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 내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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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각하, 추기경 전하, 친애하는 한국인 여러분,

1.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우리는 공자의 논어 첫머리에서 듣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벗이 있어 먼 데로 찾아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이 아닌가” 하고 싶습니다.

대통령 각하의 후하신 말씀과 한국의 친애하는 벗들인 여러분이 베풀어 주신 따뜻한 환영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실은 한 5년 전에 로마에서 베드로의 후계자 직무를 맡게 된 이래 언젠가는 한국의 아름다운 강산과 정다운 겨레를 찾아 볼 은혜와 기쁨이 본인에게 베풀어지기를 늘 기원해 왔습니다. 또 여러분과는 언제나 마음으로 각별히 가깝게 느껴 온 터입니다. 이제는 여기 왔습니다. 여러분의 벗으로, 그리고 평화의 사도로, 여러분 나라 전체에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의 사도로 온 것입니다.

2. 여러분의 나라는 유구한 역사에 걸쳐 시련과 풍파를 무릅쓰고 언제나 새로이 일어설 줄 아는, 생명과 젊음에 넘치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겨레는 위대한 문화들과 강대한 이웃들을 상대하면서도 본연의 주체성에 충실하여 예술과 종교와 삶에 있어 두루 훌륭한 열매를 맺을 줄 안 겨레입니다. 여러분의 조상은 유교와 불교 등 압도적인 정신 세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내 것으로 삼고, 높은 경지에 올라 살아 나가면서 남에게까지 전해 줄 줄 아는 조상이었습니다. 이는 원효와 서산, 퇴계와 율곡 같은 분들이 훌륭히 보여주는 바입니다.

오늘에 이르러 한국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놀랍게 꽃피는 것 역시 여러분 자신뿐 아니라 남들까지도 정신적으로 살찌울 것을 기약한다 하겠습니다. 여러분 나라에서 천주교가 맞는 200주년에 즈음하여 본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도 과연 한국 민족의 문화와 지혜와 품위에 그같은 넉넉한 보탬을 주리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여러분의 마음은 또 인정과 관용과 유머가 가득한 마음, 많이 고통받고 많이 사랑해 본 너그러운 마음, 결코 절망하지 않는 그런 마음입니다. 지난날의 고승(高僧), 거유(巨儒)들이 그토록 놀라운 열매를 맺은 것도 그저 된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분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하고 선량한 겨레, 나날의 사랑과 나눔의 삶으로써 끊임없이 진리를 찾은, 바로 여러분 자신인 그 겨레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이 잿더미로부터 모범국을 세우려는 그 용기와 근면과 의지는 누구나가 일컫는 바입니다. 일찌기 평화롭던 민족에게 밖으로부터 강요된 분단, 한국 전란의 깊은 상흔, 그리고 근년의 온갖 참변 등 그 어느 것도 어려움을 이기고 도로 화목한 한 가족이 되고자 하는 여러분의 뜻을 걲을 수는 없습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에 따른 말못할 희생이 무엇보다도 더욱더 인간다운 사회, 정의와 평화의 사회를 가져와, 모든 생명이 신성시되고 사는 것이 곧 남을 위해 일함이요 다스리는 것이 곧 섬김이며 그 누구도 한갓 도구로 쓰이지 않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아무도 억눌리지 않는, 모든 이가 진실한 형제애로 사는 그런 사회를 이루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이 남녀노소 누구나 다 하느님 자녀로서의 온전한 인간 존엄으로 해서 사랑받고 존중되는, 그러한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는 겨레로 갈수록 존경받아 나라에 큰 영예가 되리라 믿어 마지않습니다.

인간이 진실로 인간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초월하고 궁극의 실상과 삶의 뜻을 찾아야 함을 우리는 압니다. 여러분 역사에서 이차돈 같은 분이 증거한 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다르기는 하나, 나자렛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위해 죽은, 1만 여 순교자 가운데서도 빼어난 103위의 증거 역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곧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을 불교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경축의 뜻을 표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서 혼신의 봉사와 증거의 100주년을 맞는 개신교 여러분에게도 한 형제로서 인사를 드립니다.

4. 여러분 모두가 사랑하는, 한 세대가 넘도록 아직도 비극적으로 분단되어 있는 조국이 대결과 전쟁으로써가 아니라 대화와 상호 신뢰와 형제애로써 도로 한 가족으로 통일되어, 불신과 증오와 무력만을 점점 믿는 이 세상의 거짓됨을 드러내 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제와 오늘의 수난이 부활과 생명으로 이끄는 정화의 길을 이루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본인은 먼 데로부터 진정 벗으로 왔습니다. 존경과 아울러 미래를 향한 커다란 희망을 품고 왔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게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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