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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및 네덜란드의 동남아시아 진출〔槪說〕
[편집]청(淸)나라는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아, 대청제국(大淸帝國)은 동아시아의 거의 전지역을 세력하에 두었을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방면에도 많이 진출했다. 베트남에는 서산당(西山黨)의 난(亂) 때에 남정군(南征軍)을 보내고 그 후 바로 발족한 완(阮) 왕조를 베트남 국왕에 봉했으며, 시암의 차크리 왕조를 시암(Siam) 국왕에 봉했다. 또한 미얀마의 알라웅파야 왕조 성립 때 출병하여 미얀마(Burma) 국왕에 봉하여 각각 속국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나라들에 대한 청의 종주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후에 복잡한 국제문제를 야기시키는데, 18세기에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유럽 제국의 진출에 있어서는, 인도에서 영국에 패한 프랑스가 완 왕조의 통일을 원조하여, 후의 인도차이나 진출의 실마리를 겨우 열 정도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자바섬 정복은 착착 진행되어 18세기 말까지에는 자바 전체를 수중에 넣고, 동시에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성립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선교사 피뇨
[편집]宣敎師 Pigneau (1741
1799)
파리 해외 전도회(傳道會)의 프랑스인 선교사로서, 완 왕조 베트남의 성립을 원조했다. 전도를 위해 코친차이나에 와서 완복영과 친해져 그의 요구에 따라 의용군을 모집하여 무력(武力)을 원조했다. 그것으로 완복영은 30년간에 걸친 서산당의 내란을 평정하고 1802년 완 왕조를 창립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인의 원조는 동시에 훗날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의 실마리가 되었다.
완 왕조(구엔 왕조) 베트남
[편집]-Vietnam 阮王朝越南
완 왕조(1802
1945)는 안남(安南) 최후의 왕조로서, 베트남은 국호이다. 초대인 완복영(阮福映, 1762
1820)은 서산당(西山黨)에 멸망당한 완씨 일족으로서, 프랑스인 선교사 피뇨의 무력 원조로 서산당을 타도하고 안남을 통일하여 완 왕조를 창립, 청나라로부터 베트남 국왕에 책봉되었다. 최성기에는 안남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가졌었으나, 프랑스의 압박이 차차 가해져서 1883년 보호국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바오다이 황제의 퇴위로써 끝났다.
완 왕조 베트남의 통일
[편집]阮王朝-統一
여 왕조(黎王朝, 1428
1791) 베트남은 북방 하노이의 정씨(鄭氏)와 남쪽 위에의 완씨와 남북이 대립한 채 서산당의 난으로 18세기 후반에 멸망하였고, 완씨의 일족 완복영이 1802년 완 왕조를 창시하여 대신 베트남을 통일했다. 서산당의 난은 완문악(阮文岳) 등의 일당이 일으켜서 1773년부터 1802년까지 계속된 난인데, 이 사이에 정·완 양씨는 멸망하였고, 원조하러 온 청 왕조의 대군도 오히려 대패하고 여왕조도 멸망하여, 안남 전토(全土)는 일당의 수중에 들어갔다. 완복영은 각지에서 서산당의 추격을 피하고 있었으나 프랑스인 선교사 피뇨와 친해져서, 그의 노력으로 의용군의 원조를 얻어 드디어 서산당을 쓰러뜨리고, 1802년 통킹에서 코친차이나에 이르는 베트남 전국 통일에 성공할 수가 있었다.
차크리 왕조
[편집]-王朝 Chakri
타이(옛 이름은 시암)의 현 왕조로 1782년 라마 1세가 방콕을 수도로 하여 창건했다. 아유타야 왕조를 타도한 미얀마의 알라웅파야 왕조가 청나라와 항쟁하는 틈을 타 시암을 재흥(再興)시키고, 청에 입공(入貢)하여 1786년 시암(Siam) 국왕에 책봉됐다. 동시에 이미 유럽 제국과의 교섭, 서양 문명의 유입도 현저해서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걸쳐서는 동서로부터 프랑스, 영국 양세력의 압박을 받고 영토를 잠식당한데다가, 경제적으로도 유럽 자본 진출에 고통을 받았다.
또 국내상업도 전부터 화상(華商)에게 독점되어 국민생활은 극도로 궁핍하여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민족주의가 대두하였고 1932년에 이르러 드디어 혁명이 일어나 입헌국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독일, 이탈리아의 추축국에 가담하여 참전하였고, 전후에는 미국과 정치적·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청의 미얀마 출병
[편집]淸-出兵
청은 18세기 중엽 미얀마에 알라웅파야 왕조(1752
1885)가 일어나서 원난(雲南) 변경을 침범했기 때문에, 이 방면으로부터 출병하여 미얀마 공략(攻略)을 감행했다. 원정군은 각지에서 미얀마군을 격파했는데, 질병과 그 밖의 장해로 고전하여 출병은 오래 지속되었다. 결국 미얀마는 청나라에 항복하고, 1789년 건륭제(乾隆帝)로부터 미얀마 국왕에 책봉되어 10년에 한 번 입공(入貢)할 것을 약속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자바섬 정복
[편집]-
-征服
네덜란드는 18세 기말까지 자바(Java)섬을 정복했다. 착수한 것은 1602년 동인도회사 창립 이래로서, 바타비아(자카르타)에 기지를 건설하고 이슬람교 소왕국의 분립, 실정(失政), 내전(內戰) 등에 개입하여 전체 섬에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1799년 회사의 해산 후는 경영이 정부에 이관되었고, 한때 영국이 점령,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