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바드 기타/3장
THIRD DISCOURSE.
अर्जुन उवाच ।
ज्यायसी चेत्कर्मणस्ते मता बुद्धिर्जनार्दन ।
तत्किं कर्मणि घोरे मां नियोजयसि केशव ॥ १ ॥
Arjuna said:
If it be thought by Thee that knowledge is superior to action, O Janârdana, why dost Thou, O Keshava, enjoin on me this terrible action?(1)
아르주나가 말했다.
오 자나르다나(크리슈나)여!
당신께서 지혜가 행동보다 더 숭고하다고 말씀하셨다면,
왜 저를 이 끔찍한 전투에 나서도록 하십니까?
व्यामिश्रेणेव वाक्येन बुद्धिं मोहयसीव मे ।
तदेकं वद निश्चित्य येन श्रेयोऽहमाप्नुयाम् ॥ २ ॥
With these perplexing words Thou only confusest my understanding[1]; therefore tell me with certainty the one way by which I may reach bliss.(2)
당신의 말씀은 마치 서로 다른 길을 섞어 놓은 것처럼 들려
제 지성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단 하나의 확실한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길을 따라 저는 진정한 선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श्रीभगवानुवाच ।
लोकेऽस्मिन्द्विविधा निष्ठा पुरा प्रोक्ता मयाऽनघ ।
ज्ञानयोगेन साङ्ख्यानां कर्मयोगेन योगिनाम् ॥ ३ ॥
The Blessed Lord said:
In this world there is a twofold path, as I before said, O sinless one: that of yoga by knowledge, of the Sâñkhyas; and that of yoga by action, of the Yogis.(3)
거룩한 주(크리슈나)가 말씀하셨다.
오 죄 없는 자(아르주나)여!
이 세상에서 나는 두 가지 길을 가르쳤느니라.
하나는 지혜의 요가(지나나 요가)로,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의 길이며,
또 하나는 행동의 요가(카르마 요가)로,
요가 수행자들의 길이니라.
न कर्मणामनारम्भान्नैष्कर्म्यं पुरुषोऽश्नुते ।
न च संन्यसनादेव सिद्धिं समधिगच्छति ॥ ४ ॥
Man winneth not freedom from action by abstaining from activity, nor by mere renunciation doth he rise to perfection.(4)
행동을 시작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무행(행동의 초월)에 이를 수 없으며,
오직 포기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느니라.
न हि कश्चित्क्षणमपि जातु तिष्ठत्यकर्मकृत् ।
कार्यते ह्यवशः कर्म सर्वः प्रकृतिजैर्गुणैः ॥ ५ ॥
Nor can anyone, even for an instant, remain really actionless; for helplessly is everyone driven to action by the qualities[2] born of nature[3].(5)
그 누구도 단 한 순간도
행동하지 않고 머무를 수 없느니라.
모든 존재는 자연의 속성(프라크리티의 세 가지 구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동하게 되느니라.
कर्मेन्द्रियाणि संयम्य य आस्ते मनसा स्मरन् ।
इन्द्रियार्थान्विमूढात्मा मिथ्याचारः स उच्यते ॥ ६ ॥
Who sitteth, controlling the organs of action, but dwelling in his mind[4] on the objects of the senses, that bewildered man is called a hypocrite.(6)
오 아르주나여, 감각 기관(인드리야)을 마음으로 억제하면서도, 집착 없이 '카르마 요가'(행위의 요가)를 실천하는 자가 진정으로 뛰어난 자이다.
यस्त्विन्द्रियाणि मनसा नियम्यारभतेऽर्जुन ।
कर्मेन्द्रियैः कर्मयोगमसक्तः स विशिष्यते ॥ ७ ॥
But who, controlling the senses by the mind[4], O Arjuna, with the organs of action without attachment, performeth yoga by action[5], he is worthy.(7)
하지만 오 아르주나여, 감각 기관을 단순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조화롭게 다루며 의무(카르마 요가)를 수행하는 자는 더욱 탁월한 자이다.
नियतं कुरु कर्म त्वं कर्म ज्यायो ह्यकर्मणः ।
शरीरयात्राऽपि च ते न प्रसिध्येदकर्मणः ॥ ८ ॥
Perform thou right[6] action, for, action is superior to inaction, and, inactive, even the maintenance of thy body would not be possible.(8)
너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수행하라. 왜냐하면 행위(카르마)는 비행위(아카르마)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육체조차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यज्ञार्थात्कर्मणोऽन्यत्र लोकोऽयं कर्मबन्धनः ।
तदर्थं कर्म कौन्तेय मुक्तसङ्गः समाचर ॥ ९ ॥
The world is bound by action, unless performed for the sake of sacrifice; for that sake, free from attachment, O son of Kuntî, perform thou action.(9)
이 세상에서 모든 행위는 '야그냐(희생, 신성한 봉헌)'[1][2][3]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속박을 초래한다. 오 쿤티의 아들이여, 집착을 버리고 신성한 목적을 위해 행위를 하라.
सहयज्ञाः प्रजाः सृष्ट्वा पुरोवाच प्रजापतिः ।
अनेन प्रसविष्यध्वमेष वोऽस्त्विष्टकामधुक् ॥ १० ॥
Having in ancient times emanated mankind together with sacrifice, the Lord of emanation[7] said: "By this shall ye propagate; be this to you the giver of desire[8];(10)
창조의 신(프라자파티)은 세상을 창조할 때, 희생(야그냐)과 함께 생명체를 창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이 희생을 통해 번성할 것이며, 이것이 너희의 모든 소망을 이루어줄 것이다.'
देवान्भावयतानेन ते देवा भावयन्तु वः ।
परस्परं भावयन्तः श्रेयः परमवाप्स्यथ ॥ ११ ॥
"With this nourish ye the Shining Ones, and may the Shining Ones nourish you; thus nourishing one another ye shall reap the supremest good.(11)
너희가 신들을 공경하면, 신들도 너희를 축복할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돌보며 조화를 이루면, 궁극적인 행복과 번영을 얻게 될 것이다.
इष्टान्भोगान्हि वो देवा दास्यन्ते यज्ञभाविताः ।
तैर्दत्तानप्रदायैभ्यो यो भुङ्क्ते स्तेन एव सः ॥ १२ ॥
"For, nourished by sacrifice, the Shining Ones shall bestow on you the enjoyments you desire." A thief verily is he who enjoyeth what is given by Them without returning Them aught.(12)
신들이 희생(야그냐, यज्ञ)에서 만족할 때, 너희에게 원하는 축복(즐거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받은 것을 되돌려주지 않는 자는 도둑과 같다.
यज्ञशिष्टाशिनः सन्तो मुच्यन्ते सर्वकिल्बिषैः ।
भुञ्जते ते त्वघं पापा ये पचन्त्यात्मकारणात् ॥ १३ ॥
The righteous, who eat the remains of the sacrifice, are freed from all sins; but the impious, who dress food for their own sakes, they verily eat sin.(13)
희생(야그냐)에서 남은 것을 먹는 자들은 모든 죄에서 벗어나지만, 자신을 위해 요리하고 먹는 자들은 죄를 먹는 것이다.
अन्नाद्भवन्ति भूतानि पर्जन्यादन्नसंभवः ।
यज्ञाद्भवति पर्जन्यो यज्ञः कर्मसमुद्भवः ॥ १४ ॥
From food creatures become; from rain is the production of food; rain proceedeth from sacrifice; sacrifice ariseth out of action.(14)
모든 생명체는 영양분(food)에서 생겨나고, 생명의 영양분은 비(rain,물water)에서 생겨난다. 비(물)는 희생(야그냐)에서 비롯되며[4], 희생은 (이러한)행위(카르마)에서 비롯된다.[5]
कर्म ब्रह्मोद्भवं विद्धि ब्रह्माऽक्षरसमुद्भवम् ।
तस्मात्सर्वगतं ब्रह्म नित्यं यज्ञे प्रतिष्ठितम् ॥ १५ ॥
Know thou that from Brahma[9] action groweth, and Brahma from the Imperishable cometh. Therefore the Eternal, the all-permeating, is ever present in sacrifice.(15)
행위(카르마)는 브라흐만(절대적 존재)에서 나오고, 브라흐만은 불멸의 진리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브라흐만은 언제나 희생(야그냐)에 자리 잡고 있다.
एवं प्रवर्तितं चक्रं नानुवर्तयतीह यः ।
अघायुरिन्द्रियारामो मोघं पार्थ स जीवति ॥ १६ ॥
He who on earth doth not follow the wheel thus revolving, sinful of life and rejoicing in the senses, he, O son of Pritha, liveth in vain.(16)
이렇게 돌아가는 순환의 법칙(야그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죄악된 삶을 살며, 감각의 노예가 되어 헛되이 살아간다.
यस्त्वात्मरतिरेव स्यादात्मतृप्तश्च मानवः ।
आत्मन्येव च सन्तुष्टस्तस्य कार्यं न विद्यते ॥ १७ ॥
But the man who rejoiceth in the Self, with the Self is satisfied, and is content in the Self, for him verily there is nothing to do;(17)
그러나 자기 자신(아트만) 안에서 기쁨을 찾고(초월한 자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자기 자신(초월적 존재) 안에서 충만한 자는 더 이상 행위의 필요가 없다.
नैव तस्य कृतेनार्थो नाकृतेनेह कश्चन ।
न चास्य सर्वभूतेषु कश्चिदर्थव्यपाश्रयः ॥ १८ ॥
For him there is no interest in things done, in this world, nor any in things not done, nor doth any object of his depend on any being.(18)
그는 그 어떤 (집착된)행위에서도 의미를 찾지 않으며, 그 어떤 (집착된)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तस्मादसक्तः सततं कार्यं कर्म समाचर ।
असक्तो ह्याचरन्कर्म परमाप्नोति पूरुषः ॥ १९ ॥
Therefore, without attachment, constantly perform action which is duty, for, by performing action without attachment, man verily reacheth the Supreme.(19)
그러므로 집착 없이 계속해서 의무를 행하라. 집착 없이 행위하는 자는 궁극적인 경지(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것이다.
कर्मणैव हि संसिद्धिमास्थिता जनकादयः ।
लोकसङ्ग्रहमेवापि सम्पश्यन्कर्तुमर्हसि ॥ २० ॥
Janaka and others indeed attained to perfection by action: then having an eye to the welfare of he world also, thou shouldst perform action.(20)
위대한 자들(예: 자나카 왕)은 행위를 통해 완성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세상을 위한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
यद्यदाचरति श्रेष्ठस्तत्तदेवेतरो जनः ।
स यत्प्रमाणं कुरुते लोकस्तदनुवर्तते ॥ २१ ॥
Whatsoever a great man doeth, that other men also do; the standard he setteth up, by that the people go.(21)
위대한 사람이 무엇을 행하든지,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따른다. 그가 설정한 기준에 의해 세상은 나아간다.
न मे पार्थास्ति कर्तव्यं त्रिषु लोकेषु किञ्चन ।
नानवाप्तमवाप्तव्यं वर्त एव च कर्मणि ॥ २२ ॥
There is nothing in the three worlds, O Pârtha, that should be done by Me, nor anything unattained that might be attained; yet I mingle in action.(22)
오 파르타(아르주나여), 이 세 개의 세계(삼계, 三界)에서
내가 해야 할 의무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성취했으며,
더 이상 얻어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행위를 한다.
यदि ह्यहं न वर्तेयं जातु कर्मण्यतन्द्रितः ।
मम वर्त्मानुवर्तन्ते मनुष्याः पार्थ सर्वशः ॥ २३ ॥
For if I mingled not ever in action unwearied, men all around would follow My path, O son of Prithâ.(23)
오 파르타(아르주나여),
만약 내가 한순간이라도 행위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나의 길을 따르려 할 것이다.
उत्सीदेयुरिमे लोका न कुर्यां कर्म चेदहम् ।
सङ्करस्य च कर्ता स्यामुपहन्यामिमाः प्रजाः ॥ २४ ॥
These worlds would fall into ruin, if I did not perform action; I should be the author of confusion of castes, and should destroy these creatures.(24)
만약 내가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사회 질서는 붕괴될 것이다.
나는 (다시)무질서(혼돈chaos)[6][7]의 원인이 되고,
이 모든 존재들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सक्ताः कर्मण्यविद्वांसो यथा कुर्वन्ति भारत ।
कुर्याद्विद्वांस्तथाऽसक्तश्चिकीर्षुर्लोकसङ्ग्रहम् ॥ २५ ॥
As the ignorant act from attachment to action, O Bhârata, so should the wise act without attachment, desiring the welfare of the world.(25)
오 바라타(아르주나여),
무지한 자들은 집착 속에서 행위를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집착 없이 행위를 해야 한다.
그들은 단순히 세상의 조화를 위해 행위할 뿐이다.
न बुद्धिभेदं जनयेदज्ञानां कर्मसङ्गिनाम् ।
जोषयेत्सर्वकर्माणि विद्वान्युक्तः समाचरन् ॥ २६ ॥
Let no wise man unsettle the mind of ignorant people attached to action; but acting in harmony with Me let him render all action attractive.(26)
지혜로운 자는, 행위에 집착하는 무지한 자들의 마음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는 모든 행위를 자연스럽게 조화롭게 수행하며,
그들을 서서히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8]
प्रकृतेः क्रियमाणानि गुणैः कर्माणि सर्वशः ।
अहङ्कारविमूढात्मा कर्ताऽहमिति मन्यते ॥ २७ ॥
All actions are wrought by the qualities[10] of nature only. The self, deluded by egoism[11], thinketh: "I am the doer."(27)
모든 행위는 자연(Prakṛti, प्रकृति)의 세 가지 성질(Guṇa, गुण)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무지한 자는 자기 자아(Ego, अहङ्कार) 속에 빠져
'내가 행위를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तत्त्ववित्तु महाबाहो गुणकर्मविभागयोः ।
गुणा गुणेषु वर्तन्त इति मत्वा न सज्जते ॥ २८ ॥
But he, O mighty-armed, who knoweth the essence of the divisions of the qualities and functions, holding that "the qualities move amid the qualities,"[12] is not attached.(28)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तत्त्ववित्, tattva-vit),
자연의 성질(Guṇa)과 행위(Karma)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연의 성질이 자연 속에서 작용할 뿐'이라고 깨닫기 때문에, 행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प्रकृतेर्गुणसम्मूढाः सज्जन्ते गुणकर्मसु ।
तानकृत्स्नविदो मन्दान्कृत्स्नविन्न विचालयेत् ॥ २९ ॥
Those deluded by the qualities of nature are attached to the functions of the qualities. The man of perfect knowledge should not unsettle the foolish whose knowledge is imperfect.(29)
무지한 자들은 자연의 성질(Guṇa) 속에 사로잡혀,
그 성질에 의해 행위를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मयि सर्वाणि कर्माणि संन्यस्याऽध्यात्मचेतसा ।
निराशीर्निर्ममो भूत्वा युध्यस्व विगतज्वरः ॥ ३० ॥
Surrendering all actions to Me, with thy thoughts resting on the supreme Self, from hope and egoism freed, and of mental fever cured, engage in battle.(30)
모든 행위를 나에게 바치고,[9]
최고의 자아(Ātman)에 집중하며,
욕망과 에고(Ego)를 버리고,
두려움 없이 전쟁(삶의 싸움)에 임하라.[10]
ये मे मतमिदं नित्यमनुतिष्ठन्ति मानवाः ।
श्रद्धावन्तोऽनसूयन्तो मुच्यन्ते तेऽपि कर्मभिः ॥ ३१ ॥
Who abide ever in this teaching of Mine full of faith and free from caviling, they too are released from actions.(31)
이 가르침을 신뢰하며 실천하는 자들은
모든 행위에서 자유롭게 된다.
ये त्वेतदभ्यसूयन्तो नानुतिष्ठन्ति मे मतम् ।
सर्वज्ञानविमूढांस्तान्विद्धि नष्टानचेतसः ॥ ३२ ॥
Who carp at My teaching and act not thereon, senseless, deluded in all knowledge, know thou these mindless ones as fated to be destroyed.(32)
그러나 나의 이 가르침을 비난하며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든 지혜로부터 미혹된 자들이며,
그들을 무지한 자로 여기라.
그들은 파멸에 이를 것이다.
सदृशं चेष्टते स्वस्याः प्रकृतेर्ज्ञानवानपि ।
प्रकृतिं यान्ति भूतानि निग्रहः किं करिष्यति ॥ ३३ ॥
Even the man of knowledge behaves in conformity with his own nature; beings follow nature; what shall restraint avail?(33)
지혜로운 자일지라도 자신의 본성(프라크리티, Prakriti)대로 행동한다.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의 본성(자연적 성향)을 따르게 되나니,
억제(제어)하려 해도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इन्द्रियस्येन्द्रियस्यार्थे रागद्वेषौ व्यवस्थितौ ।
तयोर्न वशमागच्छेत्तौ ह्यस्य परिपन्थिनौ ॥ ३४ ॥
Affection and aversion for the objects of sense abide in the senses; let none come under the dominion of these two; they are obstructors of the path.(34)
감각 대상에 대한 애착과 혐오는 감각 속에 머문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둘(애착과 혐오)의 지배를 받지 말라.
그들은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श्रेयान्स्वधर्मो विगुणः परधर्मात्स्वनुष्ठितात् ।
स्वधर्मे निधनं श्रेयः परधर्मो भयावहः ॥ ३५ ॥
Better one's own duty,[13] though destitute of merit, than the duty[13] of another, well discharged. Better death in the discharge of one's own duty;[13] the duty[13] of another is full of danger.(35)
자신의 의무(다르마)를 수행하는 것이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보다 낫다.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것이 더 낫고,
타인의 의무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अर्जुन उवाच ।
अथ केन प्रयुक्तोऽयं पापं चरति पूरुषः ।
अनिच्छन्नपि वार्ष्णेय बलादिव नियोजितः ॥ ३६ ॥
Arjuna said:
But dragged on by what does a man commit sin, reluctantly indeed, O Varshneya, as it were by force constrained?(36)
아르주나가 말하였다:
"오 크리슈나여, 인간은 때때로 원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마치 강제적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श्रीभगवानुवाच ।
काम एष क्रोध एष रजोगुणसमुद्भवः ।
महाशनो महापाप्मा विद्ध्येनमिह वैरिणम् ॥ ३७ ॥
The Blessed Lord said:
It is desire, it is wrath, begotten by the quality of motion[14]; all-consuming, all-polluting, know thou this as our foe here on earth.(37)
그것은 욕망(Kama)과 분노(Krodha) 때문이다.
이들은 라자스 구나(Rajas, 열정의 속성)에서 생겨나며,
모든 것을 삼키는 적이며, 죄악의 근원이다.
धूमेनाऽव्रियते वह्निर्यथाऽऽदर्शो मलेन च ।
यथोल्बेनावृतो गर्भस्तथा तेनेदमावृतम् ॥ ३८ ॥
As a flame is enveloped by smoke, as a mirror by dust, as an embryo is wrapped by the amnion, so This[15] is enveloped by it.(38)
마치 불이 연기로 덮이고, 거울이 먼지로 덮이며,
태아가 자궁으로 가려지는 것처럼,
욕망은 지혜를 덮어버린다.
आवृतं ज्ञानमेतेन ज्ञानिनो नित्यवैरिणा ।
कामरूपेण कौन्तेय दुष्पूरेणानलेन च ॥ ३९ ॥
Enveloped is wisdom by this constant enemy of the wise in the form of desire, which is insatiable as a flame.(39)
오 아르주나여, 이 끝없는 욕망은
지혜로운 자의 마음을 뒤덮는 적과 같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이 욕망이
지혜와 깨달음을 가로막는다.
इन्द्रियाणि मनो बुद्धिरस्याधिष्ठानमुच्यते ।
एतैर्विमोहयत्येष ज्ञानमावृत्य देहिनम् ॥ ४० ॥
The senses, the mind[16] and the Reason[17] are said to be its seat; by these enveloping wisdom, it bewilders the dweller in the body.(40)
욕망은 감각(Senses), 마음(Mind), 지성(Intellect)에 자리한다.
이것들은 지혜를 혼란스럽게 하며,
아트만(Atman, 참자아)의 빛을 가린다.
तस्मात्त्वमिन्द्रियाण्यादौ नियम्य भरतर्षभ ।
पाप्मानं प्रजहि ह्येनं ज्ञानविज्ञाननाशनम् ॥ ४१ ॥
Therefore, O best of the Bhâratas, mastering first the senses, do thou slay this thing of sin, destructive of wisdom and knowledge.(41)
그러므로, 오 최고의 전사여!
먼저 감각을 통제하고,
이 죄악(욕망)을 파괴하여
지혜와 깨달음을 얻으라.
इन्द्रियाणि पराण्याहुरिन्द्रियेभ्यः परं मनः ।
मनसस्तु परा बुद्धिर्यो बुद्धेः परतस्तु सः ॥ ४२ ॥
It is said that the senses are great; greater than the senses is the mind:[16] greater than the mind[16] is the Reason;[17] but what is greater than the Reason,[17] is He[18].(42)
감각은 물질보다 더 강하고,
마음은 감각보다 더 강하며,
지성은 마음보다 더 강하다.
그러나 아트만(참자아)은
이 모든 것보다 더 높다.
एवं बुद्धेः परं बुध्वा संस्तभ्यात्मानमात्मना ।
जहि शत्रुं महाबाहो कामरूपं दुरासदम् ॥ ४३ ॥
Thus understanding Him as greater than the Reason,[19] restraining the self by the Self, slay thou, O mighty-armed, the enemy in the form of desire, difficult to overcome.(43)[11]
그러므로 지성을 초월하는 그분(참자아, 아트만)을 깨닫고,
자신(self)을 자신(self)으로써 다스리며,
오, 강한 팔을 가진 자여(아르주나여)[12],
극복하기 어려운 욕망(Desire)의 형태를 한 적을 무찌르라.
इति श्रीमद्भगवद्गीतासूप॰ कर्मयोगो नाम तृतीयोऽध्यायः ।
Thus in the glorious Upanishads of the Bhagavad-Gita, the science of the Eternal, the scripture of Yoga, the dialogue between Sri Krishna and Arjuna, the third discourse, entitled:
THE YOGA OF ACTION.
이처럼, 찬란한 『바가바드 기타』의 우파니샤드[13] 속에서[14],
영원의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이자,
요가의 성전이며,
슈리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대화로 이루어진,
제3장, 『행동의 요가(Yoga of Action)』가 마무리된다.
- ↑ yajña यज्ञ 야그냐 (대가없는)희생
- ↑ 자기중심적인 행동이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를 위한 행위
- ↑ 받은 선행보다 준 선행이 많으면 남는 선행이 있고 받은 악행보다 준 악행이 많으면 남는 악행이 있다. 남는것이 적으면 자신에게서 그치나 남는바가 크면 세상에 미친다. [주역 제2괘 곤 문언전 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의 여유가있는바인것이다. 선행을 행하지못하여 선이 쌓이지않으면 반드시 넘치는 재앙이 있는것이다.
- ↑ 비가 오려면, 구름이 물을 잃어야 한다. 구름이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자신을 희생하여 비를 내린다는 맥락에서 이해해볼수있다.
- ↑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는 희생을 하면, 자연은 정상적인 생명력을 보여 준다.
- ↑ संकर samkara 무질서, 혼란
- ↑ gita 11.32 나는 시간이니, 세상을 황폐하게 하는 자이며, 인류를 죽이기 위해 이 땅에 나타났노라! 이 전쟁에 나선 이 모든 전사들 중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오직 너(아르주나)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 ↑ 진정한 깨달음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 ↑ 지혜를 가진 자는 욕망과 분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내면의 평온을 얻고,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며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현명한 자는 욕망에서 벗어나, 순수한 다르마(dharma)의 길을 따라야 한다. 그는 집착 없이 행동할것이며, 자기 의무를 수행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참된 깨달음에 도달하면, 그에게 경전(베다)의 가르침은 마치 넘쳐 흐르는 강에서 물 한 바가지만큼이나 하찮은 것이 된다. 따라서 행동(카르마)은 집착 없이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신에게 바쳐지는 것이며, 결과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행해야 한다. 따라서 평등한 마음을 지닌 자는, 성공과 실패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신을 위해 행동한다. 그는 진정한 요기(yogi)이며,완전한 평온을 얻는다. 지혜로운 자는 모든 행동의 결실을 버린다. 따라서 그는 욕망에서 자유로우며,행동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참된 자유를 얻는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욕망을 초월하고, 행동(카르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한 평온과 자유를 얻는다. 그는 신과 하나가 된다. (참고ai G)m3.50
- ↑ 행위를 하지만,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 우주의 흐름일 뿐이다.
- ↑ Thus, knowing the self to be transcendental to the intellect, O mighty-armed one, subdue the formidable enemy in the form of lust.이렇게 지성을 넘어서는 참자아(아트만)를 깨닫고, 오, 강한 팔을 가진 자(마하바호, 아르주나)여! 강력한 적(욕망의 형태)을 무찌르라!
- ↑ 강한 팔을 가진 자(마하바호, 아르주나)mighty-armed (one) , 여기서 강한 팔은 행동(karma)과 의무(dharma)의 이중성이 조화롭다는 의미로 이해해볼수있다.
- ↑ 베단타(vedanta वेदान्त)라고도 불리움.
- ↑ 베단타(vedanta वेदान्त)의 베단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