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십자군 원정과 투르크족의 발흥/11 ~ 12세기의 동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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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2세기의 동남아시아〔槪說〕[편집]

9세기에 통일된 캄보디아(크메르)는 그 후 앙코르 지방에 도읍하고 앙코르 시대라 불리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가장 번성했던 12세기에는 대체로 지금의 크메르(캄보디아), 타이, 라오스를 합친 정도의 영토였으며, 다시 통킹의 이 왕조(李王朝)를 공격하는 한편 참파를 정복하여 4년 동안 지배했다. 역대 왕은 이 지방에 대규모 건설 사업을 일으켜 9세기 말의 야쇼바르만 1세가 세운 도성(都城) 앙코르 톰을 비롯하여 12세기의 앙코르 와트 등 수많은 사원·저수지·병원·숙소(宿所) 등이 건설되었다.크레르족의 정치적 권력은 쟈야바르만 7세의 시대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 왕은 전국에 도로망을 확장하여 각지 상호간의 연락을 긴밀히 함으로써 광대한 제국의 통치에 편리하도록 했다. 그의 제창(提唱)으로 왕국 각지에 많은 병원이 건설되어 모든 계층 사람들에게 개방되었으며, 그 비용은 국가에서 부담했다. 열성적인 불교도였던 자야바르만 7세는 많은 사원건축을 추진했다. 당시의 건축활동은 지극히 열광적이라고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들 건축물의 대부분은 수도 앙코르 톰의 중심부에 솟아 있는 바욘 사(寺)에서 볼 수 있듯이 환상(幻想)에 넘치는 독창적인 장식으로 꾸며졌다.현재의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하여 크메르족이 세운 앙코르 왕조는 당시의 인도차이나 반도 최대의 강국으로 이에 비하면 미얀마나 참파, 그리고 베트남마저도 정치적으로는 비교적 희미한 존재로 보였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7세가 죽은 뒤 앙코르 왕조의 국력은 쇠퇴해 가서 마침내 근접 국가, 특히 성장기에 접어든 타이의 침입과 압박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한편 북베트남에서는 통킹 지방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장기 정권(長期政權)이 나타났다. 그것이 이 왕조(李王朝:大越)이다. 그 외에 11세기부터 캄보디아에 나란히 선 서방의 대국(大國)은 미얀마의 파간 왕조이다. 도서(島嶼) 지역에서는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가 최성기(最盛期)는 이미 지났으나 여전히 세력을 유지했다. 자바섬 중부에는 9세기경 힌두계(系)의 왕국 마타람이 있었다. 이 마타람 왕국은 10세기 전반 신도크왕(재위 929∼947)의 치세 아래서 강대한 권세를 자랑하는 강국이 되어, 그 후계자들은 발리섬에서도 그 권위를 확립했다. 그러나 이 왕국과 스리비자야 왕국과의 사이는 격렬한 공방(攻防)의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10세기 중엽 신도크왕 때에 동부 지역으로 중심을 옮겨 크디리 왕조가 되었다. 산스크리트 문학이 자바어로 번역되는 등 문화적으로 볼 만한 것이 많다.

이 왕조(리 왕조) 베트남(대월)[편집]

李王朝-(大越) (1009

1225)

10세기에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단명(短命)한 왕조가 이어졌으나 11세기 초 이공운(李公蘊:太祖)에 의하여 이 왕조(李王朝)가 창시되었다. 태조는 도읍을 하노이(昇龍)에 두고 통킹 지방을 지배하여 중앙집권의 확립을 도모한 외에 세제(稅制)를 정비하고 징병제(徵兵制)를 실행하는 등 안정 정권의 길을 열었다. 1054년부터 ‘대월(大越)’이란 국호를 썼다. 태조로부터 태종(太宗)·성종(聖宗)·인종(仁宗)까지 4대, 약 1세기에 걸쳐 국력은 융성하였고, 외교적으로도 승리를 거두었다. 태종·성종 때에는 참파를 공격하여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고 인종(仁宗) 시대에는 베트남 정벌(征伐)을 기도한 송(宋)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그러나 12세기 중엽부터 내란이 계속 일어나 왕위를 진씨(陳氏)에게 찬탈당하여 멸망하였다.

파간 왕조[편집]

-王朝 Pagan (1044

1287)

버마인에 의한 최초의 미얀마 통일 왕조이다. 전설에 의하면 기원은 오래되었지만 11세기 중엽에 아노우라타왕이 일어나서 이라와디강 유역을 중심으로 아라칸 지방에서 하(下)미얀마에 이르는 영토를 정복하고 몬인(人)의 세력을 합쳐 강대해졌다. 3대 챤지타왕의 치세(治世)까지 반 세기는 종교·문학·미술 등 몬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 문화가 차차 형성되어 현재의 미얀마 문화의 요람기(搖藍期)라고 말한다. 실론과의 접촉으로 이입(移入)된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敎)는 국가적인 보호를 받아 성하게 되었다. 국력을 기울여 세워진 불사(佛寺)·불탑(佛塔)은 현재에도 수천 가지가 남아 있는데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13세기에 찾아온 마르코 폴로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 도시’라고 견문기(見聞記)에 기록하고 있다. 또 이 무렵 몬 문자를 기초로 미얀마 문자가 만들어졌다. 송(宋)나라에 대해서는 파간(蒲甘)으로 알려지고 조공(朝貢)을 바쳐 왔으나 원(元)나라의 정벌(征伐)을 받아 1287년에 멸망했다.

앙코르 와트[편집]

Angkor Wat

앙코르 지방의 유적군(遺蹟群) 중 12세기 전반 스르야바르만 2세가 세운 사원(寺院). 이 거대한 석조건축물은 그것을 장식한 조각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건축학상의 정밀한 구성면에서도 예술성이 아주 높은 작품이다. 동서 1.5㎞, 남북 1.3㎞의 방형(方形)인데 도랑으로 둘러싸이고 중앙의 건물은 회랑(回廊)이 딸린 3층 피라미드이다. 크메르 건축 미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며, 기둥이나 벽의 장식은 볼 만하다. 특히 인도의 신화에서 취재한 제1층 회랑의 부조(浮彫)는 유명하다. 19세기에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가 소개한 다음부터 이들 유적은 널리 알려졌고, 그 후 정글도 개발되어 연구나 보존 공사가 진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