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미술의 기초/미술이란 무엇인가/표현과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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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과 성장[편집]

表現-成長

모든 것이 성장하여 나아갈 때 거기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다시피 당연히 그림을 그리는 힘의 발달에도 대체적인 순서와 단계가 있다. 그것이 그림의 발달단계이다. 이 발달단계 연구자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로웬페르드(미국)의 연구를 기저(基底)로 한 다음의 6단계설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연대(年代)의 진전에 따라 발달의 진보도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성의 있는 가정교육, 미술연구소나 아름다운 복제화(複製畵)의 보급,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하는 매스컴의 영향 등이 그 원인이라 생각된다.

1. 척서기(擲書期):0세∼2세 반(무의미한 선을 그린다)

2. 상징기(象徵期):2세 반∼3세(그리고 난 다음 뜻을 붙인다)

3. 전도식기(前圖式期):3세∼5세(비슷하게 그린다)

4. 도식기(圖式期):5세∼9세(소위 그림답게 그려진다)

5. 사실전기(寫實前期):9세∼14세(형상이나 빛깔이 실물에 가깝게 그려진다)

6. 사실기(査實期):14세∼20세(이른바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이상과 같이 나눌 수가 있다.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어떤 단계에 넣어야 좋을지 확실치 않은 것도 있으며, 또한 성격이나 능력의 차이, 환경의 차이 등에 따라서 발달이 반드시 일정하지는 않다. 개중에는 표현이 후퇴하는 그런 어린이조차 나오게 된다. 이러한 특례가 있으나 대체적인 발달의 자태는 역시 비슷한 단계를 밟아간다. 이처럼 어린이의 그림은 심신의 성장과 함께 자라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의 작품에는, 어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예술성은 없다고 생각하여야 된다.

척서기[편집]

擲書期

이 척서기는 유아가 신경이나 근육 에너지의 과잉(過剩)을 자발적으로 소비하려고 하는, 무의식 속에서 나온 팔의 반복 운동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으로서는 아무 뜻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과정이다. 이 척서기에도 대체적인 발달 순서가 있다. 우선 처음으로 크레용을 잡은 유아는 점을 찍는다. 종이를 두들기듯이 점을 찍는다. 다음에 볼 수 있는 현상은 손목을 좌우로 흔들어서 그리는 횡선착화(橫線錯畵)이다. 이윽고 종선착화(縱線錯畵)에로 발달하여 간다. 이것은 손의 컨트롤이 팔꿈치까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팔의 활동이 숙달됨에 따라 선도 뚜렷해지고 마침내 원형착화(圓形錯畵)로 발전하여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것이 파상(波狀)과 원형의 혼합으로 되어 더욱 더 복잡하게 되어 간다.

상징기[편집]

象徵期

2세 전후가 되면 그린 형상에 명명(命名)하는 어린이가 생겨난다. 그것이 상징기이다. 어른이 보기엔 단순히 선을 긁적거린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것을 어린이는 <기찻길> <버스> <멍멍> 따위로 이름을 붙이고 우쭐거리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 이는 유아가 운동만으로 느끼고 있던 흥미에 시각적(視覺的)인 것이 곁들여져, 그린 것을 의미화(意味化)하는 단계이다. 단순한 운동적인 것에서 상상적인 것으로 발전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는 척서기에 상상성(想像性)의 발달이 합쳐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른이 성급하게 이 시기 어린이의 표현에서 시각적인 의미를 강제로 끌어 내려고 하거나 형상을 그리도록 강요하거나 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른은 곁에서 어린이가 그리면서 지껄이는 그 말을 들어주고 그 표현을 격려하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시기의 그림은 성장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전도식기[편집]

前圖式期

이 시기의 표현은 설명 없이 대충 그것이로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러한 그림을 그릴수 있게 된다. 요컨대 어린이의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초목·기물 등을 조금씩 지식으로서 파악하여 그것 비슷하게 그려서 표시하게 된다. 표현은 물론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그 대상의 특징을 그려 표시하는 데서 진보가 보인다. 산·태양, 그리고 사람도 일정한 도식(圖式)으로 표시하고, 또는 부분을 그렸을 뿐인데 그 대상 전부를 표시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상징기와 동일하게 생각되는 경향이 있으나, 상징기는 그려진 것이 무엇인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데 반해서, 전도식기의 표현은 하여튼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는 방법으로서는 예를 들면 인간의 경우에 얼굴은 동그라미, 눈은 점, 발은 한 쌍의 선으로 표시한다. 제재(題材)는 인물이 압도적으로 자기 자신과 어머니·아버지·동생 등의 순으로 많이 그려진다. 요컨대 일상 생활에서 자기자신과 관련성이 깊은 것일수록 자주 취급된다고 할 수 있겠다.

도식기[편집]

圖式期

이 시기의 표현은 그림답게 되어 마침내 안정감을 갖추게 된다. 물론 실재(實在) 사물의 관계나 양(量)·형(形)을 베끼는 것은 아니고 기억에 의하여 도식으로 외워 그린다. 한편 형식에 대한 모방이 많아서 다른 데서 영향을 받기도 쉽다. 또한 이 시기의 표현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a. 뢴트겐 표현 ― 보이지 않았어야 될 부분이 명확히 표현된다. 선생님을 그릴 때 포켓의 지갑이나 지갑 속의 동전까지 그린다.

b. 전개표현(展開表現) ― 시점(視點)을 이동시켜 표현한다. 군무(群舞)의 경우, 두세 사람은 서 있으나 다른 사람은 위를 보고 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c. 기저선(基底線)의 표현 ― 하늘·땅의 경계선을 강하게 표시한다. 하늘과 땅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d. 병렬표현(竝列表現) ― 집·사람·나무·꽃 등을 일부분의 중복도 없이 나란히 그린다. 나열의 표현이다.

e. 마음의 표현 ― 예를 들면 복수하는 뜻을 표시하는 경우, 짓궂은 동무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 위를 힘껏 개칠하여 문대 버리는 따위이다. 그 밖에 반항의 마음, 원망의 마음, 질투심 등을 솔직하게 표시한다.

이같이 이 시기는 조형표현이 크게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사실전기[편집]

寫實前期

자유롭고 활발하게 그리면서 표시하여 온 과거의 연대와 비교하면 이 시기는 그리는 방법이 세밀하게 되어 한층 더 한 장의 그림 제작에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이 연대가 동료의식이 싹트는 시기로서 비판적·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게 되기 때문에 공간관계라든가 사물의 형상·빛깔 등을 점점 실물에 가깝게 그리려고 하는 데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데 실망을 느껴서 그림 그리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가 적지 않다. 반면으로, 어른들의 흉내가 아니라 어린이다운 연구에서 묘미 있는 아동화를 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기[편집]

寫實期

사실기에 이르기까지에는 대상을 보면서도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마음내키는 대로 그리고 있었으나, 14세쯤 되면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과 비슷하게 그리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그것은 이성(理性)의 발달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形)이나 색채는 대상에 충실하게 표현된다. 그런데 지나치면 개념적·형식적인 그림을 그려 버리고, 더욱이 창조적인 표현이 차단되어 그림을 그리는 데 흥미를 잃는 자가 더욱 많아진다. 이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인간으로서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는 데 반해서 그림을 그리는 힘이 그에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하였던 대로 느꼈던 대로의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만큼 이 시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유아화와 아동화[편집]

幼兒畵-兒童畵

연령상으로나 작품상으로 확실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대개 연령적으로는 생후 1년 내지 1년 반에서 12세에 이르기까지의 어린이가 그린 그림을 아동화라 부르고 있다. 또한 15세까지의 중학생의 그림도 포함시켜 아동화라고 할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생각하는 방식으로서는 6세까지의 그림을 유아화, 12세까지의 그림을 아동화로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작품으로 그것을 구분하기는 거의 곤란하다.

그런데 유아의 그림은 성장의 기록이라 생각하는 게 좋다. 이 사실은 전술한 바 발전단계, 더욱이 착화기가 그를 가장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동화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를 바 없다. 역시 생활의 기록이며 자기 주장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유아화나 아동화를 화가가 그린 예술작품과 같은 견지에서 본다는 것은 잘못이다.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는 일과 어른이 그림을 그리는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청년의 미술[편집]

靑年-美術

대학생·고교생은 물론 중학교 2∼3년생의 그림도 광의(廣義)로는 청년의 미술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회화에는 예술적인 가치가 없어서는 안 된다. 예술은 미의 독창(獨創)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남이 이미 한 것, 써서 헌 것이 되어 버린 것의 재현(再現)을 기피한다. 백합꽃을 그린 그림이 있다고 하자. 그것이 예술작품이기 위해서는 일상 우리들이 보고 있는 백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미가 있어야 된다. 과연 백합에는 이러한 아름다움도 있었구나 하는,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빠뜨리고 보지 못하였던 미를 알아차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의 발견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색채에서, 구성에서, 기법에 있어서, 그들 전체에 관계되어 있는 심정(心情)에 있어서 '싱싱하고 신선한 것'이 요구된다. '싱싱하고 신선한 것'은 그 작품의 표현이 지금까지 본 일이 없으며, 또한 보는 사람에게 쾌감을 줄 수 있는 그러한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본 일이 없다고는 하나 변태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새롭다'고 하는 것과 '변태'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