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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저자: 이태준
1929년 5월 <근우>에 발표.
추석은 내일이나 달은 내일 밤에 뜰 달이 내라는 듯이 지금도 대낮같이 밝은 밤이다.
막차도 떠나간 지 오래고 전차도 끊어진 때라 청량리만 하더라도 문안과 달라 이렇게 밝은 달밤에…… 어서 자고 내일 추서을 즐기려 함인지…… 거리는 벌써 빈 듯이 잠들었다.
고요한 달 아래 고요한 밤길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달밤에 나뭇잎들은 가지에서 흩어지는 슬픔도 있다. 이것을 자지 않고 길 위에서 굴리고 있는 심술궂은 바람도 있다.
나는 홀로 멀리 희미한 윤곽만 떠 있는 동대문을 바라보며 조그마한 생각 하나, 아무 쓸데 없는 지나간 일 하나를 추억하면서 이 길을 걸어간다.
내가 그를 첫 번 만나보기는 지금으로부터 사오 년 전 어느 비내리는 여름날 밤에 몇몇 친구와 같이 명월관 본점에서다. 내가 요릿집에 들어가 보기나 기생들과 무릎을 한자리에 하여보기나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모두 네 사람이서 두 기생을 불렀다. 첫 번에 부른 기생은 향화라 하는 평양 기생이었고, 다음에 부른 기생은 소련이라 하는 남도(경주) 기생이었다.
우리 네 사람 중에 K군 한 사람을 제하고는 모두 학생복을 입은 만치 기생과 놀아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소위 '나지미'라는 기억하고 있는 기생 이름도 없었으므로 소련이니 향화니 하고 그들의 장기를 알아서 부른 것은 K군이었다.
우리는 옆방에서 흘러오는 노래와 애교 있는 기생들의 농담에 귀를 기울이며 어서 우리 방에도 기생이 들어서기를 궁금히 기다렸다.
향화의 <수심가>가 좋고 소련의 가야금이 좋다는 K군이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향화니 소련이니 할 것 없이 기생을 처음 기다려보는 우리는 얼마나 고운 그림자가 들어서나 하고 궁금한 생각이 대단하였다. 그러므로 슬리퍼 소리가 문 앞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긴장하였고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까지 나는 잊지 않는다. 
이렇게 긴장하여 있는 우리 방 안에 먼저 들어선 것은 <수심가>를 잘한다는 향화였으니 그의 연분홍 저고리와 초록 치마는 하늘하늘하는 비단들이어서 젖가슴이 흐늘거리는 향화에게는 잘 조화되는 복색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우리를 향하고 허리를 굽신하고 잠깐 앉는 듯이 하더니 한 손으로 버선 뒷목을 잡아당기며 서슴치 않고 K군의 곁으로 가 앉았다. 
"방학 때니까 나오셨으려니 하였지만…… ."
이상스러운 눈초리로 K군을 바라보는 향화의 첫말이었다.
소련이가 들어올 때는 벌써 향화가 우리 방에 있는 때라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살며시 미닫이를 닫고 그 자리에 도사리고 앉아 조심조심하여 좌중을 돌아가며 목례하는 소련의 태도는 범절이 숙달한 향화를 보고 보아 너무 어색한 곳이 있어 보였다. 단조한 흰 모시저고리 흰 모시치마, 머리엔 흑각비녀가 더욱 쓸쓸하여 보였다.
나는 어디서 저런 촌 기생이 들어오나 하고 처음엔 다소 불만했으나 자리를 사귈수록 정이 끌리기는 이 초조한 소련이었다.
향화는 얼마 가지 않아 그 음란하고 천박한 품이 드러났다. 가르마를 한편으로 몰아 탄 것이라든지 조선 복색엔 당치 않은 루파시카 끈으로 중등 매끼를 한 것이라든지 치마폭은 좁게 하여 일부러 속곳 가랑이를 내놓는 것이라든지 소리도 <수심가>란 입내뿐이요 유행 창가밖에는 못 하였다. 
소련은 이와 반대로 조예 깊은 기생이었다. 첫째 옷매무시와 말솜씨가 여염 부녀와 같이 단정하였다. 그러나 그 단정한 것이 결코 객의 흥취를 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좌중이 손을 잡고 노는 것과 같이 화락하였다. 그의 주름을 잘게 잡은 모시치마라든지 그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수엽랑이라든지 아무튼 향화를 닭이라고 하면 소련은 학과 같은 기품이 있는 여자였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향화를 생각할 때는 그 빈정거리는 기다란 입술과 버그러지는 치마 속에서 엷은 비단 속곳 가랑이가 볼기의 윤곽을 따라 그리고 있는 곡선, 이러한 인상이나 소련은 그렇지 않았다. 그 청한 눈알이었다. 일요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천진한 소녀와 같은 그 천진한 눈알이었다. 또 그의 흥취 깊은 남도 소리와 능란한 가야금은 나 같은 서생으로서 감히 평할 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날 저녁에 그 구슬픈 소련의 가야금은 행인지 불행인지 오늘 내가 이 글을 초하게 된 인연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구슬픈 가야금 소리. 지금도 그때 소련의 눈물 젖은 눈초리가 눈앞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한 무릎에 가야금 머리를 누여 놓고 이마를 수그리고 탈 제 귀로 듣는 노래뿐이 아니라 줄과 줄 위에서 강둥강둥 춤을 추다 찌긋찌긋 미끄러도 지는 그 열 손가락의 노는 재주도 바라보는 흥미가 깊었다.
그러나 노래는 슬펐다. 줄도 울고 사람도 우는 무슨 한 있는 노래였다. 노래하는 소련이 제가 슬픈 사람이었다. 가야금을 물려놓을 때 그의 손은 눈으로 먼저 올라갔다. 눈물 고인 눈초리를 보이지 않으려 그는 웃어 보이기까지 하였으나 지어 웃는 웃음이니 창밖에 빗소리만 높을 뿐이요 좌중은 다 같이 침묵하였다. 
"왜 어디가 불편하시오?"

하고 K군이 물었으나 소련은 자기 신세타령이나 펴놓을 곳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슬펐다. 아마 그날 저녁에 소련이 자신 이외에 제일 슬퍼한 사람은 나였을 것이다. 나도 슬픈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 저녁에 명월관에 모인 것도 K군의 주선으로 그때 나의 설움을 위로해 주려는 놀음이었다.
소련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사정에 있어서는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남이 다 즐거이 사는 세상에 우리만 슬픈 사정을 가지고 울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옛날 시인 백낙천의 <비파행>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슬픔과 동정으로 소련의 애달픈 노래를 다시 한 곡조 청하였다. 그는 사양함이 없이 가야금을 들어 안았다. 
나는 나중에 소련의 소복한 이유를 물으니 지난 삼월에 돌아간 양모의 거상이라 하였다. 친부모는 계시냐고 다시 물었으나 그는 머뭇거리며 얼른 대답하지 않다가, 
"다 없으셨어요…… 왜 선생님은 유쾌하게 놀지 않으시고?"

하면서 향화가 치던 장구를 뺏어 안았다.

시간이 지나 소리는 하지 못하고 이야기판이 벌어졌을 때 감상적인 학생들의 놀음이라 이러한 자리에서 사랑 이야기가 일어난 것도 그리 이상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 무얼 나는 사람이 제일이야. 당사자 하나만 마음에 들면."

하는 향화의 말에,

"그렇지도 않아. 만나는 날 서로 껴안고 죽고 만다면 고만이지만 사람 잘난 것 고르는 것부터 오래 살려는 것 아니야. 단 하루를 살더래도 돈이 있어야지. 우리가 이렇게 매일 저녁 여러 손님을 모시고 놀 때 '저 어른이면' 하는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나 결국 돈 때문이 아니야."
소련이가 이 말을 하면서 K군의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가벼운 질투가 일어나던 것도 기억한다.
그러나 소련이와 나 사이에는 시선이 부딪칠 때마다 단순히 눈과 눈이 보는 것이 아니요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의지해 보려 눌러도 보고 기대어도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벌써부터 그와 나 사이에는 남모르게 소통하는 무엇이 있어 내가 정하는 것이면 무엇이고 되리라는 자신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다가 소련이가 모두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걸려 있는 양복에서 만년필을 하나 뽑아,
"선생님, 이런 글자 아세요?"

하고 내 손바닥을 자기 무릎으로 끌어갔다. 그가 쓰는 글자는 한자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손바닥에서 '서린동ㅇㅇ번지'라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이튿날 아침 서린동 ㅇㅇ번지를 찾아 나섰다. 서린동을 찾고 ㅇㅇ번지를 찾고 소련의 문패까지 틀림없이 찾았다. 그러나 그 집 문 앞을 닥치고 보니 이상한 것은 그 집 문 안을 들어 설 용기가 나지 않던 것이다.
집은 기와집이나 옆에 큰 집과 한데 붙은 집인지 따로 떨어진 집인지 아무튼 몇 간 안 되어 보이는 다 쓰러져 가는 헌 집이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의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아니었겠지마는 그들의 내면생활이 얼마나 곤궁하다는 것은 화류계를 모르는 나로서 새삼스러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무얼 그도 기생이지. 내가 동경 가 있다니까 돈푼이나 있는 줄 알은 게지. 또 그가 자기 방 열쇠나 주는 듯이 은근히 번지를 적어주었지만 그로서는 직업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인 만큼 이 집 문 앞을 찾아오는 친구도 나뿐이 아닐 테지. 번지를 적어준다고 탐탁하게 생각하고 찾아노는 내가 어리석지.'

하는 생각이 새삼스러이 일어났다.

그때 마침 뒤에서 낯익은 사람 하나가 오는 것을 보고 나는 기어이 그 집 문 안을 들어서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 후 다시 소련을 만나볼 기회도 없었고 며칠 안 되어 동경으로 가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동경 생활이 단조했던 탓이던지 소련의 생각이 무시로 떠올랐다.
그 가을꽃과 같이 아담하고 적막해 보이는 소련의 모습을 그려볼 때마다 나는 일어나는 정열에 맡기어 편지도 여러 장을 써 보았다. 그러나 소련의 집을 찾고 들어가지 못한 것과 같이 한 장도 부친 적은 없었다.
이러한 소련이와 다시 만나보기는 일 년이 지나서 그 이듬해 여름 방학 때였다.
이번도 K군과 몇몇 친구가 국일관에 놀러 갔었다.
그날 밤에 소련을 부른 것은 나 자신이었고 소련의 가야금이나 들으려는 평범한 손님이 아니었던 것은, 소련을 부르고 나서 나의 가슴이 울렁거리던 것과 문 앞에 누가 오는 듯할 때마다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것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뒤에도 알려니와 나의 첫사랑의 대상이 이 소련이었던 것을 미리 말하여 둔다.
아, 첫사랑! 소련이도 나에게 그러하였다. 철도 나기 전부터 애욕에 눈이 붉은 그 많은 남자들과 밤낮을 교접해 오는 그로도 완전히 자기 의욕에서 사랑이라고 할 만한 사랑은 나에게 처음 품었던 것이다.
그도 꿈에 본 듯한 나를 일 년 동안이나 잊지 않았다. 놀음에 불려 올 때마다 내가 있지 않나 하고 은근히 찾아왔다. 첫사랑이 아니고야 서로 찾고 있던 사람이 아니고야, 어찌 그같이 긴장된 시선으로 마주 볼 수가 있었을 것인가. 그가 우리 방에 들어서 좌중을 돌아보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 머무르던 순간, 그의 의식과 나의 의식이 서로 폭발되는 순간, 나는 일찍이 이와 같은 뜨거운 순간을 체험한 적이 없었다.
나는 무안하여 얼른 밖으로 나왔다.
얼굴을 식히려 밤하늘을 바라보고 섰을 때 등 뒤에서, '언제 나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있었다.
그는 소련이었다.
그 후 소련이와 나 사이에는 남모르는 상종이 빈번하여졌다.
내가 돈 없는 탓에 남과 같이 버젓이 보고 싶은 대로 요리점에서 불러 보지 못하고 삼청동 막바지에 있는 주인집에서 밤 두시, 세시까지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소련은 자유스러운 몸이 아니었다. 양모가 돌아간 후 셋집 살림살이에 빚만 늘어가고 하여 서린동 집을 내어놓고 새로 빚을 쓰고 포주의 집으로 들어간 때이다. 그러므로 가기 싫은 놀음에도 가야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도 돈을 받아 오지 못하는 곳에는 갈 수 없는 매인 몸이 되었다.
그러나 요릿집에서 두시, 세시에 파해가지고도 소격동을 넘어 인력거도 들어오지 못하는 그 어둡고 좁은 삼청동 막바지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실망을 준 날은 없었다. 그는 늦어도 네시까지는 포주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요, 만일 밖에서 밤을 지내고 들어가면 그만한 보수를 들고 들어가야만 남의 피로 돈을 모으며 살아가는 포주의 매를 면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련의 신세이므로 그가 나에게서 밤을 샌 적은 없었으나 시간비는 적은 데다 매일 네시에 들어오는 소련의 눈치를 모르고 지나갈 포주가 아니었다.
하루는 해도 지기 전인데 나의 방문 앞에 여화女鞋 한켤레가 놓여 있었다. 늘 어두운 밤중에나 왔다 가는 소련이니 그의 신발을 내가 알아볼 수도 없는 것이요, 또 아직 어둡기도 전이라 인력거나 기다리고 있을 그가 나에게 올 리도 없으므로 나는 몇 번 주저하다가 기침 소리와 함께 문을 열어보았다. 그 신발 임자는 과연 햇빛에서 처음 만나보는 소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리를 펴고 누웠었고 내가 들어가 앉자마자 그의 울어서 부성부성한 두 눈에선 새로운 눈물이 걷잡을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눈두덩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채를 끄들리어 머릿속이 온통 부어오르고 전신이 불덩어리같이 달아 입에서 단김이 확확 끼쳐 나왔다.
그도 하는 말이 없었고 나도 묻지 않았다.
방 안이 어두워올 때까지 우리는 말없이 울었을 뿐이다.
나는 소련이가 명월관에서 하던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목이 말라 애쓰는 것을 보면서도 과일 한 개 내 손으로 권하지 못한 것이 오늘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소련은 자기 옆에 내가 있어 간호해 주는 것과 내일은 내일이라 하더라도 그날 저녁 하루만은 시간에 몰림 없이 마음 놓고 나와 같이 지내는 것을 무한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 내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밤이 깊어지면 깊어갈수록 닥쳐오는 내일은 이 무력한 두 사랑의 포로를 시시각각으로 위협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소련이 자신만 하더라도 아직도 사오 개월은 포주에게 있어야 할 빚진 몸이요, 나의 졸업이라야 그 이듬해 봄에 할 수 있으나 실업 방면과도 달라 취직이 날래 되려니 믿을 수나 있으랴. 그러나 이것을 믿지 않고는 하루라도 더 살아갈 수 없는 우리였다. 
그렇다. 소련이는 나를 믿었다. 나의 사랑을 믿고 나의 힘을 믿었다. 나도 나를 믿었다. 남이 나를 믿고 바라듯이 나도 나를 믿고 바랐었다.
오늘 와서 생각하면 나의 사랑으로는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에게 줄 수 없는 것을 호기 있게 약속하였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련은 그동안 인천 같은 곳으로 가서 새로 포주를 정하고 빚을 얻어 지금 포주의 남은 빚을 갚고 내가 취직하여 셋방살이라도 할 수 있는 날까지는 인천에서 지내기로 언약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옛사람의 말과 같이 하룻밤에 만리성을 쌓아보았다.

나는 밝을 녘에 잠시라도 눈을 붙여보았으나 소련은 그저 원수의 궐련으로 밤을 새웠다.
조반이라고 밥 한 상을 둘이서도 남기고 밥에 취하고 잠에 취하여 다시 누워 있을 때였다. 누군지 여자의 목소리로 나를 찾는 이가 있었다. 소련이가 목소리를 듣고 같이 있는 기생이 찾아온 것 같다고 하였다.
밖에 나가본즉 과연 기생 같은 여자 하나가 사오 세 된 계집애를 데리고 서 있었다. 
나는 물을 것도 없이 내 방으로 인도하였다.
"아이 언니, 어떻게 왔수. 저년이 다 오구. 아즈멈 죽었을까 봐 왔니?"
"몹시 다친 데나 없어? 그런 죽일 놈의 할미."
손님은 다시 나에게,
"동생이 이렇게 와 폐를 끼쳐서…… ."
기생다운 익숙한 말솜씨로 방 안을 한번 휘돌아보더니 소련의 손을 잡으며 마주 앉았다.
그들은 한참 동안이나 다른 말이 없이 네 설움 내 설움 다 같은 듯이 자기네가 빨아내는 담배 연기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참, 인사하셔요. 같이 있는 우리 언니예요."
소련은 그제야 명옥이라는 그 기생을 나에게 소개하여 주고 내가 명옥이와 이야기하는 동안 자기는 명옥의 딸이라는 계집애와 무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계집애는 별로 말이 없고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앉았던 것이 오늘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명옥이도 소련이와 같이 남도 기생으로 소련이와 알기는 같이 있기 전부터도 노름에서 가끔 만나 형아 아우야 하고 지내던 터라 하며 포주치고 안 그런 사람이 어데 있겠느냐고 나이 많은 만큼 세상 풍파에 속이 터질 대로 터진 계집이었다.
"돌부리 차면 내 발만 아팠지. 어서 이따 인력거라도 타고 내려와…… 누웠더래도 집에 와 누워야지."
명옥이는 온 지 한 시간도 못 되어 일어섰다. 그러나 따라온 계집애는 소련의 손을 잡고 어리광만 부리고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서 너의 엄마 따라가. 아주머닌 이따 갈게…… 이년은 저의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해."
내가 밖으로 나와 손님을 보내고 들어가니 소련은 자리에 누운 채 빙긋이 웃으며 나의 손을 이끌어 자기 이마 위에 갖다 대었따.
"열은 이제 없지요. 퍽 곤하실 텐데 여기 누워 한잠 주무세요. 내 자장자장 해줄게."
나는 그와 가지런히 누웠다.
"선생님?"
"응."
"이제 명옥이 언니도 퍽 팔자가 사나워…… 남자들은 모두 남의 사정을 생각할 줄 몰라."
"왜 나두?"
"당신두 아마 그럴걸."
"무언데?"
"명옥이 언니도 우리처럼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있었는데가 아니라 명옥이 언니는 지금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데리고 왔떤 계집애 말이야…… 자우? 남 말하는데."
"아니야. 어서, 그래서?"
"첫 번엔 남자 측에서 명옥이 언니에게 아이가 달린 줄은 몰랐거든……"
"첫 번엔 속이었나, 그럼?"
"속인 것도 아니지. 애비 모를 자식이니 어떡하우. 길러야지. 그렇다고 죽자 살자 하던 사람이 계집애 하나 때문에 틀어진다는 것은 너무도 남의 사정을 몰라주는 것이 아니우?"
"그렇지."
"너무 그 남자가 속이 좁은가 봐……."
"그렇지만 그 남자만 나무랠 수도 없지. 나도 사실 말이지 기생 생활 한 사람에게서 처녀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자식이 있어보우. 저게 남의 자식이거니 하는 생각이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날 것 아니오? 그것도 일이 잘되느라고 남편 되는 사람이 고아원 같은 자선사업에 나선 사람 같으면 그 애에게 대한 감정이 보통 이부異父와는 다르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 아니고 자기 자식도 낳을 테니 하후하박 할 수 없고 어찌 문제가 안되우."
"……그렇기도 하지."
"그렇기도라니 꼭 그렇지."
"요새 세상에 더구나 젊은 사람으로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을 만한 군자가 어데 있소…… ."
"서울두 고아원이 있나."
"있지 아마…… ."
여기까지 와서 나는 남의 일인 만큼 대수롭지 않게 알아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소련이는 그날 저녁때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포주의 집으로 이끌고 내려갔다.
그 고르지도 못한 언덕길을 타박타박 내려가는 소련의 뒷모양을 바라볼 때 나의 눈엔 설명하기 어려운 눈물이 핑 싸고돌았다.
그러나 그는 벌써 나의 아내로 거리에 잠깐 볼일이 있어 곧 다녀오마 하고 나가는 것 같았다. 한참 가다 한 번씩 돌아서는 그와 멀리서 나는 바라보며 진심으로부터 행복스러운 웃음을 그에게 보내주었다.
서러운 매를 맞고 화풀이 삼아 하소연 삼아 이렇게 처음으로 나와 같이 하룻밤을 지내고 간 소련이. 그는 과연 나에게서 얼마만 한 위안을 얻고 갔던가. 선생님, 만일 내 가슴속에 당신의 그림자가 없었던들 나는 벌써 이 땅 위에서 떠난 지가 오랠 것입니다. 그는 한 손으로 눈물을 씻으며 한 손으론 옆에 누운 나의 굵은 손목을 부르르 떨면서 붙들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였다. 아니 위로에 그치지 않고 나는 그가 나의 앞에서 눈물 흘리는 약자라 하여 그가 나를 믿듯이 내가 나를 믿었고 그에게 주지도 못할 것을 모두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일 다시 오마 하고 간 소련은 삼사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다가 그에게서 편지 한 장이 들어왔다.
용서하십시오. 총총히 떠나는 길이라 뵙지도 못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인천이니까……모시고 싶겠지만 제가 자리를 잡고 주소를 통기해 드릴 때까지는 기대리셔야 합니다.

이러한 사연이었다.
그러나 소련에게선 다시 소식이 끊어졌다. 날고 기는 장정들이라도 제가끔 살길을 찾기에는 눈이 붉어 날뛰는 인천 같은 항구 바닥에서 아무리 격란은 있다 하여도 연연한 계집의 몸이라 새빨간 주먹으로 헤매는 정상이 보지 않아도 본 듯하였다.
아침부터 진종일 방 안에서 어정거리다 그의 소식을 받지 못하고 해가 저물고 할 때 나의 궁금한 생각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렇게 지루한 날이 그대로 십여 일이 지나가니 나에겐 추후 시험 치르러 갈 날이 닥쳐오고 말았다. 아침차로 떠나려던 것은 저녁차로 미루고 저녁차로 떠나려던 것은 다시 아침차로 미루다가 기어이 그의 소식을 받지 못한 채 주인집에 나의 동경 주소를 적어두고는 하릴없이 떠나가고 말았다.
동경에 가서도 두어 주일이나 지나가도록 그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다가 하루는 서울 있는 K군에게서 뜻하지 않은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이 편지였다. 몸서리가 끼치는 소련의 그 불길한 소식과 첫사랑에 열중하여 잊어버렸던 나의 모든 관념 의식을 다시 활동시킨 경고는.
몸서리 끼친 소련이의 불길한 소식이란 이러하다.
소련이가 나와 같이 삼청동에 있던 날 명옥이가 데리고 왔던 계집아이는 명옥이 딸이 아니라 소련의 딸이었고 따라서 그들이 돌아간 뒤에 소련이가 나에게 한 이야기는 명옥의 것이 아니라 소련이 자신의 신세타령이었다. 만일 그때 자기의 딸인 것을 솔직하게 말하여 주었던들 나는 그처럼 곧이곧대로 무뚝뚝한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요, 소련이도 그처럼 낙망하여 문제를 크게 잡아 비밀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딸아이를 독살하려던 혐의로 잡히었다는 간단한 신문 기사 외에 더 자세한 소식을 얻을 수 없다는 K군의 편지만으로는 사건의 진상은 알 수 없으나, 소련이가 달포가 지나도록 나에게 소식 없는 것만으로도 일이 저질러진 것만은 사실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또 K군의 이 편지가 잊어버렸던 나의 모든 관념 의식을 다시 깨쳐주었다는 것은 이러하다. 
나는 무서웠다. '살인!' 하고 생각할 때 소름이 끼치었다. 만일 소련의 입으로부터 나와의 관계가 토설되는 날이면 나에게 미칠 혐의가 무서웠고 나는 처음으로 소련이를 미워할 수 있었다. 나에게 첫 번부터 솔직하게 통사정해 주지 않은 것이 미웠고 이후에도 내가 뜻하지 않은 새 사건이 얼마나 일어날까 하는 불안으로 많은 남자와 관계있는 그의 과거 생활이 미웠고 나중엔 통틀어 그가 기생인 것이 미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 전해 가을같이 소련이에게 대한 인상만으로 그를 그리워했을 것 같으면 그가 살인을 범하는 독부라 하더라도 나는 서슴지 않고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엔 벌써 바닥이 드러나도록 소련의 고운 것이라고는 다 향락해본 때였다. 
이와 같이 나의 정열이란 벌써 꺼지려는 촛불과 같이 흔들리고 있는 틈을 타서 뿌리 깊이 자라고 있던 얼음같은 이지理智는 나의 전 의식력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소련이에게 대한 다소의 의분과 내 욕심으로만 독단하려는 이지와의 서로 갈등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흘러가는 세월은 나의 그 마음을 한자리에 두고 가지 않았다.
더구나 나의 가슴속에서 벌써 다른 여성의 그림지가 어른거리기 시작한 때에는 벌서 옜날에 지나간 한 로맨스로 친구들이 자기네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나도 지나가 버린 옛날의 한 추억으로 소련의 이야기를 그리 흥분도 하지 않고 이야기하였다.
어떤 때는 소련이의 웃는 얼굴과 어떤 때는 소련이의 우는 얼굴을 우연히 만나보는 적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나의 실생활에 아무런 변동도 일으키지 못하는 깨면 그만인 꿈이었다. 
이렇게 일 년이 지나가고 이 년이 지나가는 동안 소련의 그림자는 꿈에 다니는 길이라도 천리만리로 멀어지고 말았다. 
내가 삼청동에서 내일 다시 오겠다던 소련이와 흩어진 지도 어언 삼 년이 지나갔다.
내일은 추석이다. 오늘도 달이 밝다.
나는 지금 추석 쇠러 친정집으로 가는 아내를 청량리역까지 전송 나왔다가 가는 길이다. 밤중에 가는 차라 타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나는 아내의 바스켓을 들고 차가 아주 멈추기도 전에 뛰어올랐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빈자리 하나를 발견하고 짐부터 갖다 놓았다. 
그제야 찻간에 들어서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나도 그 자리에 같이 앉아 잠이 들면 지나쳐 가기 쉽다는 것이며 급행이라고 급히 내리다가는 실수하기 쉽다는 것을 어린아이에게와 같이 설명하였다. 
아내는 말없이 빙긋이 웃었다.
가까운 경성역에서 떠나오는 차이나 하루 종일 먼 길을 오다가 다시 계속하여 탄 사람들인지 벌서 곤히 잠든 사람도 많이 있었다.
우리 앞에도 젊은 부인 하나가 동생인지 딸인지 계집애 하나와 같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창 밑으로 붙여 세운 때 묻은 가방 위에 고개를 거북스럽게 틀어 베고 그편 팔은 힘없이 무릎 위에 늘어뜨리고 한편 팔로는 자기 옆구리에 기대고 자는 계집애의 어깨를 맥없이 끌어안았다. 그리고 곤히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저렇게 하고 거북해서 잠이 올까?"

하고 아내가 걱정스럽게 하는 ㅁ라에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자는 그 부인의 얼굴을 나는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손수건에 덮이어 겨우 코 아래로 입과 턱밖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나는 그의 가는 입술이 어찌 낯익은지 몰랐다. 그 입술이 매우 낯익다 생각되는 순간에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선뜩하고 나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 있었다. 
그 갸름한 턱 밑에서 깨알만 한 기미 하나를 찾아볼 수 있을 때 나는 그가 소련인 것을 더 의심하지 않았다.
이때 소련의 어깨 밑에 고개를 틀어박고 자던 계집아이가 눈을 떴다. 명옥이가 삼청동으로 데리고 왔던 소련의 딸이다. 몰라보게 컸으나 소련을 닮은 모습은 완연하다. 어머니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함인지 고개를 틀어박은 채 말둥말둥하는 눈알은 '내가 여태 살아 있다.' 하고 나를 원망하는 것같이 무서웠다.
소련은 고운 때 묻은 흰 옥양목 저고리 옥색 치마, 그래도 딸아이는 물든 비단 것으로 거둬 입힌 것이 얌전스러웠다.
아내가 심상치 않은 내 눈치를 보고,
"아는 사람이에요?"

하고 물었으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얼굴까지 소련을 타고 나온 계집애. 소련은 이제 늙어가더라도 젊은 소련이의 그 기구한 운명은 다시 그의 딸의 손목을 이끌고 나가는 것 같았다.
오늘 여기 앉아 남의 일같이 바라보고 측은해하는 나 자신이 저들이 오늘 이 모양에 이르게 한 간섭자였던 것을 깨달을 때 나는 소련이가 마저 잠을 깰까 봐 무서웠다.
마침 호각 소리가 들려오기에 나는 허둥허둥 차를 내리고 만 것이다.
아아 소련이! 소련이가 저기 간다.
어디로 갈까? 지금도 나를 찾아다니는 것이나 아닐까?
때가 여름과도 달라 원산으로 해수욕 갈 리도 없는 것이요, 삼방이나 석왕사로 약물을 가는 길도 아닐 것이다. 벌써 찬 바람이 옷깃을 치는 이때 경원선 밤차에서 졸고 있는 것이 결코 유쾌한 여행이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푸파- 소리와 함께 달빛 희미한 언덕 너머로 사라져가는 차를 바라볼 때 가엾은 소련이가 죽어서 나가는 상여를 바라보듯 나는 울음이 복받쳐 나왔다.
이 세상엔 소련이와 같은 계집이 얼마나 많으며 또 나와 같은 사나이는 얼마나 많을까? 나는 오늘에 있어서도 나보다 약한 사람, 나보다 어리석은 사람, 그들에게 그들의 행복을 약속하며 그들의 장래를 보증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나에게 그만한 힘이 있는 것인가?
아아, 소련은 얼마나 나를 원망할 것인가?
값싼 동정심이 많은 나의 아내라 앞에 앉은 소련이가 잠을 깨어 이런 저런 말 서로 하여가다가 소련이의 신세도 물어서 알게 될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가 그 후 어찌 되어 무사했는지, 어디서 어떻게 지내왔으며 지금은 어디로 가는 것과 그래도 나를 잊지 않고 있는지, 이제라도 나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지 모든 것을 자세히 들을 수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하랴. 내가 듣고 싶은 소식이면 아내가 그대로 전해줄 리가 없는 것이다. 또 오늘 소련이에게서 내가 들어 반가울 소식을 어찌 바라며 오늘 나에게 그를 위로할 만한 무슨 말이 있으랴.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가 나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들 내가 무엇으로 그의 걸음을 막을 수 있으랴.
모두가 한낱 그림자로다.
차는 지금 어디를 쉬었다 다시 떠나가는지 멀리 들판을 건너 뚜- 하고 한마디 울려왔다.
바람은 그저 자지 않고 길 위에 낙엽을 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