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현대 세계의 새 질서/유엔과 전후의 세계/전후의 소련 및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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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소련 및 러시아〔槪說〕[편집]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소련의 피해는 사망자 700만 명 이상, 손해금액 6,790억 루블로서 서유럽 연합국의 손해를 총합한 것보다 약 10배나 되는 큰 전화(戰禍)를 입었다. 그리하여 소련은 다시 경제 계획을 수립, 중공업에 역점을 둔 5개년 계획이 비교적 성공함으로써 전후(戰後) 미국과 함께 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949년에는 원자폭탄을, 1953년에는 수소폭탄을 소유하게 되었고, 1957년에는 대륙간탄도탄(大陸間彈道彈)의 실험에 성공하였으며, 동년 10월 4일에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발사하여 소련의 우월성을 과시, 소위 ‘스푸트니크’ 외교를 전개함으로써 세계평화에 위협을 주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흐루시초프가 최고 실력자로 나타나 스탈린을 비판하였고, 대미(對美) 접근을 시도하면서, 1961년 당대회에서 수정주의를 채택, 중국과의 이념분쟁을 격화시켰다. 흐루시초프는 쿠바위기를 둘러싼 대미 군사대결에서의 패배, 중·소 대립 악화, 경제부진, 당체제의 이완 등으로 당내외의 압력이 고조되어 1964년 10월에 실각하였다.

후르시초프의 뒤를 이은 브레주네프는 코시긴, 포드고르니와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형성, 내정의 모순 극복에 힘쓰는 한편, 외교면에서는 긴장완화, 평화공존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브레주네프의 적극 외교공세는 미국과의 핵전쟁 방지협정의 체결을 비롯하여 독·소 불가침조약의 비준, 헬싱키선언의 채택 등 많은 실무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보였으나 대중공화해의 부진, 체코 침공, 폴란드 폭동, 루마니아의 자주노선 선언, 이탈리아·프랑스·에스파냐 등 서구 공산당의 탈소노선 채택으로 세계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소련 종주권의 퇴색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82년 브레주네프 사망 후 전(前)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 겸 정치국원(政治局員)인 안드로포프가 당서기장으로 선출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안드로포프는 경제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노동자 규율 강화운동도 퇴색하기 시작했다. 반면 그는 반체제인사 탄압을 강행했다. 안드로포프가 1984년 사망하자 당서기장으로 선출된 체르넨코는 평화공존의 필요불가결을 역설하면서도 동서군사력 균형파괴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해 대미(對美) 강경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체르넨코가 집권한 지 1년 만에 사망하자 1985년 고르바초프가 후임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집권 후 요직 개편을 단행해 권력기반을 강화해 나가는 한편, 1985년 7월에는 6개월간의 기한부 핵실험중단조치를 취한 데 이어 1986년에는 2000년까지 지구상에 있는 모든 핵무기를 없앨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1990년 강력한 대통령제, 신헌법의 제정을 관철시키고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시장경제원리의 도입과 경제개혁을 표방한 그의 노선에 대한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1991년 보수파 주동의 쿠데타가 3일 만에 실패로 끝나고, 옐친 주도의 독립국가연합(CIS)이 출범하였다.

CIS가맹국은 1993년 12월 그루지야의 가입으로 12개국으로 증가하였다. 12개의 독립국가연합은 그루지야, 몰도바,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 등이다.

흐루시초프[편집]

Kikita Sergeevich Khrushchyov (1894

1971)

구 소련의 정치가. 우크라이나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 10년간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하였다. 스탈린 사망 후 당 제1서기가 되었으며, 1958년 3월부터 수상을 겸임했고, 1959년과 1961년 두 차례에 걸쳐 미·소 정상회담을 열어 평화공존을 주장하였다. 1963년에는 부분핵실험 금지조약에 조인했는데, 이에 대해 중국은 흐루시초프의 노선을 명백한 수정주의라 규정하여 이념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964년 10월 그는 중국과의 분규, 정실주의, 농업정책의 실패라는 비판을 받아 축출당했다.

스탈린 비판[편집]

-批判

1956년 2월의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 제1서기의 중앙위원회 보고 및 비밀보고에서 스탈린에 대한 평가가 출발점이 되었다. 이 비밀보고는 스탈린의 정책이 오류의 연속이었다고 주장하고, 도덕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스탈린은 폭군이었으며, 스탈린의 정치에 관해서는 대국주의(大國主義)에 기초를 둔 외교정책, 개인숭배에 의한 집단지도의 파괴 등을 열거하고, 흐루시초프 자신이 스탈린의 협력자였다는 것에 대한 책임도 스탈린에게 돌렸다. 이러한 비(非)스탈린화 또는 자유화운동으로 나타난 흐루시초프 체제는 1961년 11월에 제22차 소련 공산당 대회의 스탈린 유체(遺體) 추방결의와 1962년 스탈린 헌법의 개정으로 나타났다. 또한 예술과 문학분야에서도 ‘해빙기’의 작품이 나타났다.

브레주네프[편집]

Leonid Ilyich Brezhnev (1906

1983)

구 소련의 정치가. 18년 동안 소련을 통치. 1931년 공산당에 입당해 여러 당요직을 거쳐 1964년 10월 당 제1서기직에 올랐다. 1971년에 전유럽 안보회의 개최를 촉구하여 1975년 7월 헬싱키 선언으로 조인되었다. 1977년 6월 신헌법을 공포하여 브레주네프 체제를 굳혔다.

고르바초프[편집]

Mikhail Gerbachyov (1931

)

구 소련 초대 대통령. 볼셰비키 혁명 후 출생한 ‘혁명2세대’로서 1985년 서기장으로 선출된 후 권력기반 강화에 힘쓰는 한편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는 1986년 제27차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신(新)강령 채택, 당규약 개정, 제12차 5개년 계획을 확정했고, 1990년 대통령제, 신헌법의 제정을 관철시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1991년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계급투쟁 포기의 소련공산당 새 강령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개혁의지는 보수강경파에 의한 쿠데타를 유발시켜 한때 실각하였다가 3일 만에 복권하고, 공산당을 해체, 소련의 70년 공산 통치사에 종막을 고하였다. 그러나 옐친 등의 주도로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이 탄생하자 1991년 12월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글라스노스트[편집]

Glasnost

고르바초프 정권이 내건 정보공개정책으로 종래에 반소적(反蘇的)이라고 금지된 문학작품이나 영화·연극 등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공개한 것이 아니라 특권계급의 부패는 신랄하게 공개·비판하면서도 고르바초프 대통령 자신과 그 주변에 대한 비판은 금지되었다. 비록 제한적 공개이기는 하나 수동적인 국민을 활성화시키고 보수관료와 사회의 부패를 비판하여 소련의 민주화에 영향을 미쳤다.

옐친[편집]

Boris Nikolaevich Yeltsin (1931

)

러시아 대통령. 1990년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 고르바초프의 미온적인 개혁 정책을 비판하면서 1991년 12월 발트 3국과 그루지야를 제외한 11개 공화국을 참여시켜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하고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옐친은 건강문제로 1999년 조기 사임한 후 푸틴 총리에게 대통령 권한 대행을 임명했다.

푸틴[편집]

Vladimir Putin (1952∼

)

197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대 법대를 졸업한 뒤 국가안보위(KGB) 해외정보국 근무, 1989년 레닌그라드대 부총장, 상트 페테르부르크 부시장, 1997년 대통령행정실 근무, 1998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 1998년 보안국(FSB) 국장, 1999∼2000년 3월 대통령 직무 대행, 2000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동안 푸틴은 신안보개념과 신외교개념 등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러시아의 실추된 위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푸틴이 제일 먼저 착수해야 할 과제는 독자적인 정치권력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다.

푸틴은 공안-정보-무역부처 장악에 힘을 기울이기 위해 KGB 시절의 심복들을 요소요소에 배치시키고 이들을 지렛대로 활용, ‘범죄,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국민 지지를 극대화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장 큰 과제인 경제 재건은 푸틴의 경제정책인 ‘푸티노믹스’도 아직 발표되지 않았고 서방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체첸사태도 해결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