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의 서양음악가/현악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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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편집]

金載勳(1903-1951)

바이올리니스트. 함경남도 흥산(興山) 출생. 1918년 베를린에 유학. 그 곳에서 17년간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1934년 귀국, 이해에 <조선일보> 주최로 독주회를 가졌다. 1936년 이승학(李升學) 등과 함께 경성음악전문학원을 개설하고 원장에 취임했으나 1943년에 폐쇄당했다. 1938년에는 제1회 전조선 창작곡 발표 대음악제(<동아일보> 주최)에서 <비가(悲歌)>를 발표하였으며, 작품으로는 <바이올린 작곡집>이 있다.

계정식[편집]

桂貞植(1906-1975)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일본 도요음악학교 및 독일 뮌헨예술대학을 졸업. 이후 독일에 13년간 체류하면서 1945년 뮌헨교향악단에 15회 출연했다. 귀국 후 고려심포니 및 서울심포니 창립 지휘. 국제오페라협회 창립 대표이기도 하다. 미국 체류 중 안병소와 함께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많이 배출했다.

안병소[편집]

安炳昭(1908- ? )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서울 출생. 예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6세 때 양정고보로 옮긴 다음 청년회관에서 데뷔하였다. 1934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음악대학 바이올린과를 졸업하고 바이올린 제작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1936년에 베를린 세계올림픽대회 축하연주회에서 제1바이올린을 담당(지휘 R. 슈트라우스)하기도 했으며, 1938년 귀국하여 부민관에서 제1회 귀국독주회를 가졌다. 이후 만주 신경음악원 교향악단 독주자 및 악장직을 거쳐, 1939년엔 '안병소 현악 4중주단'을 조직했고, 연악원(硏樂院)을 설립하는 등 여러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또 한국 연주가협회 위원장. 한국음협 최고위원을 역임하고, 1961년에 한국현악합주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계정식과 함께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많이 배출했다.

홍성유[편집]

洪盛裕(1908-1936)

바이올리니스트. 서울 출생. 홍난파가 그의 삼촌이며 부인은 피아니스트인 김원복(金元福). 일본 도쿄고등음악학원을 졸업한 후 잠시 일본 신교향악단에서 제1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다가 귀국하여 중앙보육학교, 경성보육학교 교수를 역임. 연악회(硏樂會) 회원으로 있으면서 부부 귀국 독주회를 개최하는 등 2회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연 바 있다. 난파 트리오의 멤버.

박태현[편집]

朴泰鉉(1909- ? )

첼리스트. 작곡가. 평안남도 평양 출생. 일본 도요음악학교 첼로과 졸업. 서울 백조 혼성합창단 및 경성관 악단을 지휘했고 중앙방송국 음악계장 및 편성과장, 국제음악문화 사장, 문총 초대사무총장, 한국 관악연맹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에 도쿄 세계음악회의에 참가.

작품으로는 박태현 동요곡집 <제1집>, <제2집>, <동요백곡집> 등을 비롯하여 가곡집 <녹이(綠耳)>, <3·1절의 노래>, <한글날 노래>와 동요 <누가 누가 잘하나>, 국민가요로 <애국의 노래>가

다. 음악평론 동인회에 관계한 그는 스즈키(鈴木二三雄)·콘스탄틴 샤피로 등에게 사사했다.

김영의[편집]

金永義(1910-1986)

피아니스트. 경상남도 의령(宜寧) 출생. 이화여전 본과를 나와, 1939년 줄리아드음악학교를 졸업. 1934년 에머슨 홀에서 제1회 연주회를 가졌고 1959년에는 동남아 음악교육자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예술원 회원으로 1960년도 문화포상을 받은 바 있고 이화여대 음대 학장을 역임하였다.

김생려[편집]

金生麗(1911- ? )

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 함경남도 북청(北靑) 출생.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거쳐 1952년 지휘법 연구차 도미, 귀국 후 서울 교향악협회 이사장, 해군정훈음악대장, 경희대학교 음악과장, 서울 시립교향악단 대표, 한양대 음대 교수 역임. 임원식과 함께 교향악운동에 공헌이 크다.

이영세[편집]

李永世(1912-1986)

바이올리니스트. 서울 출생. 1927년에 중앙악우회를 조직하기도 했으며, 1933년 일본 도쿄고등음악원을 졸업, 홍난파를 중심으로 홍성유와 함께 '난파(蘭坡) 트리오'를, 1945년엔 올 포이스 현악 4중주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1945년 조선음악가협회 위원장을 지냈고 1951년엔 고려교향악협회 상무이사로 있다가 한국음악연합회 최고위원직을 맡았다. 같은 해 독일 정부 초청으로 바그너 국제음악제에 참가. 난파 기념사업회 이사, 안익태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재옥[편집]

李在玉(1913- ? )

비올라 주자. 경상남도 남해 출생. 도쿄음악학교 졸업. 오오즈카(大塚淳), 가쓰라(桂平太)에게 사사. 만주 신경교향악단원, 고려교향악단원을 거쳐 서울교향악협회 이사, 육군교향악 단장, 서울대 음대 취주악단 지휘자를 지냈다.

홍지유[편집]

洪志裕(1913- ? )

바이올리니스트. 경기도 양주 출생. 일본 데이코쿠(帝國)고등음악학교 졸업, 수도부속고교 현악부 지도. 8회에 걸쳐 독주회를 개최. 모기레프스키(Mogir­evsky), 베르크마이스터(Werkmeister)에게 사사한 그는 홍성유의 동생이다.

전희봉[편집]

全熙奉(1915- )

바이올리니스트. 서울 출생. 홍난파·안병소·트락텐베르크 등에게 사사. 특히 안병소에게는 전후 10년간 바이올린 기법을 배웠다. 1942년 만주 신경(新京)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주자. 1946년 안병소를 도와 연악원(硏樂院) 간부로 있으면서 아카데미즘 운동의 전위로 연주활동에 진력, 1951년부터 1960년까지 부산에 머무르면서 부산시립교향악단 창립에 기여했다. 1960년 부산시문화상 수상. 1950년 해군군악대 부대장, 1965년부터 대구시립교향악단 악장, 효성여자대학 음악과 교수를 역임.

정봉렬[편집]

鄭奉烈(1916-1987)

바이올리니스트. 평안남도 평양 출생. 도쿄고등음악학원 졸업. 아우구스트 윙켈과 안병소에게 사사. 경성중앙방송국 전속관현악단원, 고려교향악단 및 서울교향악단 창설. 1953년에 동 악단 악장, 경희대 교수 역임.

이봉수[편집]

李奉秀(1917- ? )

바이올리니스트. 일본 고등음악학교 졸업. 신경교향악단, 서울교향악단, 해군교향악단과 시향(市響) 단원을 거침. 바이올린 소나타의 밤 개최. 연세대, 숙명여대 강사, 이화여대 교수 역임.

전봉초[편집]

全鳳楚(1919- ? )

첼리스트. 평안남도 안주(安州) 출생. 일본 데이코쿠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신경교향악단, 서울교향악단에서 활약. 10회의 독주회 개최. 제8차 세계음악회의 한국대표로 파리에 간 적도 있다.

제2회 5월 문예상 음악부 본상 수상. 서울대 음대 학장 역임. 바로크 합주단 상임지휘자였던 그는 김재홍과 함께 유능한 첼리스트를 많이 배출했다.

박민종[편집]

朴敏鍾(1919- ? )

바이올리니스트. 경기도 개성 출생. 1941년에 도쿄 우에노음악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에 동 연구과 수료. 1947년에 시공관에서 독주회 개최를 비롯하여 부산에서 도불(渡佛)고별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1945년에 이화여전 교수, 다음해 서울대 음대 교수로 취임했다. 1948년에 뉴욕에서 독주회를 개최하였다. 1970년 귀국하여 경희대 음대 학장, 서울대 음대 학장 역임.

정명화[편집]

鄭明和(1944- )

첼리스트. 서울 출생. 1965년 미국 줄리아드음악학교, 1970년 줄리아드음악학교 대학원 수료. 1981년 미국과 국내에서 정트리오 연주회를 열었고, 1995년 정명화-김두민 첼로 듀오콘서트, 1995년 서울필과 정명훈의 환경음악제에 협연하였다.

제네바국제콩쿠르 첼로부문 1위, 미국 엑셀런스 2000상·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정경화[편집]

鄭京和(1948- )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서울 출생. 섬세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연주로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줄리아드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1966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2등으로 입상했고, 1968년 리벤트리트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 후 세계의 유명한 관현악단과 협연했으며, 1992년에는 정명훈과 함께 최초로 국제연합 마약퇴치기구 친선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김영욱[편집]

金永旭(1948- )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서울출생. 4세때 부터 피아노를 치다가 9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1960년 연주회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던 피아노 연주자 루돌프 제르킨은 당시 12세였던 김영욱의 천재성에 감탄하여 그를 미국에 있는 커티스음악학교에 입학하게 했다. 1965년 메리 위더 국제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번스타인, 카라얀 등의 세계적인 지휘자가 이끄는 관현악단과 협연을 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현재는 독주자로서의 활동 외에도 독일의 데트몰트국립음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요요 마, 엠마누엘 엑스와 더불어 실내악 연주활동을 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강동석[편집]

姜東碩(1954- )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드음악원과 커티스음악원에서 갈라미안 등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세계의 3대 바이올린 콩쿠르인 몬트리올 콩쿠르, 칼플레시 콩쿠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27세에 롱티보 콩쿠르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한연주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