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군고/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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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편집]

高王


高王諱祚榮 震國公子也 嘗爲高句麗將 驍勇善騎射 及震國公卒 乞四比羽敗死 祚榮遁 李楷固窮躡度天門嶺 祚榮引高句麗靺鞨兵大破之 楷固僅以身免 祚榮卽幷比羽之衆 據挹婁之東牟山 靺鞨及高句麗舊人悉歸之 遂遣使交突厥 略有扶餘沃沮朝鮮弁韓海北十餘國 東窮海西契丹 南接新羅 以泥河爲界 地方五千里 戶十餘萬 勝兵數萬 學習書契 俗與高句麗契丹略同 聖歷中國號震 新唐書作振 文獻備考曰震朝 自立爲震國王 築忽汗城以居 直營州東二千里 時奚契丹皆叛唐 道路阻絶 武后不能致討焉 中宗卽位 遣侍御史張行岌 慰撫之 王亦遣子入侍 玄宗先天二年 遣郎將崔訢 冊王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 以所統爲忽汗州 領忽汗州都督 始去靺鞨號 專稱渤海 自是以後 世朝獻唐 餘幽州節度府相聘問 屯勁兵於扶餘府 以備契丹 玄宗開元七年王薨 三月丙辰赴唐

번역문[편집]

고왕

고왕의 이름은 조영이다. 진국공의 아들로 일찍이 고구려의 장수로 날래고, 용감하며 말 타고, 궁술에 능하였다. 진국공이 죽고, 걸사비우가 패하여 죽자, 조영이 달아났다. 이 해고가 끝까지 쫓아와 천문령을 넘자, 조영이 고구려와 말갈병사를 이끌고 이를 크게 깨뜨렸다. 해고는 겨우 몸만 살았다. 조영이 곧 비우의 무리를 아우르고 읍루의 동모산에 의거하여 일어나자 말갈과 고구려의 옛 백성들이 모두 돌아왔다. 사신을 돌궐로 파견하여, 사귀었다. 부여, 옥저, 조선, 변한등 바다 북쪽 십여국을 다스렸는데, 동으로 바다에 닿고, 서로는 거란, 남으로는 신라에 접하여 니하를 경계로 삼았다. 사방 오천리이고 호수는 십여만호이고 병사는 수만으로, 책을보고 익히고 공부하였다. 풍속은 고구려와 거란과 한가지이다. 중국에서 진(震)이라 하는데, 신당서에는 진(振)이고 하였다. 문헌을 갖추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진(震)이다. 스스로 진국왕이라 하고 홀한성을 쌓고 거하였는데, 영주에서 동쪽으로 이 천리이다. 이때에 거란이 모두 당을 배반하여 도로가 끊어지고, 험하여 무후가 능히 정벌하지 못하였다. 중종이 즉위하자, 시어사 장행급을 파견하여 이에 위로 하였다. 왕 역시 아들 입시를 파견하였다. 현종 선천 이년 낭장 최흔을 파견하여 좌효위대장군발해군왕을 책봉하고 홀한주로 하니, 홀한주도독이 처음 말갈이라 부르고 떠났던 곳이니, 오로지 발해라 칭하였다. 그 후에 당에 조헌하고 유주 절도부를 찾아가 아뢰어 부여부의 날랜 병사로 거란에 대비한다 하였다. 현종 개원 칠년 왕이 죽자, 3월 병진년에 당에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