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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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학기가 되자, ○○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학생계몽운동에 참가하였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각처에서 모여든 대원들을 위로하는 다과회가 그 신문사 누상에서 열린 것이다.

오륙백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는 전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한여름 동안 땀을 흘려 가며 활동한 남녀 대원들로 빈틈없이 들어찼다.

폭양에 그을은 그들의 시커먼 얼굴! 큰 박덩이만큼씩 한 전등이 드문드문하게 달린 천장에서 내리비치는 불빛이 휘황할수록, 흰 벽을 등지고 앉은 그네들의 얼굴은 더한층 검어 보인다.

만호 장안의 별처럼 깔린 등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사방의 유리창을 활짝 열어제쳤건만, 건장한 청년들의 코와 몸에서 풍기는 훈김이 우거진 콩밭 속에를 들어간 것만치나 후끈후끈 끼친다.

정각이 되자 P학당의 취주악대는 코넷, 트럼본 같은 번쩍거리는 악기를 들고 연단 앞줄에 가 벌려 선다. 지휘자가 손을 내젓는 대로 힘차게 연주하는 것은 유명한 독일 사람의 작곡인 쌍두취 행진곡(雙頭鷲行進曲)이다. 그 활발하고 장쾌한 멜로디는 여러 사람의 심장까지 울리면서 장내의 공기를 진동시킨다.

악대의 연주가 끝난 다음에, 사회자인 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안경을 번득이며 점잖은 걸음걸이로 단 위에 나타났다.

"에― 아직 개학을 아니 헌 학교도 있어서 미처 올라오지 못한 대원이 많을 줄 알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처럼 성황을 이루어서 장소가 매우 협착한 까닭에, 여러분끼리 서로간 친하는 기회를 드리려는 다과회가 무슨 강연회처럼 되었습니다."

하고 일장의 인사를 베푼 뒤에 으흠으흠 하고 헛기침을 해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금년에는 여러 가지로 지장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작년보다도 거진 곱절이나 되는 놀라울 만한 성적을 보게 됐습니다. 이것은 오직 동족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열성과, 문맹을 한 사람이라도 더 물리치려는 헌신적 노력의 결과인 것이 물론입니다. 그러므로 주최자측으로서 여러분의 수고를 감사할 뿐 아니라, 우리 계몽운동의 장래를 위해서 경축하기를 마지않는 바입니다."

처음에는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수성수성하던 장내가 인제는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졌다. 사회자는 말을 이어,

"긴 말씀은 허지 않겠으나, 차나 마셔 가면서 간담적으로 피차에 의견도 교환하고, 그 동안에 분투한 체험담도 들려 주셔서 앞으로 이 운동을 계속하는 데 크게 참고가 되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라고 부탁을 한 후 단에서 내렸다.

대원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어느 전문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이 나아가 간단한 답사를 하고 돌아왔다.

문간에서 회장을 정돈시키던 이 신문사의 배지를 붙인 사원이 눈짓을 하니까, L여학교 가사과의 학생들은, 굉장한 연회나 차리는 듯이 일제히 에이프런을 두르고 돌아다니며 자기네의 손으로 만든 과자와 차를 주욱 돌린다.

대원들은 찻잔을 받아 들고 앉아서 무릎 위에 올려놓은 과자 접시를 들여다보면서,

'에게―--- 요걸루 어디 간에 기별이나 가겠나.'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신다.

장내는 사기 그릇이 부딪쳐 대그락거리는 소리와 잡담을 하는 소리로 웅성웅성하는데, 맨 앞줄 한구석에서 하와이안 기타를 뜯는 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애응애응 하고 들리기 시작한다.

남양의 달밤을 상상케 하는 애련하고도 청아한 선율에, 회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C전문의 명물인 익살꾼으로 기타의 명수인 S군이 자청을 해서 한 곡조를 타는 것이다.

S군은 한참 타다가 저 혼자 신이 나서 악기를 들고 일어나 엉덩춤을 춘다. 메기 같은 넓적한 입을 실룩거리며 토인의 노래를 흉내내는데, 그 목소리는 체수에 어울리지 않게, 염생이가 우는 소리와 흡사하게 떨려 나와서, 여러 사람의 웃음보가 터졌다. 어떤 중학생은 웃음을 억지로 참다가, 입에 물고 있던 과자를 앞줄에 앉은 사람의 뒤통수에다가 확 내뿜었다. 한구석에 몰려 앉은 여학생들은 손수건을 입에다 대고 허리를 잡는다.

"재청요―---"

"앙코르―--- 앙코르―---"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며 회장 안은 벌통 속처럼 와글와글한다. S군은 저더러 잘한다는 줄만 알고, 두번 세번 껑충거리고 나와서 익살을 깨트리는 바람에 점잔을 빼던 사회자도 간신히 웃음을 참고 앉았다. 그는 미소를 띠고 일어서며,

"여러분 고만 조용헙시다."

하고 손을 들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체험담을 듣겠습니다. 한 사람도 빼어 놓지 않고 고향에서 활동하던 이야기를 골고루 듣고는 싶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는 관계로 유감천만이나 사회자가 몇 분을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고 양복 주머니에서 각 지방으로부터 온 통신과, 이미 신문에 발표된 대원들의 보고서를 한 뭉텅이나 꺼내 놓고 뒤적거리더니,

"금년에 활동한 계몽 대원 중에 뛰어나게 좋은 성적을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글을 깨쳐 준 아동의 수효로는 우리 신문사에서 이 운동을 개시한 이래 최고 기록을 지은 분을 소개하겠소이다."

하고는 다시 안경 너머로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얼굴을 들고 선생이 출석부를 부르듯이,

"××고등농림의 박동혁(朴東赫) 군!"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내는 테를 메인 듯이 긴장해졌건만, 제 이름을 못 들었는지 얼핏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박동혁 군 왔소?"

사회자는 더한층 목소리를 높이고는 사면을 살핀다. 만장의 학생들은,

'박동혁이가 어떻게 생긴 사람이야!'

하는 듯이 서로 돌려다보며 이름을 불린 고농 학생을 찾는다.

"여기 있습니다."

맨 뒷줄에서 굵다란 목소리가 청처짐하게 들렸다. 여러 사람의 고개는 일제히 목소리가 난 데로 돌려졌다.

"그리루 나가랍니까?"

엉거주춤하고 묻는 말이다.

"이리 나오시오."

사회자는 연단에서 비켜 서며 손짓을 한다.

기골이 장대한 고농 학생이 뭇 사람이 쏘는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뚜벅뚜벅 걸어나오자 우뢰 같은 박수 소리가 강당이 떠나갈 듯이 일어났다.

'박동혁'이라고 불린 학생은 연단에 올라서기를 사양하고 앞줄에 가 두 다리를 떡 버티고 섰다. 빗질도 아니 한 듯한 올백으로 넘긴 머리며 숱하게 난 눈썹 밑에 부리부리한 두 눈동자에는 여러 사람을 누르는 위엄이 떠돈다.

그는 박수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려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여러분!"

청중이 숨소리를 죽이게 하는 저력 있는 목소리다.

"오늘 저녁에 항상 그리워하던 여러분 동지와 한자리에 모여서 흉금을 터놓고 서로 얘기할 기회를 얻은 것을 무한히 기뻐합니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음성이 아니요, 땀에 절은 교복이 팽팽하게 켕기도록 떡 벌어진 가슴 한복판을 울리며 나오는 바리톤(남자의 저음)이다. 청중은,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지려나?'

하는 듯이 눈도 깜짝거리지 않으며 동혁의 얼굴을 바라다본다.

동혁은 장내를 다시 한번 둘러본 뒤에 천천히 입을 연다.

"그러나, 삼 년째 이 운동에 참가해서 적으나마 힘을 써온 이 사람으로서 그 경험이나 감상을 다 말씀하려면 매우 장황허겠습니다. 더구나 오늘 저녁은 간단한 경과만 보고하기를 약속헌 까닭에, 정작 이 가슴속에 첩첩이 쌓인 그 무엇을 여러분 앞에 시원스럽게 부르짖지 못하는 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못 허는 말은 사사로운 좌석에서 얘기헐 기회를 짓고, 또는 개인적으로도 긴밀한 연락을 취해서 서로 간담을 비춰 가며 토론도 하고 의견도 교환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수첩을 꺼내 들고 자기의 고향인 남조선의 서해변에 있는 한곡리(漢谷里)라는 궁벽한 마을의 형편을 숫자적으로 대강 보고를 한다. 호수(號數)가 구십사 호인데, 농업이 칠 할 어업이 이 할이요, 토기업(土器業)이 일 할이라는 것과, 인구가 사백육십여 명에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이 팔 할 이상이나 점령한 것을 삼 년 동안을 두고 여름과 겨울 방학에 중년 이하로 여자들과 육칠 세 이상의 아동을 모아 놓고 한글을 깨쳐 주고 간단한 셈수를 가르쳐 준 것이 이백사십칠 명에 달하는데, 그곳 보통학교 출신들의 조력이 많았다는 것을 말하자, 박수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동혁은 천천히 수첩을 집어넣으며 집안 식구와 이야기하는 듯한 말씨로,

"우리 고향은 워낙 원시부락과 같은 농어촌이 돼서, 무지한 부형들의 이해가 전연 없는데다가, 관변의 간섭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걸 별짓을 다해 가면서 억지루 시작을 했었지요. 첫해에는 아이들을 잔뜩 모아는 놨어두 가르칠 장소가 없어서 큰 은행나무 밑에다 널판대기에 먹칠을 한 걸 칠판이라고 기대어 놓구 공석이나 가마니를 깔구는 밤 깊도록 이슬을 맞아 가면서 가르치기를 시작했었는데, 마침 장마 때라 비가 자꾸만 와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헐 수 없이 움을 팠에요. 나흘 동안이나 장정 십여 명이 들러붙어서 한 대여섯 간통이나 파구서 밀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덮구, 그 속에 들어가서 진땀을 흘리며 '가갸거겨'를 가르쳤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밤은 밤새도록 비가 퍼붓듯이 쏟아졌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가보니까 교실 속에 빗물이 웅덩이처럼 흥건하게 고였는데, 송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책상 걸상이 둥실둥실 떠다니는군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픽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동혁이 자신도 남자다운 웃음을 띄우고,

"그뿐인가요. 제철을 만난 맹꽁이란 놈들이 뛰어들어서 저희끼리나 글을 읽겠다구 '맹자 왈 공자 왈' 해가며 한바탕 복습을 허는데……."

그때에 어느 실없는 군이 코를 싸쥐고,

"매앵 꽁, 매앵 꽁."

하고 커다랗게 흉내를 내어서 여러 사람은 천장을 우러러 간간대소를 하였다. 여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웃어쌓다가 눈물을 다 질금질금 흘린다. 그러자,

"웃을 얘기가 아니오!"

"쉬― 조용들 헙시다."

하고 꾸짖듯 하는 소리가 회장 한복판에서 들렸다. 동혁이도 검붉은 얼굴에 떠돌던 웃음을 지워 버리고 한 걸음 다가서며,

"나 역시 이 자리를 웃음 바탕을 만들려구 그런 말을 헌 게 아닙니다. 이보담 더 비참한 현실과 부닥쳐서 더한층 쓰라린 체험을 허신 분이 많을 줄 알면서도, 다만 한 가지 예를 들었을 뿐입니다."

하고 잠시 눈을 꽉 감고 침묵하더니 손을 번쩍 쳐들며,

"그러나 여러분! 끝으로 꼭 한마디만 허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하고 목청을 높여 힘차게 청중에게 소리친다. 대원들은 물론, 사회자까지도 다시금 긴장해서 엄숙해진 동혁의 얼굴만 주목한다.

"눈 뜬 소경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는 것은 두말헐 것 없이 필요헙니다. 계몽운동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헌 사업 중의 하나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지식 분자인 우리들이 이러한 기회에 전 조선의 농촌, 어촌, 산촌으로 방방곡곡이 파구들어가서, 그네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어떡허면 그네들이 그 더헐 수 없이 비참헌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허는 문제를 머리를 싸매구서 생각해 봐야 헙니다. 지금부터 육칠 년 전 노서아의 청년들이 부르짖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라는 말)를 지금 와서야 우리가 입내내듯 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에게 뒤떨어진 것을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높직이 앉아서 민중을 관찰하거나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태도를 단연히 버리고, 그네들이 즉 우리 조선 사람이 제 힘으로써 다시 살어나기 위한 기초공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모인 바루 여러분의 손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물질로 즉 경제적으로는 일조일석에 부활하기가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온갖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정신(精神), 요샛말로 이데올로기를 통일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끝마다 힘을 주다가 잠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를 못살게 구는 적(敵)이, 고쳐 말씀하면 우리의 원수가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하고 나서, 그는 무슨 범인이나 찾는 듯한 눈초리로 청중을 돌려본 뒤에 손가락을 펴들어 저의 머리를 가리키며,

"그 원수가 이 속에 들었습니다. '아이구 인제는 죽는구나', '너나 헐 것 없이 모조리 굶어 죽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절망과 탄식! 이것 때문에 우리는 두 눈을 멀거니 뜬 채 피를 뽑히구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지레짐작, 즉 선입관념이 골수에 박혀 있는 까닭에, 우리가 피만 식지 않은 송장 노릇을 헌다고 해두 과언이 아닙니다. 그야 천치 바보가 아닌 담에야 우리의 현실을 낙관헐 수야 없겠지요. 덮어놓구 '기운을 차려라', '벌떡 일어나 달음박질을 해라' 허고 고함을 지르며 채찍질을 헌대도 몇백 년이나 앓던 중병환자가 벌떡 일어나지야 못허겠지요. 그렇지만……."

하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며 혀끝으로 불을 뿜는 듯한 열변에 회장은 유리창이 깨어질 듯한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옳소―---"

"그렇소―---"

하는 고함과 함께,

"그건 탈선이오."

하고 반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동혁은 금세 눈초리가 실쭉해지더니,

"어째서 탈선이란 말요!"

하고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며 목소리가 난 편짝을 노려보는 판에, 사회자는 동혁의 곁으로 가서 무어라고 귓속을 한다.

"중지시킬 권리가 없소!"

"말해라, 말해!"

이번에는 발을 구르며 사회자를 공박하는 소리로 장내가 물끓듯 한다.

동혁은 그 자리에 꿈쩍도 아니 하고 버티고 서서 매우 흥분된 어조로,

"지금은 시간의 자유까지도 없지만, 내 의견과 틀리는 분은 이 회가 파헌 뒤에 얼마든지 토론을 헙시다."

하고 누구든지 덤벼라! 하는 기세를 보이더니,

"나는 어떠헌 수단과 방법을 써서래두, 우리 민중에겐 위선 희망의정신과 용기를 길러 주기 위해서 노력허는 것이, 우리 계몽운동 대원의 가장 큰 사명으로 믿습니다. 동시에 여러분도 이 신조를 다 같이 지키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동혁은 성량(聲量)껏 부르짖고는 교복 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사회자는 아까보다도 더 정중한 태도를 짓고 동혁이가 섰던 자리로 가서 장내가 정숙해지기를 기다려,

"박동혁 군의 말은 개념적이나마 누구나 존중해야 헐 좋은 의견으로 압니다."

하고는,

"그러나 현재의 정세로 보아서, 어느 시기까지는 계몽운동과 사상운동을 절대로 혼동해서는 아니 됩니다. 계몽운동은 계몽운동에 그칠 따름이지, 부질없이 혼동해 가지고 공연헌 데까지 피해를 끼칠 까닭은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하고 단단히 주의를 시킨다. 그때에 한구석에서,

"에그 추워―---"

하고 일부러 어깨와 목소리를 떠는 학생이 있었다.

동혁의 뒤를 이어 서너 사람이나 판에 박은 듯한 경과보고가 지루하게 있은 후, 사회자는,

"이번에는 금년에 처음으로 참가헌 여자 대원 중에서 제일 좋은 성적을 나타낸 ××여자신학교에 재학중인 채영신(蔡永信) 양의 감상담이 있겠습니다."

하고 회장은 오른편에 여자들이 모여 앉은 데를 바라다본다. 남학생들은 그편으로 머리를 돌리며 손뼉을 친다. '채영신'이라고 불린 여자는 한참 만에 얼굴이 딸깃빛이 되어 가지고 일어나더니,

"전 아무 말두 허기 싫습니다!"

하고 머리를 내저으며 여무지게 한마디를 하고는 펄썩 주저앉아 버린다. 사회자는 어쩐 영문인지 몰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뜻밖에 미리 약속까지 하였던 연사가 말하기를 딱 거절하는 데는, 사회자와 청중이 함께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말헙시다."

"그 대신 독창이래두 시키세."

상대자가 여자인 까닭에 더욱 호기심을 가진 남학생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음악회에서 억지로 끌어내어 재청이나 시키는 것처럼 짓궂게 박수를 하며 야단들이다.

"간단하게나마 말씀해 주시지요."

사회자는 좀 무색한 듯이 채영신이가 앉은 편으로 몇 걸음 다가오며 어서 일어나기를 권한다.

그래도 영신은 꼼짝도 아니 하고 앉았다가 곁에서 동무들이 옆구리를 찌르고 등을 떠다밀어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서울 여자들은 잠자리 날개처럼 속살이 하얗게 내비치는 깨끼 적삼에 무늬가 혼란한 조세트나, 근래에 유행하는 수박색 코로나프레프 같은 박래품으로 치마를 정강 마루까지 추켜 입고 다닐 때건만, 그는 언뜻 보기에도 수수한 굵다란 광당포 적삼에 검정 해동저 치마를 입었고, 화장품과는 인연이 없는 듯, 시골서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과년한 처녀를 붙들어다 세워 놓은 것 같다. 그러나 얼굴에 두드러진 특징은 없어도, 청중을 둘러보는 두 눈동자는 인텔리(지식 계급) 여성다운 이지가 샛별처럼 빛난다. 그는 사회자를 쏘아보며,

"첫째, 이런 자리에까지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지는 모르지만, 남이 다 말을 허구 난 맨 끄트머리에 언권을 주는 것이 몹시 불쾌합니다."

새되고 결곡한 목소리다.

"흥, 왼간헌걸."

"여간내기가 아닌데."

남학생들은 혀를 내두르며 수군거린다. 제 자리에 돌아와 이제껏 흥분을 가라앉히느라고 눈을 딱 감고 있던 동혁이도, 얼굴을 쳐들고 채영신의 편을 주목한다.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영신은 말을 이어,

"둘째는 제 속에 있는 말씀을 솔직허게 쏟아 놓구는 싶어두요, 사회허시는 분이 또 무어라고 제재를 허실 테니깐, 구차스레 그런 속박을 받어 가면서까지 말을 헐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하고 다시 앉아 버린다. 이번에는 여자석에서 손뼉치는 소리가 생철 지붕에 소낙비 쏟아지듯 한다.

사회자는 그만 무안에 취해서 얼굴을 붉히며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아까 박동혁 군이 말헐 때는, 시간이 없다고 주의를 시킨 것이지 말의 내용을 간섭헌 것은 아닙니다."

하고 뿌옇게 발뺌을 한다. 그러자 동혁이가 벌떡 일어나 나치스식으로 팔을 들며,

"사회!"

하고 회장이 찌렁찌렁하도록 부른다.

"밤을 새우는 한이 있드래두 이런 기회에 우리는 충분히 의견을 교환허고 싶습니다. 위선 지도원리를 통일해 놓고 나서 깃발을 드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톡톡히 항의를 한다. 사회자는 시계를 꺼내 보고 사교적 웃음을 띄우며,

"채영신 씨, 그럼 내년에는 맨 먼첨 언권을 드릴 테니 그렇게 고집허지 마시고 말씀허시지요."

하고는 장내의 공기를 완화시키려고 슬쩍 농친다.

영신은 다시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대접상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저는 금년에야 참가를 했으니까, 이렇다고 보고를 헐 만한 재료가 없고요, 고생을 좀 했다고 자랑할 것도 못 될 줄 압니다. 그저 앞으로 이 운동을 꾸준허게 해나갈 결심이 굳을 뿐이니까요."

하고는 그 영채가 도는 눈을 사방으로 돌리더니,

"그렇지만 저 역시 여러분께 우리 계몽대의 운동이 글자를 가르치는 데만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한 절대 다수인 농민들의 살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위선 그네들에게 희망의 정신을 넣어 주자는……."

하다가 상막해서 잠시 이름을 생각해 보더니,

"……박동혁 씨의 의견은 저도 전연 동감입니다!"

하고 남학생 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러분은 학교를 졸업하면 양복을 갈러 붙이고 의자를 타구 앉아서, 월급이나 타먹으려는 공상버텀 깨트려야 헙니다. 우리 남녀가 총동원을 해서 머리를 동쳐매구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서, 우리의 농촌, 어촌, 산촌을 붙들지 않으면, 그네들을 위해서 한몸을 희생에 바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거듭나지 못헙니다!"

그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고만 쓰러지듯이 앉아 버린다. 장내는 엄숙한 기분에 잠겼다. 말썽을 부리던 남학생들도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 그네들의 머릿속에도 감격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매우 긴장된 중에 K보육학교 학생들의 코러스로 간친회는 파하였다. 동혁은 여러 학생들 틈에 섞여서 서대문행 전차를 탔다. 전차가 마악 떠나려는데, 놓치면 큰일이나 날 듯이 뛰어오르는 한 여학생이 있다. 그는 동혁에게 생후 처음으로 깊은 인상을 준 채영신이었다.

영신은 승객들에게 밀려서 동혁이가 걸터앉은 데까지 와서는 손잡이를 붙들고 섰다. 두 사람은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검붉은 얼굴을 서로 무릎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저도 모르는 겨를에 목례를 주고받았다. 비록 오늘 저녁 공석에서 처음 대면을 하였건만, 여러 해 사귀어 온 지기(知己)와 같이 피차에 반가웠던 것이다. 동혁은 앉아 있기가 미안해서,

"이리 앉으시지요."

하고 일어서며 자리를 내준다. 영신은 머리를 숙이며,

"고맙습니다. 전 섰는 게 시원해 좋아요."

하고 사양하면서 도리어 반걸음쯤 물러선다.

동혁은 아직도 애티가 남아 있어 귀염성스러운 영신의 입 모습을 보았다. 그 입 모습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소를 보았다.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더 시원한데요."

동혁은 엉거주춤하고 자꾸만 앉기를 권한다.

"어서 앉어 계세요. 전 괜찮아요."

"그럼 나두 서겠습니다."

동혁이가 반쯤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다른 승객이 냉큼 뚱뚱한 궁둥이를 들여밀었다. 동혁은,

'어지간히 고집이 세구나.'

하면서도, 영신이가 저를 연약한 여자라고 자리를 사양하는 그런 대우가 받기 싫어서 굳이 앉지 않는 줄은 몰랐으리라.

차 속이 붐벼서 두 사람은 손잡이 하나를 나누어 쥐고 옷이 스치도록 나란히 섰건만,

"되레 미안헙니다."

"천만에요."

하고 한마디씩 주고받은 다음에는 말이 없었다.

운전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밤바람은 여간 시원하지가 않다. 영신은 앞머리카락이 자꾸만 이마를 간질어서,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등으로 뿌리듯 한다. 한 발자국쯤 앞에 선 동혁의 안반 같은 잔등이에서는 교복에 절은 땀 냄새가 영신의 코에까지 맡힌다. 그러나, 한여름 동안 머리도 감지 않은 촌 여편네들과 세수도 변변히 하지 않은 아이들 틈에 끼여 지내서, 시크무레한 땀내가 코에 밴 영신은 동혁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고개를 돌리도록 불쾌하지는 않았다. 전차가 '감영' 앞에 와 정거를 하자 영신은 앞을 부비고 나서며,

"전 여기서 내립니다."

하고 공손히 예를 한다.

동혁은 목을 늘이고 창 밖을 내다보더니,

"나도 여기서 내려야겠는데요."

하고 영신의 뒤를 따라 내렸다. 안전지대에서 두 사람은 즉시 헤어지지를 못하고 서성서성하다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동혁이가 물었다.

"학교 기숙사루 가서 잘 텐데, 문 닫을 시간이 지나서 걱정이야요. 여간 규측이 엄해야죠. 시간이 급해서 사감헌텐 말도 못 하고 나왔는데요."

"그럼 쫓겨나셨군요. 물론 객지시지요?"

"네."

두 사람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아현리 편짝으로 나란히 서서 걷는다.

"그럼 어떡허나요? 나는 이 근처서 통학허는 친구 집이 있어서 그리루 자러 가는 길이지만……."

"전 서울 사는 동지라곤 친헌 사람이 하나두 없어요."

하고 영신은 다시 돌아서며,

"아무튼 기숙사루 가보겠어요."

하고 잘 가라는 듯이 인사를 한다. 동혁은 우연히 같은 전차를 탔으나, 여기까지 같이 왔다가 혼자 보내기가 안돼서,

"그럼 내 보호병정 노릇을 해드리지요."

하고 영신이가 사양하는 것을 금화산 밑에 있는 여신학교 기숙사 앞까지, 멀찌감치 걸어서 따라 올라갔다.

기숙사는 불을 끈 지도 오래인 모양인데, 대문을 잡아 흔들고 초인종을 연거푸 누르고 하여도 감감소식이다.

"이를 어쩌나. 인전 숙직실루 전화를 걸어 보는 수밖에 없는데, 전화나 어디 빌릴 데가 있어야죠."

하며 영신은 발을 구르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언덕길을 더듬으며 감영 네거리로 내려왔다. 깊은 밤 후미진 구석으로 여학생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부터 부질없는 노릇인데, 더구나 아는 사람의 눈에 띄든지 해서 재미 없는 소문이 퍼지는 날이면 영신에게 미안할 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혁은 밤중에 길거리로 헤매게 된 젊은 여자를 내버려두고 저 혼자만 휘적휘적 친구의 집으로 자러 갈 수는 없었다.

영신이도 건장한 남자가 뒤를 따라 주는 것이 정말 보호병정이나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든든히 여기는 눈치를 살피고 동혁은,

"아무튼 전화나 걸어 보시지요."

하고 길가 포목전의 닫힌 빈지를 두드려서 간신히 전화를 빌려 주었다.

영신은 학교의 전화번호를 불렀다. 마지못해서 문을 열어 주고서도 귀찮은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돈을 세고 앉은 주인을 곁눈으로 보면서, 두번 세번 걸어도 귓바퀴에서 이잉 이잉 소리만 들릴 뿐, 나와 주는 사람이 없다.

"도시데모 오이데니 나리마셍카라 마타 네가이마스(암만해도 안 나오니 다시 걸어 주시오)."

하는 교환수의 맵살스러운 목소리를 듣고야, 영신은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인젠 여관으루 가실 수밖에 없군요."

동혁이도 입맛을 다시었다. 영신은,

"저 때문에 너무 걱정을 허셔서 미안합니다."

하고는 구둣부리로 길바닥을 후비듯 하다가, 고개를 외로 꼬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인전 백선생님 집으로나 갈까 봐요."

한다.

"백선생이라니요?"

"왜 여자기독교연합회 총무로 있는, 백현경 씨를 모르세요?"

"이름은 익숙히 들었지만…… 그의 집이 이 근천가요?"

영신은 전등불이 드문드문 보이는 송월동 편짝을 가리키며,

"네, 바루 저 언덕 밑이야요. 그 선생님이 농촌 문제를 강연하느라구 우리 학교에도 오시는데, 저를 여간 사랑해 주지 않으셔요. 요새 새루 설립헌 농민수양소로 실습도 허러 같이 당겼는데, 사정을 허면 하룻밤쯤이야 재워 주시겠지요."

그 말을 듣고 동혁은 매우 안심한 듯이,

"그럼, 진작 그리루 가시질 않고……."

하고는 그만 헤어지려는 것을,

"이왕 여기꺼정 와주셨으니, 그 집까지만 바래다 주세요, 네?"

하고 영신이가 간청하다시피 해서, 동혁은,

'아무려나.'

하고 다시 뒤를 따랐다. 동혁이도, 조선 사회에서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이 유명한 백현경(白賢卿)이란 여자를 간접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말썽 많던 그의 과거로부터 최근에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와서 또다시 개인 문제로 크나큰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였고, 한편으로는 농촌사업을 한다고 강연도 다니고 저술도 하여서,

'무슨 주의를 가지고 어떠한 방법으로써 조선의 농촌운동을 지도하려나.'

하는 점이 고등농림의 상급생인 동혁의 주의를 끌어 왔었다. 그의 사사로운 생활에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않으나, 그가 신문이나 잡지에 내는 논문이나 감상담 같은 것은 빼어 놓지 않고 읽어 오는 중이었다.

'과연 어떠한 인물일까?'

동혁은 적지 않은 호기심을 가지고, 여자 중에는 호걸이라고 여간 숭배를 하지 않는 영신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백씨의 집까지 당도 하였다.

그러나 동혁은 밤중에 여기까지 여자의 뒤를 따라온 것이 새삼스러이 멋쩍은 것 같고, 또는 백씨까지도 초면에 저를 어떻게 볼는지 몰라서 모자를 훌떡 벗으며,

"자, 난 그만 실례합니다. 기회 있으면 또 만나 뵙지요."

하고는 발꿈치를 홱 돌린다.

"왜 그렇게 가셔요? 잠깐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소개를 잘 할 테니, 문간에서래두 백선생님을 만나 보구 가시죠, 네? 여간 환영허지 않으실걸."

좁다란 골목 안을 환하게 밝히는 외등 밑에서 영신은 길목을 막아서면서 조르듯 한다.

"아니오. 다음날이나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 한마디를 남기고 동혁은 구두징 소리를 뚜벅뚜벅 내며 골목 밖으로 나가 버린다. 영신은 어찌하는 수 없이,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하고 큰길로 사라지는 동혁의 기다란 그림자를 서운히 바라보다가 돌쳐섰다. 대문을 흔들면서,

"백선생님! 백선생님!"

하고 커다랗게 불렀다. 모기장을 바른 행랑방 들창이 열리더니 자다가 일어난 어멈이 얼굴을 반쯤 내밀며,

"한강으로 선유 나갑셔서 여태 안 들어오셨는뎁쇼."

한다. 영신은 고만 울상이 되었다.

*

그 이튿날 학교로 내려간 뒤에, 동혁은 며칠 동안 마음의 안정을 잃고 지냈다. 개학초가 되어서 기숙사 안이 뒤숭숭한 탓도 있지만, 영신의 첫인상이 앉으나 서나 눈앞에 떠돌아서 공연히 들썽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상학 시간에는 노트 위에 펜을 달리다가도 손을 멈추고 칠판 위에 환등처럼 나타나는 영신의 환영을 멀거니 바라보기도 하고 운동장에 나가서는 축구부의 선수로 골키퍼(문지기) 노릇을 하여 왔는데, 상대 편에서 몰고 들어와서 힘없이 질러 넣는 공도 어름어름하다가 발길이 헛나가서 막아 내지 못하기를 여러 번이나 거듭하였다. 마침 서울 법전(法專)과 시합을 하려고 맹렬히 연습을 하는 판이라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여보게 박군, 요새 며칠은 왜 얼빠진 사람 같은가? 이러다간 우승기를 뺏기고 말겠네그려."

하는 주의까지 받았다. 그럴수록 동혁은,

'내가 정말 왜 이럴까?'

하고 평소에 자제심이 굳센 것을 믿어 오던 제 자신을 의심하리만치 침착해지지 않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수수한 차림차림, 조금도 어설픈 구석이 없는 그 체격, 그리고 혈색 좋은 얼굴에 샛별같이 빛나던 눈동자, 또 그리고 언권을 먼저 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를 딱 거절하던 그 맺고 끊는 듯하던 태도―--- 그나 그뿐인가, 남학생들에게 정면으로 일장의 훈계를 하던 정열적이면서도 결곡한 목소리! 그 어느 한 가지가 머릿속에 사진 찍히지 않은 것이 없고, 말 한마디조차 귀 밖으로 사라진 것이 없다.

'처음 보는 여자다. 외모가 예쁜 여자는 길거리에서도 더러 본 일이 있지만 채영신이처럼 의지가 굳어 보이는 여자는 처음이다. 무엇이든지 한번 결심하면 기어이 제 손으로 해내고야 말 것 같은 여자다.'

이런 생각을 하느라고 필기를 하지 못하고 헛발길질만 자꾸 하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박동혁 씨의 의견과 전연 동감입니다.'

하던 한마디를 입 속으로 외고 또 외고 하다가는,

'오냐,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동지를 얻었다! 내 사상의 친구를 찾었다!'

하고 부르짖으며 저 혼자 감격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고학을 하여 온 늙은 총각으로 이성과 접촉할 기회도 없었지만, 틈틈이 여러 가지 모양의 여성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장래를 공상해 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간담회 석상에서 채영신이란 여자를 한 번 보고 밤거리를 몇십 분 동안 같이 걸어 본 뒤에는,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그 숱한 여자들의 그림자가 한꺼번에 화닥닥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굵다란 말뚝처럼 동혁의 머릿속에 꽉 들어와 박힌 것은 '채영신' 하나뿐이다.

'그날 무사히 들어가 잤나? 학교서 말이나 듣지 않었나?'

몹시 궁금은 하였건만, 규칙이 까다로운 여학교로 편지는 할 수 없었다. 그만한 용기야 못 낼 것이 아니지만, 받는 사람의 처지가 곤란할 것을 생각하고, 또다시 만날 기회만 고대하면서 한 일주일을 지냈다.

그러다가, 하루는 천만뜻밖에 영신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글씨는 남필 같으나 피봉 뒤에는,

'××여자신학교 기숙사에서 채영신 올림.'

이라고 버젓이 씌어 있는 것을 보니 동혁의 가슴은 울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은 여간 실례를 하지 않었습니다. 미안한 말씀은 형용키 어렵사오며,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고 좋은 말씀을 듣지 못한 것도 여간 유감이 되지 않습니다. 그날 밤 백선생도 늦게야 한강에서 들어오셔서 같이 자면서 간접으로나마 동혁 씨를 소개하였더니, 좋은 동지라고 꼭 한 번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토요일 저녁마다 농촌운동에 뜻을 둔 청년 남녀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간담도 하는 모임이 백선생 댁에서 열리는데, 돌아오는 토요일에 올러오셔서 참석하시면 백선생은 물론이고요, 여러 회원들이 여간 환영을 하지 않겠습니다. 꼭 올라와 주실 줄 믿사오나 엽서로라도 미리 회답을 하여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동혁은 두번 세번 읽으며 편지를 손에서 놓을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