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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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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인가 솔을 좋아한다. 아마 썩 어려서부터인가 짐작된다. 봄만 되면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것은 내가 여섯 살인가 되어 어머니와 같이 뒷산 솔밭에 올라 누렇게 황금빛 나는 솔가래기를 긁던 것이다. 때인즉 봄이었던가 싶으다. 온 산에 송림이 울창하였고 흐뭇한 냄새를 피우는 솔가래기가 발이 빠질 지경쯤 푹 쌓여 있었다. 솔은 전년겨울 난 잎을 이 봄에 죄다 떨구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를 여읜 우리 모녀는 어느 산골에 사는 고모를 찾아갔고 고모네 집 옆방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그만큼 우리는 곤궁히 지내므로 해서 하루의 두 끼니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였던가 싶다.

봄철을 만난 송림은 그 잎이 푸름을 지나서 거멓게 성이 올랐고 눈가루 같은 꽃을 뿌려 숨이 막힐 지경, 향기가 요란스러웠다. 그리고 솔가지 속에 숨어 빠끔히 내다보는 하늘은 도라지꽃인 양 그 빛이 짙었으며 어디서인가 푸르릉거리는 이름 모를 새들은 별빛 같은 몽롱한 노래를 흘려서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곤 하였다. 거기서 우리 모녀는 부스럭부스럭 솔가래기를 긁어 모았다.

나는 조그만 몸을 토끼처럼 날려서 솔방울을 주워 내가 가지고 간 빨갛고 파란 띠를 두른 조그만 바구니에 채우고, 노란 꽃잎을 따가지고 곧잘 놀다 가도, 배만 고프면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서 못 견디게 졸라대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딱하여서 나를 어르고 달래다 못해서 나의 뺨을 찰싹 때리면, 나는 죽는 듯이 울었고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나를 업으시고 소나무에 기대어서 한참씩이나 우두커니 섰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어떤 날은 하도 조르니까 물오른 솔가지를 뚝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하얀 가락 같은 대를 나의 입에 물려주었다. 거기는 달콤한 진액이 발려 있었다.

고향에 있을 때는 송림이 가득 차 있는 앞뒷산에 늘 오르게 되니까 그리 솔의 진가를 알지 못하겠더니 일단 고향을 등지게 되고 멀리 간도땅을 밟게 되니 솔이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가히 짐작할 수가 있게 된다. 고향…… 하면 벌써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두렵게 굴곡이 진 고산 준령이요, 그 위를 구름처럼 감돌아 있는 솔밭이요, 또한 무지개처럼 그 사이를 달리는 폭포수다.

솔은 본래부터 그 근성이 결백하여서 시커먼 진흙땅을 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간도에서는 한 그루의 솔을 대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한다. 언제 보아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준령에 까맣게 무리를 지었고 하늘의 영기를 혼자 맛보고 있으며 또한 눈빛같이 흰 사장을 끼고 이쁘게 몸매를 가지지 않았나.

경원선 방면으로 여행해 보신 이는 누구나 다 보셨을 것이지만 동해안에 그 송전이란 극히 드문 절경중의 하나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망망한 푸른 바다는 하늘을 따라 멀리 달려나갔고 한두 척의 어선이 수평선 위에 비스듬히 걸려서 슬픈 노래를 자욱히 뿌리고 있다. 갈매기 날개를 펴서 천천히 나를 제, 나래 끝에 노래가사가 하나 둘 그려지고 있다.

철썩철썩 들리는 파도소리 ─ 그 파도에 씻기고 닦인 사장은 옥같아 백포처럼 희게 널렸고 그곳에 아담하게 서서 있는 솔 포기들! 그 자손이 어찌 그리 퍼졌는고 작은 애기솔, 큰 어른솔, 흡사히 내가 집에 두고 온 내 애기의 그 다방머리 같았고 차창을 와락 열고 손짓해서 부르고 싶구나.

솔은 장미처럼 요염한 꽃을 피울 줄도 모르며 화려한 향취를 뿌려 오고가는 뭇나비들을 부를 줄도 모른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며 그만큼 그는 적적한 편이라 할 것이다.

허나 오랜 풍우에 시달리고 볶인 노숙한 체구는 마치 화가의 신비로운 붓 끝에서 빚어진 듯 스스로 머리를 숙여 옷깃을 여밀 만큼 그 색채가 엄숙하여 좋고, 침형으로 된 잎이 서로 얽히어 난잡스러울 듯하건만 그렇지 않고 의좋게 짝을 지어 한 줄기에 질서 있게 붙어서, 맵고 거센 설한에도 이를 옥물고 뜻을 변치 않는 그 기개가 좋고, 나는 듯마는 듯, 그러나 다시 한번 맡으면 확실히 무거운 저력을 가지고 내 코끝을 압박하는 그 향취가 솔의 품격을 여실히 드러내어 좋다.

지금은 봄, 춘풍이 파뿌리 냄새를 가득히 싣고 이 거리를 범람한다. 나는 신병으로 인하여 며칠 전에 상경하였다. 아침이면 분주히 대학 병원으로 달리면서 원내에 우뚝우뚝 서 있는 노송을 바라본다. 비록 몸은 늙어 딴 받침 나무를 의지해 섰지만 그 잎의 지조만은 서슬이 푸르다. 암담한 세상에서 너 혼자 호올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가없다. 문득 내 어머님께서 뚝 꺾어주시던 그 솔가지, 달콤한 물이 쪼르르 흐르던 그 가지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면서 내 입 속이 환해진다. 마치 가오리 같이 까맣게 오래된 것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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