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십자군 원정과 투르크족의 발흥/후옴미아드 왕조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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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옴미아드 왕조의 분열〔槪說〕[편집]

10세기에는 북아프리카 방면에까지 세력을 넓혀 번영한 에스파냐의 후옴미아드 왕조도 11세기에 이르자 궁정 내부의 분쟁이 계속되어 쇠퇴하였고, 1031년 소왕조(小王朝)로 분열되어 몰락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사라고사, 톨레도,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등으로 분립한 여러 소왕(小王)의 항쟁이 계속되고, 북으로부터는 그리스도교국의 세력이 진출해 왔다.1090년, 모로코에서 건너온 베르베르인의 무라비트 왕조(1056

1147)가 톨레도를 제외한 안달루시아 지방을 지배했다. 그 후 1145년에는 마찬가지로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베르베르인의 무와히드 왕조(1130

1269)가 침입하여 무라비트 왕조를 박멸하고, 이집트 국경으로부터 서쪽 북아프리카, 에스파냐를 합친 일대 제국을 실현하였다. 이슬람 세계에서 최대의 철학자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가 활약한 것은 이 왕조의 초기였다. 그러나 알모하드 왕조도 1212년의 트로사 전쟁에서 카스티야를 주력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제국(諸國)에게 크게 패하여 급속도로 쇠퇴해졌다. 이리하여 13세기 후반 이슬람교국은 겨우 반도 남단에 나스르 왕조의 그라나다 왕국(1232

1492)을 남길 뿐이었다.

아베로에스[편집]

Averroes (1126

1198)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슬람 철학자. 아라비아 이름으로는 이븐 루시드라 한다. 코르도바의 재판관 집안에 태어나서 법학을 수학했으나, 의학·철학에도 타고난 소질을 보였다. 무와히드 왕조의 주치의(主治醫)가 되고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종사하여 훌륭한 주석(註釋)을 썼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 그는 ‘주석자’라 불리었다. 그는 종교와 철학의 일치를 주장했는데, 철학자를 신학자보다 우위에 두고, 또한 합리주의적 경향 때문에 말년에는 추방되어 모로코에서 죽었다.

나스르 왕조[편집]

-王朝 Nasrid (1232∼1492)

이베리아 반도(半島)에 있었던 최후의 이슬람 왕조. 아랍계의 나스르족의 무하마드가 세운 왕조로 수도인 그라나다는 물자가 풍부하여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과 그라나다 대학을 중심으로 학문과 예술의 꽃이 피었다. 그러나 크리스트교도의 국토회복운동에 의해 남쪽으로 후퇴하게 되고, 13세기에 이르러 북쪽은 시에라 네바다 산지(山地), 남쪽은 알메리아의 해안선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영유(領有)했을 뿐이었다. 1469년에 아라곤, 카스티야 두 왕국이 합병한 것은 이 나라에 대해서는 치명상이 되었으며, 최후의 술탄인 무하마드 11세는 모로코에 망명하고(1492), 이 왕조는 21대에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