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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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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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의 물결[편집]

연실이[1]의 고향은 평양이었다.

연실이의 아버지는 옛날 감영(監營)의 이속(吏屬)이었다. 양반 없는 평양서는 영리(營吏)들이 가장 행세하였다. 연실이의 집안도 평양서는 한때 자기로라고 뽐내던 집안이었다.

연실이는 부계(父系)로 보아서 이 집의 맏딸이었으나, 그보다도 석 달 뒤에 난 그의 오라비동생이 그 집안의 맏상제였다. 이만한 설명이면 벌써 짐작할 수 있을 것이지만, 연실이는 김 영찰의 소실 - 퇴기(退妓) - 의 소생이었다.

김 영찰의 딸이 웬셈인지 최 이방을 닮았다는 말썽도 어려서는 적지 않게 들었지만, 연실이의 생모와 김 영찰의 사이의 정이 유난히 두터웠던 까닭인지, 소문은 소문대로 제쳐놓고 연실이는 김 영찰의 딸로 김 영찰에게는 인정이 되었다.

조선에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될 때는, 그때 생모를 여읜 연실이는, 김 영찰의 정실의 맏딸로 민적에 오르고, 연실이보다 석 달 뒤에 난 맏아들은 민적상 연실이보다 일년 뒤에 난 한 부모의 자식으로 오르게 되었다.

조선의 개명(開明)은 예수교라는 물결을 타고 서북(西北)으로 먼저 들어왔다. 이 다분의 혁명적 사상과 평민 사상을 띤 종교는, 양반의 생산지인 중부 조선이며 남조선에서 잘 받지 않는 동안, 홍경래(洪景來)를 산출한 서북에 먼저 들어왔다. 들어오면서는 놀라운 세력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때 바야흐로 한토(漢土)에서는 애신각라(愛新覺羅) 씨의 이룩한 청나라의 삼백 년 기업도 흔들림을 보고, 원세개라 여원홍이라 손일선이라 하는 이름들이 조선사람의 입으로도 수군거리우는 시절에,

예수교라는 새로운 도덕학과 그 예수교에 뒤따라 조선에 들어온 '개명 사상'이 조선에서 제일 먼저 부인한 것은, 양반 상놈의 계급, 적서(嫡庶)의 구별, 도덕만을 숭상하는 구학문 등이었다. 이런 사상의 당연한 결과로서, 조선 온갖 곳에 신학문의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평양에도 청산학교(靑山學校)라는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학도야 학도야 백만 학도야
저기 청산 바라보게
고목은 썩어지고
영목은 소생하네.

이 학교의 교가 삼아 지은 이 창가는, 삽시간에 권학가(勸學歌)로 온 조선에 퍼졌다.

청산학교 창립의 뒤를 이어, 벌써 평양에 몇 군데 예배당의 부속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곧 그 뒤를 이어서 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라 하는 여자 교육의 소학교까지 설립이 되었다.

진명학교는 설립되면서 어느덧 평양 시민에게 '기생학교'라는 부름을 들었다. 장래의 기생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니었다. 현재 재학생 중에 기생이 많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직도 옛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평양 시민들은, 자기네의 딸을 학교에 보내기를 꺼린 것이었다.

더우기 그때의 학령(學齡)이라는 것은 열 살 이상 열 다섯 내지 열 여덟이었으매, 그런 과년한 딸을 백주에 길에 내놓으며, 더우기 새파란 남자 선생한테 글을 배운다든가 하는 일은, 가문을 더럽히는 일이며, 잘못하다가는 딸에게 학문을 가르치려다가 다른 일을 가르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진명여학교의 설립을 무시하여버렸다.

그 대신 '내외'를 그다지 엄히 지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 기생의 딸 혹은 소실의 딸들이 이 학교에 모여들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더우기 여염집의 딸들은 이 학교를 천시하고, 드디어 그 칭호까지도 진명학교라 부르지 않고 기생학교라 부르게까지 된 것이다.

연실이는 진명학교가 창립된 지 석 달 만에 이 학교에 입학하였다.

연실이가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은 단지 소실의 딸이라는 자유로운 신분만이 아니었다.

첫째로는 신학문의 취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무론 기역 니은은 언제 배웠는지 모르는 틈에 배웠지만, 그밖에 무엇보다도 연실이에게 호기심을 일으키게 한 것은 산술이었다.

사랑이 없는 가정[편집]

그 전 해에 소학교에 입학한 오라비동생의 학과 복습을 보살펴주다가 저절로 아라비아 숫자를 알게 되면서 어느덧 오라비보다 앞서게 되어, 오라비는 학교에서 가감을 배우는 동안, 연실이는 승과 제도 넘어서서 분수(分數)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신학문에 취미를 갖게 한 첫째 원인이었다.

둘째로 그가 학교에 가고 싶게 된 동기는 그의 가정 사정이었다.

연실이의 아버지가 과거의 영문 이속(吏屬)이라 하나, 다른 이속들보다 지체가 훨씬 떨어졌다. 다른 이속들은 대대로 이속 집안이든가, 혹은 서북 선비의 집안 후손으로, 여러 대째 내려오는 근본 있는 집안이었지만, 연실이의 아버지는 그렇지 못하였다. 연실이의 할아버지는 군정(軍丁)이었다. 군정 노릇을 하며 상관의 비위를 맞추어서 돈냥이나 장만하였다.

그 장만한 돈으로 아들을 위하여 영리의 자리를 사주었다. 얼마 전만 하여도 군정의 자식이 아무리 돈이란들 영리 자리를 살 수 있으랴만, 그때 마침 유명한 M감사가 평안감사로 내려온 때라, M감사에게 돈만 바치면 아무것이라도 할 수 있었던 시대였더니만치, 감히 바라도 보지 못할 자리를 점령한 것이었다.

목적은 치부(致富)에 있었다. 몇 해 잘 어름거려서 호방(戶房) 자리만 하나 얻으면 몇십만 냥을 모으기는 여반장인 시대라, 호방을 목표로 영리의 자리를 샀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김 영찰이 호방에 오르기 전에 일청전쟁이 일어나고, 일청전쟁의 뒤에는 관제 변혁으로 김 영찰 평생의 꿈이 헛데로 돌아갔다.

이렇게 되매 김 영찰의 입장은 딱하게 되었다. 평양서는 그래도 지벌을 자랑하는 가문에서 김 영찰을 군정의 자식이라 하여 천시하였다. 그러나 김 영찰로 보자면, 자기의 아버지는 여하컨간에 관속이었더니만치 아버지 시대의 동료들과는 사귀기를 피하였다. 개밥의 도토리와 같이 비어져나왔다.

만약 이런 때에 김 영찰로서 조금만 눈을 넓게 뜨고 보았더면, 자기의 장래를 상로(商路)든가 혹은 다른 방면에서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조 대대로 군정 노릇을 하였고, 그 자신은 관리로까지 출세를 하였다가, 관리로서 충분히 자리도 잡아보기 전에 다시 앞길을 잃어버린 사람이라, 관료적 심정과 및 권력에 대한 동경심이 마음에 불타올라서, 다른 방면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여기서 김 영찰은 새로운 정세 아래서의 관리 자리를 얻어보려고 동분서주하였다.

이런 계급과 이런 사상의 사람의 예상사로 김 영찰은 첩 살림을 하였다.

더우기 몇 해 전만 하여도 기생들은 김 영찰을 군정의 자식이라 하여 속으로 멸시를 하였는데, 이즈음 그런 관념이 타파된 위에, 기생으로 볼지라도 예전과 달라, 행랑집 딸 술집 계집애들이 수심가깨나 하게 되면 함부로 기생이 되어, 기생의 지위가 떨어지기 때문에 누구를 괄시하든가 할 수는 없이 되어, 김 영찰 같은 사람은 이런 사회에서,

“어이, 내가 M판서 대감이 평양감사로 내려오셨을 적에, 어어…”

하며 호기를 뽑을 수 있는 고귀한 손님쯤으로 되어서, 화류계의 중심 인물쯤 되었다.

이런 가장에게 매어달린 그의 가정은 냉락한 가정이었다.

이 가정 안에서 연실이를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할 의무를 가진 사람은 오직 그의 아버지뿐이어늘, 아버지라는 사람이 집에 들어오는 일조차 쉽지 않으니, 연실이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연실이의 적모(嫡母) - 민적상으로는 생모 - 는 군정의 며느리로 온 사람이니만치 교양 없이 길러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시집을 왔으면 남편에게라도 교양을 받아야 할 것인데, 남편 역시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 아내를 가르친다든가 할 만한 사람이 못되었다.

군정의 며느리로 시집온 것이 운수 좋아서 영찰의 아내가 되었다고 교만만 잔뜩 가지게 된 사람이었다.

사사에 연실이를 꾸짖었다. 잘못한 일은 둘째 두고 잘한 일이라도 꾸짖었다. 꾸짖는 때는 반드시,

“제 에미년을 닮아서…”

“쌍것의 새끼는 할 수 없어!”

하는 말 끼우기를 잊지 않았다.

왜 그것이 화냥질을 해서[편집]

자기의 소생 자식들을 책할 때도,

“쌍것의 새끼하구 늘 놀아서 그 꼴이란 말이냐?”

하고 연실이를 끌어대었다.

이런 어머니의 교육 아래서 자라는 연실이의 이복동생(사내 둘과 계집애 하나)들이라, 동생들이 제 누나 혹은 언니에게 대해서 취하는 태도도 자기네는 양반이요 연실이는 쌍것이라는 관념 아래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런 가정 안에서 이런 환경 아래서 자라나는 연실이는, 어린 마음에도 온갖 사물에 대한 반항심만 성장되었다.

아무 애정도 가질 수 없는 아버지는 단지 무시무시한 존재일 뿐이었다. 게다가 적모에게 흔히 듣는 바,

“그 낫살에 계집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더러운 녀석!”

일 뿐이었다.

적모며 적모 소생의 이복동생들에게 대해서 애정이나 존경심을 못 갖는 것은 거듭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자기가 갓났을 때에 저 세상으로 간 자기의 생모에게조차 호의를 가질 수가 없었다. 이런 환경의 소녀로서 가슴에 원한이 사무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자기의 생모이겠거늘, 표독하게도 비꼬여진 연실이의 마음은,

‘왜 그것이 화냥질을 해서 나까지 이 수모를 받게 하는가?’

하는 원망이 앞서서, 도저히 호의를 가질 수가 없었다. 부계(父系)로 보아 양반(?)의 자식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싶은데, 그것을 방해하는 모계(母系)가 저주하고 싶었다.

이렇게 가정적으로 정 가는 데도 없고 사랑 붙일 데도 없는 연실이는, 어떤 날 자기 이모 - 노기(老妓) - 의 집에 놀러갔다가, 진명학교라는 계집애 학교가 있단 소식을 듣고, 열 살 난 소녀로서 부모의 승낙도 없이 입학 수속을 하여버린 것이다.

물론 부모에게 알리면 한번 단단한 경을 칠 줄은 번히 알았지만, 경에 단련된 연실이는 그것이 그다지 무섭지도 않았거니와, 두고두고 그 집에 박혀 있느니보다는 한번 경을 치고라도 학교에 다닐 수만 있었으면 다행이었다.

그랬는데 요행히도,

“제 에미를 닮아서 간도 큰 계집애로군. 사내로 태어났더면 역적 도모하겠네.”

하는 독 있는 욕을 먹은 뒤에 비교적 순순히 승낙이 되었다. 아마 어머니로서도, 집안에서 만날 보기 싫은 상년을 보느니보다는, 낮만이라도 학교로 정배를 보내는 것이 속이 시원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명여학교도 창립한 다음 해에는 도로 문을 닫아버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학교의 창립자는 당시 이름높던 청년 지사였다. 그 창립자가 바야흐로 개화의 물결에 타고 오르려는 서북 조선 각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하여 구하여들인 기금이 차차 학교 경영의 기초를 든든히 할 가망이 보였으나, 사위 사정의 급변화는 이 청년 지사로 하여금 자기의 사업에 정진치 못하게 하여, 그는 자기가 나고 자라고 한 땅을 등지고 멀리 해외로 망명을 하였다.

그가 외국으로 달아날 때에 고국에 남기고 간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의 노래가 온 조선 방방곡곡에 퍼지게 된 때쯤은, 진명여학교는 창립자의 후계자인 어떤 여사(女史)가 애써 유지하여보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문을 닫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쓸쓸한 가정에서 한때 자유로운 학원에 몸을 피하였던 연실이는, 다시 가정에 들어박히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 연실이는 열두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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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심을 잃고 경멸심을[편집]

단 이 년의 진명학교 생활은 결코 기다란 세월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이 년이라는 날짜가 연실이에게 일으킨 변화는 적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바의 지식이라는 것은 보잘것이 없었다. 회도몽학(繪圖蒙學)을 제이권까지 떼어서 쉬운 한문 글자를 배우고, 산술은 일찌기 집에서 자습한 분수에까지 다시 이르고, 지금껏 뜻은 모르고,

“당기우기 삼천 리에 도엽지로세,”

하며 부르던 노래가 사실은,

“단기위고 삼천 년의 도읍지로세,”

하는 것으로 단군, 기자, 위만, 고구려의 삼천 년간의 도읍지라는 '평양가'의 일절이라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는 우리 조선에서는 여자라는 것은 노예로 알았거니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개명한 세상에서는 여자도 사회에 나서서 일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하고 사자후하던 진명학교 창립 선생의 말로써, 노예(뜻은 모른다)이던 여자가 교육 받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 등등, 학교에서 직접 얻은 지식보다도 그의 학교 생활 때문에 생겨난 성격의 변화와 인식의 변화가 더욱 컸다.

규칙 없이 순서 없이 너무도 급급히 수입한 자유사상 아래서 교육 받으며, 진명학교 학우들 틈에서 자라는 이년간에, 연실이의 마음에 가장 커다랗게 돋아난 싹은 반항심이었다. 학우들이 대개가 기생의 자식이라, 가정적 훈련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유로이 자라난 이 처녀들은, 부모를 고마워할 줄을 모르고 부모를 공경할 줄을 몰랐다.

이 처녀들의 어머니가 자기네의 집안에서 하는 행동이며 말이며 버릇은 결코 자식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바가 못되었다. 이런 가정 아래서 부모를 공경할 의무를 모르고 자란 이 처녀들은, 따라서 부모(부모라기보다 아비 없는 어미만이 대개였다)를 무서워할 줄을 몰랐다.

어려서부터 부모 사랑은 몰랐지만 부모 무서운 줄은 알면서 자란 연실이는 그것은 처음은 의외였다. 그러나 이년간을 그 처녀들과 함께 지내며 가정이 재미 없으니만치 하학한 뒤에도 동무들의 집에 놀러가서 온 낮을 보내고 하는 동안, 어느 틈에 언제 배웠는지 모르지만, 연실이도 부모에게 대한 공포심을 잃고 그 대신 경멸심을 배웠다.

관념과 인식상의 이런 변화가 드디어 행동으로 나타나는 날이 이르렀다.

한 이 년간 학교에 다닐 동안 연실이는 어머니와 얼굴을 대할 기회가 몇 번이 되지 못하였다. 그전만 같으면 얼굴 보이기만 하면 무슨 트집으로든 반드시 꾸중을 하곤 하였는데, 한 이 년간 늘 학교에 다니면서 밤 이외에는 거의 집에 있을 기회가 없었던 연실이는, 따라서 어머니에게 꾸중들을 기회도 없었다.

이년 동안을 꾸중 안 듣고 지나서 열두 살이라는 나이가 되니, 아직 줄곧 대두고 꾸중을 하면서 지내왔으면 그렇지도 않았겠지만 어머니도 이제는 꾸중만 하기가 좀 안되었는지, 전보다 꾸중의 도수가 적어졌다. 단지 서로 차디찬 눈으로 대하곤 하는 뿐이었다.

그런데 어떤 날(그것은 연실이가 학교를 그만둔 지 만 일년쯤 되었다), 연실이는 동무이던 어떤 계집애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곳서 불쾌한 일을 보았다. 불쾌한 일이라야 계집애들 특유의 일종의 시기일 따름이었다. 그때 마침 그 동무 계집애는 자기의 동무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연실이가 오는 것을 보고 입을 비죽거리며 이야기를 멈추어버렸다.

이 기수를 챈 연실이는 불쾌한 낯색으로 앉아 있다가 드디어 제 동무에게 따져보았다. 따지다가 종내 충돌되었다. 이 엠나이(계집애) 저 엠나이 하면서 맞잡고 싸우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올라서 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이 마침 연실이의 집의 청결날이었다.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청결을 보살피고 있던 어머니가 연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핀잔주었다.

“넌 옛날 같으문 시집가게 된 년이 밤낮 어델 떠돌아다니니? 이런 날은 좀 집에 붙어서 일이나 하디. 대테 어데 갔댔니?”

여느 때 같으면, 이런 꾸중이 있을지라도 연실이는 못 들은 체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독이 오를 대로 올라서 집에 들어선 참이라, 어머니에게 대꾸를 하였다.

“그러기에 일찍 왔디요.”

독 있는 눈초리와 독 있는 말투였다. 어머니가 벌컥 성을 내었다.

독하구 매서운 년[편집]

“요놈의 엠나이, 말 대답질?”

“물어보는 거 대답 안할까?”

흥 한번 코웃음치고 연실이는 방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연실이의 꼬리는 어머니에게 붙잡혔다. 동시에 주먹이 한번 그의 머리 위에 내렸다.

눈에서 푸른 불길이 이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면서 연실이는 홱 돌아서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눈물 한 방울 안 괴었다. 단지 서리가 돋힐 듯 매서운 눈이었다.

“요년, 그래 터다보문 어떡할 테가?”

“죽이소 죽에요! 여러 번에 맞아죽느니 오늘루 죽이라우요!”

“못 죽이랴!” "때려라!"

또 내리는 주먹 아래서 연실이는 어머니의 치마를 잡고 늘어졌다. 주먹, 발질, 수없이 그의 몸에 내리는 것을 감각하였지만, 악에 받친 그는 죽에라 죽에라 소리만 연방 하며 치마자락에서 떨어지지 않기만 위주하였다.

한참을 두들겨 맞았다. 매섭게 독이 오른 이 계집애는 사실 생사를 가릴 수 없도록 광란 상태에 빠진 것을 알고, 어머니가 먼저 무서움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놓아라!”

치마자락을 놓으라는 뜻이었다. 뿌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실이는 더 매섭게 매달렸다.

“죽에라! 죽기 전엔 못 놓겠구나!”

“놓아라!”

“내가 도적질을 했나 화냥질을 했나? 무슨 죄루 매맞아 죽노!”

에누다리를 하면서, 치마에 늘어져서 몸부림치기를 한참을 한 뒤에야, 연실이는 치마자락을 놓아주었다.

“독하구 매서운 년두 있다.”

딸의 악에 얼혼이 난 어머니는 치마를 놓으면서 저쪽으로 피하여버렸다.

연실이도 일어났다. 대성통곡을 하면서 자기의 집을 나왔다.

그러나 길 모퉁이를 돌아서서 통곡소리가 집에 안 들리게쯤 되어서는 울음을 뚝 끊어버렸다. 그런 뒤에는 저고리고름을 들어서 눈물을 닦고, 얼굴에 얼룩진 것을 짐작으로 지우고, 지금껏 울던 태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총총걸음으로 그곳서 발을 떼었다. 향하는 곳은 연실이의 아버지가 첩 살림을 하고 있는 집이었다.

연실이는 그 집까지 이르러서 대문 밖에서도 찾지 않고 방문 밖에서도 찾지 않고, 큰방으로 덥썩 들어갔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므로, 집에 있는 줄은 문 밖에서부터 알았다.

말없이 웃목에 도사리고 앉는 딸을 김 영찰은 첩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가 머리만 좀 들며 바라보았다.

“너 뭘 하러 왔니?”

여전히 뚝 하고 뭉퉁한 소리였다.

“아이구, 너 어떻게 오니?”

그래도 첩은 다정한 티를 보이며 절반 만치 몸을 일으켜 김 영찰에게는 퇴침을 밀어주었다.

드디어 폭발되었다. 연실이는 왕 하니 울기 시작하였다. 아까는 악에 받친 울음이었거니와 이번은 진정한 설움이었다.

“울기는 왜 울어?”

“쫓겨났어요.”

울음 가운데서 연실이는 거짓말을 하였다.

“쫓겨나긴? 민한 소리 말구 어서 집에 가기나 해라.”

그러나 연실이는 울음을 멈추지도 않고 더 서러운 소리를 높였다.

추악한 장면[편집]

쫓겨난 것이 아니라, 단지 어린 가슴이 너무 아파서 육친인 아버지라도 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다정한 말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자위에 나타난 귀찮은 표정은, 이런 방면에 몹시도 예민한 연실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서러웠다. 하다못해 불쌍하다는 표정만이라도 왜 지어줄 줄을 모르는가?

“얘, 너 점심 먹었니? 국수 시켜다줄께 먹을래? 울지 말아. 미워서 내쫓으시겠니? 자, 국수 시켜다줄께 먹어라.”

그러나 연실이는 완강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날밤 연실이는 아버지의 작은댁에서 묵었다. 아버지는 가라고 몇 번을 고함질쳤지만, 연실이도 일어나지 않았거니와, 작은댁도 일껏 아버지를 찾아왔으니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어머님의 노염이 삭은 뒤에 돌아가라고 말렸다.

그날 밤 연실이는 몹시 불쾌한 일을 보았다. 인생의 가장 추악한 한 면을 본 것이었다.

“곤할 텐데 일찍 자거라!”

저녁 뒤에 아버지는 이렇게 호령하여 웃목에 자리를 깔고 자게 하였다. 건넌방에는 첩 장인의 내외가 있는 것이다.

연실이는 자리에 들어갔으나 오늘 낮에 겪은 가지가지의 일이 머리에 왕래하여 좀체 잠이 들 수 없었다.

아버지는 딸을 재운 뒤에 소실에게 술상을 불렀다. 그리고 한참을 술을 대작하였다.

그 뒤부터 추악한 장면은 전개되었다. 이부자리를 펴고도 그 속엔 들지도 않고, 불도 끄지 않고, 이 벌거숭이의 중년 사나이와 젊은 애첩은 온갖 추태를 다 연출하였다.

“검동아, 아가, 무얼 주련?”

“나 보×!”

“너의 본댁으로 가려므나?”

“늙은 건 싫여.”

어느 때는 제법 점잔을 빼는 중늙은이가 어린 첩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그 꼬락서니는 정시치 못할 일이었다.

기생의 딸 가운데 동무를 많이 갖고 있고, 그 사이 삼 년간을 거의 동무들의 집에서 세월을 보낸 연실이는 성(性)에 대해서도 약간의 이해를 갖고 있는 계집애였다. 자기의 아버지와 그의 젊은 첩이 지금 노는 노릇이 무엇인지도 짐작이 넉넉히 갔다.

연실이는 이불 속에서 스스로 얼굴이 주홍빛으로 물들어 오르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낫살이나 든 것이 계집을 보면’ 운운하던 적모(嫡母)의 말은, 자기의 체험에서 나온 것인지 추측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여인에게 대해서 하는 행동은, 제삼자도 얼굴 붉히지 않고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벌써 딸이 잠든 줄 알고 하는 노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잠들고 안 들고 간에 자기의 딸을 웃목에 누이고, 이런 행동이 취하여질까? 이 천박한 꼴을 무가내하 잠들은 체하고 보고 있어야 할 연실이는, 어린 마음에도 이 세상이 저주스러웠다.

동무네 집에서 간간 볼 수 있는 바, 동무의 형 혹은 어머니 되는 기생들이 주정꾼이며 혹은 오입장이들을 상대로 하여 노는 꼴도, 아버지와 작은집이 노는 꼴에 비기건대 훨씬 점잖은 편이었다. 설사 무인고도에서 자기네끼리만 놀아난다 해도, 자기네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어찌 이다지야 흉하게 굴까?

얼굴에 모닥불을 놓는 것같이 달고 뜨거웠다. 숨을 죽이고 귀를 막았다.

이튿날 새벽 겨우 동틀녘쯤, 아버지가 소실을 품고 곤히 잠든 때에, 연실이는 몰래 그 집을 빠져나왔다. 눈물이 연해 그의 눈에서 흘렀다.

나도 동경 유학을 가리라[편집]

그로부터 연실이의 심경은 현저히 변하였다.

연실이는 본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에게서 무슨 벼락이 또 내리지 않을까 근심도 되었지만, 어머니는 연실이의 악에 진저리가 났든지, 들어오는 것을 본체만체하였다.

“천하 맞세지 못할 년.”

그 뒤에도 연실이의 잘못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욕을 하려다가는 스스로 움츠러지곤 하는 것을 보면, 치마자락 놀음에 적지 않게 진저리가 난 모양이었다. 이전에는 끼니때에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큰방에서 먹었지만, 그 일 뒤부터는 막간(행랑)사람을 시켜서 상을 연실이의 방으로 들여보내곤 하였다.

큰방에서 어머니가 친자식들을 데리고 재미나게 지내는 모양을 보면, 당연히 연실이는 부럽기도 할 것이고 어머니 생각도 날 것이로되, 연실이는 어떻게 된 성격의 소녀인지, 그런 감상이 일어나는 일이 없었다.

단지 자기와 동갑 되는 커다란 아들을 어린애나 같이 등을 두드리고 머리를 쓸어주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두드리는 어른이나 두들기우는 아이나, 다 철부지라 보고 멸시하였다.

천하 만사에 정 가는 곳이 없고 정 붙일 사람이 없는 이 소녀는, 혼자서 자기에게 향하여 악을 부리고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학대하며 그날 그날을 보냈다. 현실에 대하여 너무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 소녀는, 이만 낫살의 소녀가 가질 만한 공상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냈다.

장차 어찌될까 하는 근심이든가, 장차 어떻게 하여야겠다는 목적 등은 전혀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 연실이가 자기의 생애의 국면을 타개하여보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진실로 단순한 기회에서였다.

그의 진명학교 때의 동창생 한 사람이 동경으로 유학을 갔다. 때는 바야흐로 '일한합병'의 직후로서, 동경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는 청소년이 급격히 느는 시절인데, 연실이와는 진명학교 때의 동창이던 최명애라는 처녀(연실이보다는 삼 년 위였다)가 동경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이 우연한 뉴스 한 개에 연실이의 마음도 적지 않게 동하였다.

'동경유학'

이 아름다운 칭호에 욕심난 것도 아니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시집갈 때까지 부득이 친정에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집에 그냥 박혀 있던 연실이었다.

결코 집이 그립다든가 다른 데 가는 것이 무서워서 가만 있은 것은 아니었다.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자기의 동창 한 사람이 여자의 몸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는 뉴스에 연실이의 마음도 적잖게 흔들렸다.

‘나도 동경 유학을 가리라.’

돈? 앞서는 것은 돈이로되 연실이에게는 돈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생모의 유물로서 금비녀와 금가락지가 합하여 석 냥중 남아가 있었다. 이백 원은 될 것이었다. 게다가 여차하는 날에는 적모(嫡母)의 금붙이도 허수로이 두었으니 도리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간단하고 편한 길이 또 있었다. 그의 적모는 지아비 몰래 돈을 놀리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들고 나고 하여 어떤 때는 사오십 원에서 수백 원, 때때로는 일 이천 원의 돈까지 집에 있을 때가 있었다.

드나드는 기간의 눈치만 잘 보면 그 기회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손댈 수만 있다면 그 돈은 지아비 몰래 놀리는 돈이니만치, 속으로 배는 앓아도 내놓고 문제삼지는 못할 것이었다. 서서히 기다리며 이런 좋은 기회를 붙들자면 수년 간의 학비를 한꺼번에 마련할 기회도 생기게 될 것이었다.

문제는 어학이었다. 당시에 있어서 일본말이라 하면, '하따라 마따라'니 '하소대시까라니' 쯤밖에는 알지 못하는 연실이었다. 이렁 저렁 '가나' 오십 음은 저절로 배워서 김연실을 'キムヨンシル'라고 쯤은 쓸 줄 알았으나, 일본 음으로는 자기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정도였다.

이런 생매기로 ‘하따라 마따라’ 하는 사람들만이 사는 동경 바닥에 들어서서 더구나 ‘하따라 마따라’로 공부를 하여야겠으니, 적어도 여기서 쉬운 말쯤은 배워 가지고 가야 할 것이었다.

무론 부모에게 알릴 일이 아니었다. 절대 비밀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실이의 현재 입장은 비교적 자유로왔다.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요, 어머니는 치마자락 사건 이래로는 일체로 연실이와 맞서기를 피하여오는지라, 연실이가 나가건 들어오건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만한 선생과 그럴 듯한 장소만 구하면 일부러 집안에 알리기 전에는 자연히 비밀하게 일이 될 것이었다.

화류계에 동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연실이는, 선생을 구하는 데도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성공하였다.

이리하여 그가 열 다섯 살 나는 봄부터 어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선생이라는 사람은 연실이의 동무의 동무(기생)의 오라버니로서, 토지 세부 측량이 한창인 시절에 측량기사로 돌아먹던 사람이었다.

배우는 장소는 그 선생의 누이의 집 한 방이었다. 선생의 나이는 스물 다섯…

혼자서 젊은 남자 선생과[편집]

아직 피지 못하여 얼굴은 가무퇴퇴하고 어깨와 엉덩이가 아직 발달되지 못하여 모(角)진 데가 좀 과히 보이기는 하나, 열 다섯 살의 연실이는 처녀로서의 자질이 잡혀갔다.

그러나 아직 '여인'으로서는 아주 무지한 편이었다. 그의 생장한 환경이 환경인지라, 남녀가 관계한다 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라는 것을(모양으로) 알았지만, 의의(意義)는 전혀 모르는 '계집애'였다.

사내와 계집은 그런 노릇을 하는 것이어니 이만치 알았지, 어떤 특정한 사내와 특정한 여인이라야 그런 노릇을 하는 것이라는 점이며, 그런 노릇에 대한 의의는 전혀 몰랐다. 말하자면 보통 다른 소녀들이 그 방면에 관해서 가지는 지식의 행로(行路)와 꼭 반대로, 도달점(到達點)의 형식을 미리 알고, 그 도달점까지 이르려면, 부끄럼, 사랑, 긴장, 환희 등등의 노순(路順)을 밟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소녀였다.

그런지라, 그만 낫살의 다른 소녀 같으면 단 혼자서 젊은 남 선생님과 대한다는 점에 주저도 할 것이고 흥미도 느낄 것이고 호기심도 가질 것이지만, 연실이는 아무런 별다른 생각도 없이, 단지 한 개 제자가 선생을 대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러 다녔다.

‘아이우에오
가기구게고
다디두데도’

썩 후에 동무들에게,

“나는 다, 디, 두, 데, 도, 라고 배웠어. 하나, 둘을 히도두, 후다두라고 배웠어요. 하하하하!”

‘ガギグゲゴ

ダヂヅデド’는

‘응아, 응이, 응우, 응에, 응오.’

‘따, 띠, 뚜, 떼, 또’였다.

“두마라나이 모노떼수 응아 또우조.”

“응악꼬오니 이기마수”

- 응아구고우(ガクユウ)라고 쓰고 응악꼬오라고 읽는 법이여,

이런 선생 아래서 연실이는 조반을 먹고는 선생의 집을 찾아가곤 하였다. 늦으면 저녁때까지도 그 집에서 놀다 배우다 하곤 하였다.

감동과 흥분을 모르는[편집]

삼월부터 어학 공부를 시작한 연실이는, 오월쯤엔 제법 히라가나로 적은 <심상소학독본> 삼 권쯤은 읽을 수 있도록 진척되었다. 비교적 기억력이 좋은 연실이요, 그 위에 어서 배워야겠다는 독이 있느니만치 어학력이 놀랍게 진척되었다. 삼권쯤부터는 선생이 벌써 알지 못하여 쩔쩔매는 데가 많이 있었지만, 어떤 때는 선생보다 연실이가 뜻을 먼저 알아내곤 하였다.

그 어떤 날이었다.

본시의 빛깔도 깜퇴퇴하거나 아직 피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반질하게 검게 된 얼굴을 선생의 가슴 앞에 디밀고 앞 뒤로 저으면서 독본을 읽고 있던 연실이는, 문득 선생의 숨소리가 괴상하여가는 것을 들었다.

연실이는 눈을 들어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까도 선생이 술먹은 줄은 몰랐는데, 지금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 점을 연실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순간에 선생의 얼굴에는 싱거운 미소가 나타나며 팔을 펴서 연실이의 어깨를 끌었다.

연실이는 선생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순간에 직각하였다. 끄는 대로 끌리었다.

그날 당한 일이 연실이에게 정신상으로는 아무런 충동도 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연실이가 막연히 아는 바, 사내와 여인이 하는 노릇으로, 선생은 사내요 자기는 여인이니 당하게 되면 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쯤으로 여겼다.

그때 연실이가 좀 발버둥이를 쳐 반항을 한 것은, 오로지 육체적으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 그 노릇을 하는 것이 여인의 의무라 하는 점이 괴로왔다.

곧 다시 일어나서 아까 하던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양을 사내는 누워서 번번히 바라보고 있었다.

좀 있다가 동무의 동무(이 집 주인 기생)의 방에 건너가서 체경을 보고 그는 비로소 약간 불쾌를 느꼈다. 아침에 물칠하여 곱게 땋아늘였던 머리의 뒷덜미가 헝클어진 것이었다.

이 사건에 아무런 흥미나 혹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연실이는, 이튿날도 여전히 공부하러 사내를 찾아갔다. 그날 또 사내가 끌어당길 때에 문득 어제 머리 헝클어졌던 것이 생각이 나서,

“가만, 베개 내려다 베구요.”

하고 베개를 내려왔다.

그 뒤부터 사내는 생각이 나면 베개를 내려오라고 하곤 하였다. 정 귀찮은 때가 아니면 연실이는, 대개 베개를 내려왔다. 공부에 피곤하여 좀 쉬고 싶은 때는 스스로 베개를 내려오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사내와 여인이 때때로 하는 일이어니쯤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연실이는, 염증도 나지 않는 대신 감흥도 얻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느낀 바 육체적 고통이 덜하게 되었으므로, 직전에 느끼는 공포의 긴장이 덜하게 된 뿐이었다.

연실이에게 말하라면 사람이 대소변을 보는 것은 저마다 하는 일이지만, 남에게 보이기는 부끄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일은 좀더 대소변보다 비밀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저마다 하는 일쯤으로 여기었다. 남에게 보이고 더우기 언젠가 제 아버지와 소실이 하던 꼴대로 추잡히 노는 것은 더러운 일이지만, 비밀히 하는 것은 대소변쯤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연실이는 연하여 그 선생에게 다녔다. 이제는 더 가르칠 만한 것이 그 선생에게는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그냥 다닌 것이었다. 선생은 베개를 내려놓는 맛에 그냥 받았다.

그냥 어학을 배우는 한편으로 집에서는 돈 거간의 출입에 늘 주의를 가하고 있던 연실이는, 그해 가을 어떤 날, 적지 않은 돈이 어머니의 손으로 들어온 것을 기수채었다.

옷이며 짐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던 연실이는, 그날 밤 큰방에 들어가서 어름어름하다가 어머니가 변소에 간 틈에 농문 안에 허수로이 둔 돈 뭉치를 꺼내어,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자기 방으로 건너와서, 저녁때 몰래 준비했던 작다란 가방을 보자기에 싸 가지고 발소리를 감추며 집을 나섰다.

한 시간쯤 뒤에는 부산으로 가는 직행 열차에 연실이의 작다란 몸이 실리어 있었다.

아무 애수(哀愁)도 느끼지 않았다. 가정에 대하여 아무 애착도 없던 그는, 집을 떠나는 것도 서럽지도 않으며, 어려서부터 남을 의뢰하는 습관이 없이 자란 그는, 낯설고 말 서투른 새 땅에 가는 데도 일호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이었는지 혹은 그의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 만사에 감동과 흥분을 느낄 줄을 모르는 연실이는, 아무 별다른 감상도 없이 평양 정거장을 떠난 것이었다.

‘혹은 이것이 영결일지도 모르겠다.’

가정에 대하여 애착이 없고 장차 사오 년은 넉넉히 지낼 여비를 몸에 지닌 그는, 이번 떠나면 장차 영구히 이 땅에는 다시 올 기회가 없을 듯싶어서 도리어 내심 시원하였을 뿐이었다.

처녀로서의 감정[편집]

“아이구 퍽 곤하겠구나!”

미리 편지도 하였고 하관(연실이는 하관<下關>을 곧 동경으로 알았다)서 전보도 쳐서 알리었던 최명애가 '심바시(新橋)' 정거장까지 나와서 연실이를 맞아주었다.

연실이는 단지 싱그레 웃었다. 사실 아무런 감상도 없었다. 올 데까지 왔다 하는 생각만이었다. 공상 혹은 상상이라는 세계를 가져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자란 연실이는, 현실에 직면하여서야 비로소 현실을 인식하는 사람이지, 미리 어떨까 하고 생각하여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동경도 단지 가정에 있기가 싫어서 온 것이지, 무슨 큰 희망이 있어서 온 바가 아니다. 따라서 동경이 어떤 곳인가 하는 호기심도 없이 덜컥 온 것이었다.

최명애의 인도로 우선 명애의 하숙하고 있는 집에 들었다. 그리고 동경 도착한 지 수일간은 최명애의 앞잡이로 동경구경도 하며 일변 화복(和服)도 지으며 장래 방침 토론도 하며 - 이렇게 보냈다.

그 결과로서 연실이는 금년 겨울은 어학을 더 준비해 가지고 명년 새 학기에 어느 여학교에 입학을 하기로 대략 결정하였다. 어학을 연습하기에는 마침 명애의 들어 있는 하숙이 예전 사족(士族) 집 과부 노파 단 혼자의 집이라 주인 노파를 상대로 연습하기로 하였다.

이해 겨울 연실이는 신체상에 여인으로서의 중대 변화기를 맞았다. 금년 봄부터 철모르고 사내를 보기는 하였지만, 아직 소녀를 면치 못하였던 연실이는 이 겨울에야 비로소 여인으로서만이 보는 한 달에 한번씩의 변화를 보았다.

이 육체상의 변화·발달은 육체상으로뿐 아니라 정신상으로도 연실이에게 적지 않은 변화를 주었다. 막연한 공포감, 그리움, 애처로움, 꿈 등등, 그가 아직 소녀 시기에 느껴보지 못한 이상야릇한 감정 때문에, 복습하던 책도 내어 던지고 눈이 멍하니 한 시간 두 시간씩을 보내는 일도 간간 있게 되었다.

아직껏 그의 마음에 일어보지 못한 부모며 동생에게 대한 그리움도 생전 처음으로 그의 마음에 일었다. 선배(先輩) 동무인 명애에게 집에서 연락부절로 이르는 가족 사진이며 편지 등등이 부러워서, 명애가 학교에 간 틈에 그의 편지를 몰래 꺼내보고, 나도 이렇게 편지를 한번 받아보았으면 하고 탄식도 하여보았다.

오랫동안 불순한 가정에서 길러났기 때문에, 한편으로 쫓겨나가 있던 그의 처녀로서의 감정은, 처녀 전환기의 연실이에게 비로소 이르렀다.

이듬해 봄, 그가 명애의 다니는 학교에 입학을 한 때는 그의 비틀어진 성격도 적지 않게 교정이 된 때였다.

입학하면서 그는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막연하나마 감정과 감동을[편집]

학교에 입학을 하고 기숙사에 든 다음에야 연실이는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회'에 처음 출석하여보았다. 이전에도 명애가 몇 번을 끌어보았지만, 그런 일에 전혀 흥미가 없는 연실이는 한번도 출석해보지 않았다. 이번에도 명애가 학교에서,

“오늘 친목회가 있는데 여전히 안갈래?”

하고 의향을 물을 때에,

“이젠 학교에도 들고 했으니까 가볼 테야.”

하면서 미소하였다.

“그럼 지금까지는 학생이 못되노라고 안갔었나?”

“유학생 친목회에 비(非) 학생이 무슨 염치에 가요?”

“준비 학생은 학생이 아닌가?”

“하하하하!”

이리하여 그날 저녁 사감의 허락을 받고 연실이는 처음으로 동경에 와 있는 조선 유학생들과 합석할 기회를 얻었다.

연실이까지 합계 일곱 명이었다. 이 단 일곱 명 가운데, 회장 부회장이 있고 서기가 있고 회계가 있었다. 아무 벼슬도 하지 못한 사람은 명애와 연실이와 황해도 여학생이라는 이십 살 가량 난 사람뿐이었다.

이 단 일곱 명의 친목회에서 먼저 서기의 경과보고가 있고 회계의 회계보고가 있은 뒤에, 회장의 연설이 있었다.

- 우리는 선각자외다. 조선 이천만 백성 중에 절반을 차지하는 일 천만의 여자가 모두 잠자코 현재의 노예 생활에 만족해 있을 때에, 눈을 먼저 뜬 우리들은 그들을 깨쳐주고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고향과 친척 친지를 등지고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는 것이외다.

여성을 자기네의 노예로 하고 있는 현대 포악한 남성의 손에서, 일 천만 여성을 구해낼 사람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남성에게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배웁시다. 그리고 힘을 기릅시다.

대략 이런 뜻의 말을 책상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정신적으로 전혀 불감증(不感症)인 시대를 벗어나서 감정, 감동 등을 막연히나마 느끼기 시작하던 연실이는, 이 말에 적지 않게 감동하였다.

자기가 동경으로 뛰쳐오고 지금 학교에까지 들어간 것은 본시는 무슨 중대한 목적이 있는 바가 아니라, 집에 있기가 싫어서 뛰쳐나온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회장의 연설을 듣고 보니, 자기의 등에도 무슨 커다란 것이 지워지는 것 같았다.

조선의 여자가 어떻게 구속되고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전에 진명학교 창립 선생도 그런 말을 하였고, 지금 또 여기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그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것이 사실일진대 그것을 구해낼 사람은 남자가 아니요 여자여야 할 것이고, 여자 중에서도 먼저 선진국에 와서 새 문화를 배운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자기는 이미 여기 와서 배우는 단 일곱 사람의 선각자의 한 사람이니, 일 천만 분의 칠이라는 - 다시 말하면 일백 오십만 명에 한 명이라 하는 귀한 존재이다. 소녀다운 감정으로 회장의 연설을 들으며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할 때, 연실이는 큰 바위에라도 깔린 듯이 가슴이 무거워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언니, 아까 그 회장 이름이 뭐유?”

회가 끝나고 어두운 길에 나오면서 연실이는 이렇게 명애에게 물었다.

“송안나. 왜?”

“이름두 야릇두 해라. 어느 학교에 다니우?”

“사범학교에.”

“어디 사람이구?”

“아마 강서(江西)인가, 함종(咸從)인가, 그 근처 사람이지.”

“몇 살이나 났우?”

“왜 이리 끈끈히 묻나? 동성연애할려나 봐.”

연애라는 말은 이젠 짐작은 가지만, 연애 위에 무슨 말이 더 붙었으므로 뜻을 똑똑히 못 알아들은 연실이는 눈치로 보아 조롱 받은 것 같아서,

“언니두…”

한 뒤에 말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그날 저녁 들은 '선각자'라 하는 말 한 마디는 이 처녀의 마음에 꽤 단단히 들어박혔다.

- 선각자가 되리라. 우리 조선 여성을 노예의 처지에서 건져내리라. 구습에 젖어서 아직 눈뜨지 못하는 조선 여성을 새로운 세계로 끌어내리라.

이런 새로운 감정으로 그는 '감동 때문에 잠 못드는 밤'을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편집]

지독히 재미있어요[편집]

어떤 날 연실이가 학교에서 기숙사로 돌아와서 책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에, 그 방장(房長)으로 있는 사 학년 생 도가와(戶川)라는 처녀가 연실이의 곁으로 와서 앉았다.

“긴상!”

“네?”

“조선말 퍽 어렵지요?”

“글쎄요, 우린 모르겠어요.”

“영어는?”

“재미있지만 어려워요.”

“외국어란 어려운 것이야. 참 긴상.”

도가와는 좀 어려운 듯이 미소하며 연실이를 보았다.

“아까 하나이 선생 - 긴상 담임선생 말씀이야요. 하나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긴상 일본어가 아직 숙련되지 못했다구, 나더러 틈틈이 좀 함께 이야기라도 하라시더군요.”

연실이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스스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잘 부탁합니다.”

연실이는 승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만에, 아니에요. 내가 무슨… 긴상 책을 많이 보세요. 책을 보면 저절로 어학력이 늘어요. 내 책을 빌려드릴께 책으로 어학을 연습하세요.”

“책이오? 무슨 책?”

도가와는 미리 준비하였던 모양인 책을 연실이에게 한권 주었다. 등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라 씌여 있었다.

“재미있어요. 재미있는 바람에 읽노라면 어학력도 늘고, 일석이조라는 게 이런 거겠지요.”

도가와는 깔깔 웃었다.

연실이는 즉시로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 교과서 이외에 평생 처음으로 독서를 하여보는 연실이는, 처음 얼마는 몹시도 난삽하여 책을 접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일껏 자기에게 책을 빌려준 방장의 면도 있고 하여, 세 페이지, 네 페이지, 억지로 내려읽고 있었다.

저녁끼니 시간이 되었다. 방장에게 독촉 받아 식당에 내려간 연실이는, 자기의 손에 아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들려 있고, 식당에 앉아서도 그냥 눈을 책에 붙이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오히려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덧 그는 책에 열중이 되었던 것이다.

무론 모를 대목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모를 곳은 모를 대로 그냥 내려 읽노라면 의미는 통하는 것이었다.

밤에 불을 끄는 시간까지 연실이는 그 책만 보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에 유난히도 일찌기 깬 연실이는, 푸르둥한 새벽빛에 눈을 비비면서 소설책을 다시 폈다.

아침에 깬 방장이 이 모양을 보고 미소하였다.

“어때요? 재미있어요?”

방장이 이렇게 물을 때에, 연실이는 눈을 책에서 떼지 않고,

“지독히.”

하며 미소하였다.

예술의 힘이 사람의 혼을[편집]

“모를 곳은 없어요?”

“있지만 뜻은 통하겠어요.”

“다 읽어요. 다 읽으면 이번은 더 재미나는 책을 빌려드릴께. 어학 연습에는 무엇보다도 다독(多讀)이 좋아요.”

학교에서 책을 끼고 가서 틈틈이 숨어서 읽고 저녁에 읽고 이튿날, 이리하여 독서의 속력(速力)이 그다지 빠르지 못한 그로도 이튿날 저녁때에는 끝까지 다 읽었다.

다 읽은 책을 베개 아래 넣고 자리에 든 연실이는, 가슴을 무득히 누르는 알지 못할 감정 때문에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것은 무슨 감정인지 연실이는 알지 못하였다. 이런 감정과 감동을 평생에 처음 겪는 연실이는 이불 속에서 홀로이 해적였다.

이틀 동안의 수면 부족 때문에 무거운 머리로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 본 책을 방장에게 돌려주고, 연실이는 그런 재미있는 책을 또 한 권 빌려달라고 간청하였다.

“자, 이걸 보세요.”

하면서 방장이 연실이에게 준 책은 꽤 두툼한 책이었다. <에일윈 - 윗츠 던톤>이라 하였다.

그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오전만 공부하고 오후부터는 연실이는 책에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월, 화, 수, 목, 금, 만 일주일간을 잠시도 정신은 이 책에서 떼지 못하고 지냈다.

화요일, 그 소설의 주인공인 에일윈이 사랑하는 처녀 윈니프렛의 종적을 잃어버리고 스노우돈의 산과 골짜기를 헤매다가 윈니의 냄새만 걸핏 감각한 대목에서 학교 시간이 되어 그만 책을 덮었던 연실이는, 윈니의 생각에 안절부절 공부도 어떻게 하였는지 모르고 지냈다.

“윈니상, 어때요?”

책을 다 보고 방장 도가와에게 돌려주매, 도가와는 또 미소하며 물었다. 그러나 연실이는 한참을 먹먹히 있다가야 대답을 하였다.

“도가와상, 꿈같아요.”

“좋지요?”

“좋은지 어떤지, 얼떨해요.”

“이 소설을 지은 윗츠 던톤이라는 사람은 이 소설 단 한편으로 영국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우. 나도 이 소설을 읽은 뒤 한달 반이나 꿈같이 얼떨하니 지냈어요.”

“그게 웬일일까?”

“그게 예술의 힘이에요. 예술의 힘이 사람의 혼을 울려놓은 때문이에요.”

“예술?”

듣던 바 처음이었다.

“네, 예술. 예술 가운데는 음악 미술 문학 등이 있는데, 문학에도 또 시며 희곡이며 소설이 있어요. 다른 학문들은 모두 실제, 실용상 쓸데 있는 것이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사람의 혼과 직접 교섭이 있는 존귀한 학문이에요.”

문학 소녀라는 칭호를 듣는 도가와는 여러가지의 말로 예술, 문학의 자랑을 연실이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연실이로서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다만 몹시도 귀하고 중한 학문이 예술이라는 뜻만 막연히 깨달았다. 그리고 단지 책을 읽기 때문에 자기가 이만치 감동되고 취한 것을 보면, 예사 보통의 학문이 아니라 생각되었다.

“긴상, 조선에 문학이 있어요?”

도가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물었다.

조선의 장래 여류문학가[편집]

대체 예술이라는 말, 문학이라는 말이 금시초문인 위에, 연실이의 조선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은, 조선말을 할 줄 알고 조선옷을 입을 줄 아는 것쯤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순간 주저하였다. 그러나 일찌기 조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오랜 문화 생활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연실이는,

“있기는 있지만…”

쯤으로 막연히 응하여 두었다.

“긴상, 조선의 장래 여류문학가가 되세요. 나는 일본 여류 문학가가 될께. 이 우리 학교는 하세가와 시구레라는 여류 문학가를 낳아서 문학과 인연 깊은 학교에요. 여기서 또 나하고 긴상하고 다 일본과 조선의 여류문학가가 됩시다.”

문학소녀 도가와는 스스로 감격하여 눈에 광채를 내며 이런 말을 하였다.

연실이는 여류 문학가가 무엇인지 문학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는 숫보기였다. 단 두권의 소설을 읽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즈음 자기는 조선 여자계의 선각자라는 자부심을 품기 시작한 연실이는, 장차 여류 문학가 노릇을 해서 우매한 조선 여성계를 깨쳐주어볼까 하는 희망을 마음 한편 구석에 일으켰다.

단지 선각자라 하여도 무슨 일을 하여 어떻게 조선 여성계를 각성시킬는지 전혀 캄캄하던 연실이는, 여기서 비로소 자기의 진로(進路)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차 배우고 닦고 하여서 도가와만큼 문학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써 선각자 노릇을 하리라 막연히나마 이렇게 마음먹었다.

도가와는 다시 연실이에게 스코트의 아이반호를 빌려주었다.

그러나 아닌게 아니라, 에일윈에서 받은 감격은 그것을 다 읽은 뒤에도 한동안 그의 머리에 뿌리깊게 남아 있어서, 때때로 정신없이 그 생각을 하다가는 스스로 얼굴을 붉히고 정신을 차리곤 하였다.

아이반호는 이삼 일간은 당초에 진척이 되지를 않았다. 몇줄 읽노라면 그의 생각은 어느덧 다시 에일윈으로 뒷걸음치고 뒷걸음치고 하는 것이었다.

- 아무 목표도 없이 동경으로 건너와서 아무 정견도 없이 선각자가 되리라는 자부심을 품었던 연실이는, 이리하여 도가와 모(某)의 덕으로 문학 소녀로 변하여갔다.

여름방학에도 연실이는 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갈 그리운 집이 없기 때문이었다. 기숙사에는 북해도에서 온 학생 하나, 대만서 온 학생 하나, 연실이 이렇게 단 세 사람이 남았다.

도가와는 여름방학 동안에 보라고 꽤 여러 권의 책을 남겨두고 갔다. 그러나 이제는 독서 속력도 꽤 늘은 연실이는, 도가와가 남겨둔 책을 보름 동안에 다 보고, 그 뒤에는 도서관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해 가을과 겨울도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된 때는, 연실이는 동경 처음으로 올 때(겨우 일년 반 전이다.)와는 전혀 다른 처녀가 되었다.

우선 자부심이 생겼다. 조선 여성계의 선각자라는 자부심이었다. 선각자가 될 목표도 섰다. 여류 문학가가 되어 우매한 조선 여성을 깨쳐주리라 하였다. 문학의 정의(定義)도 이젠 짐작이 갔노라 하였다. 문학이란 연애와 불가분(不可分)의 것이었다. 연애를 재미나고 자릿자릿하게 적은 것이 소설이고, 연애를 찬송하여 짧게 쓴 글이 시라 하였다.

일방으로 연애라는 도정을 밟지 않고 결혼하여 일생을 보내는 조선 여성을 해방(?)하여 연애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선각자에게 짊어지운 커다란 사명의 하나이라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을 널리 또 빨리 퍼쳐야 할 것이라 보았다.

문학상에 표현된 바, 전기와 통하는 것같이 찌르르 하였다는 연애와, 재미나는 소설을 읽은 뒤에 한동안 느끼는 감동도 동일한 감정이라 보았다.

즉 연애는 문학이요, 문학은 연애요, 그것은 다시 말하면 인생 전체였다.

‘인생의 연애는 예술이요, 남녀간의 예술은 연애니라.’

스스로 창작한 이 금언(金言)을 수신책 첫 페이지에 조선 글로 커다랗게 써두었다.

문학은 바로 연애[편집]

이런 심경 아래서 문학의 길을 닦기에 여념이 없는 동안 연실이는 문학과 함께 연애를 사모하는 마음이 나날이 높아갔다.

소녀 시기의 환경이 환경이었더니만치 연실이는 연애와 성교를 같은 물건으로 여기었다. 소녀 시기에는 연애라는 것은 모르고 성교라는 것이 남녀간에 있는 물건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지금 연애라는 감정의 존재를 이해하면서부터는, 그의 사상은 일단의 진보를 보여서 ‘남녀간의 교섭은 연애요, 연애의 현실적 표현은 성교니라’ 하는 신념이 들게 되었다.

그런지라, 그가 철모르는 시절에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처녀성에 대해서도 아깝다든가 분하다든가 하는 생각보다도, 그때 연애라는 감정을 자기가 이해하였더라면 훨씬 재미나고 좋았을 걸 하는 후회뿐이었다.

회상하여 그때의 그 사내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가장 표준형의 기생 오라범으로, 게으름과 무지와 비열을 합쳐놓으면 이런 덩어리가 생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연실이에게는 손톱만치도 마음가는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문학 즉 연애요, 연애와 성교는 불가분의 것으로 믿는 연실이는, 그때 연애적 감정이 없이 그 사내를 가까이 한 것이 적지 않게 분하였다. 한번 함께 산보(이것이 초보적 행동이었다)도 못하고, 함께 달을 쳐다보며 속살거리지도 못하고, 이렇듯 어리석고 어리던 자기가 저주스러웠다.

그 봄(열일곱 살이었다)에 연실이는 <동경 유학생>이란 잡지에 시를 한 편 지어서 보냈다.

문을 닫아도
들어오는 月光
사랑은 月光이런가
月光은 사랑이런가
아아, 二八處女의
가슴이 떨리도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고 하여 겨우 이렇게 만들어서, 한 벌은 고이고이 적어서 가방에 간수하고, 한 벌은 잡지사에 보냈다.

봄방학 때쯤 발행된 그 잡지에는 연실이의 시가 육호 활자로나마 게재가 되었다.

지금 그는 여명기의 조선 여성에게 있어서 한 개 광휘 있는 별이라는 자부심을 넉넉히 갖게 되었다. 그 잡지 십여 권을 사서 자기의 본집과 그밖 몇몇 동무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문학의 실체(實體)인 연애를 좀더 알기 위하여 엘렌 케이며 구리가와 박사의 저서(著書)도 숙독하였다.

새 학기에는 기숙사에서도 나왔다. 기숙사에서도 학생들끼리 동성의 사랑도 꽤 농후한 자도 있었지만, 연애라는 것은 이성에게라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연실이는 그것을 옳게 볼 수가 없고, 또는 자기가 몸소 나아가서 연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숙사는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여자 유학생 친목회에도 자주 나갔다. 작년 입학한 직후 첫 회합에는 단순한 처녀로 한 얌전한 규수로 참석하였지만, 차차 어느덧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이것이 여성해방이라 보았다)을 가장 맹렬히 주장하는 열렬한 회원으로 변하였다.

이론 방면으로 이만치 진보된 만치 실제로도 또한 연애를 하여보려고 기회 포착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동경 유학생간에는 남녀가 함께 회집할 수 있는 곳은 예수교 예배당밖에 없고, 남학생과 여학생간에 교제가 그다지 성행치 못하던 때라, 기회 포착이 쉽게 되지 않았다.

여류 문학가가 되어서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연애의 필요를 느끼는 연실이는, 이 좀체 포착되지 않는 기회 때문에 초조하게 지냈다.

수줍은 농과대학생[편집]

그러다가 어떤 우연한 기회에 평안도 출생의 농과대학생(農科大學生)과 알게 될 기회를 얻었다.

금년에 들어서 무척도 늘은 조선 여학생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갔던 연실이는, 거기서 그 여학생의 몇 촌 오라버니가 된다는 농학생을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나이는 스무 살이라 하나, 여자들 틈에서 몹시도 수줍어하여 이야기 한마디 변변히 하지를 못하였다.

그날 밤 하숙에 돌아와서 연실이는 여러가지로 생각하였다. 자기가 지금까지 읽은 소설 가운데서 연애하는 남녀가 처음 만난 장면을 모두 끄집어내어 가지고, 아까 그(이창수라 하였다)가 취한 태도는 어느 것에 해당할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결론으로는 퍽 내심한 청년이 몹시 연애를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도 수줍어하는 것이라 단정하였다.

자기도 그 청년을 보는 순간 퍽 기뻤다고 생각하고, 기쁜 가운데도 속이 떨렸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다른 곳을 볼 때 그 청년이 자기를 바라보면 자기는 몹시 가슴을 뛰놀리었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가슴이 이상하여 그를 바로 볼 기회도 없었다고 생각하고, 그와 함께 있는 동안은 감전(感電)된 것 같은 찌르르한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요컨대 연실이는 어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창수에게 연애를 느꼈고, 이창수 역시 자기에게 연애를 느낀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튿날 하학한 뒤에 연실이는 이창수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찾아가려고 제 하숙을 나설 때에 발이 썩 나서지는 못하였지만, 이것이야말로 연애하는 처녀의 당연하고 공통되는 감정으로, 서양 문호(文豪)들도 모두 이 심리를 묘사한 것을 많이 본 연실이는, 이런 수줍은 감정을 극복하고 용감히 나아가는 것이 현대 신여성에게 짊어지운 커다란 사명이며, 더우기 선각자로서는 마땅히 겪고 극복하여야 할 일로 알았다.

창수는 마침 하숙에 있었다.

연실이는 창수와 함께 산보를 나섰다. 여섯 조의 좁다란 하숙방에서 속살거린다는 것은 옛날 연애지 현대 여성의 연애가 아니었다. 시부야(澁谷) 교외로 나서서 무사시노(武藏野) 숲 위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면서 그것을 찬송하며 한숨 지으며 하여야 할 것이었다.

시부야의 신개지(新開地)도 지나서 교외로 이 첫사랑하는 남녀는 고요히 고요히 발을 옮겼다. 한 걸음 앞서서 가던 연실이가 머리를 수그린 채 뒤따르는 창수 청년을 보면 창수는 역시 머리를 수그리고, 무슨 의무라도 이행하는 듯이 먹먹히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남녀는 어떤 언덕마루에 가서 앉았다.

“좀 쉬어요.”

하면서 연실이가 두 사람쯤 앉기 좋은 자리에 한편으로 치우쳐 앉으매, 창수 청년은 연실이에게서 세 걸음쯤 떨어져 있는 조그만 돌멩이 위에 걸터앉았다.

연실이는 고요히 눈을 들었다. 바라보매 시뻘겋게 불붙는 낙조(落照)는 바야흐로 무성한 잡초 위로 떨어지려 하고 있다.

“선생님!”

연실이는 매우 부드러운 소리로 창수를 찾았다.

“네?”

“참 아름답지 않아요? 저 낙조 말씀이에요. 저 낙조가 형용하자면 무엇 같을까요?”

“글쎄올시다.”

농학생 이창수에게 있어서는 그 낙조는 함지박에 담긴 붉은 호박 같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형용도 좀 멋적어서 글쎄올시다 할 뿐, 눈이 멀진멀진히 낙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방금 떨어질 듯 도로 솟을 듯 영화(靈火)가 하늘에서 춤을 추는 것 같지 않아요?”

“글쎄올시다.”

뒤집어씌우는 걸 할 수 있나[편집]

그날 저녁 연실이는 창수의 방에서 묵었다. 그 하숙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역시 연실이는 적극적으로 창수는 소극적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다가, 교외 전차가 끊어졌음을 핑계로 연실이는 거기서 밤을 지내기로 한 것이었다. 여기서 묵겠다는 말은 차마 하기가 힘들었지만, 선각자는 경우에 의지하여서는 온갖 체면이며 예의 등, 인습의 산물은 희생하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서,

“아이, 전차가 끊어져서 어쩌나? 선생님 안 쓰는 이부자리 없으세요?”

하고 말을 던져서, 요행 여름철이라 안 쓰는 두터운 이부자리를 얻어서 육조 방에 두 자리를 편 것이었다.

자리에 들어서도, 인생 문제며 문학의 존귀성을 이야기하면서, 연실이는 차츰차츰 뒤채고 뒤채는 동안, 창수의 이불 아래로 절반만치 들어갔다. '그것'까지 실행이 되어야 연애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는 연실이었다.

이튿날 아침 창수가 연실이에게, 자기는 고향에 어려서 결혼한 아내가 있노라고 몹시 미안한 듯이 고백할 때에, 연실이는 즉시로 그 사상을 깨뜨려주었다.

“그게 무슨 관계가 있어요? 두 사람의 사랑만 굳으면 그만이지, 사랑 없는 본댁이 있으면 어때요?”

명랑히 이렇게 대답할 때는, 연실이는 자기를 완전히 한 명작 소설의 주인공으로 여기었다.

그 하숙에는 창수 외에도 조선 학생이 두 명이 있었다. 연실이가 돌아간 뒤에 한 하숙의 다른 학생들에게 놀리운 창수는, 변명으로 아마,

“뒤집어씌우는 걸 할 수 있나?”

이렇게 대답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유학생에게 연실이의 이름이 높아지고, 그 위에 뒤집어씌운다 하여 거기서 일전하여 감투장수라는 별명이 며칠 가지 않아서 오백 명 유학생간에 쪽 퍼졌다.

그러나 이런 소문은 있건 말건, 연실이는 환희와 만족의 절정에 올라섰다.

첫째 선각자였다.

둘째 여류 문학가였다.

셋째 자유 연애의 선봉자였다.

문학가가 되고 선각자가 되기에 아직 일말의 부족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 자유 연애까지 획득하여놓으니 이제는 더 없는 구슬이었다.

어디를 내어놓을지라도 - 선진국 서양에 갖다놓을지라도, 축 박힐 데가 없는 완전무결한 신여성이요 선각자로다! 연실이는 의심치 않고 믿었다.

아직도 그래도 좀더 희망을 말하자면, 창수가 좀더 적극적이요 정열적이요 '뒤집어쓰는 편'이 아니고 끌어당기는 편이면 하는 것이었다.

이 연애에 승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실이는 지금껏 다니던 학교에 퇴학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립 음악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음악이 예술인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 학교가 동경에서 유명한 연애학교(남녀 공학)인 까닭이었다.

숙녀 전문학생[편집]

음악학교로 학적을 옮긴 뒤에 연실이는 두 가지로 마음이 매우 기뻤다.

첫째로는 그 학교의 남녀 학생간에 연애가 매우 많은 점이었다. 연애를 모르는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연실이는 연애의 형식과 실체(감정이 아니다)를 몰랐다. 그가 읽은 여러 가지의 소설의 달콤한 장면을 보고 연애는 이런 것이어니 쯤으로 짐작밖에는 가지 못하였다.

이창수와 몇 번 연애(?)를 하여보았지만, 창수는 도리어 수동적(受動的)인 편이라, 연실이 자기가 부리는 연애밖에는 구경을 못하였다. 선각자로서 당연히 연애를 알고 또는 실행하여야 할 의무감을 가진 연실이는, 자기가 현재 이창수와 연애를 하면서도, 일찌기 책에서 읽은 바와 상이되는 점을 늘 미흡히 생각하고, 혹은 실제와 소설에는 차이가 있는가 의심하던 차에, 이 학교에서는 눈앞에 소설에서 보는 바와 같은 연애를 수두룩히 보았는지라 이것이 기뻤다.

둘째로는 전문학생이라는 자기의 지위가 기뻤다. 선각자로 자임하고 어서 선각자로서 조선의 깨지 못한 여성들을 깨치려는 희망은 품었지만, 고등여학교의 생도인 때는 전도가 감감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보니, 이제 삼 년만 지나면 자기는 전문학교의 출신으로, 어디에 내놓을지라도 뻐젓한 숙녀였다.

보라빛 치마와 화려한 긴 소매와 뒷덜미에 나비 모양으로 맨 리본과 뾰족한 구두의 이 전문학생은, 악보(樂譜)를 싼 커다란 책보를 앞으로 받치고 동경바닥을 활보하였다.

단지 이 처녀에게 있어서 아직도 불만이 있다 하면, 그것은 애인 이창수의 태도가 너무도 소극적인 점이었다. 로미오인 이창수가 줄리에트인 연실 자기의 창 아래 와서 연가(戀歌)는 못 부를지언정, 적어도 이 근처에 배회하기는 하여야 할 것이었다. 찾아오기가 바쁘면 하다못해 편지라도 해야 할 것이었다.

적어도 소설에 있는 연애하는 청년은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기는커녕 이편에서 찾아갈지라도 맞받아나오면서 쓸어안고 키스를 하고 해주지조차 못하고 싱그레 웃고 마는 것은, 연실이의 마음에 적지 않게 불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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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자자하더구나[편집]

그해 크리스마스 방학이었다.

연실이는 오래간만에 최명애를 찾아가 보았다. 처음 동경 올 때는 까아만 선배(先輩)로 동경을 그에게 배우려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기는 열 여덟(눈앞에 아홉을 바라본다)이요 그는 스물 하나로, 옛날 진명학교 시대와 마찬가지인 한낱 동무였다. 그 위에 ‘그도 연애를 하는가?’하는 의심점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자기보다도 약간 세상 철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자긍심까지도 품고 있는 연실이었다.

“언니!”

여전히 부르기는 이렇게 불렀으나, 이제는 선배 후배가 아니요, 단지 나이가 약간 더 먹은 동무일 따름이었다.

거의 연애라는 것을 '문명한 인종이 반드시 밟아야 할 과정'쯤으로 믿고 있는 연실이는, 그날 서로 시시덕거리며 잡담을 하다가 이런 말을 하였다.

“언니, 참 옛날 여인들은 어떻게 살았겠수?”

“왜?”

“연애 한 번두 못해보구…”

명애는 여기서 한번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저리더냐? 재리더냐?”

“아찔아찔합디다.”

“그것만?”

“오금이 녹아옵디다.”

“엑기 망할 기집애! 한데 너 뒤집어씌웠다구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뒤집어씌워? 남녀 학생간에 소문은 높았던 바지만, 연실이의 귀에까지는 아직 오지 않았던 바라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우?”

“듣기 싫다!”

“참말… 그게 무슨 말이우?”

명애는 의아히 잠깐 연실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 뒤에 설명하였다.

“아 네가 능동적이란 말이지. 네가 사내를 ×단 말이지.”

“언니두!”

여자 유학생치구 애인 없는 사람이[편집]

연애의 과정으로 당연히 밟은 과정이라는 신념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듯 지적을 받으매 연실이는 아뜩하였다.

“그런데 왜?”

“……”

“내 언제 너 조용히 만나면 이야기 할려구 그랬다마는, 청춘 남녀가 연애야 안하겠니마는, 연애를 한대두 신성한 연애를 해라.”

순간적 부끄러움 때문에 머리를 수그렸던 연실이의 귀에도 이 말은 들어갔다. 소설에서 많이 읽은 바였다. 그러나 어떤 것이 신성한 연앤지는 실체를 아직 연실이는 알지 못하였다. 소설에 그런 대목이 나올 때마다, 다시 읽고 다시 읽고 하여 실체를 잡아보려 노력하였지만, 어떤 것이 신성한 연애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청춘 남녀 누구가 연애 안하겠니마는 신성한 연애를 해야 한다.”

“언니, 어떤 것이 신성한 연애유?”

연실이는 드디어 물었다.

“얘두! 그럼 너 여지껏 뭘 했니? 남녀가 육교를 하지 않고 사랑만 하는 게 신성한 연애지. 말하자면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해서 사랑하구 사랑 받구 하는 게 신성한 연애가 아니냐.”

이것은 연실이에게는 새로운 지식인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명애의 말로서 옳다 할진대, 이창수와 자기와의 것은 무엇으로 해석을 할 것인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한다 하면, 자기와 이창수는 전혀 마음이 통치 못하였다.

소설이면 엘렌 케이와 구리가와 박사의 말에는 그런 뜻이 있었던 듯싶다. 그러나 사람의 사회에 실제로까지 그런 꿈의 나라가 있으리라고는 연실이에게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 명애는 이런 말도 하였다.

“내 애인은 말이다, 지금 W대학 문과에 다니는 사람이야. 본시 송안나 - 너도 알지? 그 여자 친목회 회장 말이다. 그 송안나허구 이러구 저러구 하던 사람이란다. 그걸 내가 알았지. 첨에는 송안나 그 담에는 최 ××, 또 그 담에는 박 ××, 그걸 내가 알았구나. 말하자면 최후의 승리자지.”

그리고 그 열변과 엄숙한 표정으로 친목회에서 지도자 노릇을 하던 송안나도 연애 찬미자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기이해서, 연실이가 물어본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얘, 너두 철이 있느냐, 없느냐? 이 동경 여자 유학생치구 애인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디? 옛날 구식 여자는 모르겠다만, 신여성 치구 애인 없이 어떻게 행세를 한단 말이냐?”

누구는 누구가 애인이고 누구는 누구가 애인이고, 한참을 꼽아대었다.

연실이는 그러려니 하였다. 이 동경까지 와 있는 선각 여성이 자유 연애도 하지 않고 어쩔 것이냐? 사실에 있어서 연실이는 최근엔 단지 이창수뿐 아니라, 음악학교에 다니는 여러 남학생들과 단 하룻밤씩의 연애를 하고 있었다. 한 사내와만 연애를 한다 하는 것조차, 그에게 있어서는 유치한 감이 없지 않은 것이었다.

[편집]

여자 유학생에게 경고하노라[편집]

크리스마스 방학도 끝나고 개학이 된 지 며칠 뒤의 일이었다.

그날은 연애할 대상도 구하지 못해서 하학한 뒤에 곧 집으로 돌아오매, 그의 책상에는 우편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잡지였다. 뜯어보니 동경 유학생의 기관 잡지인 ×××였다.

먼첨 호에 문틈으로 스며드는 달빛을 노래한 시를 이 잡지에 보내어 채택이 된 연실이는, 그 다음에도 또 한 편 보냈던 것이었다. 그것이 났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연실이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즉시 봉을 뜯었다.

무식한 그 잡지의 편집인은 이번엔 연실이의 시를 몰서하여 버렸다. 그래서 목록의 아래의 이름만 읽어보아 자기의 이름이 없으므로 불쾌감이 일어나서 책을 접으려 할 때, 제목란(題目欄)에 계집 녀(女)자가 걸핏 보이는 듯하므로 다시 주의하여 거기를 보매, 거기에는,

'여자 유학생에게 경고하노라.'

하는 제목이 있었다.

무슨 이야긴가 호기심이 났다. 책으로서는 자기의 명작시(名作詩)가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잡지였지만, 그 제목의 페이지를 뒤적여서 펴보았다.

첫줄에서 연실이의 얼굴은 검붉게 되었다.

‘××음악학교에 다니는 모(某) 양은…’운운으로 시작한 그 글은, 연실이와 이창수와의 사이의 소위 '뒤집어씌운' 이야기를 폭로시키고, 이런 음탕한 여자가 동경에 와 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들 뿐 아니라, 더우기 고향에 계신 학부형들은 딸을 동경으로 유학 보내기를 무서워한다는 뜻을 쓰고, 이어서 이런 더러운 학생은 마땅히 매장하여버리는 것이 유학생의 의무라고 많은 '!'며 '?'를 늘어놓아 가지고 두 페이지나 널어놓았다.

읽는 동안 연실이의 얼굴은 검게 되었다 붉게 되었다, 찌푸려졌다 찡그려졌다, 별의별 표정이 다 나타났다.

읽으면서 동댕일 치고 싶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야 말았다. 다 읽고 나서는 드디어 동댕이쳤다.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억분하다 할까, 노엽다 할까, 부끄럽다 할까, 얼굴이며 손발의 근육이 와들와들 떨렸다. 머리로서는 아무것도 생각지를 못하였다.

한 시간, 아마 두 시간도 나마 지났겠지. 집 주인 마누라가,

“긴상 저녁 안 잡수세요?”

하고 들어올 때야 연실이는 비로소 자기의 이성을 회복하였다.

이성이라 하나 지극히도 흥분된 이성이었다.

“그만둬요.”

저녁이 입에 달지는 않을 것이므로 거절함에 있어서 이런 거절까지 않아도 좋을 것이어늘, 연실이는 이런 악의 품은 거절을 한 것이었다.

어떤 노염일까? ××음악학교에 다니는 조선 여학생은 자기밖에 없다. 그런지라, 누구든 이 글을 읽기만 하면 거기 쓰인 모(某) 양이라는 것은 자기를 지적한 것임을 알 것이다.

처녀 십팔 세(새해에 열 아홉)는 손톱눈만한 일에라도 부끄러워하는 시절이라 하나, 연실이는 요행 부끄럼에 대한 감수성은 적게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 대신 분하였다. 글자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악의(惡意)로 찬 욕을 퍼부은 것이었다. 이것이 분하였다.

어때? 그럼. 이만 뱃심이 없지 않았다. 그 글의 필자가 아직 구사상에 젖은 유치한 녀석이라는 경멸감도 물론 났다. 자유연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듯 어리석은 소리를 흥얼거리는 숫보기라는 우월감(자기에게 대한)도 섞이어 있었다.

그런지라, 욕먹은 내용 - 사실에 대해서는 연실이는 천상천하 부끄러운 데가 없었다. 이 정정당당하고 가장 새롭고 가장 선각적인 행동을 욕하는 자의 어리석음이 미웠고, 그런 것에게 욕먹은 것이 분하였다.

두 시간 세 시간 동안을 분한 감정 때문에 몸만 떨고 있던 연실이는, 밤이 차차 들어감에 따라서 얼마만치 머리도 식어가며, 식어가느니 만치 대책도 생각났다.

또 그 다음은 누구의 애인[편집]

어떻게든 거기 대하여 항의를 하여야 할 것이다.

글로?

말로?

항의문을 그 잡지사에 써보내서 자기를 욕한 필자의 무식을 응징하나, 혹은 그 사람을 찾아가서 도도한 웅변으로 그의 구식 두뇌를 깨쳐주나?

자리에 들어서도 그 생각을 하고 또 하고 한 끝에, 연애라 하는 일에 퍽 이해를 가진 최명애를 찾아서 그와 의논하여 어떻게든 결정하리라 하였다.

이튿날 이른 새벽에 연실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반도 먹지 않고 하숙집에서 나왔다. 최명애를 찾기 위해서였다.

최명애의 하숙(영업적 하숙이 아니라 사숙이었다)에 들어서서 주인 마누라에게 '오하요'를 부른 다음에, 연실이는 서슴지 않고 명애의 방으로 갔다. 당황히 따라오는 주인 마누라의 눈치도 못 보고….

장짓문을 쭉 밀어 열었다.

…?

연실이는 도로 장짓문을 닫아버렸다. 명애 혼자인 줄 알았던 방에 명애는 웬 남학생과 함께 자고 있다가, 이 침입자 때문에 번쩍 눈을 뜨는 것이었다.

“누구?”

방안에서는 명애가 침입자의 정체를 캐면서 일변으로는,

“긴상, 인젠 일어나요, 누구 왔어요.”

하며 연애의 대상자를 흔드는 모양이었다.

연실이는 멍하였다. 자기의 취할 거취를 몰랐다. 돌아가자니 싱거웠다. 들어가자니 어려웠다. 이미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일이 아닌 연실이라, 부끄럼이라든가 거기 유사한 감정은 느끼지 않았지만, 일전에도 '신성한 연애'를 운운하던 명애의 자리에서 사내를 발견하였는지라 잠시 뚱하였다.

“누구야?”

“나!”

드디어 대답하였다.

“연실이로구나! 긴상, 어서 일어나요. 연실이 조금만 있다가 들어와.”

그런 뒤에는 안에서는 일어나서 옷을 가다듬는 듯한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기를 사오 분이나 하고 나서,

“됐어. 들어와.”

하고 청을 하였다.

연실이는 들어갔다. 내어주는 자리에 앉았다.

“새벽에 웬일이야? 응 소개해야겠군. 이 이는 대학에 다니시는 김 ××씨, 이 애는 늘 말씀드린 연실이…”

연실이는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김 모라는 학생은 연방 교복 단추를 맞추면서 허리를 굽실 하였다.

“헌데 새벽에 웬일이야? 이상(이창수)네 하숙에서 오는 길이냐?”

“아냐.”

연실이는 부인하였다. 부인하며 얼핏 김 모라는 학생을 보았다. 처음은 송안나의 애인, 그 다음은 누구의 애인, 또 그 다음은 누구의 애인, 이리하여 지금은 최명애의 애인이 된 그 학생은, 그의 염복적(艶福的) 눈을 들어 연실이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김 모는 학교에 가야겠다고 조반 전에 돌아갔다. 사립여자전문학교에 다니는 두 처녀는, 오늘은 학교를 집어치기로 하고 김 모가 돌아간 뒤(세수도 안하고) 자리에 도로 들어가 누웠다.

얘, 잠자리 맛이란…[편집]

연실이가 가지고 온 잡지를 내어들고, 명애에게 자기의 분함을 하소연하고 그 대책을 의논할 때에, 명애는 그따위 문제는 애당초 중대시하지도 않았다.

“거기 어디 김연실이라고 이름을 밝히기라도 했니?”

“밝히진 않았어두 ××음악학교 학생이라면 이십여 명 유학생 중 나밖에 어디 있우?”

“긁어 부스럼이니라. 우습지 않니? 김연실이라구 밝히지두 않았는데, 김연실이가 웬 까닭으루 나 욕했오 넘하구 덤벼드느냐 말이다? 얘, 수가 있느니라. 이렇게 해라.”

“어떻게?”

“아까 그 긴상 말이야. 긴상두 ××회(유학생회) 감찰부장이란다. 그 긴상이 말야, 내가 요전에 △△학교에 다니는 강상이라는 학생하구 이렇구 저렇구 할 때, 뭐 유학생에게 풍기를 문란케 하느니 어쩌니 해 가지구 매장을 한다 어쩐다 야단이란 말이지. 그래서 그 긴상의 내막을 알아보니, 자기도 그 송안나 하고 그 꼴이지.

그래서 말이로다, 만일 긴상이 참말루 샌님 같은 사람이면 할 수 없지만, 자기도 그러는 이상에 무슨 낯으로 큰말이냐 말이다. 그래서 이 여왕께서 찾아가 주었구나. 한번 비벼대줄 셈이었지. 그랬더니 '곤냐꾸'란 말이지. 흐늘흐늘 - 지금 애인이 되지 않았니?”

연실이는 멍하니 명애를 보았다. 경이(驚異)라는 것을 모르는 연실이는 놀랄 줄을 모른다. 감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연실이는 감동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연실이에게는 다만 예사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니, 그럼 난 어떡하면 좋수?”

“너도 나같이 그… 너 욕한 사람 말이다. 그 학생을 찾아가려무나. 상판대기에 분칠이나 곱게 하구 연지나 찍구 찾아가서, 이건 왜 이러우 하구 한마디만 턱 던지구 생긋 웃어만 보려무나. 그러면 나 잘못했소, 여왕님! 하구 네 발 아래 꿇어 엎드리지 않으리.”

“그러면?”

“그러면 됐지, 그 뒤가 있을 게 뭐람? 그러면 그 모(某) 도학 청년이 네 애인이 되지.”

“이상은 어쩌구?”

“차버리려무나. 차버리기가 아까우면 애인 두어 개 두구.”

“언니, 남자란 여자를 보면 그렇게두 오금을 못 쓰우?”

“맛이 좋거든.”

“맛이 좋단, 어떻게 좋우?”

“그게야 남자가 아니구야 어떻게 알겠니마는, 여자는 또 남자를 보면 그렇지 않더냐? 아유, 흥흥.”

명애는 무엇을 생각함인 듯이 힘있게 연실이를 쓸어안고 신음하면서 꺽꺽 힘을 주었다.

“언니, 내 진정으로 말한다면 나는요어디가 좋은지 몰라. 소설에 보면 말도 마음먹은 대로 못하고 애인의 얼굴두 바루 못 본다는 둥 별별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다 있는데 나는 아무리 그렇게 마음먹으려 해두 진정으로는 안 그래. 웬일일까? 그게 거짓말인가?”

“그건 모르겠다만, 얘, 잠자리 맛이란… 아유 흥흥 아유 죽겠다.”

“잠자리 맛이란 것두 따루 있우?”

“아이 망칙해. 우화등선 천하 제일감. 너 것두 아직 모르니?”

“몰라.”

“그럼 이상허구 뒤집어씌기는 어떻게 했느냐?”

“그게야 그럭허는 게니 그랬지.”

“얘두, 그럼 너 불구자로구나?”

단지 사내와 여인 - 애인끼리는 그런 노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연실이에게는, 이 말은 알지 못할 말이요, 겸하여 불안스러운 말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연애로다[편집]

그는 이날 명애에게서 '성'에 대한 여러가지의 지식을 알았다. 하늘은 종족의 단멸(斷滅)을 막기 위해서 성교에 특수한 쾌감을 주어, 이 쾌감 때문에 종족이 끊기지 않고 그냥 계속된다는 이야기며,

과부가 수절을 못하는 것은 이 쾌감을 잊을 수 없어서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 등을 듣고, 그로 미루어보자면 그것은 상식으로 판단키 힘들 만치 유쾌로운 일인데, 아직 그것도 모르는 자기는 적지 않게 부족된 사람인 듯싶고, 이 때문에 마음도 적지 않게 무거웠다.

명애는 연실이에게 대해서 장차 그 남학생(잡지에서 욕한)을 찾아가는 경우에 그와 대응할 책략을 여러가지로 가르쳤다.

결코 이렇다 저렇다 싸우지 말라 하였다.

“이건 왜 이러세요?”

이 한 마디만으로 웃기만 하라 하였다. 손님이 왔으니 과일이라도 사오라고 명령하라 하였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장차 조선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 왜 그리 사상이 낡으냐고, 산보를 청하고 활동사진 구경을 동반하고 -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 하숙으로 끌고 들어가라 하였다.

그로부터 수일 후, 연실이는 명애의 지휘가 너무도 정확히 들어맞으므로 도리어 놀랐다. 연실이가 찾아왔다는 하숙 하녀의 보고를 들을 때에, 그렇게도 울그럭불그럭하였고 서로 대좌하여서도 눈을 퉁방울같이 굴리던 그 남학생이,

“이건복왜 이러세요?”

의 한 마디에 멋적은 듯이 좀 누그러지고 그 다음에,

“과일이나 부르세요.”

할 때에 하녀를 불러서 과일을 사왔고, 그 다음에는,

“하나 드십시오.”

라는 권고가 그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산보를 청할 때는 얼굴에 희색이 나타났고, 활동사진을 구경한 뒤에 집에까지 바래다달라니까 분명히 흥분까지 되었고, 잠깐 들어오기를 청할 때에 열적은 듯이 따라 들어왔고, 시간이 늦어서 마지막 전차까지 끊어지매 도리어 저쪽에서 기괴한 뜻을 암시하였고….

이리하여 연실이는 또 한 사내의 애인을 두게 되었다.

새 애인의 이름은 맹호덕(孟浩德)이었다.

연실이가 새 애인을 둔 뒤에 이전보다 기쁨을 느낀 것은, 맹은 이전의 이창수와 같이 소극적이 아니었다.

역시 ××회의 회집이 있을 때마다 단상에 올라서서 조선 청년의 갈 길을 부르짖고 학생계의 나약과 타락을 통탄하고 '우리'의 중대한 임무를 사자후(獅子吼)하곤 하였지만, 그러한 적극성이 있느니 만치 연실이에게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따라다니고 불러내고 호령하고 명령하곤 하였다.

연실이의 마음은 차차 맹에게로 기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진정한 연애로다.”

연실이는 이것으로서 비로소 자기는 진정한 연애를 하는 사람으로 믿었다. 그리고 이제는 온갖 점이 다 구비된 완전한 조선 여성계의 선구자라 하는 신념을 더욱 굳게 하였다.

‘갈 길을 몰라서 헤매는 일 천만의 조선 여성에게 광명을 보여주기로 단단히 결심하였습니다.’

과거 진명학교 시대의 동무에게 자랑삼아 한 편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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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의 겉물 핥기[편집]

수 없는 인명과 수 없는 재물(財物)과 수 없는 인류의 보화(寶貨)를 삼키고 제일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다.

일본도 이 전쟁에 참가는 하였다. 하나 겨우 동양의 한구석 교주만(膠洲灣) 근처에서 퉁탕거려보고 의식적으로 불란서 전선에 군대를 약간 보내어본 뿐, 물질적으로 손해가 극히 적었다.

그 대신 이 전쟁 때문에 얻은 이익은 지극히 컸다. 지금껏 온갖 약품이며 기계를 독일서 수입하던 것이, 독일과 국교단절을 한 관계상, 자작자급(自作自給)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과학계의 발달이 놀라왔다.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덤비느라고 일용품조차 제 나라에서 만들지 못하는 관계상, 미국이며 일본 등에 주문하여다가 쓰게 되니만치 무역상의 이익이 놀랍게 되었다. 해운(海運)으로 굴러들어온 돈도 막대하였다. 위체(爲替) 관계로 얻은 이익도 막대하였다.

그러나 이런 적지 않은 이익의 반면에는 손해도 또한 없을 수가 없었다.

과도한 자유주의와 사치 - 이것이 가장 눈에 띄는 악영향이었다.

서양 문명의 겉물 핥기 - 이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리우찌(鳥打帽)를 쓰는 학생이 없었고, 금단추 이외에는 쓰메에리 양복이 쉽지 않았고, 학생은 세비로를 안 입던 동경이 갑자기 변하여, 십 팔구 세만 되면 세비로 한 벌을 장만하고, 여학생들은 새빨간 '하오리'를 휘날리고 여자 양복도 드문드문 보이게 되었다.

서양 문명의 겉물을 핥는, 또 그 겉물을 연실이는 핥았다.

아무 속살도 모르는 단지 겉만 흉내내면서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이렇게 나날이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속 알맹이는 그 몇해 전 '베개를 내려오라'면 내려오던 그 시절에서 한 걸음도 진척된 바이 없었다.

조선 신문화는 대개 동경 유학생의 힘으로 건설되었고, 문화의 제일 과정은 자유연애였다.

연실이가 장차 조선에 돌아가면 건설하려던 조선 신문학(新文學)은 연실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직 동경 유학할 동안에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이고주(李古周)라는 청년 문학도가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 이 청년 문학도가 문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하여 처음 부르짖은 것이 자유연애였다.

이 현상은 연실이로 하여금 더욱 더 연애와 문학은 불가분의 것이라는 신념을 굳게 하였다.

이러한 동안에 최명애는 연실이보다 일년 앞서서 졸업을 하고 동경을 떠나게 되었다. 송안나는 최명애보다도 일년 전에 귀국하였다.

명애가 귀국할 날짜가 거의 가까운 어느날, 연실이는 명애의 하숙을 찾아갔다. 오래간만이었다. 서로 연애에 골몰할 동안은 동무를 찾을 겨를도 과연 없었다.

“아이, 오래간만이구나!”

“언니 졸업턱 받으러 왔어.”

이런 인사로써 둘은 마주앉았다.

여자들끼리 만나면 의례히 나오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한참 돈 뒤에 연실이는 이런 말을 물어보았다.

“언니, 귀국해선 무얼 하겠어?”

이 질문에 명애는 눈가에 명랑한 미소를 띠우고 잠깐 연실이의 얼굴을 본 뒤에 대답하였다.

“시집가련다.”

“시집을?”간다고?

“그래, 우스우냐?”

“턱은 대었수?”

“글쎄 누구한테 갈지 갈팡질팡일세. 돈 있는 작자는 시부모가 있구, 단간 살림은 돈이 없구. 너무 잘난 녀석은 휘어잡기 힘들구. 너무 못난 녀석은 셋샤(拙者·자기라는 뜻) 마음에 안들구…”

시집 안 가군 새끼 못 낳수?[편집]

그런 뒤에 명애는 최근 삼사 년간에 졸업하고 귀국한 남학생을 한 오륙십 명 뽑아내었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은 명애하고 특별한 관계가 있던 것을 연실이도 안다. 그로 미루어서 나머지들도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어디 네가 간택을 해봐라. 누가 제일 낫겠니?”

“내가 아우? 아재 간택하는 법두 있수?”

“하하하하! 너 고창범(高昌範)이라구 알지?”

알기 뿐이랴. 연실이도 한두 번 명애 몰래 만나본 일이 있는 W대학 문과 출신의 서울 사람이었다.

“셋샤 마음에는 고창범이가 가장 드는구나.”

싱거운 사내였다. 호인(好人) 이상은 보잘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고씨가 지금 어디 있수?”

“Y전문학교 문과 교수라네.”

“부잔가?”

“저 먹을 게나 있지. 조금 덜난 편이지만…”

“그 사람 어디가 마음에 드우? 난 원 시원치 않소.”

“그렇기에 내 마음에 들지. 네나 내나 시원한 남편 아래서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안될 말이지.”

“난 귀국해서두 시집은 안 가겠수. 사내라는 건 도대체 한 달만 가까이 지내보면 벌써 부려먹으려 덤벼드는 걸, 시집까지 가주면 영 종 노릇 하게?”

“그도 그래. 하긴 그래두 늙으면 자식 생각 난다더라.”

“시집 안 가군 새끼 못 낳수?”

“예끼, 화냥년!” "하하하"

그때 연실이는 임신 삼 개월이었다. 따져보아도 누구의 종자인지는 분명치 못하였다. 그래서 때때로 이것을 뉘게다 책임을 지울까고 생각하고 하던 중이었다.

지금껏 진실한 의미로의 인생을 밟아보지 못한 이 처녀들은 인생의 근심을 몰랐다. 인생의 가장 중대한 일을 가장 가볍게 여기고, 웃음과 희롱 가운데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그날 낮에 놀러갔던 연실이는 밤도 깊어서야 제 하숙으로 돌아왔다. 입덧이 나기 때문에 식성이 까다롭게 된 연실이는, 제 하숙의 낯익은 음식보다 '자루소바' 두 그릇을 참 맛있게 먹었다.

고향에서 온 편지[편집]

그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 연실이의 아버지에게서 여러 장의 편지가 왔다.

첫 장은 꼬리표가 다섯이나 붙어서 겨우 연실이의 지금 하숙을 찾아온 것이었다.

수년간을 한 장의 편지도 않던 딸에게 갑자기 뒤따라 편지를 하는데는 그럴 만한 곡절이 있었다.

연실이에게 시집을 가라는 것이었다. 신랑의 나이는 연실이와 동갑, 소실의 자식이나 사람 똑똑하고 한 삼백 석내기 물려받은 것도 있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그때 배가 남산만하게 되어 학교도 쉬고 하숙도 옮기고 있던 연실이는, 첫 편지에는 귀찮아서 자기 주소만 알리고 편지 내용에 대해서는 묵살하는 뜻으로 씁쓸히 한자도 언급(言及)치 않았다.

둘째 편지에는 그런 젖비린내 나는 아이에게 시집이 다 뭐냐는 배짱으로 답장도 안 하였다.

세째 편지는 방금 연실이가 몸을 풀은 이튿날 배달되었다. 여전히 회답도 안 하였다.

몸을 풀은 지 한 달이 지나서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때, 연실이는 갓난애(사내애였다)의 아버지 후보자 중의 한 사람 맹호덕(孟浩德)이와 함께 어린애를 붙안고 놀러나갔다. 나갔던 길에 셋(간난아이까지)의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사진을 찾아다보니, 정녕 내외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어때요, 맹상?”

이 말에 맹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오라범, 누이. 누이의 사생아(私生兒).”

“예끼!”

“하하하하!”

무론 이 사진은 방에 장식하든가 맹과 자기가 나누어 가지고 기념하든가 하려는 목적으로 찍은 것이 아닌지라, 의리상 맹에게 한 장 주고 자기가 두 장은 맡아두었다.

공교롭게도 사진을 찾아온 이튿날 고향에서는 또 혼사 의논의 편지가 왔다.

여기 대해서 연실이는 회답 대신으로 사진을 아버지에게 보냈다. 무언(無言)의 거절이었다. 저는 벌써 인처(人妻)요 자식까지 있습니다 하는 뜻이었다.

과연 이 사진을 보낸 다음부터는 다시 편지 왕래가 끊어졌다.

연실이는 제 이 학기 한 학기를 병을 칭탁하고 쉬었다.

제 삼 학기부터는 애는 유모 주고 다시 학교에 다녔다. 삼 학기 한 학기로 연실이도 '전문학교 졸업생'이 되는 것이었다.

조선의 무슨 중대한 일[편집]

세계 대전쟁의 여파가 온 세계에 가지가지로 일어나는 가운데, 자유주의 나라인 미국이 던진 몇 개가 꽤 세계를 소란케 하였다.

가로되 국제연맹, 가로되 민족자결주의, 가로되 무엇, 가로되 무엇….

이 가운데 민족자결주의라 하는 여파는 조선 반도도 한동안 흔들어놓았다.

연실이가 몸을 풀은 뒤에 산후도 깨끗하여 삼 학기부터 학교를 가려고 준비할 때부터, 동경 유학생간에도 적지 않은 동요가 일었다. 제 삼 학기 초부터는 동요도 꽤 커갔다. 경찰로 붙들려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연실이의 아기의 가정(假定) 아버지 되는 맹호덕이도 이런 일에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끼리끼리서 밤을 새워가면서 수근거리며 돌아갔다.

조선의 신문학도(新文學徒)요 겸하여 조선의 연애 교사인 이고주도, 동경을 건너왔다가 무슨 글을 하나 지어놓고 재빨리 상해로 달아나고, 남은 사람들은 그 글을 인쇄하여 유학생간에 돌리고 모두 사법의 손에 붙들렸다. 독립선언서였다. 첫 봉화는 동경서 들리었다.

그러나 그 일은 연실의 생활이며 감정이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삼 학기를 시작하였다.

삼 학기도 끝나고 내일 모레면 졸업식이라 하는 삼월 초하룻날, 온 조선에는 무슨 중대한 일이 폭발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학과 관계 없고 연애와 관계 없는 이상에는 역시 연실이의 아랑곳할 것이 못되었다.

졸업하고 곧 서울로 돌아가려던 예정이었다(고향인 평양 따위는 벌써 잊은 지 오랜 연실이었다). 그러나 조선 안이 꽤 소란스러운 듯하므로, 연실이는 그 음악학교에서 작곡과(作曲科)를 일년간 더하고 조선이 좀 안돈된 뒤에 돌아가기로 하였다.

삼월 초하룻날의 소란은 조선에 꽤 커다란 결과를 주었다. 사내(寺內) 총독의 무단정치(武斷政治)를 그대로 답습한 장곡천(長谷川) 총독은, 경성 시내에 장곡천정(長谷川町)이라는 정명(町名) 하나를 남겨놓고 갈려가고, 재등실(齊藤實)이 새 총독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삼월 초하루의 소란은 무단정치에 대한 반항이라 하여 문화정치라는 깃발을 내세웠다.

그 덕에 지금껏 탄압하던 출판계가 좀 완화되어 신문 잡지 그밖 서적들이 뒤이어 나타났다. 동시에, 신문학의 싹도 차차 완연하여갔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연실이는 그냥 편안히 동경에 있을 수 없었다. 작곡과 일년간을 황황히 마친 뒤에 연실이는, 행장을 가다어듬가지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어린애는 '사도꼬'로 주었다.

어서 돌아가서 선각자의 자리를 남에게 앗기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어린애 같은 것은 달고 다닐 수가 없었다. 온갖 방면으로 조선 선구녀형(先驅女型)의 표본인 연실이는, 자식에게 가질 모성애라는 것도 결핍된 사람이었다.

연실이가 서울로 귀환한 때는 조선에도 두어 파(派)의 젊은 문학도들이 생겨 있었다. 이 문학도들의 전기생(前期生)이요 겸하여 조선 연애 교수인 이고주는, 아직 상해에 피신해 있는 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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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새 여왕이시여[편집]

“당추 고추 맵다더니 시집살이 더 맵구나. 언니, 시집살이 재미가 어떻수?”

연실이가 서울로 와서 찾아든 곳은 명애의 집이었다. 명애는 고창범이와 결혼을 하고 이 도회 서부 어떤 고지대(高地帶)에 한양(韓洋) 절충식의 문화주택을 짓고 살고 있었다.

명애의 집에 들어 짐을 대강 정리한 뒤에 연실이는 이렇게 물었다.

“야, 미나리 고쳐야겠더라. 청밀사탕 달다더니 시집살이 더 달더라구.”

“그렇게 재미나우?”

“그럼! 밤에는 서방 있겠다, 아침엔 귀찮은 서방은 학교에 가구, 나 혼자 편히 할 노릇 다 하겠다, 오후에는 - 야, 오후엔 우리 집 살롱엔 별별 청년들이 다 모여든다.”

“무슨 청년들이우?”

“너 좋아하는 문학 청년들.”

“고 선생…”

“아서라! 네 입에서 웬 갑작스러운 고 선생이야? 고상이지.”

“고상은 너무하니 아재라 해둡시다. 아재 찾아오우?”

“아재는, 나 찾아오지.”

명애에게서 들은 바에 의지하건대, 조선의 새 문학도는 대개 두 파로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시작>이라는 잡지를 무대로 활약하는 파로, 이를 '시작파'라 한다. 나머지 하나는 <퇴폐>라는 잡지를 무대로 활약하는 파로 이를 '퇴폐파'라 한다.

그런데 시작파와 퇴폐파를 손쉽게 구별하자면, 말하자면 기생네집 놀러간다 할지라도 시작파들은 기생방 아랫목에 누워서 기생을 호령하여 술을 부르고 음식을 부르는데 반하여, 퇴폐파는 꽃다발을 받들고 기생집을 찾아가서 무릎 꿇고 이것을 바치는 사람들이라 하면 짐작이 갈 것이다. 퇴폐파는 그 명칭과 같이 불란서 시인식의 퇴폐적 기분이 꽤 농후하였다.

명애의 살롱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퇴폐파거나 혹은 그들의 친구들이었다.

“와서는 무엇을 하우?”

“입에 거품을 물고 문학이 어떠니 인생이 어떠니 떠들지.”

“그럼 언니는 어떻게 허우?”

명애는 미소하였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놓구 말이지, 어디 무슨 소린질 알겠더냐? 그래서 그저 웃고 보고 듣고 있지.”

“오늘두 오우?”

“그럼! 나 없어두 저희들끼리 들어와서 한참씩 덤비다가 가니까…”

“나 좀 참가 못할가?”

“왜 못해. 네가 참가하면 모두들 아아 우리의 새 여왕이시여 하면서 손으로 키쓰를 보내리라.”

“이름은 누구 누구유?”

명애는 그들의 이름을 대강 꼽았다. 듣고 보니 신문이나 잡지에서 때때로 듣던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연실이는 매우 흡족하였다. 조선 신문단에서 활약하는 사람의 대부분을 손쉽게 사귈 기회를 얻었다.

이 년간을 동경과 서울 - 이렇게 만 리를 상격하여 있다가 만난 터이라, 서로 바꾸는 뉴스는 끝이 없었다. 그 가운데서 연실이가 가장 통쾌하게 들은 것은 송안나에 관한 뉴스였다.

살롱이라는 곳[편집]

송안나의 동경 유학 당시의 가장 마지막 애인은 I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I와의 애정이 다른 여러 과거의 애정들보다 가장 깊었다. 그런데 송안나가 아직 졸업하기 전에 I는 먼저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왔다가 병나서 죽었다. 송안나는 I가 죽은 반 년 뒤에 졸업하고 돌아왔을 때는, 벌써 새 약혼자가 하나 생겨서 약혼자와 동반하여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곧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결혼을 하고 신혼 여행으로 간다는 데가 어디냐 하면 죽은 I의 고향이었다. I의 고향에서 송안나는 신혼한 남편과 함께 죽은 애인의 무덤에 절하고(사죄라 하는 편이 옳을지) 새 남편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I의 무덤에 비석을 해 세워 주었다. - 이런 뉴스였다.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자면 송안나(뿐 아니라 연실이며 명애며 다 마찬가지다)의 심리며 행동이며는 제 정신 가진 사람의 일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명애는 깔깔대며 이 뉴스를 여성이 남성에게 대한 대승리라 하여 연실이에게 알렸고, 연실이는 손뼉을 두드리며 찬성하였다.

명애의 소위 살롱이라는 것은 마루방에 유리창을 달고 '센터 테이블'을 가운데로 값싼 의자가 대여섯 대 둘려 놓여 있고, '센터 테이블'에는 재떨이 몇 개와 성냥 몇 곽이 놓여 있는 뿐이었다.

오후 세 시쯤 대여섯 명의 무리가 밀려왔다. 머리를 기르고 터키(土耳其) 모자를 비뚜로 쓴 청년, 샛빨간 노끈을 넥타이 대신으로 쌍코를 내어맨 청년, 머리를 통 뒤로 젖히고 칼날 같은 코를 때때로 이탈리아 식으로 킁킁 울리는 청년 - 동경서 사립 음악 학교를 다닌 연실이에게도 신기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소설이나 시나 한 번 활자화되기만 하면 서로 이름쯤은 기억이 될 만한 단순한 시대라, 더욱이 여자인 김연실의 이름은 그들의 기억에도 있던 바였다. 그 위에 이 집의 여왕 명애의 이름을 통하여서도 누차 들은 일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들은 두 손을 들어 환영하였다.

그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은 연실이에게도 약간 기억이 있는 사람이었다. 옷은 별다르게 입지 않았으나 가장 유행형이었다. 구주 전쟁을 겪어 세계적으로 온갖 물자가 결핍하기 때문에, 옷 같은 것도 놀랍게 짧고 좁고 팽팽한 것이 유행되어 그 유행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시절이라, 옷이 좁고 짧은 것은 흠할 것이 아니지만, 이 청년의 것은 유달리 좁고 짧아서 누가 보든 남의 것을 빌어 입은 것 같았다.

박형(薄型) 나르단 제(製)의 금시계와 꽤 커다란 금강석 반지와 밀화 궐련 물부리 등으오 부잣집 청년이라는 점이 증명되기에 말이지, 의복만으로 보자면 남의 것을 빌어 입은 듯하였다. 김유봉(金流鳳)이라는 이름이었다. 동경 미술 학교 출신이었다. 이 청년을 연실이는 짐작한다.

김유봉은 평양 사람이다. 김유봉의 증조 할아버지는 평양의 전설적 치부가(致富家)였다. 김유봉의 할아버지는 참령(參領)이었다.

이 김유봉의 할아버지가 참령 시대에 연실이의 할아버지는 군정이었다. 옛날 같으면 연실이의 할아버지라도 김유봉의 앞에 감히 앉을 자격도 없고 가까이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연실이의 아버지도 이속(吏屬)이 되기 전에는 김 강동(강동 군수를 살았다고 김 강동이라고 한다) 댁에 하인 비슷이 드나들었다. 연실이의 아버지가 영리가 된 뒤에도 김 강동에게는 늘 하인같이 문안 다니고 하였다.

이러한 호상 관계가 있는 김유봉과 지금 대등(對等)의 자격으로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할 때에, 연실이의 마음에는 일종의 긍지까지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동서 고금의 온 예술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비판과 논란이 오르내렸다.

지금까지 자기를 여류 문학자로 자임하고 선각자로 자부하던 연실이로 하여금 적지 않게 불안을 느끼게 한 것은, 이 청년들이 떠들고 법석하는 이야기를 잘 알아듣기가 힘들뿐더러, 그들의 입에 예사로이 오르내리는 서양 문호의 이름조차도 연실이가 모르는 자가 적지 않은 점이었다. 명애의 말도 '그 작자들의 이야기는 내놓고 말하자면 잘 못 알아듣겠더라' 하더니만 연실이 자기도 그러하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막연히 느끼는 바는, 연실이 자기의 학우들이던 저곳 '일본' 남녀들과 이 청년들이 전혀 마음 가지는 법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저곳 남녀들은 단지 배울 것 배우고 놀 것 놀고 먹을 것 먹는 뿐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의 마음가짐 가운데는 자기의 배운 것으로 민족을 어떻게 한다 하는 '대(對) 사회'라는 것이 있는 듯하였다.

두 여인의 격투[편집]

연실이가 명애의 집에 기류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연실이와 명애는 대판 싸움을 하였다.

명애는 자기의 남편 되는 고창범이가 세상에 드문 호인인 것을 다행히 여기고 온갖 행동을 자유로 하였다. 그 소위 '온갖 행동'이라는 데는 연애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창범이도 짐작은 한다. 그러나 성격이 덜 났느니 만치 호인인 그는, 아내와 싸우기가 싫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모른 체하는 모양이었다.

명애의 상대 남자라는 것은 소위 살롱의 문학 청년도 있고, 남편의 친구도 있고 하여 대중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날, 이날도 아마 명애는 그 애인 중의 누구를 만나러 나간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 놀러나가려면 연실이를 두고 나갈 까닭이 없었다.

집에는 창범이와 연실이와 하인밖에 없었다.

창범이와 연실이는 같은 방에서, 창범이는 신문을 연실이는 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 소설에는 마침 어떤 여자(주인공)가 이전 학생 시대에 자기와 관계 있던 남자의 아내(친구끼리다)에게 놀러간다. 아내는 지금 찾아온 동무와 제 남편이 과거에 그런 일이 있은 줄은 모른다. 아내는 동무를 위하여 과일이라도 사러 가게에 나간다.

과거에 관계 있던 남녀가 단둘이 남는다. 여자가 눈을 들어 사내를 본다. 사내도 마주본다. 서로 싱그레 웃는다. 서로 손을 내민다. 서로 쓸어안는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것을 읽다가 연실이는 뜻하지 않고 고창범이를 건너다보았다. 그러매 고창범이도 연실이가 자기를 보는 기수에 신문을 내리며 마주보았다.

뜻하지 않고 서로 싱그레 웃었다. 수년 전에 마주 서로 보고 싱그레 웃던 일이 생각났다. 연실이가 말을 던져보았다.

“재미가 꿀 같죠?”

“세상 살기가 귀찮아집니다.”

“꽃 같은 부인에…”

“좀 가까이 와서 옛날과 같이 이야기나 해봅시다.”

고창범이는 손을 길게 뻗쳤다.

“명애한테 큰일나게…”

“이건 왜 이래!”

창범은 연실이의 옷깃을 잡았다. 옷깃에서 팔목으로 팔목에서 어깨로·서로 나란히하고 그 뒤에는 어깨를 붙안고 뺨을 비비고 꼴이 차차 우습게 되어갈 때에 문이 홱 열렸다.

깜짝 놀라서 남녀가 떨어져 앉을 때에 문에 나타난 사람은 이 집의 여왕 명애였다.

명애에게는 너무도 의외인 모양이었다. 잠깐 멍하니 섰다. 서로 떨어진 남녀도 무슨 할말도 없어서 우두머니 앉아 있었다.

드디어 명애에게서 노염이 폭발되었다.

“흥!”

이것이 첫 호령이었다. 다음 순간 화닥닥 뛰쳐들었다. 첫 발길로 제 남편을 걷어찼다. 다음 발길로 연실이를 차려 하였다. 연실이가 몸만 비키지 않았더면 무론 채였을 것이다.

연실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켰다. 그 때문에 허공을 찬 명애는 탁 엉덩이를 주저앉았다.

“이놈의 계집애, 손질까지 하는구나!”

악이었다. 달려들어 연실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여기서 두 여인은 한참을 서로 악담을 퍼부어가면서 머리채를 맞잡고 싸웠다. 명애의 남편은 어디로 언제 피하였는지 없어져버렸다.

이 집 하인이 들어와서 간신히 떼어놓을 때까지, 두 여인은 서로 옷을 찢으며 찢기우며 머리를 뽑히우며 코피를 쏟으며 가장집물을 부수며 격투를 계속하였다.

하인의 중재로 겨우 떨어진 뒤에 연실이는 도둑년이라 부르짖으며 명애는 화냥년이라 부르짖으며, 각각 하인에게 끌리어 딴 방으로 갈렸다.

제 방으로 돌아온 연실이는 즉시로 얼굴을 닦고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갈아입고 행장을 수습하여 가지고 명애의 집을 나왔다.

인력거에 몸과 짐을 실은 뒤에 연실이가 인력거꾼에게 가리킨 방향은 패밀리 호텔이었다.

이 패밀리 호텔에는 김유봉(金流鳳)이가 묵어 있었다.

호경기 시대인지라[편집]

연실이가 동경으로 처음 떠날 때에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훔쳐가지고 떠났던 돈은 그가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명애의 집에 기류해 있는 동안 다 썼다.

그러나 당시는 일천 구백 이십 년 전후의 호경기(好景氣) 시대라, 돈이 함부로 굴러다니던 때니 만치 금전은 전혀 문제가 안되었다. 만록총중의 일점홍으로 사천 년래의 제일 첫 사람인 신시인(新詩人)에게 생활 곤란의 문제가 생길 까닭이 없었다.

한 주일에 한번씩 내야 하는 이 호텔의 방세는 괴상한 복장의 청년들이 경쟁적으로 순서를 다투며 부담하였다. 매 끼니끼니는 이 청년 중의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씩이 내고 하였다. 일용품들도 연방 갖다바쳤다. 직접 금전으로도 바쳤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다 없어진다 할지라도 연실이의 생활은 튼튼히 보장되었다. 김유봉이가 연실이의 패트런이 되었다.

한 호텔에서 한가지의 취미를 즐기는 젊은 남녀였다. 그 사이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연실이는 연애를 동경한 지 수년, 이 패밀리 호텔에서 비로소 소설에서 읽던 연애를 사실적으로 체험하였다.

가장 유행형인 의복으로 맵시 나게 차린 김유봉과 동반하여, 혹은 교외를 산책하고 혹은 밤의 거리를 방황하며, 호텔의 창에서 갈구리 같은 달을 우러르며, 혹은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일찌기 소설에서 읽은 바와 같은 달콤한 속살거림을 서로 주고받았다.

“연실씨, 연실씨의 곁에 가까이 앉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립니다그려.”

“아이 참! 김 선생님? 우리가 왜 좀더 일찌기 만나지 못했을까요?”

“그게 참 큰 한입니다. 아아! 이 달밤에 우리 산보나 같이 나가볼까요?”

“네, 참 그러세요.”

그리고는 서로 잡았던 손에 힘을 주고 서로 뺨을 비벼대고 하였다.

싸우고 난 뒤에는 다시 명애를 만나지 않았다. 여자의 친구는 남자일 것이지 여자는 여자의 친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날 그 일에 일종의 희망을 붙였는지, 명애의 남편인 고창범은 몇 번 연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날 우연한 찬스에 다시 한번 붙안겨보기는 하였지만, 고창범 같은 남자에게는 일호의 흥미도 느낄 수 없는 연실이는 다시 창범을 만나지 않았다.

퇴폐파의 문사며 그밖 젊은이들도 차차 연실이를 김유봉의 애인으로 인식해주는 사람이 늘어갔다.

자신의 지식에 대한 의혹[편집]

김연실이가 친구 최명애의 집에서 뛰쳐나와서 문학청년 김유봉이 묵어 있는 패밀리 호텔을 숙소로 한 다음, 한동안은 연실이에게 있어서는 과연 즐거운 세월이었다.

첫째로 김유봉의 연애하는 태도가 격에 맞았다. 아직껏 김연실이라는 한 개 여성을 두고 그 위를 통과한 여러 남성이, 첫째로는 열 다섯 살 난 해에 그에게 일어를 가르쳐주던 측량쟁이에서 시작하여, 농학생 이모며 그밖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모두 평범한 연애였다.

연실이가 읽은 많은 소설 가운데 나오는 그런 달콤하고 시적(詩的)인 연애는 불행히 아직 경험하지 못하였다. 여류문학자로 자임하고, 문학과 연애는 불가분의 것으로 믿고 있는 연실이에게는, 그런 평범한 연애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문학자인 이상에는 연애는 해야 하겠고, 다른 신통한 상대자는 나서지 않아서 부득불 불만족하나마 그 연애로 참아온 것이지, 결코 만족한 바가 아니었다.

그 유감이 김유봉으로 비로소 만족하게 해결이 된 것이었다. 달밤의 산보, 꽃 아래서의 속살거림, 공손히 바치는 꽃다발, 무수한 '아아'와 '어어'의 감탄사, 그 가운데서 미소로써 그를 굽어보는 자기를 생각할 때는 연실이는 만족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기를 에워싸고 모여드는 청년들도 연실이를 만족케 하였다. 청년들이라 하는 것이 죄다 명애의 집에 드나드는 그 무리였지만, 연실이가 명애의 집에 있을 동안은 명애가 여왕이요, 연실이는 한 배빈에 지나지 못하였는데, 패밀리 호텔에서는 연실이가 유일한 여왕이요 중심 인물이며, 뭇 청년은 그를 호위하는 기사였다.

조선으로 돌아올 때에 그가 품었던 커다란 포부 - 첫째로는 연애를 죄악으로 아는 우매한 조선사람의 사상을 타파하고(연실이는 이것이 문화의 제일보요, 여성 해방의 실체라 믿었다), 둘째로는 연애의 실체물인 문학을 건설하고, 세째로는 이리하여서 조선 여자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올리려는 이 대이상(大理想)은 착착 진척되는 듯이 믿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때때로 그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하고 초조한 생각을 느끼게 하는 것은, 즉 자기 자신의 지식 정도에 대한 의혹이었다.

뭇 청년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논쟁하는 이야기가 연실이에게는 알아듣지 못할 말이 퍽이나 많았다. 토론의 내용, 토론의 의의, 토론의 주지만 이해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니, 주지 내용에 대해서는 태반이 모를 것뿐이었지만, 심지어 그들이 토론하는 이야기의 말귀도 알 수 없는 것이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 가운데 어떤 것을 무슨 형용사로 알고 듣고 있노라면 사람의 이름인 수도 있고, 낯설은 말을 누구의 이름인 줄 알고 듣고 있노라면 나중에 그것이 무슨 주의(主義)의 외국말인 수도 있고, 요컨대 이 나라 말 저 나라 말이며, 학술상의 술어(術語)며 고유명사를 막 섞어가면서 토론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연실이에게는 거의가 알아듣기 힘든 것이었다.

같은 선각자로서 더우기 만록총중의 일점홍으로 이 그룹의 중심이 되는 연실이라, 그 입장으로도 침묵만 지킬 수가 없거니와, 그의 자존심으로도 때때로 말을 끼어보고 싶고, 더우기 뭇 청년들은 연실이에게 듣기기 위하여 더 기써서 토론을 하는지라, 자연히 연실이는 말을 참견치 않을 수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몇 번은 참견을 하여보았다. 참견하였다가 멋없이 움쳐진 일이 여러번 있었다. 공연한 맞장구를 치다가 머석해진 적도 적지 않았다. 연실이 자신도 무료해서 딴 말로 돌리고 하였지만, 그들도 민망해서 좌석이 싱겁게 되고 하였다.

그런 일을 누차 겪은 뒤부터는 연실이는 퍽 주의해서 그들이 연실이 모르는 토론들을 할 때에는, 연실이는 편물을 한다든가 독서를 한다든가 그런 시늉을 해서 개입할 기회를 피하고 하였지만, 마음으로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망신스럽다는 일 자체도 불안하거니와, 조선의 여류 문학가요 선구자로 자신하고 있는 자기가 그렇듯 모르는 말이 많다는 점이 불안스러웠다.

이러한 가운데서 김유봉과 공동생활의 일년이 지났다. 일년이 지나고는 김유봉과 갈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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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과 무식이 차차 눈에[편집]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 일년간 쌓이고 쌓인 여러가지의 원인이 합하여서 연실이와 김유봉과 갈라지게 된 것이다.

공동생활을 시작하여 석 달 넉 달은 그야말로 꿀과 같고 꿈과 같은 살림이 계속되었다. 유봉은 문학 청년다운 온갖 재롱과 아첨과 애무를 연실이에게 퍼부었다. 영화에서 본 바, 또는 소설에서 읽은 바, 온갖 서양식 연애 재롱과 연애 방법을 다하여 연실이를 애무하였다.

거기 대하여 연실이도 또한 자기의 아는 바 온갖 서양식 연애 기술을 다하여 유봉이에게 갚았다. 외출은 반드시 둘이서 끼고야 하였지만, 어떻게 유봉이 혼자서 나가게 되면 연실이는 들창문을 열고 천백번의 키스를 유봉에게 던졌다.

돌아올 때는 맞받아나가서 가슴에 매달려 함부로 얼굴을 비벼대었다. 서양의 걸음걸이와 서양식 몸가짐과 서양식 표정 태도 등을 배우느라고 주의도 많이 하고 애도 퍽 썼다.

“아아, 김 선생님, 보담 더 행복되게, 보담 더 아름답게, 우리들의 라이프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베스트를 다합시다요!”

“그렇습니다 연실씨! 현재에도 우리는 행복스럽거니와 더 큰 행복을 향해서 매진합시다.”

“아아, 참 저는 김 선생님을 만난 것이 사막에 헤매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난 것 이상으로 환희의 절정이에요. 암흑에서 길을 잃고 갈 바를 모르던 사람에게 천(天)의 일각(一角)에서 한줄기 성광(聖光)이 비쳐서 길을 인도하는 것과 같아서 가슴이 환해집니다.”

“오오, 하늘에서 명멸하는 무수한 별이여! 그대 어찌타 꺼질 줄을 모르느뇨!”

“아아, 김 선생님!”

달도 없고 불도 없는 캄캄한 노대(露臺)에서 주고 받는 속살거림은 과시 서양식이고, 서양식인지라 연애다운 연애이고, 연애다운 연애인지라 문학미(味)가 충일된 것이었다.

이런 생활이 두 달 석 달 넉 달이 계속되었다. 그리고는 차차 주름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유봉이에게 있어서는 연실이의 무학(無學)과 무식이 차차 눈에 뜨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연애에 달뜬 동안은 그런 흠들이 모두 눈에 안 뜨이거나, 혹은 뜨일지라도 흠으로 보이지 않거나 했던 것이, 차차 날짜가 지나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는, 이제는 현저히 보인 모양이었다.

평범한 이야기 하나도 변변히 알아듣지 못하여 동문서답이 태반이어니와, 연실이가 가장 문학적 회화를 하노라고 많은 형용사와 조사와 감탄사를 끼어가지고 아름다운 청과 곡조로 하소연하는 미언려구(美言麗句)가 또한 본뜻과는 적지 않게 거리가 생겨서, 여류문학가라는 것은 꿈에도 욕심내지 못할 얕은 정도의 것이었다.

연애에 취하였을 때는 눈에 안 뜨이던 이런 흠이 차차 냄새가 나면서는 나날이 더 현저하게 눈에 거슬리며, 그뿐더러, 심상히 보자면 흠 잡히지 않을 것까지도 흠으로 보이고, 수효도 늘어가는 한편 흠의 정도도 크게 보여갔다.

처음에는 모르게 지냈고, 그 뒤에는 실수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 그 뒤는 간간 고쳐주었고, 또 그 뒤는 핀잔을 주던 것이, 마지막에는 흠 잡히지 않을 말까지라도 흠을 잡아 핀잔을 주고, 무식하다 매도하고, 일부러 큰소리로 웃어주어서 망신을 시키게까지 되었다.

말하자면 유봉이는 연실이에게 이젠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흠이 눈에 뜨이고, 대수롭지 않은 흠이 아주 크게 보인 것이었다.

유봉이의 심경이 이렇게 변함과 같은 보조로 연실이의 심경도 변하였다.

유봉이의 태도가 차차 불학무식한 사람과 같아 갔다. 처음에는 아주 귀공자다이 단아하고 우미하던 유봉이가 날이 갈수록 차차 조야하고 횡포하여갔다.

처음 여왕을 보호하던 기사와 같던 태도는 차차 사라져 없어지고, 조야한 본성이 드러나면서부터는 그의 예술미까지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연실이에게 대해서 문학을 토론하기를 차차 피하였다.

이것은 토론한댔자 연실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 말하자면 연실이의 실력이 발견된 탓도 있겠지만, 연실이가 알아들을 만한 이야기도 저희들끼리만 토론하였지, 연실이에게 향하는 일이 줄어갔다.

물론 문학적 연애의 가지가지의 재롱도 점점 적어지고, 시(詩)도 없어지고, 달도 몰라가고, 별도 몰라가고, 꽃도 몰라가고, 연실이가 '문학적 감동'으로 알고 있는 기분이며 정서는 물에 씻기우는 듯이 줄어들었다.

연실이는 제쳐놓고 저희끼리만[편집]

유봉이가 연실이에게 요구하는 성행위(연실이는 성행위와 연애를 같은 물건으로 안다)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우아하고 시(詩)적이요 문학적인 것이 아니고, 더럽고 추잡하고 무식한 - 그 옛날 어떤 저녁 연실이의 아버지가 애첩과 지내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연실이가 맨 처음 만난 측량쟁이(연실이에게 어학을 가르친)로부터, 김유봉의 직전(直前)까지, 열 손가락을 꼽고도 남는 이성(異性) 가운데서 유봉이와 같이 추잡한 성행위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야기는커녕 생각만 하여도 얼굴에 모닥불을 놓는 것 같은 느낌을 면할 수 없는 행위를 실천하고 요구하니, 이 너무도 비문학적(非文學的)이요 비시적(非詩的)인 김유봉이가 선각자 연실이의 마음의 애인이 될 수가 물론 없었다. 그 위에 더욱 더 그 무지한 본성을 폭로하노라고, 레이디에게 대하여 완력 행위까지 하기를 사양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비문학적인 김유봉이에게 대하여 연실이가 차차 소원하게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석 달 넉 달이 지나고 반년 열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서로 기괴한 사이가 되어서, 극도의 증오와 극도의 배척심을 품고 서로 대하게 되었다.

물론 한 자리에서 잔다.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그러나 한번의 미소도 없이 한 가닥의 '자연 찬송사'도 없이 한마디의 시도 없이, 제각기 제 감정 제 꿈으로 날을 보낸다. 그리고 이튿날도 또 같은 프로그램이 반복되는 뿐이었다.

문학으로 서로 얽혀지고 사랑으로 얽혀졌던 그들에게서 문학에 수준의 균형을 잃고 사랑에 공명점을 잃었으니(애당초부터 사랑이란 것은 존재치도 않았지만) 웃음이 있을 까닭이 없고 기쁨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동부인하고 나다니는 일도 없어졌다. 유봉이의 친구들이 모여서 연실이를 중심에 두고 문학론들을 지껄이던 일도 지금은 전과 달라져서, 연실이는 따로 제쳐놓고 저희들끼리만 지껄였다. 그렇지 않으면 연실이만 호텔에 혼자 남겨두고 저희끼리 밖으로 나갔다.

연실이가 명애의 집에서 뛰쳐나와 유봉이와 함께 패밀리 호텔에 기류한 처음 한동안은 명애의 살롱에 모이던 그룹이 패밀리 호텔을 집합소로 삼고 거기서들 놀았다. 그러던 것도 연실이와 유봉이의 사이가 식어갈 때는 차차 다른 곳으로 모였다.

연실이는 차차 문학과 떨어졌다. 선구자라는 긍지에도 꽤 흔들림이 생겼다. 문학을 호흡하고 문학을 음식하려는 것이 연실이의 이상이요 희망이어늘 결과는 그 반대였다.

패밀리 호텔에서 이런 대중잡지 못할 생활의 일년을 보낸 뒤에 그 생활의 파국이 이르렀다.

파국이랬자 그 이론 방법은 너무도 싱거웠다. 다툼, 하다못해 언쟁 한마디도 없이, 사실로는 연실이는 그것이 유봉과는 이별인 줄도 모르고 이 국면을 맞은 것이었다.

어떤 날 유봉은 갑자기 고향 평양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였다.

“가면 언제쯤 와요?”

연실이는 이렇게 물었다. 이젠 존경사도 서로 약해버리는 처지였다.

“글쎄, 한 주일 걸릴가, 한 반삭 걸릴가? 혹은 반년이 될지도 모르구… 혼자 있기 무서운가? 무서우면 장정이나 하나 시침(侍寢)시키지.”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용채로 쓰라고 몇백 환 집어주고 짐은 말끔히 꾸려가지고 나갔다.

“곧 다녀오면 무슨 짐이 그리 많소?”

하도 시시골골이 제 물건은 다 꺼내어 싸므로 이렇게 연실이가 물으매, 그는,

“올 때 도로 가져오면 되지.”

하고는 하나도 남김없이 싸 가지고 떠났다.

연실이는 거기 무슨 의심을 두지 않았다. 며칠을 다녀오려는지 그동안 오래간만에 좀 홀로 지내는 자유를 향락하고 싶었다. 정거장에나 나가봐야 할 것이나, 유봉이가 한사코 말리므로 그것 좋다 하고 그만두었다.

앙천대소할 만한 뉴스[편집]

그랬는데 그로부터 나흘 뒤 오정쯤, J라는 사람이 호텔로 찾아왔다. J는 어느 민간신문 기자였다. 성격은 좋게 말하자면 호협 남자요 나쁘게 말하자면 뻔뻔한 사람이었다. 현재는 연실이가 유봉이와 남이 아니고 유봉이는 시골 간 줄 알면서 찾아왔으니 미루어 알 것이다.

“김 소사(金召史)!”

칭호부터 괴상하였다. 연실이는 영문 몰라 번번히 쳐다보았다. J는 모자도 쓴 채로 의자 걸상 다 버리고 침대에 덜컥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편안한 듯이 두어 번 들석들석 춤을 추어보고는 지팡이로 침대보를 두드리며,

“사숙(私宿)이구 여관이구 어서 하나 정해야지 않소?”

하며 머리를 기울이고 연실이를 들여다본다.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 호텔은 하루 방세 사원, 식사까지 하면 칠팔 원 이상이 걸릴 테니 어떻게 방침을 세워야지 않겠소?”

여전히 모를 말. J는 비로소 유쾌한 듯이 한번 크게 웃었다.

“여보 긴상, 시바이는 그만두고 내 앙천대소할 만한 뉴스를 하나 긴상께 알리지. 다른 게 아니라, 유봉이가 시골에 갔다는 건 일장 시바이구, 녀석 ××동에다가 오부득하니 신접살림 꾸려놓고 소꼽질 살림에 정신 빠졌답니다.”

“재미나겠군요.”

연실이는 가볍게 대답하였다. 대포를 잘 놓는 J라 거짓말로 알았다.

연실이가 믿건 말건, J는 여전히 연실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제 말을 계속하였다.

“게다가 이 로맨스 유출유기(愈出愈奇)해서 미금앙천대소(未禁仰天大笑)니 즉 소꼽살림의 마담이 누군가 하면 전(前) Y전문학교 문과 교수 고창범 씨의 영부인 최명애 여사. 어떻습니까?”

“참 재미나는걸요. 신문기사는커녕 소설 재료도 될걸요.”

“자, 산보나 나갑시다. 구데기 나겠소이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지요? 두통에는 산보가 제일 약입니다. 자, 어서…”

연실이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리가 아파 못나가겠는걸요.”

“그렇지, 종일 누워 있으니 다리도 저리리다. 운동을 해서 펴야지.”

서두는 바람에 연실이는 하릴없이 따라나섰다.

J는 연실이를 끌고 걸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적잖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떤 골목 앞에까지 이르러서 J는 걸음을 느리게 하며 연실이를 돌아보고,

“자, 이 도적놈들 보세요.”

하며 지팡이를 들어서 그 앞집의 문패를 가리켰다.

연실이는 지팡이 끝을 따라 눈을 들었다. 새로 이사온 집인 양하여 거기는 문패 달렸던 자리만 희게 남고 그 대신 명함이 한 장 붙어 있었다. 보니, '金流鳳(김유봉)'이었다.

연실이는 거기서 넘어지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고, 호텔까지 돌아옴에 뉘게 부축 받은 기억도 없고, 자동차나 인력거를 탄 기억도 없이 - 요컨대 평상과 조금도 다름없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돌아온 행보며 노순이며 길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에 남은 것이 없었다. J와 함께 돌아왔는데 그 기억조차 없었다.

싱거운 전말[편집]

유봉이를 잃은 것은 아깝지도 않았고, 헤어지게 된 것이 서럽지도 않았다. 냉정히 생각하자면 이젠 냄새나던 처지라 도리어 시원한 편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가볍게 마치 헌신 버리듯 버리운 것이 분하였다. 자기가 헌신같이 버림받았으면, 자기는 유봉이를 걸레같이 버렸다 생각하였다.

이튿날 호텔에서 나왔다. 새로 적당한 주인을 잡기까지 며칠을 자기의 주인 집에 있으라는 J의 권고를 따라서 짐을 임시 J의 하숙에 부렸다.

정조관념에는 전연 불감증인 연실이는 J와의 동서(同棲) 생활도 그저 그렇고 그럴 것이라고 꺼려지지도 않는 대신 달갑지도 않았다. 다만 문학적 생활(연애를 하고 달을 찬송하고 별을 노래하며 꽃을 사랑하는)에서 꽤 멀리 떨어진 것이 매우 섭섭하였다. 다시 그 생활에 들어갈 기회를 포착하기에 마음썼다. J는 문학미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J에게서, 연실이는 김유봉이 최명애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전말을 들었다. 그것은 연실이와 유봉이가 갈라지게 된 전말보다도 더 싱거웠다. 유봉이와 명애가 남의 눈을 피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였다.

그러다가 최근 어떤 날 명애의 남편 고 교수가 학교에서 교수를 끝내고 허덕허덕 집으로 돌아와 보니까 아내가 없었다. 그 아내는 항용 나다니는 아내라 심상히 여겨서 찾아보지도 않았더니, 그날 밤이 깊어도, 밤이 새고 새날이 와도 또 다른 새날이 와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사흘 뒤에 사진 한 장이 우편으로 배달된 뿐인데,

그것은 김유봉이와 최명애가 내외와 같은 태도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것은 마치 연실이가 수년 전 아버지에게서 혼담 편지를 받고 회답 대신으로 연실 자기와 남학생과 갓난애의 세 사람이 찍힌 사진을 보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무언의 이혼장이었다.

본시 신경이 둔한 위에, 그때 마침 어떤 신문 여기자와 밀접히 지내던 고 교수는, 지금 받은 사진을 찢어버리고 그 대신 자기와 여자 기자가 찍힌 다른 사진을 꺼내어 사진틀에 넣고, 사진만 아니라 안방의 주인까지도 그렇게 바꾸었다. 이것이 그 전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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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 대량 산출의 시절[편집]

시대의 물레바퀴는 쉬임 없이 돌아간다. 한눈팔기만 하면, 한 걸음 절룩하기만 하면, 시대는 그 위를 용서 없이 타고 넘어서, 정신 차릴 때는 벌써 까마득한 앞에 달려가 있다.

연실이가 패밀리 호텔에서 유봉이와 연애에 골몰한 일년을 지내고, 다시 인간 세계에 나와서 둘러볼 때는(그 사이가 단 일년의 짧은 기간이나마), 조선의 사회도 적지 않게 변하였다.

문사(文士)의 수효가 놀랍게 많아졌다. 한 십여 일 J의 하숙에 몸을 기탁하고 있다가 성 밖(府外) 어느 조용한 늙은 과부의 집에 방 하나를 얻고 자리를 잡자, 유명 무명의 문사들이 육속하여 연실이를 찾았다. 새 총독의 문화정치의 여덕으로 적잖은 신문 잡지가 발간이 되어서, 지면(紙面)은 많아졌으나 집필자가 부족하여, 무슨 글이든 생기기만 하면 활자화(活字化)되는 문사 대량 산출의 시절이었다.

주판을 던지고 곡괭이를 던지고, 운전 핸들을 던지고 인력거 채를 던지고, 중학교 제모를 벗어던지고. 포승을 던지고 - 모두들 붓을 잡았다. 시, 소설, 수필, 온갖 형식의 문학이 놀라운 수효로 생겨나서 백화난만의 형태였다.

조선 신문학의 초창자인 이고주(李古周)가 문예라는 다분히 선전력을 가진 무기를 들고 처음 창도(唱道)한 것이 자유연애 찬송이었는지라, 신문학도들이 첫번 출발하는 자리는 천편일률로 '연애'였다. 연애소설, 연애시, 연애수필, 무릇 옛날에 있어서 '자왈(子曰)'이 없으면 글이 성립 못된다는 관념에 대신하여, '연애'가 포함되지 않은 글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새 공식이 생겼다.

먼저는 최명애의 집에 그 뒤를 김유봉의 품에, 이렇듯 감추여서 공개되지 않았던 '다정다한한 여류작가 김연실'의 공개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마치 저자와 같이 연실이의 집은 늘 청년 문학도들로 우글우글하였다.

그 어떤 날, 그날도 사오 명의 청년 문학도들이 연실이의 살롱(그들은 이 집 마루를 살롱이라고 불렀다).에 모여서 잡담들을 하던 끝에, 그 가운데 안경 쓰고 얼굴 창백한 친구가 연실이를 찾았다.

“미스 연(그들은 이렇게 연실이를 부른다), 여류문사 친목회를 조직해보시지요?”

“글쎄요.”

연실이는 얼굴에 썩 점잖은 미소를 띠고 대답하였다. 그 표정은 근일 거울과 의논하여가면서 수득한 것이었다.

“누구 어디 사람이 있어야지요.”

사실 만록총중의 일점홍으로 연실이 자기밖에는 여류문사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연실이의 의향에 창백한 청년이 반대의 뜻을 보였다.

“왜요, 많진 못하지만 몇 분 되시지요.”

“누구 누구?”

“저 최명애 씨라구 모르세요? 전 고창범 씨 부인…”

“네, 알기는 알지만…”

알기는 아나 최명애가 문사라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연실이는 의아하여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쓴 게 있읍니까?”

“예, 아마 - 있지요.”

그리고 곁의 뚱뚱한 친구를 돌아보았다.

“K군, 최명애 씨가 언젠가 「×××」에 뭘 썼지?”

“그렇지. 아, 아니야. 「×××」이 아니구 「**」창간호야.”

여류문사의 친목회[편집]

“그렇던가?”

“분명히 그래. '고향 부노(父老)들은 삼성(三省)하라'는 제목으로 아마 서너 페이지 넉넉히 돼.”

“응, 나두 생각나군. (다른 청년이 끼어들었다). 조리 정연하게 명문하던걸.”

“그럼, 선각자구 말구. 여자 층의 지도자지. 또 친목회 하자면 또 있읍니다. 송안나 씨라구, 글 쓴 건 못 봤지만 아주 웅변가구 활발하지. 또 있읍니다. ×××씨, - 씨… 대여섯 분은 넉넉히 될걸요. 우선 그 몇 분만으로 조직하구 차차 더 입회시키면 여남은 남게 되리라. 그만 했으면 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세요. 미스 연이 주창하셔서 여류문사 친목회를 조직하세요.”

연실이는 솔깃하게 들었다. 첫 순간은 최명애 등등에게 작품이 없이 어찌 문사라고 하려누 생각도 했으나, 그렇게 따지자면 자기도 이렇다 할 작품이 없기는 일반이었다. 자기에게 작품이 없은 것은 그런 시간이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지 결코 문사가 아닌 때문은 아니다. 언제든 찬스만 있으면 작품은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 연실이는 이렇게 알고 있다.

따라서 명애며 그밖 지금 말썽된 사람들도 기위 연애를 이해하고 연애를 사랑하고 자유로운 환경과 새로운 지식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이니, 문사의 회원 될 자격은 넉넉하리라. 좀 꺼리는 바는 최명애를 만나기가 열적은 점과, 그보다도 명애를 만나려면 또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유봉이를 대하기가 면증한 점이었다.

“미스 연, 꼭 조직하세요.”

“글쎄요. 누구가 조직하면 난 회원이나 되지요.”

“그게 될 말씀입니까? 가장 화형이 되실 분이 뒤에 숨어서야 됩니까? 꼭 선두에 나서야 합니다.”

“글쎄올시다.”

이만치 하여두었다.

그러나 그 밤은 연실이는 많은 공상 때문에 얼른 잠이 못들었다. 연실이에게는 쉽잖은 경험이었다. 한창 처녀시절에도 그다지 공상의 세계를 모르고 지낸 그였었지만 이 저녁은 공상이 일어났다. 생활 환경 때문에 한동안 문학계에서 떠나 있다가 다시 그 길로 돌아가렴에 임해서, 자기의 전도에 다시금 비치는 찬연한 광휘에 현혹되어 잠이 잘 못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여류문사의 친목회가 조직되고 제일회 회장으로는 송안나가 뽑혔다. 멤버는 전부가 과거의 동경 유학생이고, 법률이 보호하는 남편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환경이 지극히 자유로운 사람들로서 나이는 스물 다섯을 전후하였다.

회의 집합 일자며 장소도 특별히 없고, 몇 사람이 우연히 모이면 서로 찾아가서 모이게 되고, 모이면 남자 문사들을 찾아가지고 산보를 간다든가 식사를 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 회의 행사였고, 이 회원의 단 한 가지의 특징은 서로 의논해가면서 빛깔 같은 옷을 입는 것뿐이었다.

이 회 첫 회합에서 오래간만에 명애를 만난 연실이는 열적은 것을 참고,

“김 선생님(유봉)도 안녕하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여기 대하여 명애는,

“너 몹시 보고 싶어하더라.”

하고는 픽 웃어버렸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이 두 여인의 사이에 막혔던 막은 단숨에 없어져버렸다. 둘의 교제는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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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경제 곤란을[편집]

하늘은 인생이라 하는 것을 커다란 키(箕)에 담아 가지고 끊임없이 키질을 한다. 그 키질로써 가라지, 죽데기, 껍질, 먼지 등은 날려버리고, 알맹이만 따로 추려낸다.

너무도 급격히 수입된 신문화의 선풍과, 그때 때를 같이하여 전개된 대경기(大景氣)의 덕택으로 생겨났던 가라지며 죽데기는 이 키질에 모두 정리되었다. 세계적으로 이르렀던 대경기의 반동으로 온 세계는 전고 미문의 불경기 시대를 현출하였다. 큰 회사 큰 재벌들이 폭폭 넘어지고 파산자가 온 세상에 충일되었다.

불경기는 자숙(自肅)을 낳는다. 한때 경기에 생겨났던 부박한 세태와 경표한 풍조는 한꺼번에 쓸리어나갔다.

신생 조선 문학도 이 영향을 크게 받았다. 금전의 여유가 있어서 자연 출판계가 흥성하였고, 그 덕에 어중이 떠중이가 모두 주판을 던지고 망치를 던지고 붓대를 잡았었는데, 한풀 꺾인 다음에는 그들은 다시 예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에 하나이 겨우 이 키질에도 자기의 명맥을 보존하였지, 나머지의 대부분은 좀 우(優)한 자는 신문기자로, 그에 버금한 자는 광고 문안자(廣告文案者)로, 또 그 아래로는 과거 대경기 시대에 몇 번 제 이름이 활자화해 본 것을 연줄로 억지로 그냥 매달려 있는 사람으로 - 이렇듯 그냥 붓대를 잡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각기 제 재분에 따라서 새 직업을 따라갔다.

그런 가운데서 연실이는 '여류문사'라는 특별한 지위의 덕으로 그냥 문사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기는 하였다. 조선에서 가장 처음의 여류문사로, 연실이의 이름은 하도 크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한 개의 작품 행동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리통에도 그냥 남아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경제상의 압박은 피할 수가 없었다. 연실이는 아직껏 경제 곤란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 언제 누구가 어디서 주는지는 자기로도 기억이 흐리지만, 언제든 주머니에는 여유가 있었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 외에, 또 필요한 물건은 어디서 언제 생기는지 늘 저절로 부족을 모를 만치 준비되어 있었다. 물질상의 곤란이라는 것이 존재한 줄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이러다가 갑자기 생전 처음으로 경제 곤란이라는 것에 직면하니, 어찌해야 될지 전혀 도리가 생각나지를 않았다. 온갖 사물에 대해서 지극히 감수성이 둔한 연실이도 현실의 경제 곤란에 직면해서는 갈팡질팡하였다.

경기 좋은 시절에는 그 살롱에는 늘 청년들이 우글우글하였고 경제 곤란을 모르고 지냈는데, 불경기 선풍이 불자, 살롱이 차차 적막해갔고, 동시에 연실이의 주머니도 가벼워갔다. 간간 일 환, 삼 환, 오 환 등 생기기는 하였지만, 이런 부스럭 돈으로는 생활비가 되지를 않는다.

주인집의 하숙비를 한 달은 잊어버린 체하고 거저 넘겼다. 매일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채근 받는 것 같아서 간이 조막만하게 되고 하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만에 종내 채근을 받았다.

빚 채근이 평생 처음인 연실이는 저녁때 드리마 하고 그냥 나왔다.

저녁때라도 돈이 생길 까닭이 없었다. 저녁때까지 이 동무 저 동무네 집에 일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저녁때도 하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느 동무네 집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은 역시 갈 데가 없어서 식전 새벽에 명애네 집을 찾아갔다. 명애는 유봉이와 갈려서 다른 사람과 동서하는 때였다.

팔목 시계를 잡혀서[편집]

꼭두새벽에 침침한 얼굴로 찾아오는 연실이를 명애는 놀라면서 반갑게 맞았다.

“웬일인가? 자, 건넌방으로 들어가세.”

겨우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할세마는 연실이는 진새벽에 웬일이야?”

연실이는 씩 웃었다. 적당한 대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연실이가 자기의 가슴에 품은 근심을 명애에게 하소연한 것은 점심때도 거의 되어서 명애의 남편(?)이 외출을 한 뒤였다.

“에이, 이 바보야!”

연실이의 하소연을 듣고 명애는 명랑한 웃음을 한가닥 웃은 뒤에 이렇게 내던졌다.

“상판대기 반질허구 나이두 아직 젊었겠다, 이 좋은 세상에서 돈의 걱정을 한담? 죽어 불여(不如)라. 이생(爾生) 하(何) 쓰리오?”

“그럼 어떡허우?”

“그맛 지혜도 안나니? 녀석들 가운데 그중 어수룩해보이는 녀석하구 단둘이서 있을 기회를 타서 한번 장태식(長太息)을 하는 게지. 우리 천사여, 왜 한숨을 짓는 겐가? 아아, 선생님! 인간엔 왜 이다지 고초가 많사외까? 무슨 고초외까, 우리 천사여? 말씀드릴 바가 아니외다. 꼭 말씀, 아니, 꼭, 아니, 두세 번 사양을 하다가 마지못해 한숨의 곡절을 설명하려무나. 거기 주머니를 벌리지 않는 녀석은 따귀를 갈길 겔세.”

연실이는 탄식하였다.

“그래도 염치에…”

“염치? 뒤집어씌울 땐 언제구 점잔 뽑을 땐 언젠가? 말이나 말아라. 샨노메 쟈시까 같으니!”

남의 감정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내던지는 농담에 저절로 찌푸려지려는 눈살을 감추려고 연실이는 외면을 하였다. 물론 명애에게서 무슨 해결을 얻자고 찾은 바는 아니다. 갈 곳도 없고 하도 클클해서 왔던 바였다. 왔다가 말말결에(가슴에 뭉쳤던 근심이라) 저절로 터져나온 것이었다.

놀랍게 짧은 가을 해가 서편 하늘에서 춤을 출 때에 연실이는 명애의 집을 나섰다.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나서기는 하였지만 갈 곳이 없었다. 앞이 딱하였다. 다른 단련은 퍽으나 경험했지만 빚 단련은 처음 겪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갚으마 한 것을 오늘도 빈손으로 들어갔다가 주인 노파에게 채근 받으면 무어라 대답할까? 황혼에서 어둠으로, 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아래서 연실이는 지향없이 헤매고 있었다. 또 누구의 집을 찾아가서 이 밤을 보낼까? 혹은 눈 딱 감고 집으로 돌아갈까? 이렇게 헤매다가 저편 길 모퉁이에 전당국 간판이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럼을 무릅쓰고 집으로 들어갔다.

팔목에 찼던 시계를 이십 원에 잡혀서 비로소 길게 숨을 내쉬고 주인집으로 향하였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편집]

시계를 잡혀서 간신히 눈앞의 불은 껐다. 그러나 사람이 삶을 경영하는 동안은 언제까지든 의식의 종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라, 한 개의 불을 껐다고 문제가 아주 해소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실이의 소유물이 차차 줄어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값지고 경편한 물건이 차례로 없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물건을 선택할 처지가 못되었다. 육중하고 값 안나가는 물건, 내놓기 싫은 기념품까지도 차례로 나갔다.

전당국 출입이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했고, 남의 눈을 피하노라고 돌림길도 해보았지만, 차차 어느덧 비위가 생기고 값을 다투는 재간까지도 터득하였다.

명애는 ‘녀석의 주머니에서 돈을 따내라.’고 권고하였다. 명애며 안나며 그밖 이전 여류문사회의 멤버 또는 같은 성질의 여인들은 모두 그 수단으로 삶을 경영한다.

그러나 연실이는 그러기가 좀 어려웠다.

차마 용기가 안 났다. 예전 여류문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도 용감스럽게 그렇게도 비위좋게 능동적으로 정복적으로 남자에게 접근하였지만, 금전과 의식을 위해서는 그럴 용기가 당초에 나지 않았다. 저편 쪽에서 먼저 요구하여오면 피하거나 사양할 연실이가 아니었지만, 이쪽에서 능동적으로 나갈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 저편 쪽에서는 연실이에게 대해서만은 선착수를 피하려는 눈치가 분명하였다. 그 연유는 연실이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실정에 있어서는 명애나 안나나 그 무리들의 방종한 행위가 연실이보다 훨씬 더 심했지만,

인간으로서 연실이가 더 유명했기 때문에, 소문이 더 널리 퍼지고 많이 퍼지고, 에누리가 붙고 덤이 붙고 하여, 소문만으로는 연실이에게 걸려들었다가는 큰코를 다치게 되는 듯이 알려졌으므로, 상종하기를 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무서워까지는 않는 사람일지라도 연실이가 하도 유명한 여인이라, 그와 사귀었다가는 자기도 소문이 높아질 것을 꺼리어서 피하였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또 '유명한 김연실'이에게 마음을 두었다가 방을 맞을까보아 마음도 안 두었다. 이런 관계들로 연실이는 피동적 입장에 서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능동적으로 자기가 못 나서고 피동적으로는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 길로는 단념할밖에는 없었다.

어찌어찌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도 하루 이틀에 그치지 오래 계속되는 사람이 없었다.

연실이의 생활은 차차 참담하여갔다. 전당잡힐 물건도 이젠 다 잡혀먹고, 어찌어찌하다가 요행 얻어 만나는 이성 친구는 오래 계속되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그의 친구들도 모두 옛날 경기 좋은 세월과 달라서 자기네의 경제문제 해결에도 허덕이는 판이니 거기 덧붙을 수도 없고 -

풀죽은 치마에 굵은 양말, 검정 고무신, 흐트러진 머리칼. 전당질 생활 일년 뒤에는 그의 모양은 초라하기 짝이 없이 되고, 그 위에 수심과 영양불량으로 안색까지 초췌하고 야위어서 딴 사람같이 되었다. 물론 하숙 생활을 그만두고 밤 껍질 만한 셋방 하나를 얻어 자취 생활을 하는 지도 오래였으며, 주머니의 시재 결과로써 굶은 끼니도 적지 않았다.

본시부터도 몽상과 공상을 그다지 모르고 지냈지만, 생활고에 부대끼면서부터는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이 주머니를 털고는 그 뒤는 무엇으로 먹고 무엇으로 사나 - 딱 눈앞에 닥쳐 있는 이 문제는 다른 생각(근심까지라도)을 할 겨를을 주지를 않았다.

문학? 문학을 박차버린 지는 벌써 오래다. 자신(自信)을 잃은 것이었다. 옛날 자기를 에워싼 청년들과 자기 자신의 사이에 지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는 그만한 차이는 있어도 될 것이다, 이만치 생각하고 불안 가운데서도 스스로 위로하고 안심하고 지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의 그릇된 생각이었다.

조선 여류문사 제1기생인 연실이며 최명애, 송안나, 누구 누구, 이 사람들이 밟은 전철(前轍)을 경계 삼아 출발한 제2기생의 걸음걸이는 훨씬 견실하였다.

견실한 것이 더 문학적인지 혹은 방종한 것이 더 문학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견실하니 만치 더 이지적(理智的)이요, 이지적이니 만치 더 현실적이요, 굳세고 믿음성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제 1기생들이 '작품 없는 문학 생활'에 골몰할 동안, 제2 기생들은 영영공공 습작(習作)에 정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연애도 잃어버리고 문학도 박차버린 연실이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갖은 애를 다 썼다.

그러나 잡힐 물건도 이제는 동이 났고, 연애 수입은 몇 푼 되지도 않거니와 대중도 할 수 없고, 장차는 굶거나 동냥을 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의 길밖에는 남지를 않게 되었다. 어느 편을 취하나?

굶을 수도 없다. 동냥도 차마 못하겠다. 남은 길은 둘밖에 없는데 둘 다 취할 수가 없었다. 그밖에는 인생의 최후의 길 - '죽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막다른 골에서, 연실이는 비로소 고향 평양에는 부모와 동생이 있다는 일이 생각났다. 음신조차 끊기기 십 년이나 되매, 혹은 그들 중에는 작고한 사람도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다야 작고하였으랴. 남보다 그래도 혈기가 나을 것이다.

며칠 뒤 연실이는 간신히 차비를 마련해 가지고 평양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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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같은 대접을[편집]

연실이는 평양서 열흘도 못 있고 도로 서울로 올라왔다.

평양에는 아버지, 적모 다 작고하고, 오라비동생(이복)도 하나만이 아내를 얻어 가지고 순사를 다니고 있었다.

연실이가 행색이라도 좀 나았으면 그래도 좀 대접이 달랐을지도 모르나, 간신히 거지나 면한 듯한 꾀죄죄한 꼴로 들어서고 보니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실로 불쾌하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면 도리어 나을 것이다. 제 손아랫 사람에게 마치 거지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간신히 열흘을 참다가 도로 서울로 올라왔다. 이튿날로 곧 돌아서고 싶었으나 불행히 차비가 없어서 못 떠나고 있다가, 길에서 옛날 동무를 만나서 염치를 무릅쓰고 동냥하여 차비를 마련해 가지고 떠나노라는 말도 않고 나와버렸다. 평양 내려갔던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동무에게 십 원을 꾸어서 차비를 쓰고, 오륙 원 남은 것을 신주와 같이 귀중히 품고 경성에 다시 발을 내려놓을 때는 눈앞이 아득하였다.

어찌하랴?

그 옛날 커다란 포부와 희망을 품고 동경서 이곳으로 돌아올 때는 얼마나 희망과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던가!

그 뒤 수년간 조선 유일의 여류문학자로 이 땅을 활보할 때에, 이 땅은 얼마나 아리땁고 향그러웠던고!

겨우 수 삼 년 전의 일이다.

같은 땅 같은 사람이다. 그렇거늘… 천만의 발이 활기 있게 걸음을 재촉하는 길바닥을 풀이 없이 걸었다.

안잠이라도 자리라. 부엌데기라도 되리라. 동냥만은 결코 안 하리라. 더우기 동기네 집의 신세는 안 지리라.

그 사이 열흘 오라비네 집에 있으면서 연실이는 쓴일 단일 마다 하지 않고 다 하였다. 남의 집에서 그만치 시중해주었으면 치사 받기에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렇거늘 동생네 집에서는 일에는 공이 없고 받은 신세는 자세가 된다. 그만큼 속을 쓰고 마음을 쓰고 몸을 쓰면, 왜 배가 고프고 옷이 남루하랴? 내 배를 내가 채우리라. 내 몸을 내가 장식하리라.

동생네 집 열흘에서 갖은 수모 다 받은 연실이는 다시 상경해서 하인살이를 해서라도 독립하여 살고자 굳게 결심하였다.

우선 셋방 하나를 얻어서 몸둘 곳을 장만하고, 그 뒤 직업(음악 개인 교수나 일어 교수쯤의 좀 고등한 직업에서 안잠자기, 찻집 등의 낮은 직업에 이르기까지 피하지 않고 다 닥치는대로)을 구하려고 차표를 역부에게 주고 그 뒤는 오륙 원의 돈과 몸에 걸친 남루한 옷 한 벌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조촐한 몸을 백만 장안으로 끼어들은 것이었다.

집세가 헐한 **동 근처로 찾아갔다. '복덕방'이라는 휘장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들치고 들어서면서 주인을 찾았다.

매달 한 삼 원짜리 삭월세의 방 하나를 -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몹시 서툴었다. 복덕방 주인은 사십 내외쯤 되는 중늙은이었다. 그는 이 하이칼라 같기도 하고 초라하기도 한 여인을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동저고릿바람으로 나섰다.

연실이는 집주름의 뒤를 따라서 묵묵히 걸었다.

가면서 생각하였다. 중개인이 몹시 낯익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였다.

“방은 한 달에 삼 원이지만 석 달 월세를 깔아야 합니다.”

중개인은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러나 웬 까닭인지 중개인의 뒷모습에 몹시 흥미를 일으키고,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욕구 때문에 그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방은 보았다.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도 똑똑히 안 보았다.

그날 밤, 이 초라한 행색을 쉴 곳도 없어서 경성역 대합실에서 밤을 보내다가, 연실이는 문득 아까 그 중개인의 정체를 알아내었다

과부 홀아비 한 쌍[편집]

지금부터 수십 년 전 연실이에게 일어를 가르치던 측량쟁이, 열 다섯 살 나는 소녀 연실이에게 처음 '이성'을 알게 한 사나이 - 그 인물의 십 수 년 후의 모양이었다.

연실이는 미소하였다. 노엽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반갑지도 않았다. 웬일인지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 뿐이었다.

“두마라나이 모노떼수 응아 또우조(변변찮습니다만, 좀 드십시오).”

그때 그가 가르치던 괴상야릇한 발음을 입 속으로 한번 외워보고, 작은 소리까지 내어서 웃었다.

이튿날 다시 복덕방을 찾아갔다. 기회 보아,

“나 몰라보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왜 몰라, 김연실이지.”

그는 태연히 대답하였다.

“언제 알아보았수?”

“어제 진작 알아봤지.”

“그럼 왜 모른 체하셨어요.”

“아는 체하면 뭘 하오?”

딴은 그렇다.

“그래 벌이는 어떠세요?”

“그저 굶지나 않지.”

“댁은 어디세요?”

“홀아비도 집이 있나?”

“가엾어라!”

“임자는 왜 혼자서 집을 얻소? 소박 맞았나요?”

“과부두 소박 맞나요?”

“과부라? 시집은 언제 갔었나요?”

“아이, 참 처녀…”

“처녀라? 삼십 처녀… 가엾어라!”

그날도 그만치 해두고 집은 얻는다 안 얻는다 말없이 또 갈리었다.

또 그 이튿날 연실이는 또 갔다. 그날 이런 말이 있었다.

“과부 홀아비 한 쌍이로구먼…”

“그렇구료!”

“아주 한 쌍 되면 어떨까?”

“것두 무방하지요.”

이리하여 여기서는 한쌍의 원앙이가 생겨났다.

  1. 탄실(彈實) 김명순(金明淳)을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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