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집/슬픈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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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汽車[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왼하로를 익살스런 마드로스 파이프로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汽車[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 汽車[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덕어리며 지나 간 단 다.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車窓[차창]에 기댄 대로 희파람이나 날리쟈.

먼데 산이 軍馬[군마]처럼 뛰여오고 가까운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 펼친듯, 瀨戶內海[뢰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까락을 담그면 葡萄[포도]빛이 들으렸다.

입술에 적시면 炭酸水[탄산수]처럼 끓으렸다.
복스런 돛폭에 바람을 안고 웃배가 팽이 처럼 밀려가 다 간,
나비가 되여 날러간다.

나는 車窓[차창]에 기댄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쟈.
靑[청]만틀 깃자락에 마담.R의 고달픈 뺨이 붉으레 피였다. 고은 石炭[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 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 들어라.
가여운 내 아들아.
잠 들어라.

나는 아들이 아닌것을, 옷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서 아닌것을.
나는 유리쪽에 가깝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쟈.
나는 늬긋 늬긋한 가슴을 蜜柑[밀감]쪽으로나 씻어나리쟈.

대수풀 울타리마다 妖艶[요염]한 官能[관능]과 같은 紅椿[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 솜병아리 털이 폭신 폭신 하고,
집웅마다 연기도 아니뵈는 해ㅅ볕이 타고 있다.
오오, 개인 날세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靑[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 입술을 오늘이야 싫것 절하며 갑노라.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 나는 차보다 더 날러 가랴지는 아니하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