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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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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
저자: 한용운
100114한용운

1
이순신(李舜臣) 사공삼고 을지문덕(乙支文德) 마부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 북마(南船北馬)하여 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

2
물이 깊다 해도 재면 밑이 있고
뫼가 높다 해도 헤아리면 위가 있다.
그보다 높고 깊은 것은 님뿐인가 하노라.

3
개구리 우는 소리 비 오신 줄 알았건만
님께서 오실 줄 알고 새옷 입고 나갔더니
님보다 비 먼저 오시니 그를 슬퍼하노라.

4
산중에 해가 길고 시내 위에 꽃이 진다.
풀밭에 홀로 누워 만고 흥망(萬古興亡) 잊었더니
어디서 두서너 소리 뻐꾹뻐꾹하더라.

5
물이 흐르기로 두만강(豆滿江)이 마를 건가.
뫼가 솟았기로 백두산(白頭山)이 무너지랴.
그 사이 오가는 사람이야 일러 무엇하리요.

6
비낀 볕 소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이야,
너의 소 짐 없거든 나의 시름 실어 주렴.
싣기는 어렵잖아도 부릴 곳이 없어라.

7
이별로 죽은 사람 응당히 말하리라.
그 무덤의 풀을 베어 그 풀로 칼 만들어
고적한 긴긴 밤을 도막도막 끊으리라.

8
밤에 온 비바람이 얼마나 모질던고.
많고 적은 꽃송이가 가엾게도 떨어졌다.
어쩌다 비바람은 꽃 필 때에 많은고.

9
시내의 물소리에 간 밤 비를 알리로다.
먼 산의 꽃소식이 어제와 다르리라.
술 빚고 봄옷 지어 오시는 님을 맞을까.

10
꽃이 봄이라면 바람도 봄이리라.
꽃 피자 바람 부니 그럴 듯도 하다마는
어쩌다 저 바람은 꽃을 지워 가는고.

11
청산(靑山)이 만고(萬古)라면 유수(流水)는 몇 날인고.
물을 좇아 산에 드니 오간 사람 몇이던고.
청산(靑山)은 말이 없고 물만 흘러가더라.

12
산에 가 옥(玉)을 캘까 바다에 가 진주(眞珠) 캘까.
하늘에 가 별을 딸까 잠에 들어 꿈을 꿀까.
두어라 님의 품에서 기른 회포 풀리라.

13
저승길 멀다 한들 하나밖에 더 있는가.
사람마다 끊어 내면 하룻길도 못 되리라.
가다가 길이 없거든 돌아올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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