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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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겨울날 나는 어떤 벌판길을 걸었다.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뿌리는 눈발은 세찬 바람 에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서 하늘이 땅인지 땅이 하늘인지 뿌옇게 되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흩고의적삼을 걸친 내 몸은 오싹오싹 죄어들었다. 손끝과 발끝은 벌써 남의 살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등에 붙은 배를 찬바람이 우우 들이치는 때면 창자가 빳빳이 얼어 버리고 가슴에 방망이를 받은 듯하였다. 나는 여러 번 돌쳐서고 엎드리고 하여 나한테 뿌리는 눈을 퍼하여 가면서 뻐근뻐근한 다리를 놀리었다. 이렇게 악을 쓰고 한참 걸으면 숨이 차고 등에 찬 땀이 추근추근하며 발목에 맥이 풀려서 그냥 눈 위에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는 앞뒤로 쏘아드는 바람을 막으려고 나로도 알 수 없이 두 무릎을 껴안고 머리를 가슴에 박았다. 얼어드는 살 속을 돌고 있는 피는 그저 뜨거운지 그러안은 무릎에 전하는 심장의 약동은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또 일어나서 걸었다. 무엇보다도 --가 어찌 시린지 뚝 떨어지는 듯하였다. 얼마나 걸었는지? 내 앞에는 청인(淸人)의 쾌관(음식점)이 보였다. 그것도 눈보라에 힘이 빠진 내 눈에는 집더미같이 희미하게 보었다.

눈 뿌리고 바람 부는 거칠은 들에서 외로이 헤매다가 천행으로 사람의 집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우리마는 이때 나의 신경은 반가운지 슬픈지-그러한 감각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 쾌관 문고리를 잡았다. 밝은 데서 갑자기 들어서니 방안이 깜깜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사람의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고 아궁이에서 펄펄 타는 불만 꿈같이 보일 뿐이다. 나는 어둡고 훈훈한 속에 한참 서 있었다.

새어 가는 새벽같이 사면이 점점 밝아지면서 모든 것이 그 형태를 드러냈다.

붉은 불이 펄펄 붙는 아궁이 위에 뚜껑을 덮어 놓은 가마에서는 김이 푸푸 오르고 그리로 잇닿은 구들에는 꺼먼 땟물 괸 의복을 입은 조선 사람 셋이 앉아 있다. 그 뒷벽에는 삼각수(三角鬚)를 거슬리고 눈을 치뜬 장수들이 청룡도며 팔모창을 들고 싸우는 그림을 붙였는데 찢어지고 그을려서 그을음에 석탄 아궁이 같은 집안의 기분과 잘 어울렸다. 구들에 앉았던 청인은 부엌에서 내려서서 저편 방으로 들어가는 문 어귀로 갔다. 거기에는 커다란 화로가 놓였다. 청인은 검고 푸르고 누릿한 구리주전자에 물을 부어서 화로에 놓고 시렁에서 고려자기 빛 같은 접시를 집어들고 내 곁으로 왔다.

손톱이 기름하고 때가 덕지덕지한 청인의 손을 따라서 가마에 덮힌 뚜껑은 열렸다. 가마 속에 서리서리 서렸던 흰 김은 물씬 올랐다. 봉긋하고 푹신푹신한 흰 만두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내 잇샅에는 군침이 스르르 돌았다. 나는 입안에 그득찬 침을 꿀꺽 삼켰다. 배에서 꾸루룩쫄 맞장구를 쳤다.

청인은 김나는 만두를 접시에 수북이 쌓아 놓더니 뚜껑을 가마에 다시 덮었다. 나는 내 앞에서 그 떡덩어리가 그림자를 감출 때 어떻게나 서운한지, 그리고 기운이 더욱 빠진 듯이 점점 등이 휘이고 가슴과 배가 한데 붙어서 땅속에 자지러드는 듯하였다.

……김이 물신물신 오르는 구수한 만두가 내 입에 들어온다. 구수하고 푹신푹신한 만두! 나는 입을 닫았다. 목을 찔룩하면서 꿀꺽 삼켰다……꿀쭈루룩 소리에 나는 눈을 뜨면서 머리를 벌렁 들었다. 아! 내가 꿈을 꾸었나? 허깨비를 보았나? 그저 아궁이 앞에 지쳐 앉은 칼은 현실의 내 그림자를 볼 때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내 곁에 섰던 청인은 저편 구들에 가서 앉자마자 내 바른 손은 나로도 억제할 수 없는 힘에 지배되어 가마 뚜껑에 닿았고 시선은 여러 사람에게로 옮아갔다. 이때 뜨끔한 자극에 나는 머리를 숙이면서 팔을 움츠려뜨렸다. 가마 뚜껑 밑으로 흘러나오는 뜨거운 김에 내 손목은 벌겋게 되었다. 나는 은근히 손목을 만졌다. 그러나 일순간이 못 되어서 내 손과 내 시선은 다시 청인과 가마로 갔다.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보다도 꾸루룩하는 배의 성화에 가지 않고는 못 견디었다.

또 글렀다. 구들에 자라졌던 청인은 벌떡 일어않아서 가래침을 뱉었다. 나는 그놈이 내 뱃속을 들여다보고 하는 수작같아서 차마 머리를 들지 못하고 부지깽이로 불을 뒤지는 척하였다. 내 눈앞에는 핏발이 올올한 청인의 눈깔이 번뜩 하였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인은 부엌에 척 내려서더니 번쩍하는 도끼를 들고 내 곁으로 왔다. 나는 가슴이 쿵하고 정신이 아찔하였다. 이때였 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를 빡 갈면서 정신을 가다듬어 청인을 보았다. 청인은 장작개비를 쪼개어 화로에 놓았다. 이때 청인이 내 곁으로 좀더 가까이 왔더면 그는 장작을 쪼갤 목적으로 왔더라도 그것을 모르는 나는 반드시 청인의 코를 물고 자빠졌을 것이다.

「혀갸! 」

저편 방에서 청인을 불렀다.

청인은 그리로 갔다. 내 두 손은 민첩하게 가마솥 뚜껑을 열고 만두 한 개를 집어냈다. 그때 내 손이 어찌도 민첩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적 같았다. 만두를 잡은 나는 기운이 났다. 커다란 널문을 박차다시피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문을 막 나설 때였다.

「악! 」하는 소리와 같이 그 번쩍하는 도끼가 내 등골에 내려졌다. 나는 몸서리를 빠르르 치면서 머리를 홱 돌렸다. 그것은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악을 쓰고 한참 뛰다가 비로소 큰숨을 쉬면서 그 청인의 쾌관을 돌아다보았다. 이때 내 손에 쥐었던 만두는 벌써 절반이나 내 입에 들어갔다.

(오오, 살짜다! )

내 신경은 지긋지긋한 두려움에 떨면서도 알 수 없는 새 힘과 기꺼움에 가슴이 뛰고 기운이 들었다.

나는 씩씩하게, 눈아! 오너라! 바람아! 불어라,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그 넓은 벌판을 뛰어 건넜다.

이 이야기는 여러 해 전에 내가 북간도에서 겪은 일이다.

그때 그 힘, 힘빠진 나의 사지에 민첩한 동작을 주던 그 힘,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이 느껴지는 만두를 집어내던 그 힘!

내게 만일 그 힘이 없었더면 이 심장이 오늘까지 뛰리라고, 이 눈깔이 그저 빛나는 태양을 보았으리라고 어느 누가 보증을 하랴? 오오! 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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