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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미륵불광사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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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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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王四年丙午 沙門謙益 矢心求律 航海以轉 至中印度常伽那大律寺 學梵文五載 通曉竺語 深攻律部 莊嚴戒體 與梵僧倍達多三藏 齎梵本 阿毘曇藏 五部律文 歸國 百濟王以羽葆鼓吹 郊迎 安于興輪寺 召國內名釋二十八人 與謙益法師 譯律部七十二卷 是謂百濟律宗之鼻祖也

독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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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사년병오 사문겸익 시심구률 항해이전 지중인도상가나대률사 학범문오재 통효축어 심공율부 장엄계체 여범승배달다삼장 재범본 아비담장 오부율문 귀국 백제왕이우보고취 교영 안우흥륜사 소국내명석이십팔인 여겸익법사 역율부칠십이권 시위백제율종지비조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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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성왕(聖王: 재위 523~554) 4년인 526년(병오년)에 승려 겸익(謙益)이 계율을 공부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하고는(矢心) 배를 타고 인도로 갔다. 중인도(中印度)의 상가나대률사(常伽那大律寺)에 도착하여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문헌(梵文)을 5년(五載)간 공부하였다. 산스크리트어(竺語)를 통달하고 율부(律部)를 깊이 전공하여 위엄과 엄숙함을 지니게 되었고(莊嚴) 계율을 깨쳐 공덕의 힘을 나타내게 되었다(戒體). (5년간의 공부를 마친 후, 백제 성왕 9년인 531년에) 겸익법사(謙益法師)는 인도의 승려인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산스크리트어아비담장(阿毘曇藏)》과 《오부율(五部律)》 문헌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백제에 도착했을 때, 새 깃으로 만든 의장(羽葆)를 갖추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환영 행사와 함께, 백제 성왕(百濟王)이 직접 성문 밖에 나와서 겸익법사(謙益法師)와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을 맞이하였다. 성왕은 이들을 흥륜사(興輪寺)에 거주하게 하였고 국내의 이름난 승려(名釋) 28인을 불러 겸익법사와 함께 율부(律部) 72권을 번역하게 하였다. 이로서 겸익법사백제 율종(律宗)의 시조(鼻祖)가 되었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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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륵불광사 사적(彌勒佛光寺事蹟)은 이능화(李能和: 1869~1943)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능화 (1918).《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권상, pp.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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