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지리/향토 생활과 지리/향토와 우리 생활/각 도 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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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편집]

咸鏡道

함경북도와 함경남도를 합쳐서 일컫는 이름. 1509년(중종 4)에 함흥부(咸興府)와 경성(鏡城)도호부의 이름을 따서 함경도라고 일컫게 되었다, 태조 때 영흥(永興)과 길주(吉州)의 이름을 따서 영길도(永吉道)라 하였으나, 1416년(태종 16) 함주(咸州)를 함흥부로 승격시켜 관찰사의 본영을 둠으로써 함흥과 길주의 이름을 따서 함길도(咸吉道)라고 하였다. 1896년(건양 1)에 함경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함흥부·원산부의 2부, 흥남(興南)·북청(北靑)·혜산(惠山)의 3읍 및 함주(咸州)를 비롯한 17군(郡)이 함경남도, 청진부(淸津府)와 웅기(雄基)·나진(羅津)·나남(羅南)·성진(城津)·화령(和寧) 등 5읍과 경성을 비롯한 11군이 함경북도에 편입되었다.

평안도[편집]

平安道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를 합쳐서 일컫는 이름. 관서지방이라고도 한다. 평안이란 평양(平壤)과 안주(安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지명이다. 평안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개발된 곳으로 고조선·위만조선이 건국되었다. 이무렵 북쪽은 부여(扶餘), 동쪽은 예(穢), 남쪽은 마한과 접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8도로 정할 때 평안도는 평안동도와 평안서도로 구분되었다. 1895년(고종 32) 8도제를 23부제로 변경함에 따라 평양·의주·강계의 3부(三府)로 되었고, 1896년 13도제로 개편함에 따라 청천강을 경계로 하여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로 나누어졌다.

경기도[편집]

京畿道

고려의 태조 왕건이 개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경기 지역은 우리 나라 역사의 중심 무대로 부각되었다. 경기라는 명칭의 지방 행정조직이 편제된 것도 고려시대였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개경 주변의 6개 적현(赤縣)과 7개의 기현(畿縣)이 설치 되었는데, 1018년(고려 현종 9)에 이들 적현·기현을 묶어서 왕도의 외곽지역을 정식으로 ‘경기(京畿)’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본래 ‘京’은 ‘천자(天子)가 도읍한 경사(京師)’를, ‘畿’는 ‘천자 거주지인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5백 리 이내의 땅’을 의미한다. 경기라는 말은 당나라 시대에 왕도의 주변지역을 경현(京縣, 赤縣)과 기현(畿縣)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던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고려 성종 때 전국을 10도로 나누어서 이곳을 국내도(國內道)라 하였고, 현종 때에는 양광도(楊廣道)라 개칭하는 한편 그 부근 13현(縣)을 중앙에서 직할하여 경기(京畿)라 칭하였고, 공양왕 때 경기도를 좌우도(左右道)로 나누었다. 조선 태종 2년(1402) 다시 경기도라 칭하고, 1413년 황해·강원·충청 3도와의 경역(境域)을 변경, 1416년 본도의 일부를 강원도에 넘겨주었다. 1896년에는 전도를 4부(府) 30군(郡)으로 하고, 수원에 관찰부를 두어 이를 관할하는 한편, 따로 한성부(漢城府)를 서울에 두고 중앙의 직할로 하였다.

강원도[편집]

江原道

강릉(江陵)과 원주(原州)가 속해 있는 도(道) 이름. 고려 성종 14년(995년)에 지방구역을 10도로 구획할 때 함경도와 합하여 삭방도(朔方道)라 하였다가, 명종(明宗) 8년(1178) 삭방도를 폐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 해안을 명주도(溟州道), 영서인 춘천·철원 등지를 동주도(東州道)라 개칭하였다. 조선 태조(太祖) 4년(1395년) 강원도로 하고, 효종(孝宗)·숙종 때 원양도(原讓道) 또는 강양도(江讓道)라 하였으나 얼마 뒤에 다시 강원도로 고쳤다. 조선시대 중엽에 강릉에서 역명사변(逆名事變)이 일어나서 10년 동안 원춘도(原春道)로 고친 일이 있다. 고종 24년(1887) 춘천에 유수군(留守郡)을 두고 강원도와 그 관할을 달리하였으나 32년(1895)에 도를 폐하고 춘천 유수군을 춘천부로 개칭하여 강릉 및 춘천에 관찰부를 두었는데, 원주·영월·평창·정선의 4군은 충주(忠州) 관찰부로 이속(移屬)되고, 다음 해(1896) 96부를 폐지, 전국을 13도로 분할할 때, 다시 강원도와 강릉도를 병합하여 강원도라 하고 관찰도(官察道)를 춘천에 두었으며, 이 때 원주 이하 4군이 다시 돌아왔다.

충청도[편집]

忠淸道

충청남도·충청북도를 합쳐서 일컫는 이름. 호서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한다. 충주(忠州)와 청주(淸州)가 있는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95년(성종 14) 남·북도를 중원도(中原道)·하남도(河南道)라 하다가 1106년(예종 1) 합쳐서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主道)라고 함으로써 처음으로 충청도라는 명칭이 쓰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95년(태조 4) 양광도에 소속된 군현을 나누어 경기도와 충청도에 이속시켰고 충주(忠州)에관찰사를 두었다. 조선 초기부터 좌·우도(左右道)로 나누어 부르던 것을 96년(고종 33) 전국 행정구역을 13도로 나눌 때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로 분리시켰다.

전라도[편집]

全羅道

전라남도·전라북도를 합쳐서 일컫는 이름. ‘전라’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지명으로, 고려 현종 때의 전라주도(全羅州道)에서 비롯된다. 전라도는 본래 마한의 땅으로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660년(의자왕 20)에 백제가 망하자 당나라가 웅진(雄津:지금의 공주)·마한(馬韓)·덕안(德安:지금의 은진)·금련(金連:지금의 金溝)의 5개 도독부(道督府)를 설치하였다.당나라 군사가 철수한 뒤 신라의 경덕왕은 전주(全州)와 무주(武州)의 2개 도독부를 설치하여 군현(君縣)을 관할하였다. 성종 때 강남도(江南道)와 해양도(海洋道)로 나누어졌으나 현종 때 합쳐 전라주도라 하였고 조선시대부터 전라도라고 하였다. 전라도를 호남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호강(湖江:지금의 금강) 남쪽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경상도[편집]

慶尙道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하여 일컫는 이름. ‘경상’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지명이다. 995년(고려 성종 14) 영남도(嶺南道)·영동도(嶺東道)·산남도(山南道)로 나뉘었다가 1106년(예종 1) 위의 3개도를 합하여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로 하면서 경상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1171년(명종 1) 이를 경상주도와 진합주도(晉陜州道)로 하였다가 1186년(명종 16) 경상주도로 통합, 1314년(충숙왕)에 경상도라는 이름이 정해지게 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경상도를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누었다.

제주도[편집]

濟州道

제주도는 시대에 따라 도이(島夷)·동영주(東瀛州)·주호(州互)·탐모라(耽牟羅)·섭라(涉羅)·탁라(?羅)·탐라(耽羅)·제주 등으로 불려왔다. 3성(三姓:高·梁·夫)의 개벽설화(開闢說話)에 따르면 신라 때 고을나(高乙那)의 후손인 고후(高厚)의 3형제가 신라를 방문하자 왕이 각각 성주(星主)·왕자(王子)·도내(道內)라는 호를 주고 나라이름을 탐라(耽羅)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295년부터 제주라 불렀으며, 1909년 대정군과 정의군을 제주군에 병합할 때 추자도를 완도군으로부터 제주도에 편입시켰다. 1915년 일제에 의해 도제(道制)가 실시되면서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남도 제주도라 하였다. 그 뒤 1946년 8월 전라남도 관할에서 분리되면서 제주도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