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의 조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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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으로 발전하는 문단에 있어서는 한 개의 사조나 경향은 그 사회현실로서나 문학현실로서나 필연적 산물이다. 그러고 작가나 평가는 매양 이에 기하야 창작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우리 문단은 그렇지 못했다. 평가는 부질없이 해외의 풍성학려(風聲鶴唳)에 휩쓸려 조선적인 현실을 도외시한 감이 불무(不無)했으며 또 작가는 작가대로 해외사조와의 교류를 지나치게 거부해 온 감이 없이 않다. 그리하야 이론을 위한 이론에 함(陷)한 경향도 보였고 심하면 고집을 위한 논쟁으로 일을 삼은 힘도 있어 작가와 평가가 서로 괴리케 되었었다. 문단의 고민은 실로 여기에 있었든 것이다. 그러나 새해를 맞어서는 작가나 평가를 막론하고 그 무슨 새로운 과제가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에서 섬홀(閃忽)한 이색의 사조에서 보다 더 조선현실에 기한 이즘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작가와 평가가 손을 맞잡고 나아갈 그 새로운 과제를 얻자는데 이번 좌담회의 본의가 있었든 것이다.

서항석. 일기(日氣)도 불순(不順)한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년도문단은 이미 검토도 되었으니까 오늘은 주로 명일의 조선문학의 진로에 관해서 말씀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드라도 늘 관심해 왔으니까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같기는 하지만―획기적인 타개책은 갑자기 생각나지 않겠지마는 명일의 조선문학발전에 도음이 될 만한 방도가 없겠습니까.

김용제. 좀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서항석.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모든 문제, 가령, 리얼리즘이라든가 휴배니즘, 낭만정신이라든가 선발(先發)의 정신이라든가―이런 것이 다 검토되었는지 그렇잖으면 내년까지 끌고 가야 할 것인지 이런 문제는 여기서 끝이 났다면 명년에는 어떤 새로운 이름이 문단을 례뷰하게 되겠는지.

박영희. 허나 그 문제에 관해서 써온 필자들 여기 다 모이었으니까 그 문제들이 어느 정도까지나 검토되었는지 어디 필자들이 좀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도적(指導的)인 논문을 많이 쓰신 남천 씨나 임화 씨나 김용제 씨나···

김문집. 쓰긴 뭘 많이 썼나요. 나는 도시 평론가들이 예술이 원치 문학이 뭔지를 알고 쓰는 겐지부터가 의문입니다. 리얼리즘 리얼리즘 하는데 그 리얼리즘과 예술과의 관계를 알기나 하고서.

박영희. 그러나 나타난 것 가지고 이야기하잔 말이지요.

김남천. 아니 김문집 씨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보는지를 추구할 필요가 있잖습니까.

김문집. 내가 보건댄 공상적인 □념, 아모런 감수성도 없이 개념화한 인중(印衆)만으로 비평을 하는 게 평론가인가?

김남천. 그건 김문집 씨의 견해지.

김광섭. 김문집 씨 말씀은 감상에 불과하지 그런다면 좌담회가 성립이 되나.

서항석. 그렇지요.

임화. 아까 필자 당자들이 말을 하라지만 그 점을 읽으신 분들이 더 잘 알잖을까.

김남천. 그렇죠. 총평 쓰신 분들이 잘 아시겠죠. 리얼리즘이 날마두 되풀이된다고 거기에 압증(壓症)을 내는 것 같으나 그렇다고 새 문제 새 이즘만이 문단을 인도한다는 논법도 없잖습니까.

김문집. 김남천 씨는 새삼스러 고발의 문학을 제창하는데 어떤 작품을 물론하고 그 속에는 고발의 정신도 있고 리얼리즘도 있고 또 낭만정신도 내포되어 있는 것치요.

김남천. 내가 고발의 정신을 제창한 것은 조선의 사회적 현실이 작자로 하여곰 그것을 선발시킨 까닭입니다. 그래서 나는 작자인만큼 지금까지 작가들이 범해 온 주관주의적인 과류(過謬)에서 벗어나서 좀더 이해하고 그 현실을 문학적으로 □□□□.

김문집. 그렇다면 백백교의 신문기사가 고발적인 점에서는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속에는 고발의 정신도 있을 것이고 리얼, 낭만 다 들어있지요.

헛되이 남의 문단의 모방만 하고.

정인섭. 모방이 나뿐 것은 아니지요. 문제는 거기에서 우리에게 논의되어야 할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데 있지요.

그런 논전(論戰)을 논전대로 내버려둡시다. 휴매니즘 논의되어도 좋은 것이고 리얼리즘이 검토되어도 좋지요. 그러고 각인각색의 리얼리즘이 생겨서 화제가 되어도 좋지요. 보편적인 의미의 리얼리즘이라든가 경향적인 작가들이 일일적 말을 위한 경향적 리얼리즘이라든가 이것은 다 용인할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최재서 씨에게 묻는 말인데 최형은 심리주의와 리얼리즘을 어떻게 구별하시나요? 이옹(李翁)의 날개를 리얼리즘이 심화라고 했는데 그런 심리주의 리얼리즘도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최재서. 그것은 신문사에서 붙인 제목이나 심리주의 리얼리즘이 붙었으니까 그렇게 부를 수 있겠죠.

정인섭. 그런 심리주의적인 리얼리즘이 금후로도 발전할 수 있고 실천화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최재서. 그런데 김남천 씨는 레얼이라고 하지 않고 고발이라는 신술어(新述語)를 쓴 동기는 어떻습니까.

김남천. 리얼을 좀더 심화하는 의미에서 고발이란 말을 썼습니다.

최재서. 그래도 리얼리즘과 무슨 관련성이 없을까요?

김남천. 인간에게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 증오할만한 사실을 고발한다. 그 증오를 고발하는 마음도 역시 사랑하기 때문에 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시민은 사회적현실에서 증오를 발견하기 전에 자기자신 속에서 증오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고발!

최재서. 그러면 레얼리즘을 표방하는 작가가 평가는 지금부는 사회적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고발해야 합니까?

김남천, 임화.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요.

최재서. 그러면 『소년행』 남매 등 남천 씨 작품에서 고발성을 연 인물은 누굽니까?

김남천. 사회적 현실의 산물인 빈곤―비굴 등을 고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무능, 무기력한 자아―인테리에 대한 증오를 고발했다고 봅니다.

최재서. 그렇다면 고발의 정신이란 리얼리즘의 폭로의 정신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잖습니까. □□□□□□□다』는 웅변을 토하게 했는데 이렇게 인물로 하여금 고발을 시키는 것일까요.

김문집. 고발이란 말은 휴매니즘과 같은 말이지.

정인섭. 왜 걸작은 걸작입넨다. 왜냐면 심리주의적 인도주의와 심리주의적 리얼리즘에 고발의 정신까지 하면 삼위일체가 되니까 걸작의 아니고 됩니까. ―허나 이것은 완전히 실패입니다. 이유는 휴매니즘의 정신으로 고발이 되지 못하고 정욕에 끌려워 에르를 고발하는데 그쳤으니까 실패지요.

최재서. 남천 씨의 고발 운운은 좋게 말하면 폐인의 정열의 발현이오. 기쁘게 말한다면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임화. 이 작품에서 작자는 주인공이 기생을 구하려고는 하면서도 그것이 불가능한 이 현실을 주제로 작품을 구성했는데 물론 그 의도만은 좋으나 이렇게 사소한 일은 통해서 인간의 추잡한 일면을 나타내자면 기생이 좀더 뚜렷하게 나와야 할 것입□□□ 효과가 없었죠. 허나 남천의 작품은 전부 그럽디다.

김남천. 나는 그 작품에서 인도주의적 허망, 환상 같은 것을 고발하랴고 한 것인데 역량이 부족해서 작품에까지 그것이 나타나지 못했지.

김문집. 남천 군. 그것이 자승자박이라는 것이오.

최재서. 그래도 노력을 했다면 노력했다는 흔적만이라도 남어야 하잖을까.

서항석. 그런데 가만이 보면 요새의 문단은 이즘한테 너무 구속이 된 것 같은데··· 가령 리얼리즘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작가로서 무슨 큰 과류나 되는 듯이 해석하는―

정인섭. 그러니까 우리 문단에서는 먼저 이 이즘을 해방해야 합니다. 이즘으로 구속을 말고 각자가 자유분방하게 자기의 특장을 발전시키도록. 평론가들도 이 이즘에서 해방이 되어야 됩니다.

사항석. 도시 휴매니즘이란 것을 간단히 말한다면?

정인섭. 현재 제창되고 있는 휴매니즘은 인도주의를 배격합니다. 좀더 전진적(全陣的)으로 말한다면 백철 씨의 휴매니즘과 전용해가 말하는 고발의 정신과는 그 ABC에서 XYZ까지 정반대지요. 즉 푸로데 라리아를 위한 휴매니즘의 완성인데 이는 미운 것은 영구히 머문 것이지요. 그 □제 씨 한□합니다.

김문집. 작가란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작가가 작중인물을 사랑하지 않고는 작품을 못 쓰지, 그것은 예술가의 태도가 아니야. 예술가란 악인을 취급을 함 때라도 그 악인의 아름다운 관성을 그리게 되는 것이니까.

서항석. 김광섭 씨 왜 잠잠코 과자만 잡수십니까. 어디 휴매니즘에 대해서 한 말씀.

김광섭. 글쎄 지금 여러분들의 말씀을 들었지마는 내게 말을 시킨다면 휴매니즘이란 현대와 같은 정세(情勢)에서는 휴매니즘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발휘할 수가 없고 다만 억제된 인간성을 좀더 인간다웁게 발전시키고 계몽한다는 의미로 봅니다. 물론 이 선의는 현재의 사회정세를 참작해서 한 말입니다.

(七時夕飯)

서항석. 요새 보면 리얼리즘으로부터 떠나서는 작가의 큰 죄나 되는 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여기서 새로운 길이 없을 (...) 술가가 돼야 한다니까. 문예평론가들은 고발이니 리얼이니 공연히 이즘만 찾지 말고 먼저 예술 전의 감정을 길러야 해요.

정인섭. 그보다도 이 시대는 이론을 강요할 시대가 아입니다. 통일된 이론을 재래처럼 요구할 수가 없으니까 먼저 이즘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즘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되려 그 반대지요. 그러고 통일된 이론에 작가들은 구속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광섭. 그러나 통일도니 이론을 세울 수 없다 하더라도 고민하는 과정을 살릴 필요는 있지요. 슈ㅣ스토프의 침통과 같은―다시 말하자면 침통은 또 침통으로로서의 통일된 이론이 성립되잖을까.

정지용. 정인섭 씨는 괜―이 문자만 쓰느라고.

서항석. 그럼 어디 문자 안 쓰고 말씀 좀 하시지요.

정지용. 리즘이 없긴 왜 없어요? 씨름을 하는 데도 씨름하는 법이 있는데. 그저 뾰족한 소리는 살살 피해가며 채 안 잽힐 안전지대에서 뱅뱅 돌 일이지.

김용제. 말이 부족해서 평론가들은 불리해요.

서하석. 그러면 내년에도 리얼리즘을 그대로 가지고 가야 할까요. 너무 한군데 구속이 돼서 그것이 작품비평의 척도가 되고 기준이 돼 버리는 것 같은데?

정인섭. 향토적 신비주의로 나간다면?

최재서. 민족주의적인 것을 의미하는 말인가요?

정인섭. 그보다도 각자가 자기가 신봉하는 이즘을 발육시켜서 거기서 각자의 이즘이 살고 걸작이 나오게 된다면―

정지용. 이즘을 수입은 잘 해도 그것이 조선에 와서는 발육이 못 되고 뻐뻐 말라 죽으니 웬일입니까.

유치진. 작가가 리얼리즘만 추궁하고 보면 너무 어두워져서 비관으로 흐르기가 쉽고 나종에는 자승자박이 돼서 신변소설화하기가 쉽게 되드군요. 리얼리즘에 입각한 자기자신의 에스푸리―를 강조, 거기서 수년 세례를 받은 후에 낭만적으로 도수련을 해서 자기를 계발하는 것이 명일의 문학의―

정인섭. 당신이 고조(高調)하는 낭만주의란 신낭만주의를 말하는겔 (...)

□□□. 내가 말하는 낭만주의란 화 씨(和氏)가 말하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시뻘건 심장이란 의미의 것입니다.

정지용. 글쎄 문학이란 공식이 아니래두들 그러거든. 아리스토테레스가 한 말처럼 예술은 엄숙해야 하지요. 덮어놓고 황당무괴한 것이 낭만이 아니고 정확한 것만이 리얼리즘이 아니지요.

김문집. 정지용 말에 나는 대체로 동감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제 갈길을 가고 평론가는 예술가가 되어서 재출발해야죠.

이헌구. 예술가로 돌아가라느니보다도 좀더 현실적으로 문제를 포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공연히 문자만 쓰거나 문학만 희롱하는데 그치지 말고 현실을 잘 이해하고 사회를 정확히 관찰해서 자꾸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도록―.

김문집. 새로운 문제야 평가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것이지.

임화. 유치진 씨가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으며 낭만화하듯이 지금 작가들은 거의 리얼리즘으로부터 떠나는 것 같습니다.

정인섭. 임화적 리얼리즘에서 떠나는 게죠. 그렇다면 작가들은 모두 낭만주의화한다는 말씀인가요.

임화. 보편적인 리얼리즘에서 작가들이 떨어져 가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효석 씨 같은 분은 에로티시즘으로 떨어지고 금년의 당선작가들도 생활의 광범한 관심을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는 평가들은 작가들을 다른 좋은 길로 지시해야 할 것입니다.

최재서. 어디 유치진 씨 말씀을 좀더 들었으면! 즉 작가가 리얼리즘에서 분리되는 것은 어떻게 보는지?

임화. 유치진 씨 말대로 리얼리즘의 길은 어두운데 그러니까 작품도 자연 어두워지지요. 그래서 로맨티즘이 일루의 희망을 줍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우리네 작가가 우리의 현실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의문입니다. 우울한 현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델올로기를 상실한 것 같습니다. 외국을 본다면 십구세기말의 호걸(豪傑)한 속에서도 신시대가 제시되지 않었든가요. 첵홉이나 알티바세프에서 어떻게 고리키―가 나왔는가. 이것이 모두 작가가 현실을 떠나서―

김문집. 무슨 소리! 작가가 현실을 안 본다?

임화. 아니 안 본다는 게 아니라 좀도 광범한 현실을 봐야 한단 말입니다.

김문집. 무슨 소리.

최재서. 리얼리즘은 완전히 패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문집. 그도 안 될 말. 리얼리즘이 언제 패배했단 말입니까. 패배했다면 벌써 백년전에 패배한 것이오 배패치 않었다면 백년후까지라도 문학이 있는 한 소멸되지 않을 겝니다. (繼續)

김문집. 작가가 현실을 안 보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고 십구세기의 암담한 우울 속에서 고리키가 나왔다고 그러는데 어디 우리한테는 그런 탁월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사정이 달러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는 자기우울에 충실해야지요.

임화. 충실?

김문집. 말하자면 우울 속에서 우리의 우울상을 그리고 거기서 세운 시대 새로운 광명을 가져야지요.

임화. 작가란 자기자신에게 보다 더 가혹해야 해.

최재서. 리얼리즘이 당을 떠날 수가 있는가?

임화, 김용제. 물론!

김광섭. 사회정세가 급전적으로 변하는 데서 리얼리즘이 로만티즘으로 흐르게 되는 게죠. 진정한 의미의 리얼리즘이란 지금은 문학에서는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내적의 고민상을.

정지용. 뭘 사실주의에서 이미 실패한 일이 있는데.

정인섭. 로만티즘과 리얼리즘을 조화시킬 수 없을까?

정지용. 또들 그라거든. 왜 한곬로 그렇게 몰아넣지를 못해서 애를 쓸까?

모윤숙. 도시 평가들은 작가를 무시합디다.

유치진. 모윤숙 씨와 이헌구는 좀더 고민하라는데 현재 그런 작품은 없기는 하지만 그 이상 고민하면 허무주의로 돌아갑니다.

김남천. 내년까지는 고통시기지.

정지용. 고민고민하는데 일부러 장질부사를 앓을 필요가 어디 있나요?

서항석. 그런데 김상용 씨. 왜 한 말씀도 안 하십니까.

정인섭. 지금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소리)

김상용. 그저 배우고 있습니다.

최재서. 유치진 씨는 자주 낭만화를 말씀하는데 그러다가는 돈키호―테가 되어 버릴 우려가 있죠.

서항석. 이야기가 자주 딴데로 미끄러지는데 이렇게 하지 말고 한분한분 의견을 진술해 주십시오. 내년의 새로 나타날 새로운 경향이라든가 우리가 특히 노력해야 할 방면이 어딘지···

김광석. 예술가들―특히 작가나 평가나 묘랄을 세우는 것은 절대로 필요하겠지마는 이론은 좋으나 그 이론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니다. 작가나 평가의 비애는 거기 있는 것이지요. 아까들 생선 썩는 것을 인례(引例)로 삼었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조선이란 특수지역과 그러고 거기에서 생활하는 인간, 생활의 분위기를 잘 살려서 그 비관 속에서 헤매이는 자기자신의 정체를 발견하는 것이 뭣보다도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어 온 기록, 고민한 기록, 그것이 필요한 것이지 실천하기 어려운―예를 들면 오늘 현실에서 적극성을 딴 휴매니즘이라든가 이런 이론은 쓸데가 없지요.

이런 현실에 제창된 김남천 씨의 고발의 문학정신이란 도저히 활발할 수가 없습니다. 쓰러넘어지는 자태―그것을 어떻게 지목하느냐 어떻게 여실하게 독자에게 전할 수 있느냐.

김용제. 그것은 비관적 주관주의가 아닐까? 나는 조선의 작가들은 너무도 현실을 현실 그대로 정관치 못하고 무비판, 무성의하게 현실에 추종하기만 하기 때문에 그런 비관문학이 나온다고 봅니다. 현실을 떠나서는 문학이 없습니다. 조선작가는 현실을 리얼하게 그릴 줄을 모른다. 예를 들면 백백교의 미신폭로, 광산생활보고, 비상시풍경 같은 것에는 소극적이나마 손을 대지 않고 있으니 그 이것이 작가들의 현실회피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이헌구. 좀더 암담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맛보자는 것은 김광섭 씨와 동감입니다. 즉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거울로서의 문학―그런 작품을 남기면 싶습니다. 그 밖에는 조선문학은 현실적으로 나지 못하고 상징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심하게 되면 메―텔링크와 같은―

정인섭. 아까도 한 말이지만 당분간은 이즘을 해방할 것이오 주류로서는 역시, 희망이라든가 광명을 목표로 로만티즘과 리얼리즘을 조화시켜서 감정과 의지를 만족시킬 그런 작품이 나왔으면 합니다.

김상용. 배우러 온 사람더러 자꾸 말을 하라니. 그런데 내게 말을 시킨다면, 첫째 예술이란 자기자신에 정직해야 할 것 그러니까 자기소신대로 매진할 것이지요. 그러고 그 방향이란 무슨 주의든 간에 예술의 ABC인 예술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술의 재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력한 것이지요. 근본문제로 가서 무엇보다도 예술은 먼저 예술이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탐구. ―고민을 크게 고민하는 영현(靈現)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윤숙. 오늘날의 객관적 정세가 그것을 허용치 않으니까 거대한 문학은 당분간 어려울 것입니다. 애란문학(愛蘭文學)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데 거대한 반면에 섬세합니다. 그러나 애란문학에 거대한 대중성이 없다고 문학적치(文學的値)가 없다고는 하지 않으니까 아프고 쓰리고 한 것을 그대로 섬세하게라도 표현하는 게죠.

정지용. 자꾸들 현실현실하는데 이건 현실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그려. 개가 죽은 것도 현실이고 공자가 춤을 추었대도 현실인데 뭘 그렇게 어렵게들만 생각합니까. 현실비판은 진리인데 문학인이란 이상인(理想人)이요 향악인(享樂人)입니다. 조선적 문학이란 조선말로 씨워진 것입니다. 거기에 조선적인 음(音), 색(色), 희(喜), 애락(哀樂) 모든 것이 째어집니다. 그러면 고만이지 일즉이 사진주의에서 실패를 하고도 또 현실―리얼리즘 어이 참들.

김문집. 몇 번이나 말했지마는 조선의 평론가는 공상적인 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조선의 평가들은 지성에서 감수성을 획득해야 하지요. 고민은 진정한 의미의 고민이 될 수 없다. 가장 질거어할 줄 아는 사람이랴야 고민할 줄도 아는 것이오 따라서 예술도 거기서 나와야 한다.

서항석. 감사합니다. (구시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