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나폴레옹과 빈 체제/19세기 전반의 서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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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의 서구 문화〔槪說〕[편집]

18세기는 계몽사상이나 합리주의의 보급에 따라 봉건적 질서와 가톨릭적 세계관의 붕괴 및 혼란이 모든 면에 파급하였다.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부르주아나 중산계급의 대두와 산업혁명에 의한 경제 생활의 변혁이 강력하게 진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과 함께 이성(理性) 만능주의에 대한 반성과 격렬한 변혁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시민사회의 이념과 그리스 문화를 이상화한 인간성의 조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고전주의가 괴테 및 실러를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1815년 빈 회의 후의 정치적 보수체제하에서 이성에 대한 반항 및 현실도피를 통해 중세적 전통에의 복귀를 추구하는 낭만주의 풍조가 일어났다. 이와 같은 경향이 독일에서는 역사나 전통을 존중하는 국민주의 운동으로서 전개되고, 프랑스에서는 감정이나 개성을 존중하는 스탈 부인과 샤토브리앙을 낳게 했다. 7월혁명 이후가 되자 과학 및 기술의 발달이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따른 심각한 사회 모순을 배경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풍조가 강해졌다. 이러한 경향은 문학이나 미술에 그치지 않고 철학의 문제로서 부르주아지의 진보와 정신적 고뇌를 반영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 철학, 키에르케고르의 절망 철학, 포이어바흐의 인간학 등이 출현했다.

고전주의 문학[편집]

古典主義文學 Classicism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나타난 유럽 문학의 경향. 그리스·로마의 고전 고대 문화를 이상화하여 균형과 조화를 존중하고, 인간성을 추구하는 것을 특색으로 한다. 그것이 나타난 양상은 각국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따라 다르며, 시대적 차이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에 성했고, 영국에서는 18세기에 전반 독일에 있어서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엽에 괴테나 실러 등에 의해 전성기를 맞이했다.

괴테[편집]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19

1832)

독일의 최대 문호. 신흥문학의 선구자. 헤르더를 알면서부터 본격적 문학 활동에 들어갔다. ‘질풍노도’ 시대의 중심이 되었고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다.

1775년 바이마르공(公)의 요청으로 고급 관직에 앉았으며, 1786년부터 1788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 고대 미술에 감동한 나머지 숭고한 윤리관을 지닌 인간성을 문학 속에서 추구, 서정적 요소와 장중한 음률이 넘치는 많은 걸작을 남겼다. 대표 작품에는 「파우스트」가 있다.

실러[편집]

Joha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

1805)

독일의 작가. 괴테와 함께 고전주의 문학시대에 활약하였다.

「군도(群盜)」로 유명해졌고 「간계와 사랑」을 써서 질풍노도 시대의 대표적 작가가 되었다. 사극에 뛰어나 「발렌슈타인」 「빌헬름

텔」 등의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사극의 창작은 역사연구에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한때 예나대학의 역사학을 강의한 일도 있으며, 「네덜란드 쇠망사」(1788) 「30년전사(三十年戰史)」(1791) 등의 저작을 남겼다. 그의 역사연구는 사실(史實)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나 정확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역사의 발전을 이념적으로 파악하여 자유 이념의 투쟁의 발전으로 보았다. 이 밖에 칸트 미학(美學)의 연구에 바탕을 두고 「소박문학(素朴文學)과 정감문학(情感文學)에 대하여」를 써서, 독일 고전주의 문학이론에 공헌하였다.

낭만주의 문학[편집]

浪漫主義文學

계몽주의 및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이성이나 조화에 대한 감정 및 상상을 존중하는 문학. 영국에서는 워즈워스·콜리지에서 비롯되어 스콧을 거쳐 바이런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독일에서는 슐레겔이나 가톨릭적 중세를 동경한 노발리스 및 자유분방한 시인 하이네 등의 문학, 프랑스에서는 루소의 「신(新) 엘로이즈」에서 비롯하여 위고의 「레 미제라블」 등이 있고, 미국에서는 호손의 「주홍글씨」, 휘트먼의 「풀잎」이 있다.

하이네[편집]

Heinrich Heine (1797

1856)

19세기의 독일 시인. 유대 상인의 아들로 출생. 프랑스 혁명과 자유주의 영향을 받아 1827년 「노래의 책」을 내놓았다. 7월혁명 때 봉건적 독일을 떠나 파리로 이주했다.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랄한 풍자 정신을 발휘, 1856년 「수난의 꽃」을 마지막으로 사망했다.

바이런[편집]

George Gordon Byron (1788

1824)

정열의 영국 시인. 불우했던 유년시대를 보냈으나 바이런경(卿)의 사망으로 유산을 상속, 귀족적 교육을 받아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으로 일약 낭만시인으로 등징, 한때 러다이트 운동에 동정을 보였고 화려한 여성 편력에 실패, 영국에서 쫓겨났다.

1823년 그리스 독립전쟁에 사재를 털어넣고 참가했으나 이듬해 열병으로 사망했다.

위고[편집]

Victor Marie Hugo (1802

1885)

프랑스의 낭만파 문호.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육군 사관이 되었으나 1817년 문관으로 전향. 공화주의적 작품 「노트르담 드 파리」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 더욱 사회주의로 기울어졌다. 인도주의 입장에서 인간 운명을 묘사한 「레 미제라블」이 있다.

푸슈킨[편집]

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

1837)

러시아의 시인·작가.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나 1802년경부터 정치적 자유를 찬미하는 시를 써서 데카브리스트 사상을 문학에 반영시켰다. 봉건사회를 비판하여 남러시아로 유형당했다. 국민적 리얼리즘 문학을 확립, 휴머니즘과 자유주의의 입장을 관철했다. 만년에 「대위의 딸」을 썼으며 결투로 죽었다.

사실주의 문학[편집]

寫實主義文學

1840년부터 사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사조가 일어났다. 이 경향은 19세기 전반 산업사회의 발달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과학적 분석과 관찰을 본분으로 삼아 반(反)낭만주의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의 스탕달·발자크를 선구자로 해서 플로베르·졸라·모파상에 의해 대표되고, 영국의 디킨스·커리·조지 엘리어트, 러시아의 체호프도 이 문학을 대표한다.

스탕달[편집]

Stendhal (1783

1842)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시조. 본명은 앙리 베리.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 이래 이탈리아 예찬자가 되었으며, 독특한 연애관에 의한 최초의 소설 「아르망스」를 써서 문단에 등장했다. 최초의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불리는 「적(赤)과 흑(黑)」을 써서 왕정복고기의 특권계급에 도전했고, 「파르므의 승원(僧院)」에서는 전제군주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었다.

사실주의 회화[편집]

寫實主義繪畵

19세기 중엽에 대두했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회화 풍조를 가리킨다. 이미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에도 이 경향이 보였으나, 민주주의와 혁명이 고조되었던 프랑스의 구르베가 이 경향을 대표한다. 낭만주의에 대해 분연히 도전한 쿠르베는 작품 「오르낭의 매장」(1855)이나 「돌을 깨는 사람」에서 냉혹할 만큼 서민생활의 현실적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시대를 그리고, 사회를 비판하는 회화이기도 했다.

베토벤[편집]

Ludwing von Beethoven (1770

1827)

독일 고전음악의 완성자. 1787년에 빈으로 가서 귀족들의 보호를 받아 개성적인 격조 높은 악풍을 낳았다. 그러나 귀족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영웅으로서 나폴레옹 1세를 위해 「에로이카」를 작곡했으나, 나폴레옹이 공화제를 배신하자 이를 파기해 버렸다. 만년에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으나 「제9교향곡」 등 많은 명작을 남겼다.

낭만파 음악[편집]

浪漫派音樂

베토벤 이후의 새로운 경향으로 음악적 정서의 강렬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고전주의의 전통적 양식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낭만파 음악은 베버에서 비롯하여 슈베르트·시포르·마르시너·멘델스존을 거쳐, 슈만에게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그의 「사육제」나 「시인의 사랑」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쇼팽[편집]

Frdric Franois Chopin (1810

1849)

폴란드 출신. 낭만파 작곡가이며 명(名)피아니스트·7월혁명 후의 파리에서 작곡 활동에 종사했다. 그 즈음의 바르샤바는 러시아에게 침략당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리스트·멘델스존의 보호와 슈만의 후의를 받고 있었다. 내면적 서정성과 민요적 선율을 구사해서 뛰어난 피아노곡을 많이 작곡, 근대 피아노 음악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피히테[편집]

Johann Gottlieb Fichte (1762

1814)

독일의 철학자. 작센 출신으로 1790년 라이프치히에서 칸트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1794년 예나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나 ‘무신론쟁(無神論爭)’에서 패배하여 예나 대학을 물러났다. 1807

1808년 나폴레옹 점령하의 베를린에서 ‘독일 국민에게 고(告)함’이라는 유명한 강연을 하여 절망에 빠진 독일 국민들의 애국적 감정을 북돋았다. 1810년 베를린 대학의 창설과 함께 총장이 되었다. 그의 철학은 강인한 의지와 감정의 철학이며, 그것은 독일적 심정(心情)을 국민적 의지와 이상에까지 높인 철학이라고도 생각된다.

헤겔[편집]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1831)

독일관념론의 완성자.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칸트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에 있어서는 셸링의 철학을 능가했다. 그는 나폴레옹 침입을 피하여 뉘른베르크로 옮겨가서 『논리학(論理學)』을 공간(公刊)하고, 또 1817년 『철학백과(엔치클로피리에)』에서 헤겔 철학의 전체계를 정리, 1818년에는 『법의 철학』을 내놓았다. 그의 철학은 당시 독일 중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독일 민족의 세계사적 발전을 이론화한 것이었다.

벤담[편집]

Jermy Bentham (1748

1832)

영국의 법학자·철학자로 공리주의(功利主義)의 확립자. 런던에서 태어났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다. 1789년 「도덕 및 입법의 원리 서설」에서 공리의 원리를 확립했다. 쾌락을 조장하여 고통을 방지하는 것이 국가나 법의 목적이라 하고, 그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실현에 있다고 했다. 그것은 또한 산업혁명기의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콩트 (오귀스트)[편집]

Auguste Conte (1798

1857)

프랑스의 실증주의 철학자. 사회학의 시조. 프랑스 혁명 후의 혼란으로부터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추구하여 정신적 질서의 회복을 인간 지성의 개혁에서 구했다. 인간 지식의 ‘3단계 법칙’을 신학적·형이상학적·실증적의 3단계라 하고, 인간사회의 최고 지식은 실증적 단계라 하여 이것을 『실증철학강의』에서 논증했다.

맬서스[편집]

Thomas Robert Malthus (1766

1834)

영국의 고전경제학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1798년 『인구론』을 익명으로 출판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1805년 동인도 학교의 역사학 및 경제학 교수로 취임. 1820년 『경제학원리』를 출판. 그는 『인구론』에서 인간의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는 한 식량 생산은 인구의 증가에 대응할 수 없으며 빈곤과 악덕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층 계급의 빈곤은 사회제도의 죄가 아니라 도덕적 무자각의 결과라고 함으로써 지주층의 입장을 대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