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십자군 원정과 투르크족의 발흥/투르크족의 이슬람 세계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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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족의 이슬람 세계 진출〔槪說〕[편집]

8세기 초 이래 아라비아인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함에 따라 투르크인(터키인)은 이슬람 세계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하고, 아바스 왕조 시대에 그들은 노예나 군대의 용병으로서 점차 그 수를 더해 갔다. 제8대 칼리프 무타심(재위 833

842)이 중앙아시아 출신의 투르크인(人) 노예용병을 친위대로 고용한 후부터 그들은 궁정 안에서 실권을 잡고, 칼리프의 정치에도 간섭하게 되어 아바스 왕조 쇠퇴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9세기에는 이슬람 세계의 각지에 지방 정권이 연달아 독립하게 되는데, 그 중 이집트에 일어난 트룬 왕조(868

905)가 최초의 투르크계 왕조이다. 10세기 이후에 이르자 중앙아시아·서아시아에서의 투르크인의 활약은 눈부신 것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 가즈니 왕조(962

1186), 중앙아시아에 카라한 왕조(999

1212)가 성립되었다. 이어 셀주크족이 나타나서 11세기에 동방 이슬람 세계의 제패(制覇)에 성공했다. 셀주크 왕조의 창립자는 토크룰 베크인데, 그는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고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이란 칭호를 얻어 정식으로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지배자 지위에 올랐다. 그 후 제3대 멜리크샤 시대에는 소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이들 투르크인 지배 시대에 있어서 이란인이 정치적·문화적으로 수행하였던 큰 역할은 그저 보아넘길 수 없다. 이미 가즈니 왕조 시대에 시인 피르다우시나 철학 아비켄나가 나타났으며, 셀주크 왕조에서는 명재상(名宰相) 니자말 물크가 있고 또한 그 보호 아래서 신인 오마르하이얌이나 신학자 가잘리가 활약했다.11세기 말 멜리크샤가 죽자 셀주크 왕조의 대제국은 분열하고, 사방으로부터 십자군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또한 동방에서는 12세기에 카라키타이(西遼)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이어 호라즘 왕국이 세력을 강화하여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으로 진출해 왔다.

셀주크 왕조[편집]

-王朝 Seljuk

투르크계의 셀주크족이 세운 왕조(1037

1308). 10세기 족장(族長) 셀주크가 시르강(江) 하류의 젠트에서 이슬람교로 개종(改宗). 손자 투그릴 베크(재위 1037

1063)는 아우 차킬 베크의 협력을 얻어 이란에 침입, 왕조의 기초를 확립했다. 1055년 바그다드에 들어가 부와이 왕조를 넘어뜨리고, 1058년에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이란 칭호를 받았다. 차킬 베크의 아들 알프 아르슬란(재위 1063

1072)이 뒤를 잇고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여 아르메니아, 소아시아를 정복했다. 그 아들 멜리크 샤(재위 1072

1092)에 이르는 3대가 셀주크 왕조의 전성기였는데 그가 죽은 후 제국은 분열했다. 케르만, 룸(소아시아), 시리아, 이라크에는 일족(一族)의 셀주크 왕조가 독립하고 종가(宗家)인 대셀주크 왕조는 1157년에 멸망했다.

술탄[편집]

Sultan

이슬람 세계에 있어서의 세속적 최고 권위자의 칭호. 원래 이슬람 세계의 최고 권위자는 칼리프로 정교 양권(政敎兩權)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바스 왕조 시대에 칼리프의 권력이 쇠약해짐에 따라 교권(敎權)과 속권(俗權)이 분리되고, 후자의 경우 술탄이 대표하게 되었다. 따라서 칼리프의 존재는 무력화되고 단지 종교적 지위만을 가졌으며, 전제 군주적 권위는 술탄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후에는 이 칭호가 남용되어 현재는 일반 지배자의 칭호로 되어 있다.

니자말 물크[편집]

Nizmal-Mulk (1018

1092)

셀주크 왕조 제2대·제3대 술탄을 섬기고 왕조의 전성기를 구축한 명재상. 그가 제3대 멜리크샤를 위하여 쓴 『정치의 서(書)』는 명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학예(學藝)를 보호 장려하고 각지에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니자미야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 중에서도 바그다드의 학원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했다. 이슬람 최대의 신학자 가잘리도 초빙되어 여기서 강의했다.

호라즘[편집]

Khorazm

아무강(江) 하류 유역, 지금의 히바에 있었던 국가(1097

1231). 아라비아인은 후와리즘이라 부르고, 원조(元朝)의 사서(史書)에는 화자자모(花刺子模)라 기록되어 있다. 셀주크 왕조의 부장(部將) 아누시테긴이 이 땅에 책봉되었는데, 아들 크투브 우딘 무하마드(재위 1097

1127)는 술탄에서 독립, 우루겐치를 수도로 하였다. 그 후 동방에 카라키타이(西遼)가 발흥함에 따라 공납(貢納)하였으나 이와 연합하여 이란, 아프가니스탄으로 진출, 대국(大國)이 되었다. 아라 우딘 무하마드(재위 1200

1220)는 나이만왕과 결탁하여 카라키타이를 멸하고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동서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침입해 온 몽골의 칭기즈칸군에 패하고 왕은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궁한 생활 끝에 죽고, 부흥을 기도했던 왕자도 살해됨으로써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