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도시국가와 춘추전국시대/인도의 도시국가와 불교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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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도시국가와 불교의 성립〔槪說〕[편집]

기원전 7세기경 갠지스강 유역에는 크고 작은 도시국가가 난립하여 서로 다투고 있었는데, 기원전 6세기가 되자 군주제를 발달시킨 코살라와 마가다의 양국이 강대하게 되어 인근의 나라들을 병합해 갔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 초부터 양국은 심한 싸움을 되풀이했으나, 결국 마가다가 승리하여 갠지스강 유역 일대의 통일을 실현시켜 그뒤 몇세기에 걸쳐 북인도의 역사에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이 지방의 정치적 사건은 서사시(敍事詩) 외에도 불교나 자이나교의 경전(經典)을 통해 상당히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 사상면에서는, 브라만교의 제식 중심적인 생활 방식에 반대하고 내면적인 사색을 중시하는 일파에 의하여 우파니샤드 철학이 나와, 후대 인도 사상사의 전개를 규정지어 주었다. 당시 갠지스강 유역의 도시국가에서 활약하고 있던 것은 무사계급(크샤트리아)과 상인계급(바이샤)이었다. 그들은 베다나 브라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카스트 제도에 구애됨이 없이 행동했다. 이러한 사상적 분위기가 있는 제도시에 신(新) 사상가들이 모여 자기 사상을 설유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들은 불교 경전에 62견(見:62가지 다른 견해), 6사외도(六師外道)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 사상가 중에서도 고타마 싯다르타와 바르다마나(마하비라)가 유력하고, 그들이 창시한 불교와 자이나교는 후의 인도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불교와 자이나교의 발달로 크샤트리아 계급의 지위는 높아져 인도 사회는 크게 변천하게 되었다. 특히 불교의 평등사상을 정치에 적용시킨 것은 마우리아 왕조였다.

코살라국[편집]

-國 Kosala

이것은 갠지스강 중부 유역의 옛 왕국. 16대국의 하나로 마가다와 함께 강국으로 알려졌다. 불타(佛陀) 시대의 수도는 시라바스티(舍衛城)로 여기에 사는 국왕 푸라세나지트(波斯匿王)는 불타의 보호자로서 이름이 높다. 또 대상인(大商人) 수다타(給孤獨長者)에 의해 헌납된 기원정사(祇園精舍)도 이 수도에 있었다. 코살라국은 기원전 5세기 전반에 마가다국에 병합되어 멸망했다.

마가다국[편집]

-國 Magadha

갠지스강 중부 유역의 옛 왕국. 16대국의 하나로 일찍부터 번영한 나라지만, 불타시대에 샤이슈나가 왕조의 빔비사라와 아자타샤트루의 두 왕이 즉위하여 국위를 높이고 갠지스강 유역 전역을 통일하였다. 그중 빔비사라(전 546∼ 전 486)는 온화하고 현명한 왕이었다. 그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단기간에 소국(小國) 안가를 장악했다. 이 소국의 수도 참파는 갠지스 강의 델타 지대에 있는 중요한 항구였고, 그 때문에 빔비사라 왕은 갠지스 강의 항행(航行) 지배권을 장악하여 남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연안지방과 교역을 할 수가 있었다. 그 밖에도, 왕은 행정 조직을 정비하여 능률을 높였으며, 도로의 건설이나 그 밖의 공공 사업을 활발하게 일으켰다. 또한 스스로 자주 순행(巡幸)하여 실시 상황을 검열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풍요한 철광산(鐵鑛山)을 배후에 둔 산속에, 전장(全長) 약 40킬로미터나 되는 성벽으로 에워싸인 신도(新都) 라자그리하도 그가 건설했다고 한다.그러나 마가다에는 왕의 계승권을 에워싸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 하는 몇몇 계승권 주장자가 있었기 때문에 일련의 암살사건의 비극이 일어났다. 바라바르 구릉의 철광산이나 다르와르와 신푸르 지방의 동(銅), 철의 광산 및 상비군(常備軍) 덕택에 기원전 5세기에 번영의 극치에 달했던 이 왕국도 왕국 내부의 반란으로 전복되어 당시의 재상(宰相) 샤이슈나가가 왕위에 오르자 새 왕조인 샤이슈나가 왕조가 시작되었다.수도는 처음 라자그리하(王舍城)에 있었지만 기원전 5세기 중엽 파탈리푸트라로 옮겼다. 파탈리푸트라는 북인도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기원전 4세기 초에 샤이슈나가 왕조를 계승한 난다 왕조는 부강하였고 그 군대의 강대함은 인도에 침입했던 알렉산더 대왕에게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난다 왕조는 기원전 320년경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 찬드라굽타에 의해 멸망했다.

우파니샤드 철학[편집]

-哲學

고대 인도의 철학 사상. 후기 베다 문명은 『베다』의 주석 문학을 통하여 지적(知的)인 면에서의 최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것에 의해 『우파니샤드』 속에 간직되어 있던 새로운 철학이 형성되어 갔다. 베다의 부속 문헌 중 하나인 『우파니샤드(Upanishad, 奧義書)』 중에 집합 수록되어 있다. 이 『우파니샤드』는 장기간에 걸쳐서 편찬된 몇 개의 작품을 집대성한 것으로, 비교적 가까운 시대의 것도 들어 있다. 복잡 난해한 철학이 전개되고 있는데, 그 중심이 되는 사상은 우주의 근본 원리 브라만(梵)과, 자아(自我)의 근본 원리 아트만(我)이 궁극적으로 동일함(梵我一如)을 깨닫는 데에 있다. 또 후세의 인도 사상을 특색지우는 업(業, 가르마) 사상이나 윤회(輪回)사상도 우파니샤드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런데 『우파니샤드』는 그 형식이 베다적 상징주의나 『브라만』의 제식주의(祭式主義)에 결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다 기(期) 지배 계급이었던 제관(祭官)들의 마술적, 기도적 권력에 대한 크샤트리아(武士階級)의 반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이나교[편집]

-敎 Jainism

불교와 동시대에 북인도에서 발생한 종교. 창시자 마하비라는 고행에 의해서만 정신이 정화되어 해탈의 길이 열린다는 입장을 취하고 브라만이나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고 카스트 제도에 반대했다. 자이나 교단은 고행에 의해 창시자와 같은 길을 걸으려는 출가자(出家者)와 세속의 신자로 구성된다.자이나 교도가 특히 엄하게 지키지 않으면 안될 계율은 ‘불살생(不殺生)’ 계명이다. 자이나교의 신도들은 불살생의 태도를 철저히 지키고, 또한 오로지 자기구제(自己救濟)를 목표로 각자가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견해에 의해서, 영혼을 깃들게 하는 존재를 위협하는 생업(生業)에 종사하는 것을 기피했다. 이를테면 동식물을 살생할 우려가 있는 농업이나 혹은 그런 종류의 장사, 수공업 등이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이나교 신도들은 보석상, 은행가, 금융업자, 고리대금업자가 되기를 원했으며, 그 결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강력한 경제력을 지니게 되었고 세속 신자도 상인이 많았다. 인도에서 발생한 브라만 계통 이외의 2대 종교의 하나이고, 현재도 무려 약 200만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 자이나교라 함은 지나(창시자의 존칭)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바르다마나(마하비 라)[편집]

Vardhamna (전 549 전 477?)자이나교의 교조. 깨달음을 얻은 후에 마하비라(大勇), 지나(勝者) 등으로 존칭된다. 크샤트리아가(家)에서 출생.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 석가와 거의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브라만교에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 신종교를 창시하였다.30세에 출가하고, 12년간 고행하여 대오(大悟)를 얻었다. 그 후 72세로 죽을 때까지 갠지스강 유역 각 도시에서 교화 활동을 행하였다.철학적으로는 만유(萬有)를 생명과 비생명(非生命)으로 분류해서 다원적(多元的) 실재론(實在論)을 전개한 데에 그 특색이 있고, 그 논증(論證)에는 일종의 상대론(相對論)을 이용, 후에 7종의 원리(七諦)를 세워서 세계의 경과를 설명하였다.

불교의 성립[편집]

佛敎-成立

불교는 인도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매우 큰 영향을 준 종교이다. 이 종교적·사상적 운동은 그 개조(開祖)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佛陀)의 이름을 따서 불교(佛敎)라고 부른다.붓다란 ‘깨우침에 다다른 사람’ 또는 ‘깨우친 사람’이란 뜻이다. 불교의 시조 고타마 싯다르타(불타)는 모든 것이 무상하고 반드시 멸망한다(諸行無常)는 무상관(無常觀)에 기초를 두었다. 그리고 인간의 ‘괴로움(苦)’의 원인은 무상한 이 세상의 여러 현상에 대한 애착에 있다고 생각하여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바른길의 실천에 의해 그 애착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풀었다(四諦說法).또 극단적인 고행과 쾌락의 어느 것도 아닌 중간의 길(中道)에 서도록 권고하고 여덟 가지 바른길(八正道)의 실천에 의해 해탈(解脫)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불타의 가르침에 따라 불타와 같은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가족·재산을 버리고 출가하여 비구(比丘)가 되어 불교 교단으로 들어갔다. 한편 브라만의 권위를 부정하고 인간의 평등과 자비의 고귀함의 가르침에 공감을 갖는 세속 신자들도 많았다. 그들 세속 신자의 물질적 원조에 의해 불교 교단이 유지된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불타, 석가)[편집]

-佛陀, 釋迦 Gotama Sid­dhartha(전 566

전 485?)

불교의 시조. 깨달음을 얻고부터 불타(진리를 깨달은 사람), 석가모니(釋迦牟尼:석가족의 성자)라 존칭되었다.네팔 지방의 석가족 왕가의 정반왕(淨飯王)을 아버지로 하여 출생하였다. 노병사(老病死)로 상징되는 인생문제에 대해 괴로워하여 29세에 출가, 괴로운 수업(修業)을 거쳐 35세 때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45년 동안 갠지스강 중류 지방의 각지를 교화한 후 80세 때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밑에서 서거했다. 불타의 신봉자의 대부분은 당시 갠지스강 유역의 여러 도시에서 활약하고 있던 무사·상인 계급이었다.그들 중에서도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와 아자타샤트루, 코살라국의 왕 푸라세나지트, 코살라국의 대상인(大商人) 수다타(給孤獨長者) 등의 이름이 특히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의 모든 괴로움의 원인인 영혼의 전생(轉生), 즉 윤회(輪廻)에 결부된 인간의 고통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고타마 싯다르타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존 그 자체가 고통이며, 그 생존을 유지하려는 원인이 바로 욕망이라는 자각(自覺)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구원이 가능하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올바른 사색과 올바른 행동, 즉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신(正精神)·정념(正念)·정정(正定)’에 의해 각자는 스스로의 내부에 있는 욕망의 전부를 절멸(絶滅)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얻으며, 숙명적으로 고뇌를 가져다 주는 원인과 결과의 순환을 끊을 수가 있다고 하였다. 이 인식을 보디(菩提), 즉 깨우침이라고 한다.

제1회 불전 결집[편집]

第一回 佛典結集

불타가 죽은 후 얼마 안되어 교법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던 제자들 대표 500명은 마가다의 수도 라자그리하 교외의 칠엽굴(七葉窟)에 모여 스승의 가르침을 종합 정서했다. 이것을 제1 결집(結集) 혹은 5백 결집이라 한다.고제(高弟)의 한 사람인 마하카샤파가 결집을 총지휘하고 우파리가 「율(律)」, 아난다(阿難)가 「경(經)」의 편집 책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