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의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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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5월 7일, 당시 도이칠란트의 대악성 베토벤의 대작 〈장엄미사〉 와 〈 9 교향곡〉의 제 1회 공연이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거행되던 때의 일입니다. 청중은 극도의 감흥에 거의 광란되다시피 하여 환호와 갈채 는 그칠 줄을 몰라서 필경은 5회의 拍手禮[박수례](앙코르)를 받기까지에 이르렀읍니다. 그러나 당시 도이칠란트의 국법은 황족에 한하여 3회의 박수 례를 행함이 통례였던 까닭에, 당야에 임석했던 경관은 황실의 존엄을 더럽 힌다는 생각으로 박수를 금지했읍니다. 그러나 청중의 대부분은 너무도 감 격한 끝에 눈물을 흘렸으며, 작곡자 자신조차 너무 흥분되어 연주가 끝나자 곧 失神[실신]하여, 친우의 집에 담겨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로 이튿 날 아침까지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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