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신라본기/제1권/지마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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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三國史記)
〈지마 이사금 條〉
지은이: 김부식

지마 이사금 (혹은 지미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파사왕의 적자이다. 어머니는 사성부인이다. 왕비는 김씨 애례부인인데, 그녀는 갈문왕 마제의 딸이었다. 애초에 파사왕이 유찬 못가에 가서 사냥할 때 태자도 동행하였다. 사냥을 한 뒤 한기부를 지날 때, 이찬 허루가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술 기운이 무르익자 허루의 아내가 젊은 딸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다. 그러자 이찬 마제의 부인도 역시 자기의 딸을 데리고 나왔다. 태자가 그녀를 보고 기뻐하였으나 허루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왕이 허루에게 말하기를 "이 곳 땅 이름이 대포(큰 부엌)인데, 공이 이 곳에서 훌륭한 음식과 좋은 술을 차려 잔치를 베풀어 즐겁게 하니, 직위를 주다(酒多:술이 많음)라고 하여 이찬 위에 두어야 마땅하겠다"라고 말하고, 마제의 딸을 태자의 배필로 삼았다. 주다는 뒤에 각간이라고 불리웠다.

목차

[편집] 즉위 2년

  • 즉위 2년 봄 2월, 왕이 직접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창영을 이찬으로 임명하여 정사를 맡겼다. 옥권을 파진찬으로, 신권을 일길찬으로, 순선을 급찬으로 임명하였다.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예방해왔다.

[편집] 즉위 3년

  • 즉위 3년 봄 3월 우박이 내려 보리싹이 상하였다. 여름 4월에 홍수가 났다. 죄수들를 심사하여 사형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방하였다.

[편집] 즉위 4년

  • 즉위 4년 봄 2월, 가야가 남쪽 변경을 약탈하였다. 가을 7월, 왕이 가야를 직접 공격하였다.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를 지나는데 가야인들이 숲 속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기다렸다. 왕은 이를 모르고 곧바로 전진하였는데, 복병이 나와 왕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왕은 군사를 지휘하여 맹렬히 싸워 포위를 뚫고 퇴각하였다.

[편집] 즉위 5년

  • 즉위 5년 가을 8월, 장수를 보내 가야를 공격하게 하고, 왕은 정병 1만을 거느려 뒤를 이었다. 가야는 성을 닫고 굳게 수비하였다. 그 때 마침 비가 오래 내렸으므로 왕은 되돌아 왔다.

[편집] 즉위 9년

  • 즉위 9년 봄 2월,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졌다.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3월,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편집] 즉위 10년

  • 즉위 10년 봄 정월, 익종을 이찬으로 임명하고, 흔련을 파진찬으로 임명하고, 임권을 아찬으로 임명하였다. 2월, 대증산성을 쌓았다. 여름 4월, 왜인이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편집] 즉위 11년

  • 즉위 11년 여름 4월, 큰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와 나무를 꺾고 기와를 날렸다. 바람은 저녁이 되어서야 그쳤다. 서울 사람들이 왜병이 크게 몰려 온다는 헛 소문을 듣고 앞다투어 산골짜기로 피난하였다. 왕은 이찬 익종 등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돌아가도록 하였다. 가을 7월,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으며, 흉년이 들어 도둑이 많았다.

[편집] 즉위 12년

  • 즉위 12년 봄 3월, 왜국과 강화하였다. 여름 4월, 서리가 내렸다. 5월, 금성 동쪽 민가가 내려 앉아 연못이 되었고, 그 곳에 연밥이 생겼다.

[편집] 즉위 13년

  • 즉위 13년 가을 9월 그믐 경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편집] 즉위 14년

  • 즉위 14년 봄 정월, 말갈이 북쪽 변경을 크게 공격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가을 7월에 그들은 다시 대령 책을 습격하고 이하를 넘어왔다. 왕은 백제에 글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고, 백제는 다섯 명의 장군을 보내 돕게 하였다. 적은 이 소식을 듣고 물러갔다.

[편집] 즉위 16년

  • 즉위 16년 가을 7월 초하루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다.

[편집] 즉위 17년

  • 즉위 17년 가을 8월, 장성이 하늘 끝까지 뻗쳤다. 겨울 10월, 동쪽 지방에 지진이 있었다. 11월, 우레가 있었다.

[편집] 즉위 18년

  • 즉위 18년 이찬 창영이 사망하자, 파진찬 옥권을 이찬으로 임명하여 정사에 참여시켰다.

[편집] 즉위 20년

  • 즉위 20년 여름 5월, 큰 비가 내려 민가가 물에 잠겼다.

[편집] 즉위 21년

  • 즉위 21년 봄 2월, 궁궐 남문이 불탔다.

[편집] 즉위 23년

  • 즉위 23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가을 8월, 왕이 별세하였으나 아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