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제2기 문명/기원전 13 ~ 전 7세기경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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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3 ~ 전 7세기경의 세계〔槪說〕[편집]

유프라테스·나일·인더스·황하 각 유역에 있어서의 최고(最古)의 네 문명은 각기 자생적(自生的)이기 때문에 가령 그것을 인류의 ‘제1기 문명’이라고 한다면 본 장에서 말하는 이 시기는 말하자면 ‘제2기 문명’의 개시기(중국 및 인도), 또는 전개기(오리엔트 및 동지중해 지역)에 해당한다.제2기 문명의 특색은 제1기 문명이 자생적 기원을 가진 것과 비교해서 그러한 국가 형성에 자극과 영향을 받아 모방적으로 국가 형성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제1기 문명의 여러 국가는 모두가 대건조지대 가운데에 있어 범람하는 대하(大河)의 유역에서 일어난 농경 공동체이며, 그 자체에 국가 형성에 대한 이유와 조건을 가지고 있었으나, 제2기 여러 국가의 형성자들은, 때때로 본래는 그 새외(塞外)의 유목적 여러 부족이며(예컨대 셈 제족, 이란 ‘아리아’인, 그리스인, 주나라 등), 선행자들의 모방뿐이며, 자기 자신은 국가 형성에의 본래적 필연성은 없다고 해도 좋겠다.아마도 유일한 예외가 미케네 소왕국군(小王國群) 멸망 후의 그리스인의 여러 공동체(폴리스)였고, 그러한 점에서 그리스 역사상 가장 흥미있는 문제점의 하나가 잠재하는 것이다.동아시아, 인도, 오리엔트 등 동지중해 영역의 세 지역권(地域圈)은 각기 별개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기원전 13

전 7세기라는 단면에서는 통일적인 의미를 붙이는 것은 무리이다.먼저 황하 유역이 이 시한의 시초에 겨우 역사시대로 들어섰다(전설적인 여러 왕 가운데서 유명한 갑골문 복사에 의해서 동시대적으로 확증되는 것은 왕국의 후반기. 은허 천도 후의 8왕뿐임). 이후 서주(西周)를 거쳐 춘추시대의 중엽까지이다. 그 기간은 전형적인 청동기 문명이나, 조형의 예술성에서는 선행의 은시대의 것이 후속의 주시대보다 오히려 뛰어났다. 주의 역사는 은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전설적으로 후세의 여러 전적(典籍)에 전해지고 있으나 구체적인 실증적 사료(史料)는 거의 남겨져 있지 않다. 다만 서주 사회가, 원시 씨족공동체인 강점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정된다.그러나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차츰 내부적 모순이 고조되어 쇠퇴했다. 기원전 8세기 후반에는 드디어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지 못하여 수도를 잃고 주나라 왕실은 동으로 달아나 겨우 명맥을 부지하였다(東周). 인도에서는 인도-유럽계 아리아인이 점차로 원주민과 혼혈해 가면서 또한 후자를 정복하면서 기원전 10세기까지에는 갠지스강 방면으로 진출하고 전 7세기경에는 북인도의 여러 소국을 통합하여――전설에 의하면――16개 왕국이 성립했다고 한다. 다만 ‘역사적인 시간성의 관념이 결여된 인도적 사유(思惟)’라고 때때로 평을 받는 바와 같이, 고대 초기의 인도에는 연대를 명백히 한 역사 기술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동안에 있었던 그들의 역사적 경과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오늘날까지도 뿌리깊은 심각한 카스트 유제(遺制)도 그 기원은 이즈음――처음에는 피정복 원주민에 대한 ‘색(色:파르나)’의 구별로서――정복형(征服型) 노예제도를 강행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이 노예적인 신분 질서(다르마)의 이데올로기화(化)와 동시에 제1신분인 브라만의 지배 계급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은 브라만(힌두)교였다.오리엔트에 있어서는 당초부터 이집트 세력의 후퇴가 현저하다. 히타이트도 기원전 12세기에 멸망하였다. 그러한 일반적 정세에서 이 시기에는 많은 중소 세력이 주변 및 외곽 지역에 성립되었다. 가장 빨리 외측에 그리스인의 미케네 세계가, 오리엔트의 지중해 영역에는 페리 시테, 이스라엘 등의 소국가군(小國家群)이, 이어 페니키아 여러 도시가, 내륙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아슐이 가장 문제가 된다.기원전 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정세가 일변했다. 즉 아시리아에 의한 전(全) 오리엔트 정복이다. 이집트가 메소포타미아의 세력에 지배·규합된 것은 그때를 효시로 삼는다(전 670). 그러나 아시리아는 그의 통일에 알맞은 대영역 유지를 위한 조직적 행정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단순히 폭력에 조급한 대제국의 성립은, 일종의 파행현상(跛行現象)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 대제국은 순식간에 영역적 블록군(群)으로의 복귀·해체의 작용(각 지방마다 반란의 빈발)을 일으켜 싱겁게 멸망해 버렸다(전 612).이상의 추이 동안에, 연락이 끊어져 있던 서방의 두 소세계에서는, 각각 그 역사의 개막으로의 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멀리 이탈리아 반도(북·중부)에서는 이 시기의 후반, 아직도 에트루리아인의 지배에 불과하였으나, 그리스에서는 그 벽두에 최성기를 자랑하고 있던 미케네 문명이 일찍이 괴멸하였고, 이 시기는 헬레네스 세계 형성에의 ‘사전시대(Dark age:非文獻의 時代)’에 해당한다(폴리스 성립기). 즉 모두 민족의 형성기에 해당한다. 대체로 유럽은 이 시기의 후반에는 철기시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