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프랑크 왕국과 사라센 제국/사라센 제국의 동서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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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센 제국의 동서 분열〔槪說〕[편집]

옴미아드 왕조의 지배에 대한 피정복민의 불만은, 특히 이란계 이슬람교도가 오히려 더 강했는데, 747년 드디어 그들은 동이란의 호라산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 정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옴미아드 왕조를 타도한 것이 마호메트의 백부 아바스의 5대손 아불 아바스(재위 750

754)이다. 그는 750년, 이라크의 쿠파에서 칼리프 지위에 올라서 아바스 왕조를 창건했다. 재위 4년 만에 아불은 병사했는데, 동생인 만수르(재위 754

775)가 칼리프를 계승하여 국내의 반란을 진정시키고, 아바스 왕조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는 티그리스강 근처에 바그다드를 건설하여 제국의 수도를 옮겼다.아바스 왕조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페르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칼리프의 지위는 완전히 전제군주화했다. 칼리프는 이제 신의 예언자의 후계자가 아니라 알라의 직접적인 대리자이며 ‘지상에서의 알라의 그림자’라고 불리었다. 8세기 후반, 마흐디(재위 775

785)와 그의 아들 하룬 알 라시드의 시대가 왕조의 최성기로서 바그다드는 동서 교통의 중심이 되었고, 메소포타미아의 풍부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번영하였으며, 그 곳에서 국제적인 사라센 문화가 발달했다. 그러나 아바스 왕조의 성립과 함께 사라센 제국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우마이야 왕조 멸망 후 동족인 압둘 라흐만은 에스파냐로 피하여 756년 코르도바에서 옴미아드 왕조를 재흥시켰다. 이것이 후(後)옴미아드 왕조이다. 압둘 라흐만 3세는 929년 칼리프를 자칭하여 이슬람 세계에 동서 칼리프가 양립하기에 이르렀다.

아바스 왕조[편집]

-王朝 Abbs

사라센 제국 왕조. 750년 옴미아드 왕조를 타도하고 칼리프가 된 아불 아바스를 시조로 한다. 아불은 마호메트의 백부 아바스의 5대손에 해당하며 그 왕조를 아바스 왕조라고 한다. 또한 칼리프를 자칭한 코르도바의 후(後)옴미아드 왕조에 대칭해서 동칼리프 제국이라고도 한다. 762년 바그다드에 도읍을 정한 후부터 크게 발전하여 8세기 말의 하룬 알 라시드 시대에 최성기를 맞았다.아바스 왕조의 초대 칼리프인 아불 아바스는 즉위 후에도 반혁명을 두려워하여, 신정권에 적대한다고 믿어지는 세력에 대해 탄압정책을 취했다. 또한 북부 이라크의 모술에서 아바스 왕조의 총독을 추방한 주민들은 아불 아바스의 명령에 의하여 학살을 당했는데 그 수는 1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잔인한 탄압으로 아바스 왕조의 권위를 확립하려던 아불 아바스는 즉위 후 겨우 5년만인 754년에 갑자기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다.그의 뒤를 이어 제2대 칼리프가 된 사람은 동생인 만수르였다. 그러나 그의 권위도 쉽게 확립되지 않았다. 초대 칼리프 아불 아바스가 갑자기 사망하자, 소아시아의 비잔틴 전선에 출정해 있던 만수르의 숙부 압둘라가 스스로 칼리프를 칭하면서 만수르에게 도전했던 것이다. 만수르는 혁명의 공로자 아부 무슬림의 도움을 받아 압둘라의 군대를 격파하여 그의 권위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라산의 군세를 배경으로 아바스가의 권위확립에 공헌한 아부 무슬림의 명성이 너무 높아진 데에 대해 불안을 느꼈다. 이에 만수르는 아부 무슬림을 고대 이란의 수도 크테시폰 페허 가까이에 있는 마다인이란 곳에 불러 살해하고 말았다. 또한 그는 알리가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을 다수 처형하고 투옥했다. 만수르는 이와 같이 강권을 발동하여 그 정적(政敵)들, 즉 숙부 압둘라, 영웅 아부 무슬림 그리고 알리가 사람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처럼 음울하고 피비린내 나는 만수르의 치세 중에도, 수도 바그다드의 건설이라는 그의 이름을 후세에 남긴 화려한 사업이 추진되었던 것이다.만수르의 뒤를 이어서 제3대 칼리프가 된 사람은 그의 아들 마흐디였다. 그리고 이 마흐디로부터 제4대 칼리프인 하디의 짧은 치세를 거쳐 제5대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의 치세에 이르는 약 35년 동안이 아바스 왕조의 황금시대였다. 그런데 황금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 있어서조차도 이미 왕조 영역의 세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왕조 영역 내부의 시아파 운동은 왕조의 지배자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던 문제였다. 그런 가운데 786년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아바스 왕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알리의 자손 이드리스가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에 이르러 모로코를 중심으로 하여 이드리스 왕조란 새 왕조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하룬 알 라시드는 809년에 이란 여행 도중 병으로 죽었는데, 그는 죽기에 앞서 세 아들 아민, 마문, 무타심을 자기 후계자로 지명해 두었다. 그러나 9세기부터 왕족간의 권력다툼이 시작되고 제국이 분열하여 쇠퇴의 징조가 나타났다. 909년에는 시아파의 한 파인 이스마일파가 아프리카의 튀니스에서 알리의 자손을 칼리프로 추대하여 파티마 왕조를 건설했다.한편 카스피해 서남 해안 산악지대에서도 시아파 중의 12이맘파를 신봉하고 있던 이란인 계통의 부와이 왕조가 일어나, 중·서부 이란까지 장악함으로써 바그다드가 그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1258년의 몽골 침입 때까지 15대 3백 년 이상 바그다드에서 존속되었다. 그러나 그 칼리프들이 소유하고 있던 권위는 이슬람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종교적인 권위에 불과했으며, 정치적·군사적인 면에서는 실권을 쥐고 있던 부와이 왕조, 셀주크 왕조 등 여러 군주들의 괴뢰에 지나지 못했다.아바스 왕조 국가의 시대는 945년을 고비로 종말을 고하고 서아시아는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그다드[편집]

Baghdd

아바스 왕조의 수도. 티그리스강에 이어져 있고, 교통의 요지에 있다. 제2대 칼리프인 만수르가 762년 이곳에 신도(新都)를 정하여, 4년 후에 도성(都城)을 완성하였다. 이 곳의 중앙에는 직경 약 3.2㎞의 원성(圓城)이 있고, 높이 36m의 칼리프 궁전이 솟아 있다. 이 도시에는 ‘평안(平安)의 도시’란 이름이 붙여지고, 우선 궁전이 완성된 763년에 만수르가 이곳으로 옮겼다. 아바스 왕조의 수도가 전에 아랍인의 본거지였던 아라비아 반도나 시리아가 아니라 옛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에 건설되었다는 것은, 이미 아바스 왕조가 단순한 아랍인의 국가(아랍제국)가 아니라 복잡한 민족을 구성원으로 하는 이슬람교도의 국가(이슬람 제국)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후 이 새로운 수도에는 258년까지 약 5백년 동안 아바스 왕조의 역대 칼리프가 군림했다. 그 결과 이 도시는 이슬람 세계의 정치·경제·문화 등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중심지가 되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당시 바그다드는 당(唐)나라의 장안(長安)을 능가하는 세계 제일의 도시였고, 인구는 백만에서 2백만에 달했다. 그러나 1258년 몽골군이 침입하여 아바스 왕조의 멸망과 함께 번영도 끝났다. 이와 같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重心)의 동방이동은 아바스 왕조 혁명이 후세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었다.

만수르[편집]

al-Mansr (712∼775, 재위 754∼775)

사라센 제국(帝國) 아바스 왕조(王朝)의 제2대 칼리프. 옴미아드 왕조 타도에 공을 세워 형이 죽은 후 칼리프의 자리를 계승했다. 바그다드에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여, 이후 5세기 간 제국(帝國)의 수도로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그는 칼리프 정부를 완비하고 정치기구(機構)를 정비하는 한편, 동로마 침입군(侵入軍)을 격퇴하여 동로마 황제로 하여금 공납(貢納)하게 하였다. 학술에도 뜻을 두어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서(幾何學書) 및 그 밖의 문헌을 수중에 넣었다고 한다.

하룬 알 라시드[편집]

Harun al-Rashid (763

809, 재위 786

809)

아바스 왕조의 제5대 칼리프이다. 제3대 칼리프인 마흐디의 아들. 형의 급사 후 즉위했고, 『천일야화(千一夜話)』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791년부터 비잔틴 제국과 교전하면서 792년부터는 각지의 반란에 대처하였다. 그의 치세는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로서, 그는 학예를 보호하고, 학자·시인을 궁중으로 모아들였기 때문에 사라센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말년이 되자 국내에 반란이 일어나서 그는 정벌 도중 이란 동부에서 병사했다.

후옴미아드 왕조[편집]

後-王朝

코르도바 회교국 또는 서칼리프국이라고도 한다. 옴미아드 왕조 멸망 후 일족인 압둘 라흐만(재위 756

788)이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 피신하여 독립했다. 제8대 압둘 라흐만 3세(재위 912

961) 때 칼리프를 자칭하고 왕조는 최성기에 달했다. 그리하여 후옴미아드 왕조를 서칼리프국, 아바스 왕조를 동칼리프국이라고도 했다.양국은 정치적으로는 대립해 있었지만, 문화·경제적 교류는 활발하여 이베리아 반도에는 고도의 이슬람 문화가 꽃피었다. 수도 코르도바는 서방 이슬람 문화의 중심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으며, 이슬람 문화를 배우기 위해 유럽 유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 결과 이슬람 문화는 10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안달루시아에서 서방 이슬람 문화가 번영하여 중세 서유럽의 사상이나 문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1세기에 접어들면서 국력이 쇠퇴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마침내 크리스트교 세력에 의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