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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전선과 에스파냐의 내란〔槪說〕[편집]

파시즘의 대두와 전쟁의 위기에 직면해 각국의 좌익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반(反)파시즘 통일전선, 즉 인민전선이 결성되고 1936년 에스파냐와 프랑스에서 그들의 정부를 수립하기도 했으나 좌·우파의 내분으로 프랑스 인민전선은 붕괴, 에스파냐의 반혁명군과 파시즘의 간섭으로 격렬한 전투 끝에 패배하였다.

인민전선[편집]

人民戰線

1935년 코민테른 제7회 대회에서 인민전선 전략(戰略)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1920년대의 통일전선 전략을 파시즘의 대두라고 하는 새로운 정세 아래 각국의 좌익 정당들이 권력 획득 이전에 당면의 임무로서 평화·민주주의·생활 옹호를 표방, 농민·중산계급·지식인 등 광범한 대중적인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정부를 수립할 필요성을 느껴 규정한 것이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저항운동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인민전선[편집]

-人民戰線

세계공황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서도 1930년 이후 파산(破産)·실업·빈곤이 증대하고, 의회에서는 좌익 제파(諸派)가 다수를 차지했다. 독점 자본가는 흔들리는 지배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파시스트와 제휴하여 반(反)의회주의를 선동하게 되었다. 나치스의 정권 장악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의 파시스트는 1934년 2월 파리에서 폭동을 일으켜 달라디에(Daladier) 내각을 무너뜨렸고 의회정치는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대중은 곧 연속적인 데모로 대응하여 반(反)파쇼 운동은 급격하게 고조됐다. 이러한 대중적 압력으로 사회당은 공산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1934년에 양당의 정책협정이 체결되고, 그 다음해에는 급진사회당과 노동조합 기타 사회단체도 참가하여 이른바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결성하였다.

‘빵·자유·평화’를 요구하는 그들의 강령은 민중을 선동하는 데 성공하여 1936년의 총선거에서 인민전선파가 압승하여 사회당의 블록을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 정권이 성립하였다. 블록 정권은 몇 가지 개혁을 기도하였으나 곤란한 국제 정세와 우익 세력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38년에 급진사회당의 탈퇴로 붕괴하기 시작하여 1939년 2월에는 강령의 정지를 선언하고, 드디어 1940년 4월에 해체되었다.

에스파냐 내란[편집]

-內亂

에스파냐에서는 1931년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치가 실현되기는 하였지만, 국내의 민주화가 철저히 시행되지 못하고 파시즘에 대한 싸움만 격화되었다. 이러한 정세하에 1936년에는 좌익정당의 반파쇼 행동통일협정을 체결하여 총선에 좌익 공화당의 아사니아를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 정권이 성립되어 사회당과 공산당 및 노동조합 등이 지지하였다. 그런데 프랑코가 영도하는 반혁명군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어 에스파냐 내란이 일어났다.

영국과 프랑스는 내란에 불간섭한다는 원칙에서 방관하게 되었으므로 정국은 프랑코에게 유리해져 3년간에 걸쳐 계속된 내란은 1939년 3월 마드리드 함락을 계기로 프랑코가 승리하고 이 내란도 종식되었다.

프랑코[편집]

Bahamonde Francisco Franco (1892

1975)

에스파냐의 독재자. 인민전선이 정권을 장악했던 해에 에스파냐령 모로코에서 반란을 일으켜 반혁명군의 지휘관이 되고 마드리드를 점거함으로써 3년에 걸친 내란을 종식시켰다. 1937년에 독재 정부를 수립하고 총통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추축국(樞軸國)측을 지지하면서 중립을 지켰으나 전후에는 거의 고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