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음악의 종류/제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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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악[편집]

祭禮樂 천신(天神)·지신(地神)·인신(人神)의 제향(祭享)에 쓰이는 음악을 말한다. 조선 말기까지 환구제·사직제(社稷祭)·종묘제(宗廟祭)·문묘제(文廟祭), 기타 선농(先農)·선잠(先蠶) 등의 제향이 있어 거기에 따른 음악이 연주되었으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문묘에 아뢰는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종묘에 아뢰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 있다.

문묘제례악[편집]

文廟祭禮樂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안자(顔子)·자사(子思)와 같은 중국의 성현과 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과 같은 우리나라 성현에게 제사하는 문묘제향에 쓰이는 음악이다. 중국 상고시대 음악에 기원을 둔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들어왔고 지금도 성균관 대성전에서 봄·가을 석전(釋奠)의식에 쓰이고 있다. 즉 문묘악은 엄밀한 의미의 한국음악이 아니고 중국 고대음악, 즉 아악에 속하며 중국 전래의 고악의 하나인 당악(唐樂)과도 다르다. 동양 최고(最古)의 음악으로 본고장 중국에서는 이미 인멸된 지 오래며 오직 우리나라에만 남아 전한다.

문묘의 연혁[편집]

文廟-沿革

고려 충렬왕(忠烈王) 30년(1304) 6월에 고려 도읍인 개성에 성균관이 창설되어 나라 안의 준재(俊才)를 모아 윤리 도덕을 강명(講明)하고 학술과 문예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삼았다.

조선 태조(太祖) 7년(1398) 한양 천도 후 고려제(高麗制)를 이어 바로 현지(現址)에 문묘를 건축하고 지방에는 따로 향교(鄕校)를 두도록 하여 모두 360교였다.

정종(定宗) 2년(1400)에 소실되어 곧 재건하였고, 선조(宣祖) 25년(1592)에 또 소실되어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및 기타 부속 건물을 연차적으로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묘의 배위[편집]

文廟-配位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여, 배위(配位)로 안자(顔子), 자사(子思), 증자(曾子), 맹자(孟子) 외에 중국 송조(宋朝)의 선현(先賢) 16위(位)와 우리나라 선현 18위를 종향(從享)으로 매년 춘추(春秋) 중월(仲月) 상정일(上丁日)을 가려 고식(古式)대로 석전(釋奠)의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석전[편집]

釋奠

공자가 남기신 인의도덕(仁義道德)의 이상을 근본삼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효제충신의 실천과 수제치평(修祭治平)의 도리를 천명함에 있어 배사모성(拜師慕聖)의 예로써 공자에게 전례(奠禮)를 봉행(奉行)하는 것을 특히 선전이라고 한다.

문묘악의 연혁[편집]

文廟樂-沿革

고려 예종 11년 6월에 하례사(賀禮使) 왕자지(王子之)·문공미(文公美)가 돌아오는 길에 송의 휘종이 대성아악(大晟雅樂)을 보내왔다. 그 뒤 이 대성아악은 환구·사직·태묘(太廟)의 제향과 더불어 문선왕제(文宣王祭) 즉 문묘제례에 썼다. 근세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악제를 계승하였으나 고려 말기에 미비된 점을 바로 잡지 못하다가 세종 때 박연 등 여러 신하가 주례(周禮)·통전(通典)·율려신서(律呂新書) 등 중국의 옛 전적을 참고하여 아악을 만들고 8음(八音-樂器)을 구비하고 아악보를 만들어 옛 주(周)의 제도에 가깝게 바로잡았다. 임진란으로 문묘악은 다른 궁중음악과 더불어 흩어졌으며 광해군 때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준하여 복구하였지만, 이어서 병자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아악복구 사업을 계속하였나 영조 때에 비로소 제 모습대로 바로잡았다. 그러나 성종 때보다 규모가 작았으며 이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묘악에 쓰이는 악기[편집]

文廟樂-樂器

아악에는 아악기가 쓰이고, 당악에는 당악기가 쓰이고, 또 우리의 향악에는 향악기가 주로 쓰이게 마련이다. 문묘제례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아악기만을 용납하고, 당악기는 물론 향악기는 전혀 배제하고 있다.

아악기는 그 재작재료에 따라 쇠(金)·돌(石)·실(絲)·대(竹)·바가지(匏)·흙(土)·가죽(革)·나무(木) 등 모두 8종의 재료로 된 것인데, 문묘악은 이 8종의 악기가 하나도 빠짐없이 고루 사용되는 것이 우선 다르다.

쇠붙이 악기에는 편종(編鐘)과 특종(特種)이 있고, 돌로 된 악기에는 편경(編磬)과 특경(特磬)이 있다.

실붙이란 현악기를 뜻하는데, 등가에서 아뢰는 금(琴)과 슬(瑟)이 이에 속하며, 대는 대붙이의 관악기가 되는데 소(簫)와 지, 약과 적 등이 있다.

바가지란 박(朴)을 재료로 하는 생황(笙簧)이 있으나 현재는 이악기만은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흙은 흙을 고아서 만든 훈(塤)과 부(缶)가 있고 가죽은 짐승의 가죽을 메운 북 종류들로 등가에 놓는 절고(節鼓), 헌가에 두는 진고(晉鼓)와 노고(路鼓), 노도 등이 있으며 나무로 된 악기에는 축(祝)과 어와 박(拍)이 있으나, 박이란 악기는 원래 아악에 쓰이지 않던 것이 뒤에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8음이 구비되기 위해서는 생황이 들어야 하고 순정한 아악기를 고수하려면 박이 제외되어야 하지만 박은 악장격(樂長格)인 전악(典樂)이 들고, 일종 지휘봉에 해당하는 악기인 만큼 크게 허물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문묘악의 악현[편집]

文廟樂-樂懸

당상(堂上)에 악기를 진설(陳設)한 등가(登歌)와 당하(堂下)에 악기를 진설한 헌가(軒架)는 두 곳에서 교대로 주악을 담당하는 형식이다.

등가는 금(琴)과 슬(瑟)을 두어 현악기가 보이는 대신 헌가는 진고(晋鼓) 따위 큰 북과 여타의 북 종류들로 자못 웅대를 다하고 있다.

행례(行禮) 절차에 따라, 혹은 등가에서 혹은 헌가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데, 영신(迎神)은 헌가에서, 전폐(奠幣)는 등가에서(초헌(初獻)도 등가에서), 공악(空樂)은 헌가에서 하고, 이어 아헌(亞獻), 종헌(終獻)이 모두 헌가에서, 철변두는 등가, 송신(送神)과 망료(望燎)는 더불어 헌가에서 아뢴다. 영신에는 응안지악(凝安之樂), 전폐에는 명안지악(明安之樂)을, 초헌은 성안지악(成安之樂),

공악(空樂)은 서안지악(舒安之樂), 아헌 및 종헌에는 성악지악, 철변두에는 오안지악(娛安之樂), 송신과 망료에는 응안지악을 아뢴다.

문묘제례악의 음계[편집]

文廟祭禮樂-音階

문묘제례악 즉 순정한 아악 음계는 비록 그 음넓이가 12율(律) 4청성(淸聲)으로 고작 16음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 음계는 7음계로 이루어진 것이 특이하다.

참고로 당악에서는 6음계로 되고 우리나라 고유의 향악은 거의 5음계로 구성된 것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예외없이 주음으로 시작하여 주음으로 종지되고 있는 점도 이 문묘악에서만 볼 수 있는 악곡 구조인 것이다.

문묘악의 리듬[편집]

文廟樂-rhythm

문묘악은 2분음표 길이의 4음을 소절로 하여(4/2) 모두 여덟 소절로써 한 곡을 이루는데, 매소절 끝음에는 북을 두 번 쳐서 그 북소리로 한 악절이 끝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묘악장[편집]

文廟樂章

문묘악에서는 악장(樂章)이라 하여 1음에 1자(字)씩 4자 1구, 모두 8구 32자의 한문으로 된 가사를 음악에 맞추어 부른다. 이것을 악장이라고 하고, 이를 부르는 차비(差備)를 특히 도창(導唱)이라고 일컫는다.

문묘일무[편집]

文廟佾舞

문묘제향에서 추는 일무(佾舞)는 8일무로 64인이 추며 문무(文舞)는 오른손에 약, 왼손에 적(翟)을 들고 추며, 무무(武舞)는 오른손에 간(干), 왼손에 척(戚)을 들고 춘다. 문묘일무는 중국 고대의 제도를 이어받은 것이다.

종묘제례악[편집]

宗廟祭禮樂

조선의 역대 군왕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종묘의 제향에 쓰이는 음악으로, 지금 쓰이는 것은 세조 때 국초의 고취악과 향악을 참작하여 제정된 것이다.

종묘의 향사(享祀)는 역대 음력으로 4맹삭(孟朔) 즉 1월, 4월, 7월, 10월 그리고 납향일(臘享日) 등 도합 5회에 걸쳐 향사하였으나 근년에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주관으로 1년 1회 즉 5월 첫 일요일을 택해 받들고 있다.

종묘는 그 구조상 종묘와 영령전(永靈殿) 두 곳이 되는데, 이 두 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종묘제례악, 줄여서 종묘악이라 한다.

종묘제례악은 1964년 12월 7일자 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귀중한 전통음악의 하나이다.

종묘제례악의 연혁[편집]

宗廟祭禮樂-沿革

조선의 종묘가 이룩되기는 태조(太祖) 4년(1395)의 일이다.

대궐을 지금 경복궁에 자리잡고, 예전 제도를 따라 오른편에 사직단(社稷壇)을 모으고 왼편에 종묘를 앉히었는데 이것은 고려에서도 그러했다. 건국 초기에 종묘제례악에는 아악도 쓰고 당악도 쓰고, 일관성이 없이 꽤 난잡하였던 성싶어, 괄괄한 성격의 태종(太宗)은 이래 가지고야 어지 예악(禮樂)이라 이르겠느냐고 좌우에게 힐책과 호통이 추상(秋霜) 같았다는 이야기가 실록에까지 보인다.

그러나 성명(聖明)한 임금은 세종(世宗)이다. 세종 7년, 대왕은 친히 종묘에 작헌(酌獻)하시고 환궁하여 이조판서 허조(許稠)에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향악을 익히고 써왔거늘, 이제 보니 종묘대제에 먼저 당악을 쓰고 겨우 종헌에서야 향악을 쓰니 앞으로는 조고신령(祖考神靈)께서 생시에 익히 귀애하시던 향악으로 아뢰게 하는 것이 어떠할지 맹사성(孟思誠)과 의논하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드디어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 세종 때 창작되었지만 이 때는 회례악무(會禮樂舞)로서 제정되고, 종묘의 제례악으로 채택되기는 세조 9년(1463) 정월 제향에서부터였다.

보태평[편집]

保太平

종묘제례악은 크게 나누어서 보태평과 정대업(定大業)으로 나눈다. 보태평은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내용으로 한 것이요, 정대업은 조종의 무공(武功)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보태평은 각기 소곡(小曲) 11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즉 희문(熙文)·기명(基命)·귀인(▩人)·형가(亨嘉)·집녕(輯寧)·융화(隆化)·현미(顯美)·용광정명(龍光貞明)·중광(重光)·대유(大猷)·역성(繹成) 등 11곡이다.

정대업[편집]

定大業

정대업의 구성은 소무(昭武)·독경(篤慶)·탁정(濯征)·선위(宣威)·신정(神定)·분웅(奮雄)·순응(順應)·총수(寵綏)·정세(靖世)·혁정(赫整)·영관(永觀) 등 11곡이다.

종묘악의 악현[편집]

宗廟樂-樂懸

종묘제례악은 등가와 헌가 두 곳에 악기를 진설하고 식차(式次)에 따라 등가에서 혹은 헌가에서 교대로 질주하는 것이 문묘와 똑같다.

먼저 헌가에서 영신을 아뢸 때 음악은 보태평이다. 다음 등가에서 전폐를 행할 때 악곡은 보태평 중 그 전폐희문 1곡으로 당한다. 다음은 진찬(進饌)으로 문묘 제향에서는 도무지 없는 절차에 속한다. 악곡은 보태평계의 진찬 1곡을 사용한다. 다음 초헌례는 등가에서 보태평 전곡 즉 11곡을 가지고 당한다. 다음 아헌과 종헌은 함께 헌가에서 정대업 11곡을 가지고 연주한다. 다음 철변두는 등가에서 진찬을 연주하고 끝으로 송신은 헌가에서 악곡은 동일한 진찬을 연주함으로써 종묘의 제향은 모두 끝나는 것이다.

종묘악의 악기[편집]

宗廟樂-樂器

종묘제례악에서 사용하는 악기는 문묘제례악에서의 아악기 일색인 것과는 좋은 대조로서, 아악기로 편종·편경·축과 같은 악기와 당악기에 속하는 방향(方響)·장고(杖鼓)·해금(奚琴)·아쟁(牙箏)·당피리 따위, 그 밖에 우리나라 고유의 횡취악기인 대금 등 다채롭고 화려한 것이 자못 이색적이다.

종묘악의 선법[편집]

宗廟樂-旋法

보태평은 청황종조(淸黃鍾調) 치선법(徵旋法, sol선법)으로 되었고, 정대업은 주음은 청황종조로 보태평과 같으나 선법이 다른 우선법(羽旋法, la선법)으로 작곡되어 우리나라 음계의 고유한 두 가지 특성을 잘 발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음악에 두 가지 음계를 고루 사용하고 있는 것엔 이 종묘제례악 말고는 성악에 가곡이 있는 정도로, 악곡 구조 면에서 벌써 완벽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종묘악장[편집]

宗廟樂章

종묘제향에서 불리는 노래를 종묘악장이라 하며, 그 내용은 조선 왕조의 조고(祖考)의 문덕과 무덕을 찬앙(讚仰)한 것이다. 순한문으로 된 악장을 제향절차에 따른 음악에 맞추어 부른다.

종묘일무[편집]

宗廟佾舞

종묘제향에서 추는 일무(佾舞)를 말하며, 8일무로 64인이 추며, 문무(文舞)에는 오른손에 약, 왼손에 적(翟)을 들고 추며 무무(武舞)는 전삼렬(前三列)이 검(劍), 후삼렬(後三列)이 창(槍)을 들고 춘다. 종묘일무는 세종 때 창작된 것을 고쳐서 써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