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치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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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치유조》 지은이: 청 세조 순치제 |
하늘의 뜻을 받아 황제가 이르오니, 짐의 덕이 부족하여 18년간 조상들께옵서 물려준 기업을 제대로 잇지 못하였도다. 친정한 이후, 짐이 비록 정치에 인재를 등용하여 고르게 쓰고 법을 엄히 하였으나 어찌 태조황제 폐하와 태종황제 폐하께 비하겠는가? 짐은 순리에 따라 지금까지 한족의 풍습을 조금씩 배워나갔으나 짐의 근본인 우리 만주족의 구제도를 철폐하려 하여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민생 역시 나빠져갔으니 짐의 대죄 중 하나이다. 짐의 연치가 어리고 나약하여 아바마마이신 태종황제 폐하께 큰 누를 끼쳐드렸고 폐하의 가르침을 잊어버렸으나 어마마마이신 성모황태후마마의 자애로운 보살핌에 의존하여 살아왔으니 그 황은 참으로 망극하고 후덕함은 하늘에 비한다. 그러나 아침 저녁 나절 제대로 문안 드리지 못하여 효를 다하지 못하였고 자식의 도리를 저버려 어버이께 큰 누를 끼쳤으니 이 역시 짐의 대죄 중 하나이다. 아바마마께옵서 붕어하실 때, 짐은 겨우 6살에 불과하여 삼년상을 치르는 기간 동안 하루 종일 슬퍼하고 빈소에서 어마마마를 끝까지 효도하겠다 맹세하였으나, 지금 그 의무를 저버리고 어마마마를 거역하여 황태후마마께 상심을 끼쳤으니 이 또한 짐의 대죄 중 하나이다.
황실의 종친인 각 친왕, 군왕, 패륵, 패자 등은 모두 태조황제 폐하와 태종황제 폐하의 자손들로서 국가를 위해 그들을 각지로 파견하였으나 상벌을 공평히 내리지 못해 군신과 가족 간의 공사를 잊었다. 짐은 그들을 동쪽으로 파견하여 짐의 은혜를 베풀려 하였으나 여전히 공사의 정을 끊지 못하고 우애의 도가 지나쳐 공무를 그르쳤으니 이것도 짐의 대죄 중 하나이다. 만주족 대신들은 여러 대 동안 짐의 조상들께 충성하고 누대에 걸쳐 공을 쌓아왔다. 그러나 짐이 그들을 의탁하였으나 그들은 계속 한족들을 제쳐놓고 조정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짐의 신임을 잃었다. 재능이 있어도 중용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마치 명나라 말년과 비슷한 형국이어서 많은 공을 쌓은 공신조차 짐은 경계하고 한족 관리들을 신임하여 대소 정무를 관장케 하고 그들과만 정무를 상의하고 만주족 관리를 홀대하여 정치의 화합을 이루지 못한 바, 이것도 짐의 대죄 중 하나이다. 짐의 본래 성격은 선량하였으나 짐이 아닌 또 다른 짐을 믿어 사람을 쓸 때 짐 자신과 덕을 구분치 못하고 정무를 처리하였으니 짐은 황제로서의 재목이 못 되어 많은 백성들이 큰 한숨을 쉬게 하였다. 인생은 짧고 기록은 길어 옆 사람에게 작은 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감싸주지 못하고 황제로서의 도리를 저버렸으니 이 역시 짐의 대죄 중 하나이다. 언관들은 덕을 중요시 여기는 인사들이라 그들의 행보를 막을 수 없으나 바른 말을 고하는 그들에게 칼을 휘둘러 그들을 죽이려 하여 짐의 관대함을 저버렸도다. 처음에 짐은 유정종이라는 자를 믿고 관원으로 임명하였으나 후에 들어보니 유정종은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이라 살인을 저지른 자인지라, 짐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깨우쳤다. 유정종은 임지로 떠난 후, 송사는 들었으나 정작 옳은 판결을 내려주지 못하고 사익만 챙겨서 백성들에게 우환을 끼쳤으니 이것도 짐이 지은 대죄 중 하나이다. 국고가 비고 군수 물자가 부족하였던 것은 바로 내탕금이 국고에서 나와 궁중 후궁들이 탕진하였기 때문이다. 짐은 지금까지 수시로 각 성에 보내 경제 상황을 파악한다 하였으나, 정작 충분히 고려하지 아니하여 경제 혼란을 자초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자, 짐은 각 황족들, 대신들과 회의를 열어 딱히 방법이 없자 황족들, 관리들의 녹봉을 깎고 군대에게 지급되던 군량 공급까지 중단하여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더욱 경제 혼란을 야기하였으니 이것 역시 짐이 지은 대죄 중 하나이다.
황제로 군림하면서 공부에 여러 기구들을 만들어 솜씨 좋은 장인들에게 그 일을 맡겼으나 단지 전대의 것을 후세 사람이 고치는 것으로 그것에 따른 이익이 없었으며 이 일을 하느라 매우 많은 국고금을 낭비하고 스스로 성찰하지 않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게 하였으니 이것도 짐이 지은 대죄 중 하나이다. 효헌단경황후는 황태후께 극진히 효를 다하고 짐을 잘 보좌하였으며 내궁을 통솔하여 짐의 근심을 덜어주었고 성품이 매우 현숙하였다. 그녀의 국장 때 상심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슬피 울려 하였으나 의례상 그녀를 위해 슬피 울지도 못하였다. 황후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니 이것도 짐이 지은 대죄 중 하나이다. 짐의 성품은 조용하고 내성적이라 항상 쉽고 안일한 것을 좋아하였으며 구중 궁궐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을 좋아하였기에 조회도 열지 않고 대신들이 짐을 접견하는 것 역시 어려워하여 상하간의 관계가 소홀해졌으니 이 역시 짐의 대죄 중 하나이다. 인간지사에 연습이라는 것은 없지만 짐은 만승의 천자로서 연습 없이 짐의 명령 하나면 모든 천하가 다 돌아갈 줄 알았기에 스스로 교만해져 갔고 대간들이 줄기차게 간언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총명하다 생각한 짐은 그들의 의견을 묵살하였다. 그러한 의미심장한 군자의 덕을 짐은 매우 쉽게 알아 결국은 일을 그르쳤고 짐의 이러한 행동은 역대 조상들과도 크게 위배되어 신사로서의 자부심을 팽개치고 그러한 간언을 막았으니 이것도 짐이 지은 대죄 중 하나이다.
짐은 이제 와서 과실을 뉘우치고 매일 후회하고 있으며 상소문을 빠짐없이 읽고 있으나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을 교체하지 못하고 그들의 공적이 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러한 부패를 일신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짐이 지은 마지막 대죄이다. 태조황제 폐하와 태종황제 폐하께옵서 이 나라를 창업하신 뒤 인재를 중요시 여기고 지식인들은 후학들을 양성하여 국가의 큰 구멍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이 두 분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길이다. 짐의 아들인 강비 동가씨 소생의 제3황자 현엽은 연치가 겨우 8살이나 그 용모가 단정하고 영민하니 이 나라 종묘사직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고로 현엽을 황태자에 책봉하여 다음 황제에 올리도록 하라. 27일 동안 상복을 입다가 그 뒤 옷을 대례복으로 갈아입고 즉위식을 치르도록 하라. 특히, 영시위내대신 색니, 소극살합, 알필륭, 오배는 조정의 원훈이자 개국공신으로 짐이 언제나 신뢰하던 대신들이니 충성을 다하여 신제를 보좌하고 정무를 처리하라. 그 후, 새 황제의 즉위 소식을 만천하에 알려 모든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알게 할지어다.
이 성지를 엄수하라.
순치 18년 정월 초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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