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제국/헬레니즘 시대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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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의 문화〔槪說〕[편집]

학문·예술의 번영은 절정에 달했다. 그 현란함은 후세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상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국왕의 부재(富財)를 기울여서 만들어진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과 무세이온(學士院)에는 기라성 같은 학자가 운집하여, 인문·자연 등 여러 학문의 중심이 되었고, 이어 그 침체 후에는 페르가몬 도서관이 이와 비견했다(전 2세기).그를 계승하는 것에는 아테네, 로도스가 있다. 미술은 헬레니즘 여러 군주의 왕성한 도시 건설에 의해 촉진되어――따라서 알렉산드리아나 아테네는 의외로 걸작이 드물고, 일품(逸品)은 페르가몬, 로도스, 크니도스, 멜로스(밀로), 사모트라케 등 주변 및 섬들의 새로운 폴리스에 많았다――건축과 조각에서 그 기교의 발달이 현저했다.그러나 헬레니즘 시대 문화의 성격을 총괄하면, 실질적으로 융성을 극한 것은 기술적·자연과학적인 것에 편중되어 있으며, 철학·문학 기타 정신적·내면적 요소에 관한 문화적 영위는 오히려 조락(凋落)의 빛이 농후했다.전제 지배의 광역(廣域)국가로 체제화된 여러 폴리스는 이름은 같더라도 전대(前代)의 자치적 시민 공동체 같은 것이 아니라, 겨우 칙허적(勅許的) 특권을 부여받은 '도시'에 불과하다. 폴리스의 소멸은 시민의 공생활(公生活)을 모두 바꾸게 했다. '특수성'의 상실로 인해서 '보편성'이 시대의 표지가 되었고, 폴리스 공동체 의식에 대신해서 보편 인류 의식(코스모폴리터니즘)이 시대정신이 된다. 철학은 폴리스적 대응을 잃고, 보편주의적인 스토아 및 에피쿠로스 철학이 되었다.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르치는 바는 이제 개인의 영혼 구제가 되었다.철학의 종교화를 대중은 동방 종교에의 귀의(歸依)에 의해서 대상(代償)했다. 공동체의 공적 제사(올림푸스 12신)는 이미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묶어 두지 못했고, 사람들은 보다 강렬한 구원의 증명을 찾았다. 동방의 여러 종교가 밀물처럼 흘러들어와 재래 종교와 혼합되어 광범한 '종교 습합(習合)'을 야기시켰다. 융합이야말로 모든 헬레니즘 문화의 기조(基調) 현상이었다.고전기에 있어서의 훌륭한 변론술은 원래 폴리스적인 시민 생활에서 생긴 공생활상의 필요 기술이었는데, 폴리스적 공생활이 해체된 이래 변론술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형해화(形骸化), 단순한 수사술(修辭術:美文의 기술)은 교양주의로 퇴화했다(테오프라스토스의 『人性論』 등). 희극도 마찬가지이다. 폴리스적 정치 생활에의 대응을 상실하고 위축되고 인생론적인 '신희극' 또는 대중 흥행적――때때로 음란――인 미모스 등으로 퇴영했다. 창조성의 저하는 고전기를 능가하는 철학·문학이 탄생 못한 반면, 전대의 소산에 대한 주해서(註解書)·교정(敎程) 따위가 많았다는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 훈고(訓誥)와 주석이 알렉산드리아 학문의 주류였다. 즉 유산의 정리와 문물의 양적 보급에는 기여했으나, 질적으로는 전대보다도 쇠퇴한 것이다. 난숙(爛熟)과 조락과의 상관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조형미술이다. 조상(彫像)은 세부묘사가 정치(精緻)를 더하고 기교적으로는 더욱 숙달되지만, 핵심인 내적 충동과 생명력은 쇠퇴되고 있다. 여체는 차츰 관능적이 되지만 오히려 얼이 빠져 있다.신전의 열주(列柱)는 최초 간소한 도리아식(고전기 초·중)에서 이오니아식(고전기 말-헬레니즘 초기)을 거쳐 코린트식(고전기 중·말)으로 발전하는데, 그것은 웅장→우미→섬세로의 발전임과 동시에, 창조→완성→조락의 과정이었다. 코린트식에서는 이미 생명력의 충실성은 없다. 후에 로마가 모방하는 그리스 문화란 실은 이와 같은 2류품적인 헬레니즘 문명이었던 것이다.이상과는 반대로 수학·실험과학·천문학·해부학 등의 소위 자연과학 분야는 헬레니즘 시대에 확실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그 학자들(표 참조)은 오늘날 생각하더라도 일류급 학자들이었다. 17세기에 근대 서양 과학이 일어나기까지, 우리는 그들에 필적하는 과학자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성과는 실천적 응용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아무런 사회적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것은 고대 사회의 본질적인 결함이었던 노예제도 때문이며, 즉 그들은 생산의 증대를 과학기술의 적용에 의하지 않고, 노예의 숫자를 증가하는 것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문화의 대표적 소산



부 문



인 명



업             적



철 학



피 론

제 논

에 피 쿠 로 스



회의파의 개조

스토아파의 개조. 아테네에서 강연(講演)

「쾌락주의」(후세의 곡해) 철학의 개조



문 학



테 오 크 리 토 스

헤 론 다 스

메 난 드 로 스



시인 『목가』:미모스 작가

희곡 작가

신희극의 제1인자



역 사



플 리 비 오 스

『7 0 인 역  성 서』



로마사 40권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역(譯)



과 학



에 라 토 스 테 네 스

아 리 스 타 르 코 스

스 트 라 톤

헤 론

아 르 키 메 데 스

에 우 클 레 이 데 스

아 폴 로 니 오 스

헤 로 피 로 스



천문학:지구의 자오선 측정

천문학:지동설, 달·태양의 거리를 계산

물리학자:진공의 이치를 연구

물리학자:기체의 연구

수학·물리학자:지렛대·비중, 원·구의 구적

(유클리드):수학자·기하학 원리를 저술

수학자:원추곡선 정리의 발견

해부의학:신체 기관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