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남북전쟁과 제국주의의 발전/영국의 미얀마·말레이 반도 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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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미얀마·말레이 반도 영유〔槪說〕[편집]

인도의 식민지화를 추진하던 영국은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기(戰爭期)에 있어서의 네덜란드의 쇠퇴를 틈타 케이프·실론을 점령하고 나아가 동인도회사의 사원 래플즈의 활약으로 자바·말라카 등도 점령하였다. 자바와 말라카는 빈 회의로 반환되었으나 1819년에 래플즈는 조호르왕(王)으로부터 싱가포르를 매수(買收)하였으며, 1824년에는 말라카를 할양받아 이후에 영국의 말레이 병합이 진전을 보았다.

한편 18세기 중엽 이후, 미얀마를 통일한 알라웅파야 왕조는 동(同)세기 말부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아라칸·아삼으로 진출하여 위세를 떨쳤으나, 이를 계기로 하여 인도에서 동진하려던 영국과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미얀마 병합[편집]

-倂合

영국 동인도회사는 1795년 알라웅파야 왕조와 화친조약(和親條約)을 체결하고 있었으나, 미얀마측의 조약 위반을 구실로 제1차 미얀마전쟁(1824

1826)을 일으켰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은 인도에 이어 미얀마에 그 세력을 뻗치려 하였으나, 알라웅파야 왕조 치하의 미얀마는 여기에 대항하여 1822년 인도 동방국경에 군대를 보냈다.

영국은 이를 계기로 삼아 1824년 미얀마에 공격을 가하여 이를 격파하고 배상금(賠償金)과 함께 아삼, 아라칸, 테나세림 등지를 획득하였다. 2차 전쟁(1852)은 미얀마 주재의 영국인 관리에 대한 학대를 구실로 영국이 또 미얀마에 침입, 그 결과 요충지(要衝地) 페구를 병합하였다.또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프랑스도 미얀마에 압력을 가하여 메콩 강 좌안(左岸)지역을 요구하자, 영국은 이에 대항하여 전(全)미얀마의 지배를 결의하여 미얀마와 봄베이·미얀마 통상회사와의 분쟁을 구실로 전미얀마 점령에 나서 왕조를 멸하고, 영령(英領) 인도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이것이 제3차 전쟁(1885∼1890)이다.

말레이 반도 영유[편집]

-半島領有

페낭(1786), 싱가포르(1819), 말라카(1824)를 획득한 영국은 1867년 직할식민지인 해협식민지(海峽植民地, Strits Settlements)를 건설, 이를 거점으로 반도 내부에 진출하였다. 1895년 여러 보호령의 토호국을 연합하여 말레이야 연방을 조직, 1909년 타이 세력하의 제후(諸侯)들도 그 보호하에 흡수하였다(非聯邦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