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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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九[편집]

조 대비와 흥선의 사이에 맺어진 밀약―그것은 어떤 것이었던가?

김씨 일문에게 인손이를 잃고 거기 대한 복수의 염 때문에 눈이 어두운 조 대비는, 목적을 위하여서는 수단을 가릴 줄을 몰랐다.

『종실 공자 중에 한 영특한 소년을 신이 추천하리까?』

하면서 흥선이 자기의 둘째아들 재황이를 조 대비께 추천할 때에, 조 대비는 그 소년의 학식이 어떤지 인재가 어떤지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흥선이 추천하는 그 소년을 받는다 안 받는다의 말이 없이 제 이단의 문제로 들어갔다. 즉―상감께서 후사가 없이 천추만세하는 날에, 그 다음으로 보위에 오르는 사람은 승하한 상감의 후사가 아니요, 당신의 지아버님되는 익종의 후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당신의 아드님 헌종이 순조 대왕의 대를 잇고, 그 뒤에 현 상감조차 순조 대왕의 대를 이어서 그만 절사(絶嗣)가 된 그 아버님의 대를 조 대비는 어떻게 하여서든지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의견에 대하여도 흥선은 찬성하였다. 이제 새로 들어오는 승계자는 조 대비를 양어머니로 삼고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새로운 상감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는 김씨의 세력을 뚝 잘라 버리고, 김씨 일문을 잔멸시켜야 하리라고 이런 의견을 제출할 때에도 흥선은 찬성하였다. 너무도 뻗은 그 세력을 꺾어 버리고, 조 대비를 배경으로 한 조씨 일파와 흥선 자신의 친구들로써 내각을 조직하여 권세를 휘둘러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인정과 기지에 밝은 흥선이 고귀한 노부인의 마음을 꿰어 보고 잡아당기기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 대비의 김씨 일문에게 대한 노염이 몹시 큰 것을 보기 때문에, 흥선은 침이 마르고 혀가 닳도록 김씨들을 욕을 하였다. 그리고 만약 자기가 김씨 일문의 유에 올라설 날이 오기만 하면, 김씨 일문은 종자도 남기지 않고 잔멸시킬 듯이 말하였다.

이 날 조 대비와 흥선의 사이에 성립된 밀약은 무론 「확실한 계획」이랄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만약 장래 여차한 세상이 이르면, 여차한 수단을 써서 여차한 정책을 베풀겠다는 막연한 의논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비록 막연한 의논이나마 이후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조대비는 다른 모든 왕족을 젖혀 놓고 흥선을 부르고, 그때 불리기만 하면 흥선은 조 대비를 위하여 견마의 힘을 다하겠노라는 밀약이 성립되었다. 하늘이 상감께 후사를 주려고 중궁이나 어귀 상궁의 몸에서 원자가 탄생할지는 모를 일이나, 왕실 공자 가운데서 동궁을 간택한다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대왕대비이며 종실의 어른인) 조 대비의 권병으로서 눌러 버려서, 상감 재세(在世)할 동안은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동궁을 간택하지 않겠다는 밀약도 성립되었다.

『대감만 믿으오.』

『대비전마마만 믿사옵니다.』

이리하여 이 날 흥선이 성하의 인도로 입궐하여 조 대비께 뵙는 몇 시간 동안에, 커다란 사건 하나는 여기서 빚어진 것이다. 후사가 없이 상감이 천추만세하는 날에는, 흥선군 이 하응의 둘째아들 이 재황이가 영립되어, 익종의 대를 이어서 제 이십 육대의 조선 국왕이 되리라는 놀랍고도 커다란 사건 하나이, 그것은 마치 지금부터 십여 년 전, 헌종 대왕의 황후가 위중할 때에, 그 때의 대왕대비이던 김씨와 김 대비의 오라비되는 김 좌근이가 헌종 승하한 뒤에는 「강화 도령」을 모시어다가 순조의 대를 이어서 제 이십 오대의 조선 국왕을 만들자고 의논한 것과 마찬가지로―

표면 모든 흥분과 긴장된 감정을 감추고, 그 날 흥선은 천연한 낯으로 조 성하와 함께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감추기에는 너무나 큰 긴장과 흥분이었다. 시정에 영락되어 타락 생활을 거듭한 지도 십 수 년, 웬만한 감정은 모두 감추어 버리고 그런 기색도 나타내지 않는 흥선이었다. 그러나 이 날의 흥분뿐은 감추려야 감추려야 끝끝내 감출 수가 없었다.

그사이 갖은 수모를 다 받으며 갖은 욕을 다 먹으며, 그래도 그 모든 일을 참고, 귀찮고 쓴 세상을 그냥 살아온 것은, 장래 어떤 때 오늘 같은 날이 혹은 이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것을 막연히 기다리긴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그 날이 올 줄은 뜻도 안 하였던 바였다. 혹은 올지도 알 수 없는 바라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모는 쓴 일을 쓰다 하지 않고 받아 오던 것에 지나지 못한다.

돌아보아야 튼튼하고 뿌리 박힌 김문의 세상에서, 언제 자기의 위에 꽃필 날이 올 듯하지도 않았다. 어서 길을 뚫고 어떻게 나아가야 될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막연히 바라며 구체적으로는 스스로도 코웃음치며 기다리던 날이, 이제 돌연히 그의 위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복은 누워서 기다린다는 속담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이 복은 흥선에게 있어서도 너무도 급속적이었다. 너무도 의외였다.

바라면서도 또한 스스로 부인하던 이 복이 홀연히 자기의 위에 떨어지기 때문에, 흥선은 아무리 감추려야 자기의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성하를 돌려 보냈다.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알고자 웃목에 읍하고 서 있는 성하에게, 아무 말도 알리지 않고 그냥 돌려 보냈다.

성하를 돌려 보낸 다음에 흥선은 비로소 옷을 모두 편복으로 갈아 입었다.

앉아 있으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흥분이었다. 그러나 일어서니 또한 어떻게 할 바를 알 수 없는 흥분이었다.

큰 소리로 외쳐서 자기의 이 흥분을 남에게 알리고 싶은 충동이 연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큰 소리는커녕 작은 소리로라도 남에게는 절대 알릴 수가 없는 흥분이었다. 한 번 남에게 알리어서 그 소문이 퍼지기만 하였다가는 자기의 위에 어떤 박해가 미칠지는 잘 아는 바였다.

흥선은 앉았다가는 일어섰다. 일어섰다가는 앉았다. 방안을 거닐다가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러나 담배가 타기 전에 도로 내어던지고 하였다. 자기로도 자기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분간을 하지 못하였다.

어떤 시골 처녀가 내일이면 시집을 가는 그 전 날, 너무도 기뻐서 자기 집에 기르는 개를 붙들고 「개야, 나는 내일 시집간단다」 하였다는 심리를 이 때 흥선은 맛보았다. 오래 벼르고 기다리던 일―그러나 또한 당분간은 남에게 절대로 알릴 수 없는 비밀한 이 일에 흥분된 흥선은, 자기의 몸을 바로잡지를 못하고 마음이 들떠서 일어났다 앉았다 안돈되지 못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만약 마음이 이렇게 들떠서 돌아갈 때에 누가 흥선을 찾아 왔다면 흥선은 그 때는 그 사람을 붙들고,

『여보게, 대비마마와 밀약이 성립됐네. 나는 멀지 않아서 대원군이 되네.』

하고 자랑을 하였을는지도 알 수 없다.

흥선이 이 놀라운 소식을 자기의 부인에게 알 게 한 것은, 그 날 밤도 깊어서 집안 하인들도 모두 꿈의 나라에 헤매는 삼경쯤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흥선도 극도의 흥분은 좀 삭아져 있었다.

흥선이 오늘 대궐에 들어가서 조 대비를 뵙고, 거기서 의논한 의논이며, 겸하여 그 사이 십 수 년 간을 마음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던 자기의 심경을 처음으로 자기의 부인에게 피력할 때에도 부인은 놀라지 않았다. 어떤 사건, 어떤 일이라도 이 부인을 놀라게 하지 못한다. 정유년(丁酉年) 겨울 그의 일생을 끝내기까지의 팔십 년 간의 짧지 않은 생애에, 어떤 놀라운 일이 돌발할지라도, 이 착하고 어진 부인은 고요히 그 사건을 맞은 것이었다.

이 날의 이 광희할 만한 흥선의 보고를 듣고도 부인은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뒤에 고요히 손을 들어서 이미 잠든 작은아들 재황이를 가리켰다.

『낮에 장난이 심하더니 곤히 잡니다.』

흥선도 그 아들을 보았다. 지금 철 모르고 곤히 자는 이 소년―일의 진행에 그다지 착오만 안 생기면, 장래에는 아들이라는 명칭으로는 도저히 부를 수도 없는 수년이었다. 낮에 장난이 심했기 때문에 얼굴이 모두 덜민 소년은,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간간 입을 뻥싯거리며 깊이 잠들어 있다.

흥선이 자기의 아들의 위에 부었던 눈을 부인의 편으로 돌릴 때에 부인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 일이 장래 이 애에게 행복되겠습니까?』

그리고 거기 미처 흥선이 대답을 못할 때에 부인의 말이 뒤를 좇았다.

『지금도 아무 불만이 없이 잘 지내는데요.』

만약 장래 그 일이 행복이 못 된다 하면, 왕위조차 부럽지 않다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아니, 이 애의 행복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행복 문제외다. 학정, 토색, 외척 득세, 어지럽고 어지러운 세상에……』

『대감,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런 개혁은 모두 대감이 하실 일이지요? 어머니된 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읍니다. 천 사람이 망하고 만 사람이 망할지라도 내 자식 하나만 편안하면 그뿐이지, 남을 잘 살게 하자고 내 자식을 내놓기는 어미의 마음으로는 힘든 일이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편네로서 대감 하시는 일에 이렇다 저렇다 말씀은 안 하리다마는, 제 생각뿐으로는 그저 이대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며 지내는 편이 제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외다. 그렇지만 이 애는 부인에게만 아니라 내게도 자식되는 애―낸들 왜 좋지 않은 일에 넣고 싶겠소? 이 뒤에 그런 날이 온다 해도, 책임질 힘든 일은 내가 질 게고, 영예돌아올 일은 이 애에게 돌리고―그래서 거대하고 부귀한 나라의……』

대군주가 되면 오죽이나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흥선은 채 맺지를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공상적이요 너무도 허황한 그 말은 차마 입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부인도 아들의 얼굴을 굽어 보았다. 자기의 신상에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또는 지금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를 위하여 어떤 의논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연하여 무엇이 어떻다고 일을 벙싯거리며 곤하게 잠자고 있었다.

한참을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가야 부인은 머리를 지아버니에게로 돌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대감의 의향에 계시기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탓하지 않으리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편네가 무슨 참견을 하리까?―마는 이 애의 행불행은 대감께 책임을 맡깁니다. 불행하는 날에는 저도 몇 마디의 불평을 말하겠읍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서 귀여운 듯이 잠든 소년의 윤기 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뒤로부터는 흥선은 자기의 난행의 방법을 고쳤다. 이 하전이 죽은 뒤부터는 가슴이 송구하여 더욱 난행을 심하게 하기는 하였지만, 대비와의 밀약이 성립된 뒤로부터는 한 가지의 행동을 더 가하였다.

이전에는 어떤 수모를 받고 어떤 눈물나는 일을 당할지라도, 자기의 모든 감정을 죽여 버리고 참기를 위주하였지만, 흥선은 그것은 부족하게 생각하였다. 너무도 용히 참기 때문에 도리어 저쪽의 의심을 살는지도 알 수가 없으므로, 흥선은 차차 성낼 만한 일에는 성을 내었다. 저편 쪽에서 무슨 불쾌한 일을 하면 불끈 성을 내며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하고 하였다.

지금 자기의 몸은 귀하기가 짝이 없는 몸이었다. 이전에 막연히 기대할 때와 달라서, 지금은 정작으로 그것을 기다릴 지위에 서게 되었다. 대비와는 굳은 밀약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자기의 몸은 지금은 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몸이다. 그런지라, 어떤 추태를 연출하면서라도 당분간은 속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전, 막연히 기다릴 때는 김문의 교태가 성도 나고 김문의 수모가 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든 일이 내정된 지금에 있어서는, 그 교태 그 수모가 흥선에게는 도리어 코웃음밖에는 나지 않았다. 너희의 세도도 며칠이 남지 않았으니, 그 동안 마음껏 놀아 보라는 생각이 늘 들고 하였다. 이 코웃음나는 일을 흥선은 노염으로 대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불평을 말하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표면 이전보다 더욱 난행을 거듭하면서 이면으로는 흥선은 「그 날」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정에 영락되어 돌아 다니는 몇 해―이 공자는 고귀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시민들의 불평 불만이며, 그 성격이며, 생활 상태며 심리 등을 다 알았다. 그리고 그 원인이며 동기며 경로 등을 다 알고 있었다. 고귀한 집안에 태어나서 그냥 귀한 공자로서 길러난 사람들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모든 제도상의 결함이며 제도 운행상의 결함을 다 잘 알고 있었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연한 일로 알고 행하며, 또 이론상으로 보아서는 당연한 일이 그 실행된 뒤에는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게 되는지―이것은 위엣사람으로도 모르는 바요, 아랫사람으로도 모르는 바요, 다만 위와 아래를 골고루 다녀 본 사람이라야 처음으로 알 일이다. 고귀한 가문에 태어나서 영락된 무리들과 섞이어 논 흥선은 위엣일과 아랫일에 모두 짐작이 갔다. 그리고 어떤 일은 어떻게 하였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 것을, 그러지 않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두 짐작이 되었다.

누가 매관 매작을 한다. 마음이 착하던 사람도 매관 매작을 할 지위에 서기만 하면 반드시 매관 매작을 한다. 그러면 그는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가?

아주 현명하다는 일컬음을 듣던 누가 어떤 곳 수령으로 가게 되면, 거기서는 반드시 명목 없는 세납을 받아 올린다, 많고 적음에 차이는 있을망정,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그 현명하다던 사람은 왜 갑자기 그렇게 변하였나?

여기 제도상의 결함이 있었다. 학정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그 원인은 「제도」에 있었다. 제도의 결함 때문에 그들은 자기네들도 자기네의 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줄 알면서도, 그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도의 결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백성들은 그 관원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자, 이것 보게.』

흥선은 자기 앞에 놓인 대전통편(大典通編)을 펴 보였다. 성하는 흥선의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一, 정一품… 쌀 두 섬 여덟 말, 콩 한 섬 닷 말

二, 종一품…쌀 두 섬 두 말, 콩 한 섬 닷 말

三, 정二품…쌀 두 섬 두 말, 콩 한 섬 닷 말

四, 종二품…쌀 한 섬 열 한 말, 콩 한 섬 닷 말

五, 정三품…쌀 한 섬 아홉 말, 콩 한 섬 두 말

六, 종三품…쌀 한 섬 닷 말, 콩 한 섬 두 말

七, 정四품 종四품…쌀 한 섬 두 말, 콩 열 서 말

八, 정五품 종五품…쌀 한 섬 한 말, 콩 열 말

九, 정六품 종六품…쌀 한 섬 한 말, 콩 열 말

十, 정七품 종七품…쌀 열 서 말, 콩 여섯 말

十一, 정八품 종八품…쌀 열 두 말, 콩 닷 말

十二, 정九품 종九품…쌀 열 말, 콩 닷 말

(대군―大君에게는 봄 석 달에 섬을 더 줌)

(흉년에는 더 감할 경우도 있음)

그것은 당시 정일품(正一品부터 종구품(從九品)까지 열 여덟 계급의 녹봉이었다.

『여보게 성하, 이것 보게. 소위 국록이라 하면 얼마나 많은 듯이 생각되겠지만 이게 아닌가? 나도 정일품 현록대부라는 덕에 나라에서 한 달에 쌀 두섬 여덟 말과 콩 한 섬 닷 말씩을 타 먹겠지. 자네도 자네 품계에 따라서 타 먹을 게야. 그렇지만 이 봉록으로 자네 생활이 유지되나?』

녹봉이 이런 것은 흥선이 지적하지 않을지라도 성하도 아는 바였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생활이 유지되느냐는 질문은 성하에게 있어서는 기이한 질문이었다.

『하옥 김 좌근―하지, 「정일품 보국 송록대부 김 좌근」일세그려. 이름은 좋지―그렇지만 나라에서 내어 주는 녹봉은 쌀 두 섬 여덟 말, 콩 한 섬 닷 말밖에는 약간한 직봉(職俸)밖에 없어. 그러나 김 좌근 하면 그 집안의 식구가 얼마나 되나? 청지기가 이십여 명, 별배가 이십여명, 구종도 또 그만하지. 게다가 그놈들의 여편네 자식 모두 있다. 사랑 친솔만 말일세. 내실에는 또 얼마나 하인 비복들이 많은지 몰라. 적어도 영의정의 집에 달려서 먹는 생명이 백 명이 썩 넘을 걸세. 그 백여 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 대감의 녹봉이 얼마냐 하면, 겨우 쌀 두 섬 몇 말 콩 한 섬 몇 말, 여기 현직에 대한 녹봉 약간―말하자면 영상 집 고양이 새끼 한 마리도 먹다 부족할 것밖에는 못되네그려……』

당시의 제도상 무슨 벼슬이든 하면, 종구품의 말직에 지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백주에 보행(步行)으로 길을 못간다. 하다 못해 나귀 한 마리, 마부 하나, 하인 하나, 이만한 하인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고는 길을 나가지를 못한다. 신분이 초헌(?軒)을 타게 되면, 적어도 초헌이러라는데 부축할 별배 여덟 명 이상과 구종 여덟 명 이상은 가져야 한다.

『재상이 죽은 뒤에 그 장례 비용이 없는 것을 자랑했다는 것은 옛날 일―지금은 한 번 행차에도 그만한 위엄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게―제도가 그렇게 된 이상―그리고 녹봉이 또한 그렇듯 박힌 이상, 매관 매작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가겠나? 제도부터가 벌써 매관 매작이나 학정을 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게 되었으니깐, 그 사람들만 잘못했다고 책할 것이 아니라네.』

거대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제도를 꾸며 놓고 그 위에 적은 녹봉을 내어 주는 것은, 배면으로 매관 매작을 장려하는 일로 볼 수도 있었다. 아직껏은, 그저 당연히 그런 일이거니 하여 두었던 일에 대하여, 흥선의 지적을 듣고 성하는 미소로 경이의 눈을 떴다. 그리고 흥선의 얼굴을 뚫어져라 하고 쳐다보았다.

흥선은 알아 듣겠느냐는 듯이 머리를 기울여서 성하를 들여다보았다.

외척의 발호라 하는 것이 또한 커다란 문제였다. 이전 대궐에서 조 대비와 흥선이 마주 앉아 밀약을 할 때에, 이제 김씨 일문의 세력을 깨뜨리고, 그 대신 다른 세력을 세움에는 조 대비를 배경으로 삼은 조씨 세력을 주장하마 하는 것이 한 개의 커다란 조건이었다. 그리고 또한 조 대비가 지금 암암리에 활동을 하면서 일변 흥선을 불러들이며 하는 것은, 결코 이 조선이라는 땅 위에 좋은 정치를 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바가 아니요, 오로지 흥선군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면 그 연조로 조씨의 세도가 생길 것이며, 오늘날의 김씨들의 차지한 모든 귀한 자리가 조씨들의 손으로 들어오리라는 야욕 때문이었다.

그러한 조 대비에게 대하여 그 때 흥선은 맞장구를 치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흥선은 꿈도 안 꾸고 있는 일이었다. 김씨를 없이하고 조씨를 끌어들이면 무엇하랴? 그것은 이리를 내쫓고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데 지나지 못하는 일이다.

아직까지 왕이 갈리는 때마다 선왕의 신하들은 신왕에게 모두 몰락을 당하였다. 그리고 또, 지금 신왕의 총신이라 할지라도, 신왕의 현중궁이 승하하고 다른 비를 맞아들이기라도 하면 모두 또한 몰락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단지 왕비의 친척이기 때문에 조정의 귀한 자리를 차지한 허수아비들은, 자기네가 시재 차지한 귀한 자리를 자손자손이 누려 먹기 위하여는, 자연히 왕실에 대하여 별별 음모를 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네의 누이 혹은 딸 되는 왕비의 몸에서 왕자가 탄생되고, 그 왕자가 동궁으로 책립이 되면, 그들도 따라서 다음 왕의 대에까지도 세도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불행히 자기네의 누이나 딸 되는 왕비가 왕자를 탄생하지 못하면, 그 때는 그들은 자기네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하여, 종실에 대하여 별별 음모를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별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누이(혹은 딸)를 잘 두었기 때문에 금관 조복으로 만민의 위에 서서 된 짓 안 된 짓을 다 한다. 그뿐 아니라, 한 번 왕이 천추만세하는 날에는, 뒤 왕을 자기네의 권력 아래서 택하여 내기 위하여 온갖 더러운 짓, 외람된 짓, 창피한 짓을 다 한다. 이것이 모두 외척 발호 때문에 생겨나는 폐단이다.

만약 이 뒤 언제 흥선의 손에 정권이 오는 날이 있을지면, 단연히 외척이라는 것을 눌러 버리는 것이 흥선의 본시부터의 마음이었다.

그 날 대비가, 그 뒤 조씨 세도의 날을 말할 때에 흥선은 맞장구는 쳤지만 속으로는 이 뒤 흥선 자기의 손에 정권이 돌아오기만 하는 날이면 김씨, 조씨, 민씨, 할 것 없이, 인재(人材)가 아닌 사람에게는 한 개의 벼슬도 주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 일을 단행하기 위하여는 그 때 조 대비와 정면으로 충돌을 하게 될는지도 알 수 없지만, 정면 충돌을 하여서라도 조 대비를 눌러 버리고 조 대비가 지금 꿈꾸는 「조씨 세도의 날」은 현출시키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지금 자기와 함께 때때로 일을 의논하는 조 성하―조 대비의 조카되는 성하는 흥선의 권세 잡는 날에는 자기도 한 몫 잘 볼 것으로 꿈꾸고 있다. 그러나 흥선의 눈에 비친 성하는 너무도 어렸다. 재간은 있고 지혜도 있고 마음보다 그만하였으면 그다지 나무랄 데가 없지만, 아직 지배력이 부족하였다. 남의 위에 올라설 수양이 부족하였다. 남의 아래서는 다시 없는 보조자로되, 위에 서서 사람을 지배하고 통괄할 역량이 없다. 만약 성하로서 조 대비의 조카라는 자기의 지벌만 자랑하는 인물일 것 같으면, 아무리 조 대비라는 배경이 있을지라도 흥선은 그를 녹사 하나도 시키지 않을 것이었다.

서원의 횡포―이것이 또한 허수로이 볼 문제가 아니었다.

본시는 옛날 거룩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언행을 본뜨자는 뜻에서 시작된 서원이나, 그것이 타락되고 타락되는 동안, 지금은 위 아래 할 것 없이, 사면으로 해독을 끼치는 커다란 암종이 되었다.

옛날 성현들을 존경하자는 뜻으로 그들에게 준 특권을 그들은 악용하여 온갖 횡포한 것을 다 한다. 유교 사상에 젖고 또 젖은 이 땅에서 서원을 모두 철폐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적지 않는 문제이다.

이것은 국왕으로 도저히 행하지 못할 일이다. 국왕의 몸으로서 서원을 철폐시켰다가는 국왕의 지위에 반드시 흔들림이 생길 것이다. 국왕보다도 더욱 큰 권위를 잡은 사람―그리고 또한 국왕이 아닌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행하지 못할 노릇이다.

만약 장래에 자기에게 정권이 돌아오는 날에는, 이 수많은 서원을 모두 철폐하여 버리기로 흥선은 작정하였다.

장래 이 나라의 정권을 잡을 사람으로 내정된 흥선은, 그 날을 위하여 그의 활달한 눈을 온갖 곳에 붓고 비판하여 보았다. 보는 때마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폐궁 경복궁의 개축 문제―

경복궁뿐 아니라 그 사이 돌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무너지고 기울어진 조선 팔도 각 곳의 정자 누각 청사들의 수리 문제―

국고(國庫)와 권문의 사고(私庫)와의 구별이 확연하지 않기 때문에 어지럽고 어지러운 재정 문제―

관리 등용의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섭게 횡행하는 매관 매작 문제―

조세(租稅)에 대해 상세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지방 수령들이 함부로 받아 벗겨 먹는 조세 문제―

무(武)를 너무도 낮추 보기 때문에 지금 근심하게 된 군대 문제―

거처와 활동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복 문제―

필요 없이 긴 담뱃대며 필요 없이 큰 봉투 등으로 국민 생활의 쓸데없는 비용이 많이 나가는 점―

일일이 세자면 끝이 없는 이 많고 많은 문제를 모두 일시에 꺾어 버리고 다시 새로운 제도를 세우기 위하여 흥선은 그 방책을 세우기에 노력하였다.

이런 일을 모두 서서히 개량하자면 몇 대의 왕, 몇 백 년의 날짜를 가지고도 하지 못할 것이다. 썩어 들어가는 곳은 당연히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불평이 있고 많은 반대가 있을 것이나, 쇠뿔은 단김에 뽑지 않으면 안 된다. 흥선 자기로도 짐작이 안 가는 바가 아니거니와, 자기와 같은 사람이 조선 정계에 언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생겨난 이 기회에 모든 폐단을 단연히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돌아보건대, 태조 건국한 때부터 벌써 움이 트기 시작한 왕위 계쟁 문제가, 지금 구르고 또 굴러서 자기의 아들의 앞에까지 이르렀지만, 이번 이 기회를 타서 그 문제까지도 철저히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왕이라 하는 것은 결코 종실의 가장뿐이 아니다. 종실의 가장이면서 또한 이 나라 삼백여 주의 주인이다. 그런 국왕을 종실의 연로자(年老者) 한 사람뿐의 의견으로 좌우한다는 이 제도부터가 글러먹은 제도다. 그 제도의 덕에 자기의 위에도 지금 바야흐로 영광이 떨어지려 하지만, 제도는 결코 옳은 제도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지럽고 시끄럽고도 많은 문제이다.

이 많고 어지러운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하여 흥선은 그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자기가 손을 써야 할 날이 이르기만 하면, 맹렬히 일어서고 그 굳센 주먹을 휘두르기 위하여 그 날의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것은 몹시 긴장되고도 또한 명랑한 생활이었다.

조 대비와 자기의 사이에는 물론 단단한 묵계가 맺어졌다. 상감 승하하기만 하는 날에는 지금부터 십여 년 전에 강화(江華)로 굴러 내려갔던 어보가 이번 자기의 손으로 들어오게 약속은 되었다.

그러나 또한 생각하면 맹랑한 문제였다. 국왕의 승하를 기다리는 불충한 일과 다름이 없었다.

김씨 일문의 의심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더욱 난행을 거듭하면서도, 자기를 돌아보고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할 때도 흔히 있었다.

그 어떤 날 흥선이 여전히 잔뜩 취하여 김 병기의 집을 찾은 일이 있었다. 그 때 병기의 문갑 위에 선원보(璿源譜)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는 그것을 무심히 보았다. 선원보가 한 권 놓여 있거니 이만큼 보아 두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김 좌근의 집을 찾으매 좌근의 정침에도 선원보가 있었다.

여기서 흥선은 이상히 생각하였다. 그리고 속으로 흥흥 코웃음쳤다.

무른 그럴 것이다.

건국 근 오백 년, 처음에는 한 분에게서 퍼진 자손이나 지금은 적지 않은 수효로서, 이 적잖은 왕족은 선원보를 뒤적여 보지 않고는 상고할 수가 없다. 그만큼 왕족들의 존재는 미약하였던 것이다.

표면 태평을 노래하는 그들이었지만, 내심 갈팡질팡하는 꼴이 역연히 보였다. 자기네의 일당의 한 사람인 김 문근의 따님(왕비)의 몸에서 왕자가 탄생하기만 하면 이 이상의 안심되는 일이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김씨 일문은 과연 앞길이 막혔다. 왕자가 탄생하지 못할 줄을 미리 짐작이라도 하였지만, 다른 왕족 중에라도 그럴 듯한 사람을 어름어름하여 두었을 것이어늘,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왕족이라는 왕족에게는 모두 고약하게 대접을 하여서 서로 원수와 같이 되어 있는 지금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래도 자기네 일족에게 그다지 악감을 가지지 않은 왕족이 행여 어디 있지나 않은가 하고 그들은 「선원보」를 상고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선원보를 상고하여 거기서 요행 김씨 일문에게 악감을 가진 듯한 왕족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동궁에 책립하기에는 조 대비의 응낙이 있어야 한다. 이미 흥선과 밀약이 성립된 조 대비는 김씨 일문의 의견을 응낙을 할 까닭이 없다.

골라 내어도 없을 것이고, 비록 있다 할지라도 조 대비가 응낙하지 않을 일을, 그래도 행여나 하고 선원보를 상고하는 그들의 꼴이 흥선에게는 가여웠다.

『화무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선원보를 곁눈으로 보면서 얼근한 소리로 이렇게 읊고 있는 흥선의 속마음을 김씨 일문은 알 리가 없었다. 더구나 흥선이 이렇게 찾아 다니는 것이 밑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 행동으로는 추측도 할 수가 없었다. 흥선과 그들은 온전히 딴 나라의 사람이었다.

그 해 가을, 가을 바람이 몹시 산산한 어떤 날 민 치록(閔致祿)이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 고해를 한 번 다녀 간 기념으로 금년 열 한 살 나는 어린 딸 하나를 남겨 놓은 뿐 쓰러지는 고목과 같이 거꾸러졌다.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없는 그의 임종을 보아 준 사람은, 그의 양아들로 들어온 민 승호와 승호의 누님되는 흥선 부인과 그의 어린 민 소저 뿐이었다.

『조카님. 부탁이오. 이 천애의 고아―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가련한 애를 가꾸고 길러 주시오. 이것이 마음에 걸려 눈이 감기지를 않는구려.』

야윈 얼굴에 두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이 당부를 한 뒤에 얼굴의 주름살을 펴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길을 떠났다.

초라한 그의 장례를 따른 사람은 흥선 내외와 민 승호의 오누이뿐이었다. 이것이 「조선」이라는 거대한 떡을 앞에 놓고 죽기까지 서로 맹렬한 투쟁을 계속한 흥선 대원군과 민 중전의 그 첫 대면이었다.

흥선은 민 소저를 보았다. 숭굴숭굴 얽기는 하였지만 영특하게 생긴 소녀였다.

『몇 살이냐?』

『열 한 살이올씨다.』

『열 한 살, 열 한 살에 오늘부터 집안 주인노릇을 해야겠구나. 애처러워라! 승호야. 네 책임이 크다. 고인의 유탁이려니와 네 친누이보다도 더욱 마음을 써야 한다.』

흥선은 흰 댕기를 늘인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승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 날부터 소녀는 팔 걷고 나서서 이 집안을 다스렸다. 이 날을 상속한 자는 민 승호며, 따라서 민 승호의 아내야말로 이 집안의 주부이거늘, 소녀는 이 집안을 자기의 집으로 여기고 몸소 모든 것을 지휘하고 다스렸다. 이 소녀의 너무도 영리하고 민첩함은 간혹 그 도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하는 일까지 흔히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또한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소녀는 스스로 이 집안을 다스렸다.

『작은아주머니!』

이 소녀가 너무도 간섭이 심하기 때문에, 집안 계집하인들은 소녀에게 이런 별명을 바쳤다. 그리고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괴한 환경이었다. 소녀는 이 집안에서의 자기의 입장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이 집안은 무론 자기의 친아버지의 집안이로되, 지금은 딴 집에서 들어온 민 승호의 아내(올케)가 이 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소녀에게는 자기의 입장이 불쾌하였다. 불쾌하기 때문에 소녀는 자기가 가지지 못한 권리를 감행하여,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소녀가 즐겨서 읽는 책은 「좌씨전(左氏傳)」이었다. 온갖 현부전(賢婦傳)이며 수신서를 피하고 소녀는 어렸을 적부터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연구하였다. 여자로서는―더구나 소녀로서는 당치 않은 「좌씨전」을 읽노라고, 자기가 참견할 가사에도 참견을 못하는 때까지 있었다.

이 때의 이 소녀의 환경과 입장과 읽는 책과 경험한 경력이, 후일 대원군의 간택을 받아서 왕비로 책립된 뒤에 그가 사용한, 그 놀랄 만한 권모술수적 정치―정치라기보다 오히려 술책―을 낳은 것이었다.

「작은아주머니―」

세상이 모르는 삼청동 한편 구석에서는 한 개의 작은 아주머니가 차차 장성하며, 그의 놀라운 지혜와 술모(術謀)를 기르고 있었다. 그의 양오빠 민 승호는 소녀에게는 좋은 친구요, 동지요, 고문이었다.

가을도 가고 겨울도 갔다.

신유년이라 하는 해는 고요히 과거장으로 감기어 들어갔다. 표면 역시 아무 변화가 없이 지난 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적지 않은 변동이 있었다.

이 하전이가 역모로 몰려서 죽었다.

왕자가 탄생되지 못하고 상감 승하하는 날에는, 이 하전이가 제 이십 오대의 임금이 될 것으로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하전이가 죽은 뒤에는 당연히 거기 얽힌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 대비와 흥선군 사이에는 밀약이 성립되었다. 이러는 가운데서도 상감의 건강은 나날이 좋지 못하여 갔다. 뇌빈혈을 일으키는 돗수가 더욱 잦았다. 용안이 종잇장과 같이 창백하게 되고 늘 수족이 떨리었다.

수라를 진어하는 양도 나날이 줄었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아무 까닭도 없이 눈물을 소나기같이 흘리며 혼자서 체읍하는 일도 차차 많아졌다.

원자(元子)를 아직 못 보고 건강이 나날이 쇠해 가기 때문에, 김씨 일문에서는 갈팡질팡하였다. 아직껏 그 세가 너무도 컸는지라, 사면에서 미움만 사고 있는 김문은, 용상의 밑에 숨어서 그 지위를 그냥 보전하는 있었거늘, 이제 여차하는 날에는 그 일족을 잔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표면 무사 태평히 지나는 듯이 보이면서도 이 커다란 문제 때문에 그 일족은 갈팡질팡하였다. 어떻게 이 국면을 타개하려고 모이면 수군수군 의논하였다.

그러나 묘책을 나지 않았다. 수군거리면 수군거리느니만큼 근심만 더욱 커 갈 뿐이었다.

이러한 동안에도 그들은 더욱 급속히 더욱 맹렬히 매관 매작이라, 토색이라, 학정이라 온갖 못된 일을 더 발전시켰다. 어떻게 되면 정권을 잃을지도 알 수가 없는지라, 자기네가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에 단 한 푼이라도 더 긁어 들이기 위하여 자기네 일족 안에서도 서로 경쟁을 하여 가면서 갖은 악행을 하였다.

흥선은 또 흥선으로서, 김씨 일문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밤낮을 가릴 것이 없이 허튼 생활을 계속하며, 남에게 손가락질받을 일을 따라다니며 하였다. 남의 침뱉을만한 일은 반드시 행하고야 마는 흥선이었다. 이 모든 일을 하여 놓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흥선이었다.

표면 특별한 대사건이 없이 지났다.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로는 겨우 이 하전 역모 사건이라는 일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흥선의 둘째도령의 운명이 작정된 해였다. 조선이라 하는 나라의 운명이 작정된 해였다. 김씨 일문의 잔멸의 원인이 생겨난 해였다.

아무런 악정(惡政) 아래서도 반항이라는 것을 할 줄을 모르는 이 어질고 착하고 기운 없는 백성과, 선정(善政)은 베풀고 싶지만 대신들의 낯이 어려워서 행하지 못하는 상감과, 「선정」이라는 말과 「악정」이라는 말의 의의(意義)도 모르는 위정자(爲政者)들과, 「의식(儀式)」이라는 것을 인생의 최대 중요사로 여기고 있는 선비들―이런 사람들의 모임인 조선이라는 나라에 신유년(辛酉年)이 고요히 타고 넘어갔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불려는지 예측할 수 없는 임술년(壬戌年)이 이르렀다.

임술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고요한 삼천리의 강토에 조금씩 풍파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반항」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백성에서 조금씩 반항의 움이 돋기 시작하였다.

제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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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