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십자군 원정과 투르크족의 발흥/이베리아 반도의 그리스도교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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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의 그리스도교 제국〔槪說〕[편집]

이 시대는 칼리프 국가의 해체와 ‘레콘키스타’의 진행 개시 시대이다. 프랑크의 카를 대제가 설치한 피레네 남쪽 기슭의 스파니시 마르크에서 카탈로니아, 바르셀로나, 나바라가 일어나고 서고트의 잔존 세력에서 레온이 일어났으며, 다시 레온에서 카스티야가 분립하고, 나바라에서는 아라곤이 떨어져나왔다. 이들 그리스도교 국가들 상호간에, 또한 이슬람과의 충돌 사이에 결혼이나 병합에 의하여 서서히 제국가 합체(諸國家合體)의 방향이 나타났다.

나바라 왕국[편집]

-王國 Navarra

에스파냐 동북부의 주(州). 로마의 요새지(要塞地)로서 개발되어, 카를 대제 때에는 변경백령(邊境伯領)이 되고, 국토회복운동의 개시와 더불어 동반 진로(進路)의 기지가 되었다. 왕국으로서는 산초 대왕(970∼1035)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후에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침입을 받아, 1076년에서 1134년까지는 아라곤의 역사에 흡수되었다. 그 후 독립을 회복하여, 카를로스 3세 때에는 번영하였다. 16세기 초엽 에스파냐측 영토는 페르난도 5세에게 점령되고, 프랑스측 영토는 나바라 왕국으로서 앙리 4세의 부르봉 왕조 창립(1589)까지 계속되었다. 바스크어(語)를 사용하는 지방으로서 현재도 지방색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보수적 산지(山地) 농촌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아라곤 왕국[편집]

-王國 Aragon

카스티야와 병립한 중세 에스파냐의 왕국. 원래 로마령(領)의 일부였으나, 이슬람교도의 지배에 굴복하고, 재차 국토회복운동의 과정에서 정초(定礎)되어, 카스티야와 함께 그 일익을 담당하였다.아라곤은 9세기 반 카롤링거 왕조에서 독립하고 곧 이어 나바라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등 혼란 상태에 있었는데, 1035년 라미로 1세에 의해 완전 독립을 이룩하였고, 12세기 초두에는 최대 판도를 형성, 대체로 비슷한 사정에 처해 있던 카탈로니아(바르셀로나)와 병합(1137)해서 영토는 피레네 남반부로부터 지중해안에 이르고, 서남 프랑스의 일각까지 미쳤으나 프랑스와의 전쟁에 패하여(1213) 피레네 이북으로의 진출을 저지당하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를 기지로 하여 지중해역에도 진출하고, 발레아레스 제도(諸島)에서 이탈리아 방면에까지 두터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1469년 아라곤 왕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과의 결혼으로 에스파냐 통일국가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생산은 약간의 광물자원을 제외하고는, 고래의 조방(粗放)농업을 주로 하였고, 농민은 가혹한 수탈을 당했다.

레온 왕국[편집]

-王國 Leon

10세기 초 레온 왕 가르시아가 동방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이 지방에 많은 카스티야(國境의 城)를 쌓았다. 카스티야라는 지명은 여기서 시작된다. 카스티야는 10세기 후반 자립의 형세(形勢)를 보이고, 11세기에 들어오자마자 나바라의 산초 대왕과 결탁, 공세를 취하여 끝내 레온을 병합했다(1037).

카스티야 왕국[편집]

-王國 Castilla

알폰소 6세(1072

1109)는 레온을 병합한 후 톨레도를 빼앗고(1085), 그의 양자를 포르투갈 백(伯)으로 하는 등 이슬람에 대한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이 무렵 프랑스는 클뤼니 교단(敎團)을 선두로 하여 각지에 있는 그리스도교를 지원하고 있었다. 이어서 알폰소 7세(1126

1157)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대등한 지위를 자칭할 만큼 군사력의 강화를 보였다. 또한 알폰소 8세(1158

1214)는 1195년에 이슬람에 대패하고, 레온·나바라의 침입을 받았으나 곧 물리치고 1212년 이슬람에 대하여 결정적인 대승(大勝)을 거두어 무와히드 왕조를 쇠퇴시켰다.

포르투갈 왕국[편집]

-王國 Portugal

오늘날의 포르투갈의 북반부는 1055년 이후 레온, 카스티야에게 점령되어 코임브라를 수도로 하는 백령(伯領)이 되었다. 프랑스 왕족 부르고뉴가(家)의 헨리가 카스티야를 응원하였으므르 알폰소 6세는 그의 딸을 주어 포르투갈 백(伯)으로 세웠으나(1093) 아들 알폰소 엔리케(1112

1185) 때에 카스티야와 싸웠다. 1143년 교황의 조정에 의하여 왕국으로서 독립하고 이슬람에 대해서도 자주 승리를 거두었으며, 남하하여 리스본을 점령하여(1147) 타그스강까지 국경을 넓힌데다 카스티야와도 치열한 전쟁을 계속, 더욱더 독립을 재확인시켰다(1179).그의 아들 산초 1세(1185

1211)는 내정(內政)에 노력하고 기사(騎士)에 의한 군제(軍制)의 확립과 도시의 육성에 의하여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