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현대 세계의 새 질서/세계를 뒤흔든 세계대전/제1차 세계대전 후의 이탈리아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이탈리아〔槪說〕[편집]

이탈리아는 전승국의 하나였으나 강화회의에서는 달마티아 지방 병합 등이 거부되어, 베르사유 체제에 크게 불만을 가지게 된다. 원래 자본주의의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전쟁에 의한 타격은 컸으며, 전후의 사회 혼란은 매우 심했다. 1919년 3월에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에서의 노동자의 공장 렴, 생산 관리로 인한 강력한 행동이 개시되자 남부 농업지역에도 파급되어 전(全)국토가 사회주의 혁명 직전의 정세로 변했다. 이 운동 자체는 사회당 내부의 의견 대립으로 좌절되었으나 자본가·지주·군인 등은 이탈리아의 사회주의화를 두려워하여 반공주의(反共主義)를 부르짖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黨)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세력을 얻은 파시스트는 1922년에 정부를 넘어뜨리고 1924년 선거로 제1당(第一黨)이 되어 이탈리아를 급속하게 파시즘 국가로 이끌어갔다.

라테란 조약[편집]

-條約 Treaty of Lateran

1929년 라테라노 궁전에서 교황청과 이탈리아 사이에 맺은 조약. 피우스 교황청 대표 가스피리와 이탈리아 수상 무솔리니가 교섭에 나서 맺은 조약으로 국제적 의의를 지닌 정치적 조약으로 2개의 의정서로 되어 있다. 제1의정서는 1870년 이래 과거 60년 동안 이탈리아의 로마합병으로 인한 국가와 교회의 대립이 생긴 로마문제의 해결을 도모한 것이다. 이 협정에 의해 가톨릭의 이탈리아 국교화와 교황청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한 바티칸시(市)의 완전한 독립이 확인되었다. 제2의정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 교육·결혼·자산·과세·주교임명 등의 여러 가지 특권이 인정되었다. 이탈리아 왕국과 가톨릭 교회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이 조약에 의해 무솔리니는 국내에서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라테란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공화국 헌법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