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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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讐鬼[복수귀]의 悲歌[비가][편집]

『왜 그러시오?』

『뭘 그리 놀라시오?』

백영호씨의 놀란 목소리에 임경부와 남수는 일시에 그렇게 부르짖으며 침실로 달려갔다.

『아! 들창이 열리었구나!』

기다리던 것이 종내 왔구나!……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임경부는 뛰어가 들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박군!』

하고 고함을 쳤다.

『네?』

박태일 부장의 굵다란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날아온다.

『정문에 무슨 이상 없는가?』

『없읍니다!』

『없다? 없을리가 있나? 사람을 들인적은 없는가?』

『없읍니다. 개새끼 한마리 들이지 않았읍니다.』

『그럴리가 있나? 그러면 속히 정문을 잠그고 정원을 뒤져라! 각각 무장(武裝)을 하고 권총을 꺼내들어야 한다! 알겠나?』

『알겠읍니다.』

『그러면 한시 바삐 뒤져라! 일분 일초라도 늦어서는 아니된다!』

『네!』

이리하여 임경부가 부하들에게 정원 수색 명령을 벽력같이 내리고 있는 사이에 잠들었던 은몽과 정란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들 그러세요?』

은몽과 정란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눈을 부비면서 방안을 두루 돌아다보다가

『아 칼?』

하고 남수가 벽에서 뽑아진 단도를 보고야 비로서 자기 몸에 절박한 위험을 전신에 느낀 듯

『아, 무서워』

하고 서로 껴안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걱정말아! 걱정할 것 없어!』

백영호씨는 은몽과 정란의 어깨를 번갈아 어루만지며 조용히 일렀으나 그러는 백영호씨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목덜미롤 내려누르는 것 같았다.

대관절 『 어떻게 된 일이예요? 칼은 어디서 난 칼이예요?』

은몽은 한손으로 남편의 팔목을 부여 잡으면서 물었다. 백영호씨는 애처로운 듯 젊은 아내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아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세히 설명 한 후

『지금 경찰들이 정원을 수색하는 중이니 무슨 소식이 있을테지. 마음을 굳게 가져야 하오. 아무 염려 말고 마음을 편안히 가져야지 ──』

그 때 임경부는 은몽과 정란을 향하여

『물론 주무실 때 들창을 닫으셨지요?』

『네, 닫았어요. 그러나 잠그진 않았어요.』

『몇시 쯤 잠들으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요. 지금이 열 두시 삼십 분이니까 ──』

『글쎄요. 정란은 저보다 먼저 잠들고……정란이 잠든 것이 몇시었지?』

『나는 열 한시 치는 소리를 꿈결처럼 들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잠든 것은 열 한시 반 쯤 되었을까요. 정란이가 잠든 후 조금 있다가 저도 잠들었으니까요.』

임경부는 잠깐동안 질문을 멈추고 생각한다. ── 그 놈이 창문을 열고 비수를 던진 것은 대략 열 한시 반에서 부터 열 두시 까지다, 그러면 그 놈은 대관절 어디를 어떻게 정원으로 숨어 들었을까? 높은 담장도 담장이거니와 그 담장을 지키고 있던 여러 경찰들의 눈을 어떻게 속이었을까? 정문으로는 개 한마리 드나들지 않았다고 박부장은 단언하지 않는가? 이상한 일이다!

지금 전등밑에서 칼에 꽃히었던 붉은 편지를 양손에 펴들고 한자한자 한줄 한줄을 충혈된 눈동자로 더듬어 읽는 남수의 얼굴빛을 보라! 창백한 양볼, 경련하는 입술!

남수는 돌연 얼굴을 번쩍 들고 무서움에 어린 시선으로 천정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떠들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남수는 대체 편지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남수는 무슨 이유로 미친 사람처럼 멍하니 천정만 쳐다보는가? 남수의 수상한 태도에 사람들도 이유없이 천정을 쳐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높다란 천정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 무엇을 그리 쳐다보는 거예요?』

종래 정란은 무서움을 참지 못하고 오빠를 불렀으나 남수는 여전히 떠들지 말라고 손을 휘저으면서 물끄러미 천정을 바라다 볼 뿐이다.

『대체 무슨 편지길래 ──』

임경부가 남수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들고 읽으려 할 때 남수는 임 경부의 귀에다 입을 대고 가만히 속삭이었다.

『이방 바로 윗층이 뭔지 아시요?』

임경부는 이상한 충동을 느끼며

『뭡니까?』

하고 다시 천정을 쳐다보았다. 하얀 천정에는 여기저시 회칠이 벗어져 어떤 곳은 싯누렇고 어떤 곳은 검으특특하게 변색한 널판자가 들어나 보일 뿐이요, 이렇다할 무슨 변동은 보이지 않는다.

『뭐가 보입니까?』

임경부는 또 한번 남수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밖은 아직도 폭풍우다. 요란한 우뢰소리와 함께 번개불이 번쩍하고 빛난다.

『아버지 무서워! 무서워서 못견디겠어요!』

정란은 아버지 품안으로 몸을 비비며 파고든다.

『오빠 오빠!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예요? 편지에 무엇이 씌었어요?』

무서운 침묵을 일부러 깨뜨려 버리려는 듯 정란의 쇠소리같은 목소리가 발악을 하였다.

남수는 여전히 뭔가 발견하려는 것 처럼 머리 위를 쳐다본다. 은몽도 쳐다본다. 아니 거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발바닥이 얼어 붙은 것 처럼 천정을 바라보고 움직일줄을 잊은 것 같이 보였다.

그 때 임경부는 참다못해 손에 들었던 편지를 백영호씨 곁으로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하였다.

전등이 껍벅껍벅 꺼진다. 바람이 센 때문이리라.

은몽아! 하고 내가 네 이름을 정답게 부르면 너도 해월아! 하고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던 십 삼년 전 옛날을 그리면서 이 붓을 드노니 백영호씨 부인이라고 새삼스러이 존칭을 부치지 않는 나를 그리 미워하지 말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기 바란다.

은몽아! 아아 은몽아! 나는 마침내 너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나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너를, 그리고 나로 말하면 영원히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너를 종내 찾아내고야 말았다는 이 간단한 한마디가 결국 이 기나긴 편지의 줄거리며 생명이라는 것을 미리부터 알려둔다.

은몽아! 나는 종내 너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아니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너를 발견한 것은 지금부터 오년 전 네가 공작부인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났을 때였다 비로봉밑 . 산골짜기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자라난 백도사의 애기중 해월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우물속의 개구리였다. 그 우물 속의 개구리가 짓밟힌 순정을 하소할 길이 없어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아 네가 나에게 준 그 빨갛게 젖은 입술을 기념하던 바위 위에서 저기가 서울이라고 네가 나에게 가리켜주던 그 머나먼 하늘을 멍 ― 하니 바라보며 소리없이 눈물짓기를 삼백예순 닷새하고 또 두달 동안 —— 언제나 올까 언제나 올까? 하고 가다리는 마음은 백마를 타고 하늘을 달리는 듯, 그러나 은몽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너와 나의 두 그림자를 꺼꾸로 그리던 개울물은 오늘도 흐르건만…… 나는 울었다. 커다란 소리로 통곡을 하며 「은몽아!」하고 주먹으로 바위를 두드리면서 울었단다. —— 그러나 울어서 울 너라면 울기 전에 왔으리라. 바랑메고 목탁들고 백도사를 떠나던날 밤, 소년중 해월의 가슴에는 조선 십 삼도를 편답하여, 아니 전세계를 답파하여서라도 은몽을 찾으리라, 남의 순정을 앗아가고 가져올 줄 모르는 요망스런 계집을 찾아 내고야 말리라는 결심이 굳게굳게 못박혔던 것이다.

이리하여 산로수로 풍우를 겪여가면서 서울 다방골 너의 집을 찾았을 때는 벌써 너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너희가 살고 있다던 그 집에는 낯설은 사람이 나를 수상스럽다는 듯 쳐다볼 뿐이었었다.

그러면 은몽은 자기 처소까지 나에게 거짓말을 하였을까 하고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복받쳐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냐, 한장의 편지조차 없이 가버린 너를 잊어야만 당연한 나이어늘 잊자해서 잊어버릴 나라면 어찌 팔년 동안이나 방방곡곡을 편답 했으랴.

은몽아! 팔년 동안이라는 기나긴 세월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

나는 벌써 철모르는 애기중이 아니었다. 너를 연모하면서 눈물짓기를 시(詩)로 알던 소년시대는 지나갔다. 은몽아! 하고 통곡하면서 주먹으로 바위를 두드리던 시절은 영원히 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복수! 복수! 복수의 칼날 밑에서 사지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너를 눈감고 상상할 때 나는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할 줄 알았다. 사랑과 미움에 얽히고 얽힌 원한의 칼날이 너의 부드러운 젖가슴을 찌르고 들어가는 양을 머리에 그려볼 때 불타는 나의 가슴속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은몽아! 나는 마침내 너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아아, 이 어찌된 일인가 명성이 높은 무희 공작부인의 전신(前身)이 저 백도사에서 해월이라는 순진한 애기중을 희롱하기를 즐겨하던 요부 주은몽 그 사람이었을 줄이야 어찌 믿었으랴! 나는 참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복수심에 채찍질하면서 너에게 글월을 보내어 조용히 만나기를 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지나도 너는 끝끝내 오지 않았다. 오냐 두고 보아라!

나는 그 때부터 어떻게 복수하여 나의 괴로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을까? 밤을 낮으로 알고 나는 복수의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운이 좋은 너는 고의론지 우연인지 구미로 무용행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벌써 복수귀로 변해버린 해월은 낙심하지않고 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너는 돌아왔다. 조선민중이 세계적 무희 공작부인에게 찬양과 갈채의 박수를 보낼 즈음 서울 한구석에 맹수(盲獸)처럼 잠복하여 복수의 칼날을 갈고있던 해월을 너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으리라 —— 기회는 왔다!

사월 초 열흘 밤, 세상이 흠모하는 공작부인의 생일날 밤이다. 가장무도회 —— 그것은 나에게 다시 없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너는 모르리라, 내가 어떻게 무도회장에 숨어 들어 갔으며 어떻게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가를 너는 모르리라. 나에게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어리석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초인적인 마력을 가지고 있다. 보라!

부민관 결혼식장에서 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나의 재주를 보라! 비록 가장 무도회에서는 실패를 하였으나 멀지 않아 복수의 칼이 너의 젖가슴을 찌르리라!

은몽아! 너는 이것을 결코 헛된 위협이라고 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나의 위대한 마시(魔視)는 네가 오늘 하루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였는지 전부 엿보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그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네가 오늘 하루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였는지 그것을 정확히 적어서 나의 위대한 힘을 네게 증명하고자 하노라.

사람들은 그때 불현 듯 편지에서 시선을 들어 서로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란 얼굴과 무서움에 찬 눈동자 —— 사람들은 감히 입을 열어 무어라고 말할 용기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자기가 입을 떼는 순간 무엇인가 알지 못할 하나의 커다란 힘이 목덜미를 꽉 누른것 같았다. 숨소리 뿐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억센 푹풍우다. 빗소리, 바람소리, 우뢰소리, 번갯불 —— 천지가 개벽하는 듯 최후의 심판이 다가온 듯 전세계를 휩쓸어 버리려는 것이 아닌가.

남수는 아직도 발자욱 소리를 죽여가지고 천정을 이리저리 뚫어질 듯 쳐다보며 방안을 돌아다닌다.

임경부의 극도로 흥분된 숨결, 어린애 처럼 울상을 지은 정란, 늙은 백영호씨의 경련을 일으키는 양볼, 그리고 송장과도 같이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한점도 없는 은몽은 일순간 정신을 잃고 침상위에 쓸어지려는 자기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키며 중풍환자 처럼 떨리는 손을 펴서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은몽아! 나는 지금부터 너의 일기(日記)를 내손으로 대신하여 기록해 보겠노라! 오늘 아침 너는 지금 정란이와 같이 누워있는 그 침대에서 눈을 뜬 것이 일곱시 사십 삼 분이다. 그러나 너는 여덟시 십 오분까지 자리에 누은채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 십 삼년 전 백도사에서 홍안미소년 해월이와 놀던 생각을 하였다. 절간뒤 바위 위에서 처녀와 동정을 바꾸던 광경을 천정에 그려보며 너는 미소하였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순정시대(純情時代)를 그리워하는 미소인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찰나 —— 너는 뒤를 이어 더럽다는 듯이 떠오르는 환영을 비웃어 버렸다. 그 비웃는 웃음 끝에 알지 못할 공포를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다. 그때 백영호씨가 들어와서 치솔과 치약을 갖다주며 빨리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조반을 먹자고 청하였다. 너는 그때 이 친절한 늙은 신랑에게 무척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네가 아직 이 친절한 늙은 신랑과 잠자리를 같이 안하였다는데서 생기는 일종에 동정의 마음이었다. 결혼식장에서 부터 공포와 우울에 잠겨있는 가엾은 아내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가장 이해 많은 백영호씨의 마음씨를 기화로 여기고 너는 아직까지…… 것이다. 그것은 네가 김수일이란 화가를 사모하고 있는 때문이 아닌가?

조반을 먹고 너는 곧 변소로 들어가서 약 십분 동안 뒤를 보았다. 나오면서 손 씻을 물이 없다고 어멈에게 일렀다. 열 한시 십 분에 백영호씨와

「아뜨리에」로 들어가서 석고상 「여인군상」을 감상하였다. 그 때 너는 퍽 훌륭한 작품이라고 칭찬하여 남편을 기쁘게 하여 주었다. 오후 한시 반에 점심을 먹고 (너는 달걀 두 알과 「커피」 한잔을 마셨을 뿐이다.) 너는 정란과 같이 삼층 정란의 방으로 올라가 정란이가 「피아노」로 「항가리안·라 부쏘디」를 치는데 맞추어 너는 약 이분 동안 춤을 추었다. 오후 네 시에 오상억 변호사가 찾아와 이층 서재에서 백영호씨와 칠십만원 제공 문제를 토의할 때 너는 아랫 층 침실에서 정란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너는 나를 악마라고 부르며 저주하였다. 다섯 시 반 남수가 김수일의 편지를 가지고 뛰어 들어왔다. 여섯시 오십 분에 임경부가 찾아왔다. 임경부는 네게 대하여 김수일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그 중 김수일과 어떤 정도의 교제를 하였는가고 물은 임경부의 질문에 너는 발칵 화를 내어 정도 넘치는 질문이라고 톡 쏘았다 해월이와 . 김수일이 같은 인물이 아닌가하고 임 경부가 물었을 때 너는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소리를 높여 『하하하하……』하고 비웃었다.

임경부는 부하 박태일인가 하는 순사부장을 금강산 백도사에 파견하여 나에 관한 조사를 명령했던바 나하고 동거하던 늙은 주지 법능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내가 어디로 갔는지 알길이 없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때 오상억 변호사를 전송하고 백영호씨가 들어왔다. 여덟시 삼십 오 분에 임경부가 돌아갔다.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임경부는 다시 뛰어 들어오면서 컴컴한 담장 밑에서 이상한 그림자를 보았다고 보고한다. 경찰대가 왔다. 그러나 해월은 보이지 않는다. 폭풍우가 몰아친다. 임경부와 남수와 백영호씨는 방

「아뜨리에」서 지키고 있다. 너는 정란과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은몽아! 너는 무섭지 않은가? 이만했으면 너는 충분히 나의 귀신같은 힘을 짐작하리라. 이 편지는 칼에 꽂혀 일분 후에는 네가 잠들고 있는 침대 옆 벽 위에 박힐 것이다.

은몽아! 그러면 나는 어디 있느냐? 어디서 지금 무엇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너는 그것을 무척 알고 싶어할 것이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항상 너와 같이 있는 것이다.

복수귀 해월로 부터 나에게 절망과 암흑을 던져준 계집에게 이리하여 복수귀 해월이가 주은몽을 저주하는 길고 긴 「엘레 ― 지(悲歌 [비가])」는 끝났다. 아아 이 얼마나 무서운 편지인가. 사람들은 눈을 들어 서로 얼굴을 쳐다볼뿐, 묵묵히 말이 없다.

은몽의 하 ― 얀 이마에는 구슬같은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쓸어지려는 상반신을 백영호씨의 팔에 의지하고 무서운 눈동자로 천정을 쳐다본다.

다른 사람들도 불현 듯 은몽의 시선을 따라 머리위를 올려다 보았다. 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무슨 커다란 힘이 그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그놈은 어디 있는냐?…… 은몽의 거동을 대관절 어디 숨어서 그 처럼 정확히 엿보고 있을까?』

사람들은 다 같이 이 동일한 의문에 가슴이 섬짓했다.

『이방 윗층이 무슨 방입니까?』

임경부는 그 때 용기를 내어 백영호씨를 쳐다보았다.

『미술품 수집실(美術品蒐集室)입니다.』

『미술품 수집실?』

그 때까지 천정 어느 구석에서 뱀과 같은 악마의 눈초리를 발견하려는 듯 위를 쳐다보고 있던 남수는 임경부의 옆으로 다가서면서 악마는 틀림없이 『 윗층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까지도……』

하고 말끝을 잊지못한채 경부의 팔목을 슬그머니 흔들었다.

『아이 무서워! 아버지!』

정란은 오빠의 얼굴에서 돌연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부르짖는다.

『오빠! 오빠의 얼굴이 더 무서워!』

그 순간 전등불이 껌벅 꺼진채 켜지지를 않는다. 암흑!

『악 ──』

무서움이 덮어누르는 정란과 은몽의 아우성소리 ──

『정전(傳電)인가?』

『빨리 불을 켜라!』

『어멈! 양초를 가져와요!』

사람들은 도승 해월의 그 저릿저릿한 손가락을 등뒤에 감각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떠들어 대기 시작하였다.

『빨리 불을 켜라!』

『빨리 빨리!』

『「스윗치」를 눌러 봐!』

암흑 속에 숨어있는 복수귀의 두 눈동자! 그 무서운 눈동자가 노리고 있는 대상은 누굴까?

『여러분! 너무 떠들지 마시오!』

임경부의 목소리다.

밤은 깊어간다. 끊임없이 퍼붓는 빗줄기, 산떼미를 떠 올듯 싶은 바람 ─ 꺼진 전등은 다시 켜질줄을 모른다.

어물거리는 공포를 가득 싣고 온 방안을 빈틈없이 점령한 어둠의 세계, 지옥의 나라 ──

『어멈! 빨리 불을 가져와요!』

정란의 어지러운 부르짖음이 더 한층 처참하다.

그러나 어멈이 촛불을 가져오기 전에 꺼졌던 전등은 다시 방안을 환하게 밝히었다. 정전인가? 그렇지 않으면 누가 고의로 「스윗치」를 끊었다 이었는가? ……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그런 의문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그 때 정원을 수색하던 박태일 부장이 뛰어 들어오며

『정원은 아무리 뒤져보아도 수상한 점은 하나도 없읍니다.』

하고 보고를 하였다.

『그럴리가 있나?』

사람들은 일시에 그렇게 반문하는 한편 무의식 중에 시선을 또 다시 천정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박군!』

임경부는 긴장한 얼굴을 박부장에게 돌리면서 명령하는 것이다.

『네?』

『「피스톨」을 꺼내드리고 나를 따라오게! 떠들지 말고!』

『네!』

그리고 임경부는 백영호씨를 향하여

『우리들은 이층 미술품 수집실을 조사할테니 우리가 내려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시요. ── 자 남수씨 이층으로 안내하여 주시요.』

이리하여 선봉선 남수의 뒤를 따라 「피스톨」을 쥔 박태일 순경와 임 경부가 이층으로 올라갔다.

임경부는 미술품 수집실을 임검하기 전에 서재로 들어가서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어보니 약 이분 동안 삼천공원 일대에 정전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정전이다!』

사람들은 약간 마음이 놓이었으나 미술품 수집실 앞까지 왔을 때는 시커먼 유령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와락 뛰어나오는 듯한 환영을 느끼었다.

남수는 드디어 문을 열었다. 캄캄한 어둠속, 방안은 죽은 듯이 조용하다.

써늘한 공기가 이마를 스치는 것이다.

박부장은 암흑을 향하여 「피스톨」을 겨누었다.

『움직이면 쏠 테다! 해월이! 움직이면 목숨이 달아난다!』

침착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약간 떨리는 임경부의 목소리였다.

그때 남수의 손가락이 「스윗치」를 눌렀다. 순간 임경부와 박부장은

『악!』

하고 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실로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다.

다섯개의 부처님과 십여 개나되는 석고상이 일시에 이편을 바라보는 것처럼 묵묵히 서 있지 않는가. 그 외에 담벽을 반 둘러싼 진열장에도 대소 무수의 입상(立像) 좌상(坐像)이 무려 수 백 개 ──

『허어!』

임경부는 감탄의 눈을 부릅뜨며 한걸음 한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해월은 보이지 않는다. 불상 앞을 지날 때마다 싯누런 구리손이 덥썩 머리를 누르는 것 같은 생각 뿐이었다.

그때 꺼꺼부등하고 방바닥을 드려다보며 걷고 있던 남수가 돌연

『임경부!』

하고 고함을 쳤다.

『왜 그러시우?』

『이것 좀 보시요!』

임경부가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십전짜리만한 구멍이 뚫어진 방바닥으로 아랫층 침실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것이었다.

『박혔던 매듭(節[절])이 빠진자리로 구려!……가만있자! 최근 이방에 드나든 사람이 누굽니까?』

타는 듯한 임경부의 두눈이 번개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글쎄올시다. 나는 근 두달 동안이나 이 방에 발을 들여 놓은 적이 없는데요. 혹시 집의 아버지께서……』

그래서 백영호씨를 데려다 물어보니

『나도 이 방에 들어와본 적이 벌써 한달이나 되었읍니다. 결혼식 전이니까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이 매듭구멍은 전부터 뚫어져 있었읍니까?』

『아닙니다! 전에는 이런 구멍이 전혀 없었읍니다. 대관절 이 매듭이 언제 빠졌을까?』

백영호씨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리를 굽혔을 때 남수는 또 한가지 무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임경부! 이것 좀 보시요!』

임경부는 남수 옆으로 뛰어갔다.

『뭡니까?』

『자아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시요.』

약 두달 동안이나 청소를 안하고 그대로 내버려둔 이 미술품 수집실에는 희끄무레한 먼지가 방바닥 일면에 자욱하니 깔려있다. 그 자욱하니 먼지가 깔린 방바닥에는 구멍을 중심으로 하고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으나 하옇든 어떤 움직이는 물건이 이리저리로 해매이며 다닌 흔적이 명백히 나타나 있지 않은가!

『그 놈이다!』

『그 놈이로구나!』

사람들은 그 순간 흑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싯누런 부처님과 하얀 석고상이 가득찬 방안을 휘 둘러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틀림없이 사람이 기어다닌 흔적입니다. 물론 그 놈이 ──』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임경부는 그 놈의 발자욱형태를 발견할 셈으로 방바닥을 유심히 드려다 보았으나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놈은 걸어나닌 것이 아니고 짐승처럼 벌벌 기어 다닌 듯 싶었다.

『두말 할것 없이 이 구멍으로 아랫층을 내려다 보려면 엎드려야만 할 것이니까, 발자욱 형태는 모두 지워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갈 때도 조심해서 발자욱 형태를 전부 지워 버렸군요.』

이리하여 사람들은 미술품 수집실의 이구석 저구석을 빈틈없이 조사해 보았건만 마수(魔獸)와 같은 해월의 그림자는 또 다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해월은 대체 귀신인가 사람인가. 귀신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고 또 한편 무슨 짐승 같기도 한, 마치 반인반수(半人半獸) 반신반인(半神半人)과도 같은 해월이었다.

『그 놈은 대체 어디로부터 들어왔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해월의 이 위대한 힘과 신비로운 재주는 현대의 문명, 현대의 과학을 여지 없이 유린해 버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편지가 침실 벽위에 박힌 것이 길게 잡아도 한 시간 이상은 지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박부장 이하 여러 경찰들이 이집을 삥 둘러싸고 있지 않았는가. 어디로 나갔을까?

『아니다. 해월은 아직 이집 어느 구석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렇다! 아직도 집안 한구석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렇다! 온 집안을 뒤져라!』

임경부는 밖에 있는 경찰들을 모두 불러다가 아랫층에서 삼층 꼭대기 까지 그야말로 이잡듯이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허사였다.

시계는 새로 두시, 비는 아직도 폭포처럼 쏟아진다.

은몽과 정란은 절반 정신을 잃어버리고 침대위에서 몸을 떨며 백영호씨 이하 여러 경찰들의 보호아래서 이 무서운 하루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그러나 아아, 이 얼마나 사법주임 임경부의 치욕인가! 침착하고 대담한 임 경부가 오늘밤만은 남달리 흥분하고 남달리 무서워하였다. 복수귀는 그에 눈앞에서 하고싶은 짓을 전부 하지 않았는가……

『유불란!』

그는 그 순간 명탐정 유불란의 조력을 빌지 않으면 안될 것을 생각하면서 분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