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한국의 정치/한국정치의 특질/한국정치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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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政治-特質

민주정치 원칙[편집]

民主政治原則 2차대전이 종결되면서 한반도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북위 38도선 이북에 소련군, 이남에는 미군이 진주한 것이 한국의 국토분단의 실마리가되었다. 대전 후 국제정세가 점차 이데올로기 중심으로 대립되면서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분립하였는데 이것이 그대로 한반도에 반영된 까닭이다. 대한민국은 미군이 주둔하는 남한에 수립되었기 때문에 국제관계에서는 자유진영에 속하게 되고, 따라서 그 정치는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과거에 군주정치하에서만 살아왔고 민주정치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회구조가 이중으로 되고 말았다. 즉 봉건사회구조와 민주사회구조의 중첩인 것이다. 그래서 일반민중은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을 탈피하지 못한 채 민주정치 형식에 매였고, 또 일제치하에서의 왜곡된 식민지 경제체제로 말미암아 독립국가로서의 경제적 기반이 약했다. 그런데다가 국토가 분단되고 이질적인 정치체제의 대립을 가져왔기 때문에 한반도는 항상 전시적인 분위기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민주정치는 그 본래적인 면모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이 드러났다. 이러한 것이 한국정치의 특질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반공적 민족주의 경향[편집]

反共的民族主義傾向 자유진영에 속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입장을 대한민국이 취하게 되니 분단된 국토의 일부에서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에 대하여 이를 용납할 수가 없고, 국토수복을 위하여 이들을 물리치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고 이에 철저한 국민정신을 배양하는 시책을 강행하였다. 이와 같이 반공에 열중하는 한편 승공(勝共)을 위한 국민적인 단결을 호소하기 위하여 민족주의를 고조(高調)하는 경향도 있었다. 민족주의 의식은 오히려 반제국주의적인 것으로서 후진국 민족주의에 공통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이 승공자세 확립과도 관련이 있어 정치체제에 미친 영향이 더욱 크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산주의에 대결하는 강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자유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자유의 한계를 다소 제한하는 합리적 근거를 민족주의적 단결에 구하고자 하는 데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국가가 원칙적으로 추구하는 민주정치에 하나의 특질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행정부 우위의 경향[편집]

行政府優位-傾向 위에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은 양단된 국토에서 항상 공산집단과 투쟁하는 일종의 전시체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원칙적으로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어느 정도의 제한을 필요로 하였고, 이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행정부는 그 권한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현대에 와서 대중민주주의로 접어들게 된 나라는 모두가 정당국가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행정부가 우위(優位)에 서서 입법부를 영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은 대중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고도로 기계화된 산업체제하에서 인격적으로 고립화되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이용하여 더욱 행정부 독재를 감행하는 경향이 있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통감케 하고 있거니와 한국의 경우는 오히려 대중의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이 문제가 된다. 환언하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국민이 봉건적인 정치의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서 입법부나 사법부에 대한 인식이 박약하고 오직 행정부만을 통치권력자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기 때문에 행정부의 권력강화는 용이하다. 그래서 이러한 국민의 정치의식과 대공(對共) 투쟁관계가 엉키어서 행정부우위의 정치풍토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 한국정치의 특질의 하나가 된다.

재벌 위주의 경향[편집]

財閥爲主-傾向 한국은 일제치하에서 식민지경제정책으로 말미암아 그 경제구조가 일본에 예속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독립국가로서는 매우 파행적인 경제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그 경제적 자립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정부는 경제구조의 정상화를 목표로 근대화작업을 추진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러나 이 작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는바, 이를 충당할 수 있는 민족자본이 결여되어 있다는 난점을 또한 한국은 안고 있었다. 그러므로 외자도입이 불가피하게 된 것인데, 이 도입되는 외자를 운영할 수 있는 내자가 또한 필요하므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자를 찾아내어 이를 재벌로 육성하는 정책을 정부는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한국정치는 재벌위주로 되는 실마리가 열리게 된 것이다. 어쨌든 외자에 의한 경제적 근대화작업이 추진되자 외화획득을 위한 수출산업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장려하기 위하여 정부는 더욱 재벌위주의 정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익부(富益富)·빈익빈(貧益貧)의 현상이 들어나게 되었는 바, 이제부터는 부의 균등화를 위한 새로운 작업이 요청되고 있다. <韓 太 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