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음악사/상고시대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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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의 음악[편집]

上古時代-音樂

어느 민족이나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음악은 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상고시대 음악은 각 부족의 제천의식(祭天儀式)에 쓰이는 의식음악(儀式音樂)이었던 것이 옛 중국 문헌에서 단편적으로 보인다. 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예(濊)·마한(馬韓)·변한(弁韓) 등 상고시대 부족국가들은 추수가 끝나는 때, 혹은 씨를 뿌릴 때에 일정한 시기를 택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남녀노유(老幼)가 함께 모여 연일 밤낮없이 춤과 노래로 즐겼다고 기록되었다. 이런 제천의식을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 동예에서는 무천(舞天)이라 불렀다. 한편 한국의 서북지방은 중국과 접해 있어서 한대음악(漢代音樂)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그렇지 못한 지역과 다른 특색을 갖기 시작했다.

삼한의 음악[편집]

三韓-音樂

한국음악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중국의 진수(陣壽, 233-297)가 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으로, 여기에 의하면 마한에서는 5월 하종(下種)과 10월의 농공(農功)이 끝났을 때 귀신에게 제를 지내고 군중들이 밤낮없이 쉬지 않고 소리하고 춤을 추며 술을 마셨다. 이 3세기 마한의 굿음악은 아마 오늘날의 별신굿이나 도당굿에서 굿중패들이 꽹과리와 북을 치면서 춤추는 요란한 음악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3세기 마한·변한의 아마도 강렬하고도 투박하였던 음악은 저 신라 유적에서 발굴된 흑색의 소박한 토기에 비할 수 있겠다.

변진의 악기 고[편집]

弁辰-樂器-

중국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변진에 중국의 축과 형상이 비슷한 현악기(絃樂器)가 있었다. 가야국(伽倻國) 가실왕(嘉實王)이 가얏고를 만들고 왕산악(王山岳)이 거문고를 만들기 전인 한국 최고(最古)의 이 악기는 '고'라고 불리는 가야고의 전신일 것이며 아마 6세기에 가얏고(가야금)가 가야국에서 새로 생긴 후로 자취를 감추고 만 것 같다.

안악고분에 나타난 음악[편집]

安岳古墳-音樂

영화(永和) 13년(357년)이란 연대가 표시된 안악 제3호 분(墳)의 벽화는 여러 가지 중국 고대악(古代樂)을 보여준다. 전실(前室)의 한 벽에는 입고(立鼓)와 소(簫)를 각각 연주하는 2인과 노래하는 사람 1인이 그려져 있는데, 이 입고·소·가(歌)의 그림은 한(漢)의 전정(殿庭)의 고취(鼓吹)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회랑(廻廊)의 벽에는 대행렬도(大行列圖)가 있는데, 후부의 기마악대(騎馬樂隊, 4인으로 되었다)는 일렬 횡대로 고(鼓)·소(簫)·가(茄)(또는 소각(小角))·요를 주(奏)하고 있는데, 이 기마악대의 음악은 한 대(漢代)의 단소요가를 그린 것 같다. 후실(後室)의 벽에는 세 사람의 악인(樂人)이 앉아서 각각 거문고(또는 쟁(箏))·완함(阮咸)·장적(長笛)으로 춤반주를 하는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후전(後殿)의 곡연(曲宴)을 그린 것 같다.

이 4세기의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입고(立鼓)·소(簫)·가(苛)·요 등의 한대(漢代) 악기는 한강 유역에서 발굴된 초두(醮斗)와 함께 한문화의 특색을 보여주고, 마한, 변한의 악(樂)과는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