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현대 세계의 새 질서/세계를 뒤흔든 세계대전/제1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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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 [槪說][편집]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은 세계 경제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미국에 빼앗기고 국제 정치상의 지도권도 후퇴했다. 1918년 성년 남자의 보통선거권과 30세 이상 여자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전후의 경제 정세 악화, 무역의 부진, 실업자의 증대 등으로 노동 운동이 활발하게 되며, 의회에 있어서의 노동당 진출이 현저해지고, 1924년에는 최초의 노동당 내각이 맥도널드에 의해서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아일랜드 문제에서는 신페인당(黨)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계속되고, 1922년에는 아일랜드 자유국이라 하여 자치령(自治領)이 되고, 1938년에는 완전히 독립하여 에이레 공화국으로서 분리되었다. 전쟁중의 본국에의 협력 체제를 취하여 발언권을 늘린 자치령 식민지 제국(諸國)은 차츰 영국에서 떨어져나가는 경향에 있었으므로 1923년의 제국회의(帝國會議)에서는 외교상의 자주권을 인정, 영제국(英帝國)을 영연방(英聯邦)이라 개칭하고 실질적으로는 독립국과 마찬가지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憲章)에 의하여 이 관계는 법제화되었다.

맥도널드[편집]

James Macdonald (1866

1937)

영국 수상·노동당 당수. 스코틀랜드의 농업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 참전 반대를 주장, 매국노(賣國奴)라고 비난받았다. 1924년 영국 최초의 노동당 내각을 조직하고 사회 정책의 수행과 소련의 승인 등을 했다. 1929년 재차 내각을 조직했으나 공황(恐慌)을 만나, 노동당에서 제명되면서도 거국 일치 내각(擧國一致內閣)으로 밀고 나가려고 했다.

영연방[편집]

英聯邦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

제1차 세계대전 후, 자치령 제국(諸國)에서 공업화가 진전, 자립화하는 경향이 보이자 영국은 정치적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1923년 제국회의(帝國會議)에서 영제국(英諸國)을 영연방(英聯邦)이라고 개칭하였다. “본국 및 자치령은 영제국 내의 자치체로서 지위는 평등, 상호 종속하는 일 없이 왕관(王冠)에 대한 공통의 충성으로써 결합한다”라고 하여, 자치령에게 실질적 독립국으로서의 자주권을 부여했다. 즉 1926년의 제국회의에서 채택된 이른바 밸푸어 선언 및 1931년의 웨스트민스터 조례에 의하여 본국과 자치령은 지위가 평등하며, 왕관(王冠)에 대한 공통적 충성으로 결합된 자유로운 결합체라고 규정되어, 제국 대신 연방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당시의 연방은 영국 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연방, 아일랜드 자유국 및 뉴펀들랜드로 되어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아일랜드 공화국이 탈퇴하는 반면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 실론(스리랑카), 중앙 아프리카 연방이 가입했고, 또 뉴펀들랜드가 캐나다에 합방되는 등 가입국에 변동이 있었다. 1949년 4월의 영국 연방회의에서는 영연방은 이후 연방(聯邦)이라 하고, 국왕은 독립국가의 자유로운 결합의 상징이 되며, 연방 각국의 국왕에 대한 충성의 서약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 후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 계속 자치독립국가가 속출하여 1975년 10월에는 연방 구성국이 35개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