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에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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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형
기어코 동경 왔소. 와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러운 데로구려!
동경 오지 않겠소? 다만 이상을 만나겠다는 이유만으로라도―
〈삼사문학〉 동인들이 이곳에 여럿이 있소.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든지 학생들이오. 그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인제 그만하고 늙었나 보이다.
〈삼사문학〉에 원고 좀 주어주오. 그리고 씩씩하게 성장하는 새 세기의 영웅들을 위하여 귀하가 귀하의 존중한 명성을 잠깐 낮추어 〈삼사문학〉의 동인이 되어줄 의사는 없는지 이곳 청년들의 갈망입니다. 어떻소?
편지 주기 바라오. 이곳에서 나는 빈궁하고 고독하오. 주소를 잊어서 주소를 알아가지고 편지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소. 동경서 만났으면 작히 좋겠소?
형에게는 건강도 부귀도 넘쳐 있으니 편지 끝에 상투로 빌[祈]을만한 말을 얼른 생각해 내기가 어렵소그려.
1936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