내려주고, 효제(孝悌)가 행실에서 남다른 사람에게 직급 한 등급을 올려주었다.

3년(358년)[편집]

3년(358년)

봄 2월 몸소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자줏빛 구름이 대야처럼 묘 위에 감돌았다. 신비로운 새가 묘의 뜰에 모였다.

7년(362년)[편집]

7년(362년)

여름 4월 시조묘 뜰의 나무들이 서로 엉겨 붙었다.

9년(364년)[편집]

9년(364년)

여름 4월 왜병이 크게 다다르니, 왕이 그를 듣고 그들을 대적하지 못함을 두려워하여 수천 개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병사의 옷을 입히고, 토함산(吐含山) 밑에 놓았다. 부현(斧峴) 동쪽 평야에 용사 1천 명이 잠복하였다. 왜인의 무리들이 직진하니, 복병들이 나와 그들을 격퇴하여 왜인들이 크게 패하여 도주하니, 그들을 추격하여 죽였더니 그들의 수가 다하더라.

11년(366년)[편집]

11년(366년)

봄 3월 백제인이 내빙하였다.

여름 4월 홍수가 나 산 열 세 곳이 무너졌다.

13년(368년)[편집]

13년(368년)

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좋은 말 두 필을 바쳤다.

17년(372년)[편집]

17년(372년)

봄과 여름 큰 가뭄이 들다. 그해에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여럿이 떠돌았다.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

18년(373년)[편집]

18년(373년)

백제 독산성(禿山城) 성주가 300명을 이끌고 와서 항복하였으므로 왕이 그들을 받아들여 6부에 나누어 살게 하니, 백제 왕이 글을 보내 말하였다. “두 나라가 화친을 맺어 형제가 되기를 약속했었는데, 지금 대왕께서 우리의 도망한 백성을 받아들이니 화친한 뜻에 크게 어긋납니다. 이는 대왕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바라건대 그들을 돌려 보내십시오.” 왕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백성은 일정한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생각나면 오고 싫어지면 가버리는 것은 진실로 그렇기 때문이다. 대왕께서는 백성이 편치 않음은 걱정하지 않고 도리어 과인을 나무라는 것이 어찌 이렇게 심한가?” 백제에서 그 말을 듣고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여름 5월 수도에 물고기 비[雨魚]가 내렸다.

21년(376년)[편집]

21년(376년)

가을 7월 부사군(夫沙郡)에서 뿔이 하나인 사슴을 올렸다. 큰 풍년이 들었다.

24년(379년)[편집]

24년(379년)

여름 4월 양산(楊山)에서 작은 참새가 큰 새를 낳았다.

26년(381년)[편집]

26년(381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위두(衞頭)를 부씨의 진(秦)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부견(苻堅)이 위두에게 물었다. “경(卿)이 말하는 해동(海東)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으니 어찌된 것인가?” (위두가) 대답하였다.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혁되고 이름이 바뀌었으니, 지금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33년(388년)[편집]

33년(388년)

여름 4월 경도(京都)에 지진이 일어났다.

6월 또 지진이 일어났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34년(389년)[편집]

34년(389년)

봄 정월, 경도(京都)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2월 흙비가 내렸다.

가을 7월 황충(晃蟲 ; 蝗)이 생겨 곡식이 여물지 않았다.

37년(392년)[편집]

37년(392년)

봄 정월에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왕은 고구려가 강성하였으므로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實聖)실성 이사금을 보내 볼모로 삼았다.

38년(393년)[편집]

38년(393년)

여름 5월에 왜인이 와서 금성(金城)을 에워싸고 5일 동안 풀지 않았다. 장수와 병사들이 모두 나가 싸우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지금 적들은 배를 버리고 [육지] 깊숙이 들어와 사지(死地)에 있으니 그 칼날을 당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성문을 닫았다. 적이 아무 성과 없이 물러가자 왕이 용맹한 기병 200명을 먼저 보내 돌아가는 길을 막고, 보병 1천 명을 보내 독산(獨山)까지 추격하여 양쪽에서 공격하여 크게 쳐부수었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40년(395년)[편집]

40년(395년)

가을 8월 말갈이 북변(北邊)을 침범했다. 출병하여 실직(悉直)의 벌판에서 크게 깨뜨렸다.

42년(397년)[편집]

42년(397년)

가을 7월 북변 하슬라(何瑟羅)에 가뭄이 들고 황충이 생겼다.

그해에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렸다. 죄수들을 곡사(曲赦 : 지역 죄수를 사면함)하고, 또한 1년 동안 조세와 공물을 면제했다.

44년(399년)[편집]

44년(399년)

가을 7월 황충이 날아와 들판을 덮었다.

45년(400년)[편집]

45년(400년)

가을 8월 살별이 동방에서 나타났다.

겨울 10월 왕이 타던 내구마(內廐馬)가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었다.

46년(401년)[편집]

46년(401년)

봄과 여름 가뭄이 들다. 가을 7월 고구려에 볼모로 갔던 실성이 돌아왔다.

47년(402년)[편집]

47년(402년) 봄 2월 왕이 훙하다.

실성 이사금[편집]

실성 이사금(實聖尼師今)이 즉위했다.

알지(閼智)의 후손이고, 이찬(伊湌) 대서지(大西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리부인(伊利夫人)또는 기리부인(企利夫人)[4]으로 아간(阿干) 석등보(昔登保)의 딸이다. 왕비는 미추왕미추 이사금의 딸이다. 실성은 키가 7척5촌이며, 총명하고 사리에 통달했다. 나물내물 이사금이 죽고 그 아들이 어렸다. 나라 사람들이 실성으로 왕위를 잇게 했다.

원년(402년)[편집]

元年 三月 與倭國通好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

2년(403년)[편집]

二年 春正月 以未斯品爲舒弗邯 委以軍國之事 秋七月 百濟侵邊

3년(404년)[편집]

三年 春二月 親謁始祖廟

4년(405년)[편집]

4년(405년) 여름 4월 왜병이 와서 명활성(明活城)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이 기병을 거느리고 독산(獨山)의 남쪽에서 이들을 가로막고 다시 싸워 깨뜨렸다. 300여 수급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5년(406년)[편집]

五年 秋七月 國西蝗 害穀 冬十月 京都地震 十一月 無氷

6년(407년)[편집]

六年 春三月 倭人侵東邊 夏六月 又侵南邊 奪[5]掠一百人

7년(408년)[편집]

七年 春二月 王聞 倭人於對馬島[6]置營 貯以兵革資粮 以謀襲我 我欲先其未發 揀精兵擊破兵儲 舒弗邯未斯品曰 臣聞 兵凶器 戰危事 況涉巨浸以伐人 萬一失利 則悔不可追 不若依嶮設關 來則禦之 使不得侵猾 便則出而禽之 此所謂致人而不致於人 策之上也 王從之

11년(412년)[편집]

十一年 以奈勿王子卜好 質於高句麗

12년(413년)[편집]

十二年 秋八月 雲起狼山 望之如樓閣 香氣郁然 久而不歇 王謂 是必仙靈降遊 應是福地 從此後 禁人斬伐樹木 新成平壤州大橋

14년(415년)[편집]

十四年 秋七月 大閱於穴城原 又御金城南門觀射 八月 與倭人戰於風島 克之

15년(416년)[편집]

十五年 春三月 東海邊獲大魚 有角 其大盈車 夏五月 吐含山崩 泉水湧 高三丈

16년(417년)[편집]

16년(417년) 여름 5월 왕이 훙하다.


  1. 눌지 마립간
  2. 자비 마립간
  3. 소지 마립간

주석[편집]

  1. 삼국유사》에서는 김씨 내례희부인(內禮希夫人).
  2. 관명
  3. 공손교
  4. 《삼국유사》에서는 예생부인(禮生夫人) 석씨(昔氏).
  5. 原本 𡙸. 奪의 古字.
  6. 原本 「㠀」. 島의 本字. 以下 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