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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국기와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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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Syrian Arab Republic 정치체제:공화제 수 도:다마스쿠스(Damascus) 인 구:1,758만 5,540명(2002) 면 적:18만 5,180㎢ 소 득:1인당 GDP 1,130달러(2002) 공 용 어 :아랍어 화폐단위 :파운드(£S) 주생산물 :면화, 밀, 포도, 우유 / 섬유, 비료, 유리 / 석유, 인산염

시리아의 자연[편집]

Syria-自然

레바논과의 접경지대에 표고 2,500m에 달하는 안티레바논 산맥이 있고, 그 북쪽에 안사리에 산지가 남쪽으로 달리고 있다.안사리에 산지의 지중해 사면은 연강 강우량 700㎜ 에 달하므로 교목(喬木) 등의 식물이 식생하나, 내륙지방은 오론테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제외하면 기복이 적은 사막과 스텝으로 되어 있다. 요르단과의 접경지대는 현무암 분출(玄武巖噴出)로 인해 불모지가 되어 있다.

시리아의 주민·역사[편집]

-住民·歷史

인구는 해안평야와 오론테스, 유프라테스 두 하천 유역에 밀집해 있으며, 내륙의 사막지대에서는 희박한 분포상을 보이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아랍인이지만 서부와 북부 지방에는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공용어는 아라비아어이나 도시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도 많이 통용되고 있다. 종교는 회교의 수니파(派)가 우세하며 그 밖에 기독교와 회교의 드루즈파가 있다.로마시대 말기에 융성한 팔미라는 시리아 사막 중앙에 있는 대추야자와 올리브나무로 둘러싸인 오아시스이다. 지금도 기둥이 많이 남은 가로의 모습에서 메소포타미아에서 다마스쿠스까지 많은 대상(隊商)이 통과했던 당시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시리아의 정치[편집]

-政治

오랫동안 프랑스의 위임통치하에 있다가 1946년에 독립했다. 1958년 이집트와 통일 아랍공화국을 결성했으나 1961년에 분리했다.대통령 중심제로, 바스당의 아사드가 장기집권을 통해 국내 정세의 안정과 경제발전에 중점을 둔 현실노선을 취하고 있으나, 수니파계 이슬람동지회에 의한 테러가 빈발하는 등 정정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2000년 7월 바샤르 대통령이 취임했다.

시리아의 산업[편집]

-産業

농업이 주산업으로 취업 인구의 26 %를 점한다. 재배작물·경작방법을 결정짓는 것은 강우량이다. 지중해 연안지방은 온난(溫暖) 다습한 기후로 올리브를 비롯해 각종의 과일이 생산된다. 남부의 하우란에서 알레포에 이르는 벨트 지대와 유프라테스 및 그 지류의 카불강 유역지방도 농업조건이 좋아 밀과 면화가 많이 재배된다. 그러나 시리아 사막지대에서는 양·염소·낙타의 유목이 고작이다.공업은 섬유공업이 중심이며, 시멘트·제당·유리 등이 생산된다. 석유의 매장량은 22억 배럴로, 중동 전체로는 보잘것없지만 시리아에서는 제1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시리아의 관광명소[편집]

-觀光名所

시리아에는 구경만 하는데도 이틀이 걸린다는 엄청난 규모의 팔미라 유적을 비롯해 수많은 걸작품의 이슬람건축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팔미라[편집]

Tadmor라는 이름을 가진 이 유적지는 기원후 2세기경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팔미라의 정문 길 건너편에는 버팀목을 세워둔, 무너져 가는 벽이 안타까운 벨의 신전이 있다. 팔미라의 왼쪽으로는 원형극장, 오른쪽으로는 계속해서 폐허가 나타난다. 길이 끝나는 곳은 일종의 공동묘지로 동굴속으로 들어가면 석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정면으로는 17세기 아랍제국의 성(城)인 Qala’alt ibn Maun이 높은 언덕의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팔미라는 고대 그리스군의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장소였다가 217년 로마에 합병되면서 막강한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267년부터 팔미라를 지배한 제노비아 여왕은 암살당한 남편을 대신해 팔미라의 새로운 주군으로서 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군대에 맞서 싸웠다. 여왕은 271년 로마황제 아우렐리안이 팔미라를 정복했을 때 감옥에 갇혔고, 2년 후 팔미라는 로마군에 의해 불타버렸다. 그후 1089년의 지진으로 남은 석주들마저 쓰러져 폐허가 되었다. 그 가운데 셈족이 모신 태양신의 신전 벨(Bel)만이 화를 면하였다. 그 이후로도 이곳은 지진으로 인하여 도시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는데, 지금은 시리아 최고의 관광지가 되어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다마서커스[편집]

Damascus

다마서커스는 이슬람문화의 4대도시(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마서커스) 중의 하나이자 수많은 이슬람 학자들의 수련장이었으며, 십자군원정 당시에는 이를 저지하는 전략적 요지로 역할하였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대상무역로, 아라비아 반도와의 통상로 등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대부분의 볼거리들은 바자르를 둘러싸고 있는 로마시대의 성벽 안에 밀집해 있다. 눈앞에 높은 미나렛과 함께 오마야드 모스크와 유리로 천장을 만들어올린 모스크, 로마시대의 기둥들과 서문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눈을 치료한 의사 아나니아의 교회 등등이 길 사이에 뒤섞여 있다.

알레포[편집]

Aleppo

알레포 요새는 거대한 성벽이 가파른 경사의 언덕 위에 서있고, 남쪽으로 다리가 놓여 있어 성안과 바깥을 연결하고 있다. 가파른 언덕의 아래에는 운하가 성 주위로 파져 있는데 지금은 물이 채워져 있지 않다. 입구를 따라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13세기에 건설된 왕궁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고 부엌, 목욕탕 등 많은 시설을 그때의 느낌으로 볼 수 있다. 대리석에 무늬를 새긴 벌집모양의 현관부터 다채색의 기둥, 통풍 및 환기, 조명시설까지 고려하여 만들어 놓은 천장까지 시리아의 예술가와 조각가들이 완벽한 재현을 위해 공사중이다. 15∼16세기 맘룩 시대에 만들어진 왕좌도 세련되게 복구되었고 원형극장이나 사원들도 재건되고 있다. 성이 포위되었을 때 사용했던 거대한 물저장고와 식량저장고가 있고 살라딘의 아들이 만든 사원과 감옥들도 남아 있다.사원에는 메카를 향한 미후랍과 코란을 세워두었던 사각형의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약탈로 인해 사원에 꾸며져 있던 물품들은 모두 없어졌고 성은 두 번의 몽골족의 침략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이후 1822년 있었던 대지진으로 지금의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국립박물관[편집]

National Museum

국립박물관에는 독특한 시리아의 공예기법과 시리아 전지역에서 발굴한 유적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정원에는 많은 조각상과 모자이크 바닥, 해시계, 비문 등이 외부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는 우마야드(Umayyad, 688) 왕조때 팔미라 남쪽에 세워졌던 건축물을 조각으로 운반해 와 다시 세웠다. 내부는 양쪽으로 전시관이 펼쳐지는데, 오른쪽으로 라타키아(Lattakia), 북쪽의 고대도시 우가리트(Ugarit)에서 발견된 알파벳이 새겨진 판(Alphabet of Ugarit)이 전시되어 있다.기원전 13세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중해도시였던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것중 최고의 유물로 최초의 알파벳이라고 여겨진다. 끝쪽으로 18세기 시리아 양식으로 장식된 방은 나무조각이 아름답고 왼쪽 건물은 1세기 중반 아우구스터스 황제 통치시의 왕족 무덤에서 발견된 환상적인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박물관 지하에는 팔미라의 무덤계곡에서 운송해 온 지하 무덤을 재건하여 전시하고 있는데 이 박물관의 최고 볼것이라 한다. 이 외에도 마리(Mari)의 조각상, 라카(Raqqa)에서 발견된 몽골족 기수, 10세기 도자기 등 굉장히 많은 볼 것이 전시되어 있다.

오마야드 모스크[편집]

Omayyad Mosque

기원후 705년 우마야드 할리파왕조 시대의 알 왈리드 1세(Al-Walid)에 의해 대규모로 지어진 사원으로 수차례의 재앙과 더불어 1898년 대화재 때 대부분 손실되었고 현재는 복구된 모습이다. 사원의 돔(dome) 또한 목조였으나 화재 후 복원하였다. 사원이 들어서기 전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이 건물의 코린트식 기둥이 현재 사원의 외벽으로 남아 있고, 이때 교회 지하 납골당에서 사도 요한의 머리가 발견되어 현재 사원 안에 보관중이다. 3개의 첨탑과 사원의 귀중품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리하는 작은 보고가 있다.건물 정면의 벽화는 전원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슬람의 천국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 기도홀은 길이 130m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왼쪽으로 작은 사당이 있는데 살라딘의 묘(Mousoleum of Salah Ad-Din)이다. 3차 십자군전쟁시 이들을 물리치고 이집트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통일한 역사적인 이슬람 세계의 인물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제우스 신전[편집]

Temple of Jupiter

3세기에 지어진 신전의 일부분이 남아 있는데 두 개의 코린트 기둥이 조각되어진 엔테블레쳐(상판)를 받치고 있다. 기둥 뒤로 오마야드 사원의 첨탑이 보인다.

이란사원[편집]

Sayyida Ruqayya Mosque

독특하고 푸른빛의 타일과 거울로 장식된 현대적인 사원이다. 쉬아파 순교자 후세인의 딸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매우 깨끗하고 환상적이다. 이란 사원답게 여자와 남자가 기도홀이 다르다. 차도르를 입어야 들어갈 수 있다.

원형극장[편집]

Amphitheater

기원후 106년에 지어진 이 원형극장은 규모도 거대할 뿐더러 보존상태도 완벽에 가깝다. 특히 이 원형극장은 거의 성이나 요새처럼 변형이 되어 있는데, 아홉 개의 탑이 세워져 있고 탑의 곳곳에 궁수를 배치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경기장의 바깥둘레에는 운하가 파져 있다. 그리고 탑의 한 곳은 소규모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5,000석의 객석을 가지고 있는 이 원형극장은 요즘도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형극장의 특징은 무대 가운데서 작은 소리로 노래를 해도 맨 끝자리의 사람에게까지 그 소리가 잘 전달된다는 점이다.

아젬 궁전[편집]

Azem palace

오마야드 사원 남쪽에 있는 궁전으로 1749년에 세워졌다. 여러 가지 색상의 돌로 만들어졌고 깔끔함 대리석의 샘과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이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1954년 박물관 ‘시리아의 예술과 전통 박물관(The Museum of the Art and Popular Traditions of Syria)’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많은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의상디자이너가 만든 호화로운 의상전시 코너 외에도 가구, 식기 등 일반적으로 시리아에서 사용하는 민속품을 전시하고 있다.

노리아스[편집]

Norias

노리아스(물레바퀴)는 오론테스 강(Oron- tes river) 주위에 10여 개가 들어서 있다. 지름이 20m에 달하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19세기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물기가 말라버린 강으로 노리아스의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노리아스 맞은편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된다. 노리아스 중 가장 높은 것은 14세기 지어진 Al-Mouhammadiya로 성터의 오른쪽에 있으면 물레 100여 미터 안쪽에 있는 대사원에 물을 공급하였다고 한다.

대사원[편집]

Great Mosque

이열로 등이 달려 있는 8각형의 첨탑이 눈에 띄는 흰색의 사원으로 처음엔 로마 신전의 부속건물로 세워졌으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비잔틴 교회, 사원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어 오다 현재는 사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는 13세기 말 이 지역을 통치했던 두 왕자의 무덤이 있는데 상아를 입혀 조각된 기념비는 기념비적인 목공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벨 신전[편집]

Temple of Bel

현재 팔미라 유적지 중 기원후 32년에 셈족의 신전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사원은 사각의 성벽과 내부 성소로 구분되는데 200m 길이의 성벽이 사면으로 매우 높게 둘러싸여 있는 요새화 되어 있는 곳이다. 넓은 마당 안쪽에 가장 신성한 장소인 신전(cellar)이 있는데 이곳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신전 앞쪽에 거대한 문이 있고 주위로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현재 건물의 뒤쪽에만 남아 있다.신전 내부에는 양쪽으로 움푹 들어간 예배당이 있다. 천장에는 별자리가 묘사되어 있고 오른편엔 팔미라의 세 신이 묘사되어 있다. 전형적인 아랍, 시리아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건물 앞에는 제사를 위한 재단과 식을 진행하던 성직자가 몸을 깨끗이 하도록 물을 받아둔 웅덩이가 남아 있다.

크랙드슈발리에[편집]

Crac des Chevaliers

매우 견고하고 아름다운 섬으로 팔미라와 더불어 시리아 최고의 관광지이다.1031년 홈즈(Homs)의 군주에 의해 내부성이 건설되었고, 12세기 십자군이 점령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확장공사를 했고 외벽을 쌓아 1170년 완공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 전역을 점령할 시 술탄 베이타(Sultan Beybars)에 의해 이곳도 1271년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한 달에 걸쳐 포위와 공격을 받다 지원세력을 받지 못하던 십자군의 항복으로 넘어갔다. 성의 정문입구 위쪽 벽에 아랍어로 쓰여진 글이 있는데 술탄 베이카의 용맹성에 대해 극찬한 내용이라 한다.성은 2개의 구역으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마굿간과 타워가 있는 외각 성벽이고 나머지는 안쪽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이다. 외벽과 내벽 사이에는 깊은 도랑이 파져 있는데 이전에는 빗물을 저장하여 물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물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도 하고 군마를 위해 사용되었다.마굿간은 물과 먹을 것을 주던 구유모습의 형태가 아직도 남아 있다. 원형의 남서 타워(south- west tower)는 포를 넣는 구멍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바라볼 수 있다. 성벽의 꼭대기에서는 아찔한 높이와 함께 주위의 전경을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