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현대 세계의 새 질서/세계를 뒤흔든 세계대전/소련의 5개년 계획과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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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5개년 계획과 대외관계〔槪說〕[편집]

소련은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일국 사회주의(一國社會主義)를 주장하는 스탈린이 당내 지도권을 잡아 레닌의 후계자가 되었다. 1926년에는 소련의 경제 수준도 전전(戰前)의 상태로 회복되어 철저한 독재적 권력 기구하에서 제1차 5개년 계획이 1928년 10월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일어나는 세계공황의 피해를 최대한으로 피하여 1933년에는 제2차 5개년 계획을 진행하였다. 1936년에는 스탈린 헌법이 제정되어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정권은 주변의 여러 나라와 중립 또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그들의 정권을 보전하는 한편, 1922년에는 독일과 수교조약(라팔로 조약)을 맺어 소련 정부를 승인케 하였고, 네프에 의하여 1924년 이후 영국 등과 국교가 회복되어 통상조약도 체결하게 되었다. 5개년 계획으로 국내 건설을 시작하자 소련은 1930년 이래 리트비노프 외교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평화공세를 취하고, 1933년에는 미국과 국교가 회복되며, 1934년 국제연맹에 상임이사국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스탈린[편집]

Iosif Vissarionovich Stalin (1879

1953)

본명은 쥬가시빌리. 소련의 정치가로 공산 독재정권을 확립하고 발전시켰다. 스탈린이란 강철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1905년부터 몇 번의 유형을 당하면서 레닌과 행동을 같이 하여 11월혁명 후 민족인민위원, 1922년에 공산당 서기, 1924년 레닌의 사후에 독재적 권좌(權座)를 확립하였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永久革命論)에 대하여 자본주의 국가에 포위된 상태에서도 소련에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갈 수 있다고 레닌의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제2차 세계대전에는 연합국측에 서서 파시즘 국가와의 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1956년의 제20회 당대회에서 무자비한 숙청과 개인숭배 등 스탈린이 범한 죄상이 비판을 받아 완전히 격하되었다.

5개년 계획[편집]

五個年計劃

소련의 국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 제1차(1928

32), 제2차(1933

37), 제3차는 1938년에 시작,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다. 소련의 경제 회복은 네프에 의하여 행해졌으며,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건설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제1차의 중점은 중공업, 특히 철강·농업기계의 생산과 농업에 있어서 집단화(특히 콜호스)에 두었다. 공업 부문에서 드러난 것은 돈바스의 기계공업, 시베리아 철도, 드네프르 수력발전소의 건설 정도였다. 농업에서는 네프에 의하여 부농(富農, Kulak)이 생겼으나 농업기계를 사용하는 광대한 콜호스(Kolkhoz, 共營農場)와 소프호스(Sovkhoz, 國營農場)의 조직으로 부농을 없앴다. 이리하여 소련은 공업국이 되었고, 제2차 계획 기간에는 스타하노프 운동이라는 전국적인 강제노동 집행 운동도 전개하였으며, 농업 부문의 집단화도 거의 완성하여 공업과 농업에 있어서 사회주의화를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스탈린 헌법[편집]

-憲法

1936년에 제정한 소련 헌법의 별명. 1918년의 러시아 소비에트(R.S.F.S.R)의 헌법과 1924년의 소련(U.S.S.R)의 헌법을 계승하여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으로 시종일관 형식적이긴 하나 국민의 모든 노동·휴식·교육·사회보장 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헌법상으로는 노동자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인 것, 경제적 기초는 생산 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인 것, 정치적 기초는 소련의 전권리를 쥐고 있는 근로자 대표의 소비에트인 것을 명시하여 사회주의 원칙인 ‘각인(各人)으로부터는 그 능력에 응하여, 각인에게는 그 노동에 응하여’의 정신을 구현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선전문구에 불과하다.

라팔로 조약[편집]

-條約 Treaty of Rapallo

1922년 4월 16일 이탈리아의 제노바 근교인 라팔로에서 독일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우호조약. 같은 달에 개최된 제노바 국제경제재정회의(제노바 회의) 중도에 체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독일과 사회주의국가 소련은 국제적으로 소외된 존재였다. 특히 소련은 제노바 회의에서도 제정러시아의 외채승인(外債承認) 문제로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경제건설과 군강화를 위해 독일과의 교섭을 원했다. 또한 독일도 국방군을 비밀리에 재군비하기 위해 소련의 협력에 적극적 태도를 취했으며, 중공업계도 소련 시장에 매력을 느껴 경제협력에 의욕적이었다. 원래 제네바 회의에서 영국 및 프랑스에 대한 제정 러시아의 채무를 독일의 소련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불시키려했는데, 이 조약에 의해 제정 러시아의 채무와 독일의 대소(對蘇) 배상이 상쇄되어 영국과 프랑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독일과 소련의 제휴(提携)는 서유럽 열국(列國)에 큰 충격을 주었고 당시 국제연맹(國際聯盟) 밖에서 고립되어 있던 독일과 소련이 제휴함으로써 양국의 서유럽에 대한 발언권(發言權)은 크게 증대되었으며, 이 조약 이후 열국은 소련 정부의 정식승인을 고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