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1권/5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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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문답[편집]

1[편집]

저녁을 먹고 나서 오 윤창은 담배를 피워 물며

「그래 온다는 전보 한 장 없이 그렇게 혼자서 들어 선다는 말이냐?」

전에는 꼭꼭 전보를 치고 오던 유경이었다.

전보를 침 무엇 「 해요? 아버지 언제 한번 마중 나와 보셨수? 기껏 해야 준혁 오빠를 내 보내는게 일수구……」

「왜 너 준혁이가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느냐?」

「그럼 아버지 같음 자기 마중 나온 사람 싫어 하세요?…… 아이, 아버지 두 참 몰인정 하신 분이야요.」

유경은 아버지의 물음을 애써 하나의 농담으로 넘겨 버리는 것이다.

「하아, 얘가 아버지의 말을 자꾸만 넘겨 잡으려고 드는데……그러나 네 말재간에 그리 선뜻 넘어갈 아버지가 아닐껄.」

「그건 또 무슨 말씀이야요?」

「이건 봐.」

하고, 그때 아버지는 약간 엄숙한 얼굴을 지으면서

「실은 이처럼 너를 불러 온 것은 다른게 아니다. 물론 너의 어머니가 너 보구 싶어 한것두 사실이지만……」

「……」

유경은 눈이 둥그래 져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탁 터 놓구 이야길 해 보자. 너 준혁이 한테 무슨 편지를 했는냐?」

「무슨 편지라구……」

유경은 일부러 대답을 흐리게 했다.

「뭐 숨길 건 없구. 이런 문제로 말하면 일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니까,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와.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의견이 있을께고 또 부모는 부모로서의 생각이 없지 않을 것이니까.」

「숨기긴 제가 무엇을……」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 봐라. ── 저번 날 준혁이가 찾아 와서 하는 말이, 너와의 약혼 문제는 영 단념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것은 준혁이 자신의 의사가 아니고 전혀 유경이 네 의사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떻냐?」

「……」

유경은 대답이 없다.

「아버지는 결코 네 의견을 무자비하게 꺾어 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런 완고한 아버지가 아닌 줄을 너도 잘 알고 있을 줄로 믿지만…… 그러나 아버지는 너 보다는 좀더 인생을 많이 살아 본 사람이야. 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할 귀여운 딸이 혹시 인생의 구렁지 속으로 빠져 들지나 않을까고,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물어 보는 것이니까…… 알겠느냐?」

「알겠어요.」

「알겠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버지.」

하고, 그때 유경은 아버지의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냐, 어서 말해 보렴.」

「아버지가 그처럼 솔직하게 나오심 저도 솔직하게 여쭙겠어요.」

「옳지, 옳지! 과연 오 윤창의 딸이다!」

오 윤창은 흡족해 한다.

「아버지가 절 불러 내온 동기가 다른데 있는 것처럼 저도 이번 귀국한 데는 딴 이유가 있었어요.」

「딴 이유가 있다?」

「제가 귀국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우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전보가 왔었으니까요.」

「음, 아주 똑똑한 말이야. 아주 분명한 말이야!」

하고, 오 윤창은 유경의 태도를 가상타 하였다.

그러나 유경이의 논조가 너무 지나치게 분명한 것이 오 윤창의 마음을 무척 불안하게 하였다.

2[편집]

「그래 네가 귀국한 딴 이유는 무엇이냐?」

「그건 아버지가 절 불러 내온 또 하나의 다른 동기와 꼭 같은 것이야요.」

「역시 준혁이의 문제냐?」

「네. ── 그리구 저 자신의 문제구요.」

「음, 그만 했으면 알법도 하지만… . 그럼 준혁이와의 약혼문제를 해소시킨 것은 전혀 네 의사냐?」

「네.」

「음, ── 그런데 어째 그리 갑자기 준혁이가 싫어졌느냐?」

「아냐요. 준혁 오빠가 싫어진 건 아냐요.」

「그럼 준혁이 보다 좀 더 좋아 보이는 사람이 생겼느냐?」

「……」

「조금도 부끄러워 말고 이야기를 해 봐라. 이런 문제는 비단 너 혼자만이 당하는 일이 아니니까.」

예상 의외로 순순히 나오는 아버지의 태도에 유경은 적지 않게 놀라면서, 옳지, 이것이 유도신문(誘導訊問)이라는 게로구나 하였다.

「다른 사람이 하나 네 앞에 나타난 것이 분명한데……음, 그래 그이는 학생이냐?」

「네.」

「무슨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고?」

「조도전 대학 법과 졸업반이야요.」

유경은 똑똑 떨어지는 말로 분명히 대답하였다.

「나이는?」

「스물 넷」

그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어머니가 홀랑 나서며

「나이는 꼭 알맞는구먼.」

하는 말에 오 창윤은 눈을 흘기며

「당신은 좀 잠자쿠 있어요!」

하고 소리를 쳤다.

유경은 그때야 비로소 아버지의 심정을 똑똑히 알아 채렸다. 내심으로는 무척 괫심해 하면서도 사실을 자백시키기 위하여 아버지는 일부러 자기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있는 것을 유경은 분명히 깨달았다.

「이름은?」

아버지의 물음은 점점 피고인(被告人)에 대하는 재판관의 그것과 같아져 간다.

「백 영민이야요.」

「무슨 자 무슨 잔고?」

「영화영 자, 백성민 자 ──」

「태생은?」

「평양서 조금 떨어진 시굴이래요.」

「부모는?」

「다 살아 계시대요. ── 그리구 외 아들이래요.」

「독자는 외로우니라」

어머니가 또 불쑥 말을 받는다.」

「또, 또, 잠자쿠 못 있구?」

오 창윤은 다시 유경을 향하며

「재산은 얼마나 된다드냐?」

「그런 건 몰라요.」

「모른다?……그래 짐작두 못 해?」

「그런 건 알아 보려고두 하지 않았으니까요.」

「음 ──」

하고, 오 창윤은 입맛이 쓰다는 듯이 신음을 하며

「사람은……사람은 어떤지를 잘 알고 있겠지?」

「네, 사람 만은 잘 알고 있어요.」

「어떤 인품이냐?」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어요.」

「준혁이 보다 어떠냐?」

「그것두 한 마디로 말 할 수 없어요.」

「경박한 사나이는 아니냐?」

「아니요.」

「우둔한 사나이는 아니냐?」

「아니요.」

오 창윤은 마음이 점점 초조해 진다.

「그이와 결혼할 생각이냐?」

「…………」

「대답을 하여라.」

「…………」

「대답을 해야지 않겠니?」

「대답을 해야죠. 그 일 때문에 귀국했으니까요.」

똑바로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유경은 대답하였다.

3[편집]

자식의 연애 문제나 혹은 결혼 문제에 있어서 지금까지 오 창윤은 다른 완고한 부모네 들과는 달라서 가장 이해성이 많은 너그러운 어버이가 되려고 노력해 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준혁이와의 약혼 문제를 독단적으로 해소하였을 뿐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주어 먹던 놈팽인지도 알 수 없는 사나이와 역시 독단적으로 결혼을 하려고 드는 당돌한 딸의 태도를 눈 앞에 보는 순간, 오 창윤은 불유쾌한 생각과 괫심한 생각을 좀처럼 금할 수가 없었다.

「그 일 때문에 귀국을 했다?……」

「녜에.」

음 이야기는 아주 「 , 분명해서 좋아. 그래 그 학생과 꼭 결혼을 해야만 되겠느냐?」

「물론 결혼할 생각으로 있어요. 그러나 자식된 몸으로서 일단 부모의 승락을 얻어 놓는 것이 도리 일것 같구요. 또 그 편이 제 마음도 편할것 같아서요.」

「음, 아주 총명한 대답이야.」

오 창윤은 마음이 약간 눅으러지며

「그래야지! 아무리 결혼은 자유라 하지만 부모들이 찬성하는 자유결혼을 하면 더욱 좋지 않느냐.」

「네, 저두 그렇게 생각하구 있어요.」

이야기가 착착 맞아 들어간다.

「그러니까 아직 결정적 문제는 아닌게 아닌가?」

「무엇이 말씀이세요.」

「준혁이와의 약혼 문제는 해소하고 그 학생과 결혼을 한다는 문제 말이다.」

「아냐요. 그건 저로선 이미 결정해 놓은 문제야요.」

「그렇다면 네 말이 뒤죽박죽이 아니냐? ……… 부모의 승락은 아직 없으니까 그 문제는 아직 결정적인 것이 아닐께 아니냐?」

「그런 뜻이 아니야요, 아버지.」

「그럼 무어냐?」

「부모의 승락이 있어서 비로소 결혼하는 것이 아니구, 결혼은 하지만 부모의 승락도 얻어두는 것이 부모에게 대한 도리일 것 같다는 말이야요.」

야아, 요것 봐라! 수그러 졌던 오 창윤의 마음이 다시금 긴장을 한다.

「그러니까 결국 사후 승인(事後承認)을 해라 ── 그 말이냐?」

「…………」

「소경처럼 문서(文書)는 볼 필요가 없구 도장만 쳐라 ── 그 말이냐?」

「…………」

결국은 그 말이지만 그렇다고 분명히 대답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

「어서 말을 해 봐라」

「아버지, 저 사람 잘못 보지 않아요.」

겨울 방학에 입원을 했을 때, 이와 똑같은 말을 유경은 준혁이에게 하였다. 그리고 이번 동경을 떠나는 날 밤, 외원「벤취」위에서 똑같은 말을 직접 영민에게 따져 보고 온 유경이었다. 유경은 자신을 가지고 대답을 하였다.

아버지는 절 철부지로 「 아실지 모르지만, 저 사람보는 눈은 과히 무디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버지두 제 말을 믿으시구 제 희망을 들어 주세요.」

그때, 아버지는 극히 엄숙한 말로

「준혁이와 같이 훌륭한 인물을 배반한 것 까지도 용서를 하마. 그리고 그 학생과 결혼을 하겠다는 것까지도 용서를 하마. 그러나 나는 소경이 아니니까 문서는 보기 전에는 도장을 찍을 수가 없다!」

힘찬 어조로 단호히 결론을 지어버리는 오 창윤이었다.

4[편집]

「네가 그처럼 잘못 보지 않었다는 그 학생이 관연 어떠한 위인인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보기 전에는 도장을 칠 수가 없어. 더구나 준혁이 보다도 조금이라도 손색이 있는 인물이라면 나는 절대로 승락을 못해. 아무리 네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었다고 하여도 너는 아직 나이 어려. 二十[이십]년 밖에 안되는 네 짧은 인생이야. 네 눈에는 잘 익은 능금 같이 보이지만 내가 보면 설 익은 개살굴는지두 몰라.」

설 익은 개살구라는 말이 영민의 인격을 모욕하는 것 같아서 유경이의 귀에 무척 거슬리었다.

「설 익은 개살구래도 제가 좋아 택한 것이 아니야요? 그러니까 책임을 제가 짐 되찮어요.」

「무엇이 어째……」

아버지는 그만 벌컥 화를 냈다.

「어디 한번 더 말을 해 보아라.」

「개살구가 설어서 배 탈이 남 제가 앓겠다는 말이야요. 누구 보구 대신 앓아 달라진 않을 테니까요.」

감정이 점점 대립화 한다.

「오냐, 잘 알았다. 그래 고것 뿐이냐?……그것이 네 결혼관의 전부냐?」

「그것 밖에 더 뭐가 있어요? 제 책임을 제가 질 수 있는 행동임 되찮어요.」

「좋와 아주 좋은 말이야. 아니, 말만은 아주 좋와. 그리고 그 각오한 바두 좋와. 그러나 네가 아무리 책임을 지려구 애를 써도 질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무슨 뜻이에요?」

소위 연애는 좋다 싫다 「 하는 감정으로 성립이 될는지 모르나 결혼은 절대로 감정만으로써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성의 계산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 지론이지만 결혼은 인생의 기업(企業)이다. 앞뒤를 잘 재보고 착수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를 하는 법이니까.」

「저두 앞뒤를 잘 재 보았어요.」

「거짓 말!」

아버지는 음성을 높여

「네 인생은 아직 어려. 너는 아까 무어라고 그랬지?……옳지, 그 학생의 재산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보려구 하지도 않었다고 그랬었지?」

「네. 결혼에 있어서 문벌이라든가 재산이라든가는 결혼의 본질적 조건이 아니니까요. 그런 것들은 결혼을 장식하는 하나의 장식물은 될는지 몰라도 결코 결혼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니, 돈이 있나 없나, 알아보는 것부터 벌서 결혼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야비한 생각이야요.」

「그것이 다 아직 설 익은 소리야. 네가 아무리 네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해도 네 남편 되는 사람에게 경제적 능력이 없이는 절대로 질 수가 없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남편과 손을 잡고 군밤 장사라도 지금 생각으로는 쾌히 할것 같지?」

「해요. 할 수 없음 하죠. 뭐가 그리 무서운가요?」

유경은 분명히 대답하였다.

「그러면 장차 자식들은 어떡허는고? 너는 좋아서 군밤 장사라도 하지만 자식은 그러한 생활력이 없는 부모를 가진 것을 절대로 좋아 하지 않을 것이다. 저만 좋다고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너는 자식의 일생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네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래야 질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백만금을 떠 가지고 오라는 건 아니야. 그러나 적어도 자식을 남처럼 훌륭히 양육하고 교육을 시킬만한 생활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을 잘 고려해 보았느냐?」

「…………」

유경은 대답을 못했다.

「그럼 오늘은 너무 먼 길에 피곤할테니 편히 쉬어라. 쉬면서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아 준혁이와 잘 비교해 볼 필요가 있어 ──」

그러면서 아버지는 일서서서 두루마기를 입는다.

「나는 좀 볼일이 있어서 나가 보겠다.」

하고, 오 창윤이가 방을 나가는 등 뒤에서

「아주 분주하시구려!」

부인은 입을 삐쭉거리며 남편의 뒷통수를 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