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남북전쟁과 제국주의의 발전/무굴 제국의 멸망과 인도 제국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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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멸망과 인도 제국의 성립〔槪說〕[편집]

영국 동인도회사의 인도 정복은 시크 전쟁 후 펀자브 병합(1849)을 통해 대체로 완성되었다. 전(全)인도는 회사직할령(會社直轄領)이나 보호령이 되고, 무굴 황제는 단순한 연금수령자(年金受領者)로서 허위(虛位)를 지키고 있는 데에 불과하였다. 19세기 전반에 인도 시장(市場)은 영국 산업자본에 개방되고, 회사는 인도의 통치기관이 되었다. 재래 공업은 영국 상품의 엄청난 유입(流入)으로 쇠퇴하고 농촌 공동체는 파괴되었다. 영국 지배에 대한 반항은 1857년의 세포이의 반란이 되어 폭발되나, 1858년 무굴 제국은 명실공히 멸망하고 동인도회사가 해산되어 인도는 영국의 직접 지배하에 놓임으로써 1877년 인도제국(帝國)이 성립된다. 후일 미국·독일의 대두(擡頭)에 위협을 받게 된 영국은 인도 지배를 더욱 강화, 인도는 영국 제국주의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영국은 철도·관개수로(灌漑水路)를 두루 만들어 인도의 ‘근대화’에 노력하였으나 그 결과 인도 민중에 돌아간 것은 19세기 전반의 아사자(餓死者)가 140만 명이 있는 데 대해 후반에는 2천만 명으로 증대된 만성 기아상태(饑餓狀態)라고 하는 결과뿐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도인의 민족적 자각도 높아져 갔다.

세포이의 반란[편집]

-反亂

세포이(Sepoy)라 불리는 동인도회사의 인도인 용병(傭兵)의 반란을 계기로 일어난 반영(反英) 민족 독립 전쟁(1857

1859). 1813년 동인도회사의 무역 독점권이 폐지되어서 산업혁명 후의 영국 상품이 대량으로 유입되자, 인도 전래(傳來)의 수공업·농촌부업은 쇠퇴하여갔다. 19세기 초까지는 영국에 대한 면제품(綿製品) 수출국이었던 인도가 면제품 수입국으로 전락하였다. 1818년부터 1836년까지 영국 면사의 대(對)인도 수출은 5천2백 배가 증대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인도는 면화·아편·쪽·황마(黃麻)·소맥(小麥) 등 영국 자본의 요구에 따른 원료 공급지와 면포·면사 등 제품의 시장으로 변해갔다. 한편 1848년에 정해진 원칙, 곧 후계자가 없는 토후국(土侯國)은 자동적으로 회사령(會社領)이 된다고 하는 ‘실권(失權)의 원칙’에 의해, 아우드 등 토후국을 강제로 병합하여 구(舊)지배층도 반영(反英) 감정을 굳혀갔다. 세포이에는 이슬람 교도나 고(高)카스트의 힌두 교도가 많았으나 1857년 봄 탄약통에 이슬람 교도들이 혐오하는 돼지, 힌두교도들이 신성시(神聖視)하는 소의 기름이 발라져 있다는 풍문이 퍼져, 그것을 입으로 깨물어 끊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5월에 봉기하였다. 반란군은 델리를 점령하고 무굴 황제를 옹립하여, 반란은 인도의 3분의 2나 되는 지역까지 파급되었다. 그러나 통일적인 조직, 계획의 결여와 지도권을 장악한 구(舊)지배층의 동요나 배반 때문에 9월에는 델리를 탈환당하고, 무굴 황제는 포로가 되고 다음해 폐위(廢位)되어 멸망하고 만다. 1858년 동인도회사는 해산되고 전(全)인도는 영국의 직접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프간 전쟁[편집]

-戰爭 Afghan Wars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3차례 전쟁을 가리킨다. 펀자브 정복 및 확보와 러시아 세력 남하에 대항하는 명목으로 인도 정청(政廳)은 아프가니스탄 왕위 계승에 간섭하여 출병, 이를 보호국화(保護國化)하려고 하였다. 제1차(1838

1842) 싸움이 끝난 뒤 제2차(1878

1881) 전쟁에는 압둘 라만을 아프가니스탄의 애미르에 옹립하여 회사의 연금수령자로 하고 보호국화에 성공하였다. 제3차는 1919년 아프가니스탄의 아마눌라칸의 반영(反英) 독립전쟁이다.

동인도회사의 해산[편집]

東印度會社-解散

동인도회사는 동양 무역을 독점하는 기업체로서의 성격 외에 인도 통치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었으나 산업혁명의 진행에 따라 산업자본에 의해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1813년에는 인도 무역 독점권이 폐지되고 1833년에는 상업 활동도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인도 통치 기관으로서만 존속하였으나, 세포이의 반란은 그 실정(失政)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1858년에 활동이 정지되었다.

인도제국[편집]

印度帝國 Indian Empire

1858년 동인도회사의 해산 후, 인도는 영국 본국 정부의 직접 지배하에 들어가 정부 내에 인도 사무대신(事務大臣)을 두게 되었다. 1877년 칭호법(稱號法)이 통과되고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여 인도 제국이 성립되었다. 제국(帝國)은 뱅골 등의 영국 직할령과 하이더라바드 등 영국 보호령인 번왕국(藩王國)으로 대별되고, 부왕(副王, Viceroy)을 겸칭(兼稱)하는 총독이 입법심의회, 행정참사회의 보좌에 의해서 이를 통괄하였으나 인도인에게는 참정권이 없었다.

인도 국민회의[편집]

印度國民會議 Indian National Congress

1885년 앞서 인도 정부의 내무장관이던 영국인 흄이 1876년에 인도 협회를 결성하고 있었던 바널지 등과 더불어 만든 것으로 영국의 인도 통치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이다. 지식인 외에 지주·상인·고리대금업자가 구성원의 대부분으로 영국·인도 관계의 긴밀화를 도모하고 영국에 감사하면서도 불공정하고 유해한 부분의 개혁을 요구하는 등, 대영(對英) 협조성이 강하였다. 민족 운동을 지도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든 뒤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