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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국기와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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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Malaysia정치체제:입헌군주제·양원제 수 도:콸라룸푸르(Kuala Lumpur) 인 구:2,309만 2,940명(2002) 면 적:32만 9,293㎢ 소 득:1인당 GDP 3,610달러(2002) 공 용 어 :말레이어 *영어(상용어) 화폐단위 :링기트(Ringgit) 주생산물 :고무, 목재, 코코넛 / 반도체, 직물, 구리, 금, 석유, 천연가스 기 타:이슬람교(국교)

말레이시아의 자연[편집]

Malaysia-自然

말레이시아는 인도차이나 반도 동남단에 위치하며 유라시아 대륙의 최동남부를 형성하고 있다.국토는 거의 남북으로 종행하는 몇 개의 산맥으로 형성되며, 특히 반도 중앙부의 산맥은 표고가 1,000m에 미달하는 일이 별로 없다. 이들 산지대는 열대우림으로, 정글지대이다.평야는 동서의 해안선에 연해서 발달해 있는데 주민도 대체로 이 지역에 거주한다.

말레이시아의 기후[편집]

기후는 연중 변화가 적으며 기온의 연교차도 미미하다. 고온다습이 기후의 특징이다. 서해안은 남서몬순, 동해안은 북동몬순의 영향을 받아 전면적으로 강우량이 많다. 강우량이 연간 5,000㎜ 를 넘는 지역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역사·주민[편집]

-歷史·住民

고대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7

8세기 이후에 수마트라에서 말레이인이 이주해 왔다.15세기에 말라카를 중심으로 말라카 왕국이 건설되었고, 16세기에는 포르투갈,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이 지역을 지배했다. 18세기 후반에는 영국 세력이 인도에서부터 말레이 반도에 미쳤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페낭, 싱가포르, 말라카가 영국의 직할해협식민지가 되었다.20세기 초에는 말레이연방주(페라크, 셀랑고르, 네그리, 셈빌란, 파항)와 암레이비연방주(케다, 켈란탄, 트렝가누, 페를리스, 조호르)와 함께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차대전 후 1946년에 말레이연합, 1948년에는 말레이연방이 발족하고 1957년에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인구 구성은 말레이인 58%, 화교 31.5%, 인도인 8.6%이며 이 밖에 산악지대에 네그리트계의 원주민이 약간 살고 있다. 화교의 비중이 극히 높은 다민족국가이며, 종교도 민족에 따라 달라서 말레이인은 이슬람교, 화교는 불교, 인도인은 힌두교를 각각 신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정치[편집]

-政治

입헌군주제. 말레이시아연방은 기존 말레이시아연방의 11개주와 보르네오 북부의 사바, 사라와크 등 2개 주로 구성된다. 각 주는 자체 헌법과 정부, 의회를 보유, 술탄(首長)의 호선(互選)으로 결정되는 국가원수 밑에서 내각이 행정을 담당한다. 왕은 5년마다 페낭, 말라카, 사바, 사라와크를 제외한 9개주의 세습제 술탄 중 호선되지만 통치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1994년 3월의 개헌으로 국왕의 법안재가권이 대폭 축소되었다. 상원임기는 6년. 각 주의회에서 선출되는 대표 2명씩을 합해 26명과 국왕이 지명하는 40명과 연방직할지대표 3명으로 구성된다. 하원은 직선으로 임기는 5년.독립의 아버지 라만 총리읠 뒤를 이어 1970년 9월 총리에 오른 라카즈는 1972년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와 4개 야당을 통합한 연립정권으로 국민전선(NF)을 결성하여 1974년 8월 총선에서 압승해 정치적 안정의 기틀을 마련했다. 1981년 7월 후세인 총리의 후임으로 마하티르 모하마드 부총리가 제4대 총리로 취임했다.1999년 11월 마하티르 총리는 2000년 6월 임기만료예정인 의회를 조기해산하고, 11월 29일 총선을 실시해 여권연합(BN)이 총 193석의 의석중 148석을 획득, 안정적인 권력기반을 조성했다. 또한, 다민족 국가의 복잡성을 반영하며, 말레이인의 말레이시아를 지향했다. 2003년 10월 압둘라 총리가 취임했다.외교면에서는 중립화정책을 기조로 삼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정치적으로는 비동맹·중립노선을 표방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방국가들과 교역확대, 해외투자유치, 기술전수 등을 위한 경제실리 외교를 전개하고 있으며, ASEAN을 중심으로 한 안보강화 및 경제협력도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과거 식민지경험을 가진 대다수 개발도상국들과 공동연대감을 가지고 서방도상국들과 공동연대감을 가지고 서방국가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정치·경제질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표면적으로는 서방비판노선을 견지하면서도 미국, 일본 , 유럽들을 상대로 경제개발에 필요한 기술도입·자본유치·교역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외화재원조달을 위한 노력과 함께 감소추세에 있는 선진국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자국홍보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말레이시아는 이러한 정책기조를 바탕으로 비동맹회의, 회교기구회의, 연방회의, ASEAN회의 등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고, 개도국간의 G-15 정상회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보스니아, 동티모르 등지에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1975년 중국과 외교관계정상화 후 실질적 경제협력을 모색하고, 대소(對蘇) 관계는 다소 소원하며, 대일(對日)관계는 양호하다.

말레이시아 공산당[편집]

Malaysia 共産黨

공산당은 2차대전중 항일전에 참가했으나, 전후 그 위세가 신장됨으로써 말레이시아의 치안상태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1948년 공산당이 불법화되면서부터 정부와의 무력충돌이 시작되었으며, 화교를 주체세력으로 하는 공산당은 밀림으로 잠입하여 게릴라 활동을 폈다. 화평을 위한 노력도 있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던 중국식 게릴라 세력은 약화되어 현재는 타이와의 접경지대 정글에 약간 숨어 있는 정도이다.

말레이시아의 산업·무역[편집]

-産業·貿易

경제는 전적으로 농업, 광업 등 1·2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농업[편집]

農業

주산물은 쌀, 고무, 코프라 등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지만 아직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고 있어 매년 다량의 쌀을 수입에 의존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부는 관개사업 실시, 벼의 품종개량 등으로 생산 증가에 주력하고 있다. 고무는 수출품의 태반을 차지하고, 합성고무의 발달, 고무농원 노동자의 문제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광업[편집]

鑛業

광업에서는 주석광(錫鑛)과 철광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석광은 서해안 몬타를 비롯한 수개 지역에서 충적토의 준설(浚渫)에 의해 채굴된다. 철광은 동해안에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무역[편집]

貿易

고무, 주석광, 철광석은 수출하며 식량과 공업제품을 수입한다. 따라서 경제는 고무, 주석, 철의 국제가격의 변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약간의 1차 산품만을 생산하는 산업구조는 식민지경제의 유산이다.

말레이시아 사회[편집]

-社會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이 국교인 탓에 이슬람 양식의 건물을 시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립 이슬람교 사원을 비롯해 우부디아 사원 등 아름답고 독특한 양식과 예술미를 자랑하는 많은 사원들이 있다. 사원에서는 코란 외우는 소리가 늘 흘러나온다.말레이시아는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자주 받아 여러 민족이 뒤섞인 다민족국가이지만 저마다 전통적인 고유 풍습을 지키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특히 경제권을 쥐고 있는 중국계 주민들은 정월에 요란한 축제를 벌인다. 사자탈을 쓴 사람들이 누런 갈기를 휘날리며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호랑이탈을 쓴 사람들은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낸다. 타이푸삼은 인도계 국민의 축제이며, 이슬람교를 믿는 말레이인에게 가장 큰 축제는 하리라야로 단식을 마치는 축제이다. 이날에는 수상에서 농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슬람교도들이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이웃과 손님을 접대한다.

말레이시아의 교통·도시[편집]

-交通·都市

육상교통은 다른 동남아시아 제국에 비해 잘 발달해 있다. 특히 서해안을 따라서 포장도로와 철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주요 도시는 수도 콸라룸푸르 외에 피남, 이포, 말라카, 조호르바루 등이다.

콸라룸푸르[편집]

Kuala Lumpur

말레이반도 서해안지방 중앙부의 켈라강 어귀에서 상류쪽으로 40㎞, 싱가포르 북서쪽 360㎞ 지점에 있다. 19세기 무렵까지 밀림으로 덮여 있었으나, 1850년대말 부근에서 주석광산이 발견되면서 중국인들이 들어와 켈라강과 콘바크강 합류점에 마을을 만들면서 비롯되었는데 진흙의 강이라는 뜻이다. 주석광산 개발과 더불어 시가지가 차츰 정비되어 19세기 말에는 셀랑고르주 주도가 되었고 케랑항구와 철도로 이어졌다. 또한 주변에 고무밭이 개척되면서 그 거래도 활발해졌다.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독립한 말레이시아 수도가 되면서 발전하였다. 그후 전국의 교통망이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정비되었다. 이 도시의 인구 구성은 화교가 약 60%, 인도인이 10%이며, 말레이인은 20%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제각기 거주지구가 다르며 종교·언어·직업 등에서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시내에는 국회의사당과 총리의 궁전·국립박물관·대사찰·독립기념경기장·말레이시아대학·종유동굴 등이 있다.

말레이시아 관광명소[편집]

-觀光名所

고전적인 아랍양식, 백색돔, 섬세한 여러 개의 첨탑 등을 지닌 모스크가 주변 야자수와 잘 어울려 아름다운 말레이시아는 많은 이슬람양식의 사원들과 관광명소가 있다.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편집]

Sultan Abdul Samad Building1897년 영국 식민지시대에 건축된 이 건물은 주요 행정부의 부서로 사용되었었다.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로 40m 높이의 시계탑과 햇볕을 받으면 우아하게 빛나는 구리로 만든 돔이 덮여 있어 새해를 맞는 신성한 의식과 8월 31일 국가독립기념일의 시가행진 및 국가행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유서깊은 건물은 근래에는 대법원과 섬유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립회교사원[편집]

National Mosque

전통적인 회교예술을 우아하게 표현한 독특한 디자인의 회교사원이다. 마치 우산을 여러 번 접은 것 같은 모양으로 말레이시아 독립정신을 나타내는 심벌로서도 유명하다. 이 국립회교사원은 도시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국립미술관[편집]

National Art Gallery

콸라룸푸르 기차역이 내려다 보이는 국립미술관은 국립유산보존위원회로부터 역사적인 건물로 지정을 받은 빌딩이다. 다양한 중세의 그림과 동상 외에 많은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국내외 예술인들의 미술품 전시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말레이시아 예술의 보고이다.

호수정원[편집]

Lake Gardens

조용하고 아름다운 호수정원은 두 개의 호수를 사이에 두고 정원이 위치하고 있다. 91.6㏊에 이르는 열대정원은 온갖 공해와 소음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신선함과 푸르름, 정신적인 안정을 제공해준다. 공원 내에 설치된 테마파크로는 난초정원(Orchid Garden), 히비커스 정원(HIbiscus Garden), 사슴공원(Deer Park), 나비공원(Butterfly Park)이 있다.

국립박물관[편집]

National Museum

말레이시아의 가장 중요한 박물관으로 외관은 전형적인 말레이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역사·정치·문화·경제·예술·자연 등 말레이시아의 전체를 조명해 주는 많은 역사적 물품이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옆에는 오래된 철도차량, 자동차, 고대 말레이시아 왕궁의 여러 가지 복제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자멕 이스람 사원[편집]

Masjid Jamek

1909년에 세워진 이슬람사원이다.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콸라룸푸르의 이슬람 사원이며 유연한 곡선미와 돔 등 회교문화의 특징을 발산하고 있는 건물이다.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편집]

Petronas Twin Towers

쌍둥이 빌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88층의 이 쌍둥이 빌딩은 높이 452m의 마천루로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콸라룸푸르 경관의 중심이다. 회교의 상징인 5개의 기둥이 인상적이고 말레이시아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페트로나스(Petronas) 예술단의 본부이며 페트로나스(Petronas) 필 하모니 홀이 이 안에 있다.

중앙시장[편집]

Central Market

고물시계, 보석, 목공예품, 바틱, 주석제품 등 없는 것이 없는 중앙시장은 말레이시아의 전형적인 체취가 흠뻑 풍긴다. 초상화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과 하얀 천에 점점이 색깔을 수놓는 바틱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시장 안에는 말레이시아 전통 음식점이나 서양 음식점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