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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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五[편집]

일양내복―

다사다난한 계해년이 지나고, 갑자년 춘정월―유난히도 명랑한 날씨―한 조각의 바람도 없고 겨울날이라 해도 따스한 볕이 골고루 내려 비치고 있었다. 두어 조각 분홍빛 구름이 백악(白岳) 위에 걸쳐서 이 명랑한 날씨를 더욱 곱게 장식하고 있었다. 갑자기 따스로와진 일기 때문에 집집마다 처녀에서는 눈 녹은 물이 땅을 적시고 있었다.

이 날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는 모두 축하의 기분이 넘쳐 있었다.

제 이십 육대 조선 국왕―새해에 열 세 살 되는 소년 왕이 등극하는 날이었다.

종로를 장식하던 공랑이며 육주비전 이하 온 상점은 모두 철전을 하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 날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 새 옷을 바꾸어 입고 거리로 몰려 나왔다.

이 날 아침부터 거리에는 정일품으로부터 종구품에 이르기까지 높고 낮은 관원들이 모두 자기의 품에 적당한 조복(朝服)으로 몸을 장건하고 뒤를 이어서 금호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 뒤를 연하여 대궐로 들어가는 높고 낮은 관원들의 행차 때문에, 중인 이하 상놈들은 길복판 한가운데는 나설 기회도 없었다.

『에익, 이 놈들, 물리거라, 비켜라!』

행차의 앞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위세 좋게 울리는 경필의 소리에, 혹은 초헌, 혹은 사인남여에 몸을 실을 높은 재상이며, 아래로는 나귀 한 마리에 마부와 하인 겨우 한두 명을 단 아랫관원들의 행차에 이르기까지, 불안과 희망을 아울러 품고서 금호문 안으로 금호문 안으로 그 그림자를 감추는 것이었다.

대궐 담 밖에는 이 날의 경사를 음향으로나마 엿보려고 모여든 무리들 때문에, 벌써 송곳 세울 여지도 없게 되었다. 이윽고 국태공 흥선 대원군의 행차가 돈화문 앞에 이르렀다.

기린 흉배에 옥대를 띠고, 단연히 앉아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위의 시민들을 둘러보는 이 귀인―누가 이를 어젯날 한길에서 갈지자 걸음으로 난행을 하던 하응으로 볼 것이냐? 시종이 받든 조산(??) 그늘에서, 피곤한 듯한 눈을 굴려서 흥선은 좌우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 전후 좌우를 시위하는 가마와 도보의 병사들은 늠름히 날뛰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의 생친(生親)을 맞기 위하여 돈화문이 넓게 열렸다. 삼공이라도 걸어서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대궐 안(재상은 견여(肩輿)로써 입궐하던 것을 신유년 삼월에 금함)을 흥선의 남녀는 위세 좋게 들어갔다.

흥선의 남여가 문 안으로 그림자를 감춘 다음에는 돈화문은 다시 고요히 닫혔다.

그 뒤로도 관원들의 행차는 연하여 금호문으로 하여 대궐로 들어갔다.

기쁨에 넘친 날이었다. 하늘조차 이 날을 축하하는 듯이 근래에 보기 드문 명랑한 날이었다.

『저 분이 대원군이시지?』

『그럼!』

『본시 흥선군이라지?』

『그래!』

단아한 공자, 위엄성 있는 귀인, 그러면서도 친애할 수 있는 동무―시민들은 여기서 자기네들을 지배할 무서운 권력자를 보기보다, 오히려 친애하고 서로 무릎을 겯고 의논할 수 있는 온화하고도 믿음성 있는 웃사람을 발견하였다.

문득 대궐 안에서는 부드러운 아악 소리가 울리어 나왔다. 제 이십 육대의 임금의 즉위 예식은 바야흐로 시작이 되는 것이었다.

대궐 밖의 시민들은 모두 일제히 허리를 굽혀서 이 경사에 축하와 경의를 표하였다.

인정전에서의 즉위의 예식과 아울러 국태공 섭정의 취임식은 무사히 성대히 끝이 났다.

신왕은 대왕대비 조씨의 인도와 섭정 국태공의 배행으로서 종료에 거동하여, 열성(列聖)의 영전에 이 사직 받듦을 봉고하였다.

이튿날은, 처음 조회를 보는 날이었다.

인정전 용상에는 새로이 삼천리의 강토에 군림한 소년 상감이 좌어하였다. 그 곁에는, 섭정 태공이 모시고 있었다.

국궁!

바이!

흥!

평신!

북향하여 네 번의 숙배도 끝이 났다.

숙배가 끝이 난 뒤에, 흥선―지금은 변하여 태공―은 내관의 부액을 받고 고요한 걸음으로 인정전 전각 밖으로 나섰다.

월대(月臺)에까지 나선 태공은 눈을 들어서 아래 품반품서(品班品序)를 따라서 숙연히 서 있는 문무백관을 굽어 보았다.

문득 태공이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흥선 대원군, 주상 전하의 사친이오.』

놀라운 성량(聲量)―그 넓은 뜰에 태공의 말은 우렁차게 울리어 나갔다.

『대왕대비전하의 어명으로 오늘부터 유충하신 주상 전하를 협찬해서 이 사람이 대정(大政)을 보기로 합니다. 국정이 극도로 피폐한 오늘, 대소 백관들의 협력을 바라오.』

취임사(就任辭)였다.

만정의 백관들은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은 태산보다 무거웠다.

「전 책임을 내가 지고 전 의무를 내가 갖겠다.」

태공의 말은 이 뜻에 틀림이 없었다.

다시 돌아서서 전각 안으로 들어올 때는, 태공 흥선의 입에서는 길다란 한숨이 나왔다.

『아아, 커다란 씨름을 치렀다!』

하염 없이 눈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그것은 커다란 안심에서 저절로 솟아오르려는 눈물이었다.

『상감마마를 편전으로 모셔라!』

내관에게 명하고 내관의 부액으로써 편전으로 드는 상감의 뒤를 따라서 태공은 내전으로 들었다.

『전하, 곤하시지 않소이까?』

태공이 자애에 가득찬 눈으로 아드님을 굽어보며 이렇게 여쭐 때에, 면류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은 상감은 용안을 적이 들고 생친을 우러러보았다.

『곤하지는 않습니다.』

『곤합니다. 곤합니다. 몸이 곤하기보다 마음이 곤합니다. 천만의 백성을 헤아리시기, 삼천리의 강토를 다스리시기―몸보다도 마음이 곤합니다. 영화스러우나 괴롭고 고단하신 자립니다.』

『아직은 곤한 줄을 모르겠읍니다.』

상감의 탄 연에 딱 붙어 서서 이 아버지는 존귀한 아드님께 임금의 자리의 고단함을 설명하였다.

편전으로 돌아와서 편의(便衣)로 바꾸어 입는 것을 본 뒤에 태공은 아드님께 하직하였다.

『나는 운현궁으로 돌아갑니다. 부디 일찍이 침전에 듭시고 수라를 많이 진어합시오.』

편전 앞까지 남녀를 불러 대어 남녀에 몸을 싣고 돈화문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도중에서 태공은 문득 하옥 김 좌근을 만났다.

하옥은 황급히 길을 비키며 국태공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태공은 그 하옥의 인사에 대하여 가볍게 머리를 끄덕일 뿐,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의장 병사를 불러 거느리고 운현궁으로……

눈 좌우로 하염 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

가묘(家廟)에 들어서, 선고 남연군(先考南延君)의 영전에 가문의 길보를 봉고할 때에는, 태공의 눈 좌우로는 하염 없이 눈물이 흘렀다.

『기뻐하십시오. 영락되고 영락돼서 영전을 뵈올 면목도 없던 가문, 지금 다시 일어서렵니다. 일찍이 소자를 보실 때에, 선인(仙人)이 한 아이를 맡기시더라던 꿈―지금 바야흐로 실현되려 하옵니다. 소자 무력하와, 미처 당하지 못하는 일이 있삽거든 부디 가르치셔서, 이 나라와 이 사직의 만세 태평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꿇어 앉아서 술을 붓고 절할 동안, 끊임없이 태공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진실로 거대한 야욕의 공전 절후의 성공이었다. 항상 계획을 하며 진행을 시키면서도 일변으로는 스스로 코웃음치고 싶던 이 야욕이 오늘날 성공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사이 십 수 년 간을 시정에 배회하며 시민들과 무릎을 마주 겯고 사귀면서 보고 들은 지식에 의지하여, 그들에게서 고통과 중하(重荷)를 제하고, 이 나라로 하여금 굳센 나라가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하여금 가멸한 백성이 되게 하고, 이 강토로 하여금 기름진 강토가 되게 하고, 이 사직으로 하여금 아직껏의 더럽고 추잡한 구태를 벗고 명랑하고 화기 찬 사직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도정이다.

태공은 자기의 역량을 믿었다. 하늘로서 태공 자기에게 넉넉히 수(壽)만 주실 것 같으면, 이상대로 이 나라를 만들어 놓을 심산과 자신이 있었다.

가묘에 예배를 끝내고 사랑으로 나오매, 하객(賀客)들은 구름과 같이 대청에 모여서 태공의 출어를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일어나서 절하였다.

그 가운데를 태공은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아래로 향하여 옮겼다.

『후우!』

태공은 기다란 한숨과 함께 몸을 곤한 듯이 보려 위에 내어 던졌다.

이튿날 섭정 대원군의 명의로서 정부 관리의 이동이 발표되었다. 이 발표를 보고 모두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양반은 양반이로되 아직껏 무세하던 소론, 남인, 북인이 많이 요로에 서게 된 것도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중인, 상놈까지 파격의 등용을 한 것도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흥선군 시대의 친구들이 비교적 적게 등용된 것도 그들의 의외였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보다도 더욱 의외로 느낀 것은 김씨 일문에게 대한 관대한 처분이었다.

김 좌근은 실직은 떠났으나 그냥 상부(相府)에 머물게 되고, 그 양자 병기가 단 한 사람 삭관된 뿐, 병학도 선왕때보다 위가 올라서 공렬(公列)에 서게 되고, 병국도 훈련대장에서 호조판서로 오르게 되고―이것이 가장 눈을 크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벼우면 원배(遠配), 그렇지 않으면 사사(賜死)거나 참(斬)을 할 것이어니 하고 있었는지라, 이 처분은 과연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이러한 관대한 처분 때문에 국태공으로서의 흥선의 광채는 찬연히 그들의 머리 위에서 빛났다.

이제는 대비도 없었다. 상감의 그림자까지 태공 뒤에 감추어졌다. 그들의 앞에 커다랗게 나타나서 빛나는 것은 국태공 흥선대원군 이 하응의 광채뿐이었다.

그 광채의 아래 만조 백관들은 공손하는 뜻으로 허리를 굽혔다. 잠들었던 사자는 드디어 기지개를 하였다. 그리고 첫 포함성을 질렀다.

산림이 울리어 나가는 그 포함성―그 아래에서 잠 깬 사자는 그의 운동을 시작하였다.

쇠퇴한 국운, 피폐한 국정, 실추된 국권―이 모든 무거운 짐을 한 몸에 뭉쳐 지고, 거인은 드디어 그 조리(調理)를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시정에 배회하여 이 시민의 사정과 고통을 속속들이 다 아는 이 거인은, 시민들을 도의 쓰라림에서 건져 올리고자 그의 커다란 손을 내어 밀었다. 정확히 통찰하는 그의 눈과 든든한 그의 손은, 오랜 학정에 피폐해서 마지막 힘까지 다 사라져 가려는 시민의 위에, 새로운 청량제를 부어 주려고 준비하였다.

이 사자가 출현하기 전에 삼림 속에서 제 세상이로라고 횡행하던 시랑들은 사자의 포함성에 질겁을 하여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다. 이 사자의 구태여 그들을 쫓아가서 필요 없는 살육을 행할 필요가 없이, 시랑들은 스스로 숨어 버렸다.

아직껏 소인들의 장난에 시달리고 시달린 삼천리의 강토는 이 거인의 출현을 혼연히 맞았다.

운현궁은 정치의 중심지며 따라서 이 나라의 중심지로 되었다. 이전에는 비루먹은 개 한 마리 찾지 않던 흥선댁이나, 지금은 팔도 강산에서 매일 찾아 드는 수 없는 시민의 무리 때문에, 수십 명의 궁리도 그 응대를 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 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그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은(오랫동안 쓸쓸하였더니만큼) 또한 유달리 화려한 봄이었다.

제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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