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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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참을 수 없다.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나는 나도 알 수 없는 힘에 지배되어 팔을 벌리고 눈을 뜨면서 벌떡 일어난다. 결국 굳센 내 두 팔에 잔뜩 안긴 것은 나를 덮었던 이불이다. 내 눈앞에는 으스름한 창문이 보일 뿐이다. 나는 한숨을 휴 쉬었다. 지금 그것이 허깨비인 줄 모르는 것이 아니로되, 그래도 무엇이 보일 듯하고, 무엇이 들릴 듯하게 마음에 켕긴다.

“백금아! 백금아! 백금아…….”

나는 나도 알 수 없이 구석을 노려보면서 나직이 불렀다. 보이기는 무엇이 보이며, 들리기는 무엇이 들려? 으슥한 구석에 걸린 의복이 점점 환하게 보이고 창을 스치는 쌀쌀한 바람 소리만 그윽할 뿐이다.

“흥! 내가 미쳤나?”

내 몸은 힘없이 자리에 다시 쓰러졌다. 머리는 띵하고 가슴은 쩌릿하다.

슬그니 덮은 두 눈딱지까지 천 근 쇠덩어리같이 눈알을 누른다. 또 온갖 사념이 머리를 뒤흔들고 열이 올라서 잠을 못 이루게 한다.

백금이 간 지가 벌써 몇 달이냐? 그가 갔다는 이 선생의 손으로 쓰신 어머니의 엽서를 받던 때는 청량리 버드나무 잎이 바야흐로 우거졌던 때더니 벌써 그것이 떨어지고, 삼각산에 흰눈이 내렸다. 성진(城津) 동해안(東海岸) 공동 묘지에 묻힌 그의 어린 뼈와 고기는 벌써 진토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있다고 하면 마천령(魔天嶺)으로 내리쏠리는 쓸쓸한 바람 속에 누워서 이 밤 저 달 아래 빛나는 바닷 소리에 얼마나 목메인 울음을 울까?


백금이는 내가 스물 한 살 때, 즉 신유년 7월 22일에 서간도(西間島)에서 낳은 딸이다.

“손자가 나면 백웅(白雄)이라고 하쟀더니 손녀니까 백금(白琴)이라 하지!

백두산 아래에 와서 얻은 거문고라고 허허.”

이렇게 아버지께서 그 이름을 지으셨다. 백금이는 거칠은 만주 산골에서 낳기는 하였으나 어머니(아내)나 아버지(나)보다도, 할아버지(아버지)와 할머니(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곱게곱게 컸다.

그러나 악착스런 운명은 우리에게 평화로운 날을 늘 주지 않았다. 백금이 두 살 되던 해 가을이었다. 어머니, 아내, 백금, 나 이 네 식구는 아버지와 갈리게 되었다. 소슬한 가을 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는 삼인방(三人坊) 고개에서 아버지와 작별할 때 점점 멀어지는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섧게섧게 우는 백금의 울음에 우리는 모두 한숨을 짓고 눈물을 뿌렸다. 아버지는 우리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그 고개 마루턱에 지팡이를 짚고 섰었다.

태산 준령을 넘어서 북간도 얼따오꼬우〔二道溝[이도구]〕에 나온 우리는 이듬해 즉 백금이가 세 살 나던 해 봄에 두만강을 건너서 회령(會寧)으로 나왔다. 이때부터 백금이는 어정어정 이웃집으로도 걸어다니고 쉬운 말도 하고 어른들이 가리키는 것을 집어 오기도 하였다. 온 집안의 정성과 사랑은 더욱 더욱 그에게 몰렸다. 어머니께서는 맛나는 것만 얻으셔도 백금이 백금이, 이쁜 것만 보셔도 백금이 백금이 하여 귀여워하셨다. 심지어 그때 우리 노동판 회계인 T의 내외분까지 백금 백금 하여 자기 자식같이 받들었다. 내가 노동판에서 늦게 들어가서 기침을 컹 하고 문을 열면 어미 무릎에서 젖을 먹던 백금이는 통통 뛰어나오면서,

“해해 아부지! 아부지! 해해.”

하고 내 품에 안겼다. 그때에 나는 들고 들어간 과자나 과일을 주면 그는 옴팍한 작은 손으로 부둥켜 안고는,

“할머니, 해해.”

방긋방긋 웃으면서 어머니께 갖다드렸다.

“에그, 좋아서 하하.”

어머니는 과자 봉지 백금이 할것없이 얼싸 안으시고는 백금이의 낯에 뺨을 비비셨다.

“호호.”

“허허.”

아내와 나도 웃었다.

“이제는 낮에 아버지 있는 데로 가자고 성화하여 못 견디겠다.”

어머니께서 볼이 미여지도록 밥을 퍼먹는 나를 보시고는 방긋이 웃는 백금 이를 보신다. 그러면 나는 밥을 씹는 채 백금이를 보며 정답게 물었다.

“백금아 아버지 보고 싶디? 응?”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백금이 앉았는 무릎을 들석하면서,

“백금아 가르쳐라. 어─—고운아 잘 가르치지! 아버지 어느 눈으로 보구 싶디?”

하시면 백금이는 방긋 웃고 할머니를 치어다보면서 작고 흰 손가락으로 바른편 눈을 가리켰다.

“또 할머니는?”

이번에는 어머니 곁에 앉았던 아내가 묻는다. 그러면 백금이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할머니를 보면서 왼편 눈을 가리켰다. 나는 먹던 밥을 잊은 듯이 그것만 빙긋이 보다가 또 물었다.

“백금아! 또 엄마는?”

이번에는 좀 머뭇머뭇하다가 코를 가리켰다. 웃음이 터졌다.

“하하!”

“호호!”

“허허!”

이렇게 세 식구는 백금이의 연기에 취하여 밖에 흐르는 눈보라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때도 아침 저녁 벌어서 먹었건만 우리 집에는 늘 웃음이었다. 날이 갈수록 백금이에게 대한 나의 사랑은 더욱 깊었다. 나는 한번 어떤 친구와 이렇게 말하고 웃은 일이 있다.

“여편네는 남의 것이 이쁘고, 자식은 제 자식이 이쁘다는 말이 일리는 있어! 허허허.”

“에게, 미친 녀석 미친 수작하네, 하하하.”

그러나 진실로 말하면 ‘저것은 내 자식이다. 내 혈육이다’ 하는 생각도 다소간 있겠지만 그보다도 순진한 어린 맛에 내 마음은 더 끌렸던 것이다.

나날이 토실토실하게 자라는 누에 모양으로 연년이 내 눈앞에서 셈이 들고, 커 가고, 말을 번지는 양은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가 걸음발을 자유롭게 떼면서부터는 내 손을 꼭 잡고 따라다녔다.

어떤 때는 일판에까지 쫓아나온 때가 있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R형이 나를 찾아왔다가 목간을 함께 가는데 백금이가 수건과 비누를 들고 앞서서 족 돌족 돌 목간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더니,

“하하 세월이 빠르구나! 야, 네 자식이 벌써 저렇게 되다니 기가 막혀서,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러나 나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으로 간간이 암담한 오리무중에서 검은 숨을 쉬었다. 흐르는 세월과 같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운명은 또 한번 뒤집혔다. 이것은 한 단체적 운명인데, 계해년 흉년으로 말미암아 회령 역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수출되는 간도(間島)의 대두(大豆)가 끊어졌다. 그 때문에 겨울 한 철에 대두목을 보던 회령 나따세 노동자들은 출출히 마르게 되었다. 그 속에 속한 내 앞에도 그 슬픈 운명은 닥쳤다. 그렇지 않아도 늘,

“네가 과연 이 생활에 만족할 테냐?”

하고 나 스스로 내 생활과 내 태도를 분개하던 판이다. 불평은 한껏 커졌다. 그런 우중에 회사측에서는 밤낮 노동 임금을 내려서 하루─—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시─—번다는 것은 몇 십 전, 기껏되야 일 원이 되니 그것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 무어라고 회사측에 대하여 불편을 말하면 쫓겨나기가 예사이다.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어서 지긋지긋 견디지만 나날이 높아가는 것은 불평이었다. 홧김에 주기 싫어하는 외상술을 먹고는 서로 싸움과 욕으로 화풀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때에 이르러서 더욱더욱 느끼는 바가 있었다. 참담한 생활을 생각하는 때마다 알 수 없는 굵은 줄이 내 몸, 내 식구의 몸, 나와 같이 일하는 이의 몸을 휘휘친친 얽은 듯한 그림자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 떠오를 듯하다가는 갈앉고 갈앉고 하던 것이 이때에 와서는 뚜렷이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담도 더 밝게 떠올랐다.

첫여름 뜨거운 어떤 날이었다. 나는 R형과 함께 남문 밖 시냇가로 나가면서 이런 말을 끄집어 내었다.

“R형! 나는 이런 생활에 만족해야 옳을까?”

R형은 나를 보면서 은근스럽게 말하였다.

“그래, 그렇찮으면 어쩌겠나?”

“형까지 그렇게 생각하시우?”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갑갑하였다. 눈앞에 반짝반짝 흐르는 시내에 첨벙 뛰어들고 싶었다.

‘R형도 그렇구나? 일본까지 가서 사회학을 연구했다는 이까지 저러니?’ 나는 이렇게 속으로 형을 원망하였다.

잠시 두 사람은 잠잠하였다. 눈이 부시는 빛 아래 자글자글 빛나는 시냇물은 찰찰 소리를 친다. 저편에 수차(水車)가 번쩍번쩍 돌아간다. 그 양편으로 빨래하는 부인들이 죽 늘어 앉았다. 정거장에서는 푸푸 기차의 김뽑는 소리가 들리고 영림창에서는 쿵덕쿵덕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온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숨이 턱턱 막히게 뜨뜻하다.

중도역 쪽에서 뿡─— 하는 기적 소리가 나더니 어느새 낮차가 푸푸 우루루 하고 회령역으로 쏜살같이 들이달렸다.

“그래, 어찌 할 작정인가?”

R형이 침묵을 깨뜨렸다. 나는 비위가 꼬였다.

“그만둡시다. 그까짓 말은 해서 뭘 하오?”

“흥! 왜 화났니? 응 말해라! 무슨 말이든지 해라! 네 고통을 모를 줄 아니?”

하고 고삐를 늦추는 바람에 나는 좀 풀렸다.

“나는 암만 해도 집에 있을 수는 없소!”

“왜?”

글쎄 보는 형편처럼 “ , 한평생 이러구서야 무슨 사는 보람이 있어요?”

“가면 뭘 하겠나?”

“등짐이라도 져서 더 배워야 하겠소!”

“식구들은?”

“내가 아우?”

“내 알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R형은 말과는 딴판으로 빙그레 웃는다. 나는 그것이 미웠다. 그러나 잠시였다.

“붙잡고 있으면 소용이 있소? 아무리 붙잡어도 이 상태로는 기아(飢餓)를 면할 수 없어요! 더구나 딸년 하나 있는 것이 오래지 않아서 학교에 넣게 되겠으니 이렇게 쪼들리고서야 학비가 다 뭐예요? 어디 가서 아기나 보아 주고 구박을 먹겠으니……”

이때 내 눈앞에 찢어진 치마저고리를 걸치고 어떤 집 부엌에서 오드드 떠는 백금이의 모양이 언듯 지나쳤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럴 바에는 지금 나서는 것이 차라리 낫잖겠소.”

나는 입술을 물었다.

“글쎄 나는 네 일을 생각하고 있다. 네가 이러구 있어 되겠니? 하지만 정작 목전에 보니 어머니가 딱하구나! 더구나 백금이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 뒤 보름이 넘어서 R형과 나는 회령을 떠났다.

새벽 차로 떠나는데 백금이는 그때까지 잠을 깨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방긋방긋 웃고, 깡충깡충 뛰면서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것이 보고 싶었으나 자는 것을 깨우면 밥짓는 데 귀찮게 굴겠고 또 나를 따라 정거장으로 나간다고 트집을 부리겠기에 그냥 버려두고 그 뺨에 은근히 내 뺨을 비비었다.

그 쌔근쌔근한 숨결이 내 입술을 스칠 때 나는 애틋한 정과 아울러 보드라운 느낌을 받았다.

R형은 내 하는 양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일본말로 끄집어 냈다.

“네 이제 그런 것 저런 것 다 생각나서 못 견디리라.”

“이제 백금이는 오빠 오실 때까지 아버지만 찾겠지? 호호!”

이때는 웅기에 있던 내 누이동생이 집에 와 있었다.

차시간이 가까왔다. 나는 한 일주일 후에 돌아온다고 거짓 소리를 하고 떠났다. 발이 묵직한 것이 집이 다시금 돌려다보였다.

나는 고향을 나와서 이삼 주간 묵은 뒤 H군께서 노비를 얻어서 여정에 올랐다. R형은 뒤에 떠나기로 하고 혈혈단신이 장안 큰길에 나타나게 된 때는 작년 팔월 그믐날이었다 . 적수공권이 마침 좋은 친구들 도움으로 간신히 어떤 학생 여관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서울에 들어서던 날부터 내 눈에 비췬 서울은 내가 동경하던 서울이 아니었다. 나는 진고개도 보고, 신마찌도 보았으며, 종로도 보고, 광희문 밖도 보았으며, 새문밖도 보고, 구리개도 보았다. “나리 돈 한푼 줍쇼!” 하고 뒤를 쫓아오는 부대투성이도 서울에 와서 보았고, 거적을 쓰고 차디찬 길 위에서 잠자는 무리들도 서울서 보았다. 날이 갈수록 간판과 전등으로 화려하게 꾸민 서울의 내막이 어둡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볼 때마다 내 두 팔에 힘 약한 것을 한탄하였고 나의 담이 좀 더 커지기를 원했다. 콸콸 흐르는 뜨거운 피로 썩어진 도시를 밀어 버리고 싶었다.

거물거물하는 사이에 한두 달이 갔다.

나는 몹시 추운 어떤 날 밤에 형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 가운데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아우야! 마천령에는 눈이 허옇게 쌓였다. 이제부터는 서울도 삼각산 바람이 쏠쏠 귀밑을 에일 때다.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입니? ……중략…… 아우야 백금이 어미는 갔다. 네 아내는 갔다. 어디를 갔는지 갔구나. ……중략…… 아우야 씩씩하게 나아가거라. 너는 ××주의의 생의 긍정자가 되어라. ……하략─— 나는 편지를 읽고 나서 멍하니 어떤 감상을 붙잡을 수 없었다. 슬픈지? 괴 로운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사나운 짐승을 만난 사람같이 한참 편지를 쥔 채 묵묵하였다. 하다가 시간이 흘러서 온몸을 싸고 엉킨 그 무슨 기운이 차츰 풀릴 때 천사만념이 머리와 가슴을 긁기 시작했다. 나는 얼음장 같은 방 안에 무릎을 안고 드러누워서 밤새껏 눈을 붙이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전날의 일기를 이렇게 썼다.


‘아내는 갔구나! 그는 어머니와 백금이를 두고 갔구나! 그는 어디로 갔나! 춥고 배고파서 갔나? 그는 나와 오륙년이나 고락을 같이한 사람이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안다.

아내여! 나는 당신을 조금도 원망치 않는다. 나는 나의 온갖 정성을 다하여 당신의 행복을 빌고 바란다. 당신은 나를 용서하라.

어머니의 한숨! 백금이의 엄마! 소리를 두고 가는 아내의 가슴이 어떠하였을까? 그는 나를 얼마나 원망하였으랴? 나는 그것이 들리는 듯하다.

어머니 용서하소서! 이 자식이 성공하는 날까지 어머니 꼭 살아 계시소서!

백금아! 울지 마라 응! 아버지 돌아가는 날 이쁜 모자와 맛나는 과자를 많이 많이 사다 줄께, 할머니 모시고 울지 마라 응!’


여기까지 쓰다가 나는 그만 일기책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문을 꼭 걸고 가슴을 치고 디글디글 구르면서 소리없는 뜨거운 눈물을 한껏 뽑았다. 이렇게 소리없는 울음을 기껏 울다가 오정이 넘어서 밖에 나서니 천지가 누우런 것이 진흙물을 흘린 듯하다. 나는 미친놈처럼 이 골목 저 골목 방향도 없이 허둥지둥 쏘다니다가 해가 진 뒤 하숙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R형에게 이러한 뜻의 편지를 썼다.

─—이제부터는 절대 내게 집 소식을 알리지 마세요. 나도 내가 죽든지 살든지 성공하기 전에는 편지를 드리지 않겠읍니다─— 그 뒤로 내 생활은 그저 번민과 고통의 생활이었다. 아무 신통한 것이 없다. 그 사이 내 일기를 펴 보면 이런 것이 있다.


갑자(甲子) 시월 삼십 일. 청(晴). 소한(小寒).

나는 중이 됐다.

장삼을 입고, 가사를 매고, 목탁을 드니 훌륭한 중일세!

세상은 나더러 세상이 귀찮아서 승문에 들었거니 믿는다. 하하하. 내가 참말 중인가? 하하하.


갑자 십 일월 십 오일. 소설(小雪). 난(暖).

오늘은 갑자 십 일월 십 오일이다. 육십 년 전 이날 축시(丑時)에 우리 어머니는 이 세상에 나오셨다.

아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백금이를 업고 지금 어디 계시나? 어머니 또한 내 있는 곳을 모르실 것이다. 이 무슨 인연이던가?

새벽 목탁, 저녁 종에 장삼 입고, 가사 매고, 합장하고,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았을 때마다 어머님과 백금이 생각이 가슴에 간절해서!

나는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소설 「살려는 사람들」을 쓰려고 붓을 잡았다.

뮤즈여! 당신도 이 소설을 그렇게 읽어지이다. 아아 어머니는 백금이를 업고 어디서 배를 주리시나?


갑자 십 이월 삼일. 청(晴). 난(暖).

꿈에 백금이를 보았다. 어머니 무릎에 앉았다가 방긋방긋 웃고 내 품에 와서 안기는 백금이를 보았다.

꿈을 깨어서 나는 법당 뜰에 내려가 어정어정하였다. 가슴이 뻐근하였다.

눈에 덮인 소나무 사이에 흘러내리는 달빛은 퍽 아름답다.


갑자 십 이월 십 팔일. 대설(大雪). 풍(風).

나는 참 무능력한 위인이다. 푯대가 없는 무골충이다. 이게 뭐냐? 이런 생활을 하려고 집을 떠났나? 빨가벗고 저 눈보라 속에 서도 시원치 못할 놈이 뜨뜻한 데가 다 뭐냐?

오오 무서운 눈보라!


을축(乙丑) 이월 삼일. 청. 소한.

나는 ××잡지사에 들어갔다. 부처님을 배척하고 나왔으나 역시 종이 되었다.

나는 뜨뜻한 자리에 들고, 김이 나는 음식을 대할 때마다 어머니와 백금이 생각이 난다.

오늘 아침 동대문을 지나다가 어린애 업은 늙은 할머니가 오들오들 떨고 섰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가슴이 저렸다. 내 눈에는 그것이 남 같지가 않았다.


을축 이월 이십 일. 한. 설.

아침에 포슬포슬 내리던 눈은 개였으나 하늘은 그저 찌브퉁하다.

오후에 야주개 골목에서 B를 만났다. 나는 늘 그를 생각지 않으려고 애쓰나 생각케 되고, 그에게 끌리지 않으려고 하나 끌린다. 그의 다정한 웃음과 부드러운 목소리는 생각할 적마다 내 가슴에 불을 지른다.

단념! 단념할란다. 나는 절대 B를 생각지 않으련다. 죄 없는 인간들을 처참한 구렁에 빠뜨려 놓고 나 혼자 사랑의 품에 안겨? 거기 잘못 빠지면 나는 헤엄을 잘못 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이상은 다 헛일이다.

내게는 어머니가 있고 딸년이 있다. 나를 사랑하시는 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딸!


을축 이월 이십 팔일. 한. 설.

밤 열시가 넘어서 나는 P군과 같이 교정지를 거두어 가지고 인쇄소 문을 나섰다. 윤전기 소리가 은은한 공장 유리창으로 흘러나오는 불빛 속에 펄펄 날리는 눈발은 부드러운 설움을 내 가슴에 흘린다. 우리는 종로 네거리에서 동대문 가는 전차를 기다렸다. 집집의 전등은 꿈속 같다. 눈이 깔린 길 위에 오고가는 사람의 모자와 어깨에는 눈이 허옇다. 모두들 무엇 하려고 저렇게 어물거리누? 나는 무엇 무엇 하려 서울 왔누? 준은 무엇하는 것인구?

여기는 무엇 하려 서 있누? 어디를 가려고? 가면 내게 아내가 있나? 가정이 있나? 나를, 춥다고 누가 밥을 데우며, 찌개를 데우랴!

“가면 뭘 하나?”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내었다. 곁에 섰던 P군은 나를 돌아보면서─—

“왜요, 집으로 안 가세요?”

“응, 왜 안 가긴?”

“그런데 왜 그러세요?”

“응, 아니야 허허.”

“하하.”

P군도 나와 같이 웃었다. 그러니 그는 무슨 의미로 웃는가? 두 젊은이 웃음은 피차 영원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일 것이다.

오오! 이 인생인가?


을축 삼월 일일. 청. 난.

공중으로 솟는 내 영혼은 땅에 붙은 내 육체를 끌어올리려 하고, 땅에 자빠진 내 육체는 공중으로 솟으려는 내 영혼을 끄집어내리려 한다. 그러나 두 사이는 점점 벌어질 뿐이다. 거기에 차는 것은 고통, 번민, 우울, 비애, 침체, 분노뿐이다.

나는 주먹을 부르쥐고 이를 악문다.

그 모든 것을 쳐부수자!

그 모든 것을 이기자!


금년 늦은 봄 몹시 덥던 어떤 날이었다.

오월호에 실을 원고를 얻으러 돌아다니다가 석양에 재동으로 R형을 찾아갔다.

“요사이 집 소식을 듣나?”

R형의 소리는 아무 풀기 없이 들렸다. 어디가 편치 않은지 그 낯에는 어두운 빛을 흘렸다.

“집 소식이라니요? 벌써 편지 끊은 지가 언젠데?”

나는 남의 소리같이 말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백금이는 잘 있는지? 흥!”

그 소리에 나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글쎄 이런 소리를 “ 들을려고 그랬는지? 꿈에 백금이를 보았지? 허허.”

“그래 어쩌던가?”

“아, 꿈에 백금이가 시집을 간다고 하는데, 어느새 컸는지 커단 색시겠지!

흐흐. 그런데 꿈에는 그게 백금이 같지 않기도 하고 백금이 같기도 해요!

하하하.”

나는 얼프름한 간밤 꿈을 눈앞에 보는 듯이 눈을 실룩거렸다.

“하하하, 그래 사위는 못 봤나?”

R형도 웃었다. 나는 또 벙긋하고 탄식하는 듯한 음조로─—

“글쎄, 그게 천만 유감이요. 꿈만 아니드면 사위 하나는 꼭 생기는데……

흐흐흐.”

경쾌한 기분으로 웃었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던 R형은 빙그레 하면서,

“네게 할 말이 있으니 지금 바로 사(社)로 가거라.”

한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할 말이 있으면 이렇게 대해서 해야지 사에 가면 어떻게 말해요?”

“글쎄 꼭 할 말이다. 어서 가거라. 전화로 말할게!”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내 모르겠오? 하하하.”

웃기는 하였으나 내 마음은 검은 구름에 싸이는 듯 조였다. R형은 실없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슨 허물된 일이나 없었는가 하고 생각도 하여 보았다.

“무슨 일이우?”

나는 호기와 의심이 잔뜩 고인 눈으로 R형을 보았다. R형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나를 멀거니 보다가,

“네게 돈 좀 있니?”

나의 묻는 말과는 딴전을 친다.

“돈? 여기 한 이십 삼 전 되는지?”

나는 지갑을 꺼낼 양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글쎄 전화로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오?”

채를 쳤다.

“그건 천천히 말하겠지만 술이 삼십 전어치면 얼마나 되나?”

또 딴전을 부린다.

“다찌노미면 여섯 잔은 되지요!”

“흐흥 너는 해정도 못 하겠구나!”

“그런데 별안간 술 말은 왜 하우?”

“취토록 먹자면 얼마나 될까?”

R형은 두 손으로 머리 뒤에 깍지를 끼면서 혼잣말처럼 뇌였다. 나는 서슴지 않고,

“그야 짐작이 있소!”

맞장구를 쳤으나 무슨 수수께끼인지 알 수 없었다. R형은 술이라면 금주회원 이상의 반대자다. 내가 술먹는 것은 더욱 금하던 사람인데 나더러 술 살 돈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참 뜻밖이다. 무슨 수작인가? 전화론 할 말이 있다더니 그 말은 끊어지고 술 말을 끄집어 내니 아까 전화의 의심은 좀 풀리는 것 같기도 하나 내가 술을 먹는다고 비꼬지나 않나 하는 의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평시보단 갈앉고 화색이 스러진 그 낯빛을 보면 무슨 불평이 있는 듯이도 생각되었다.

“돈은 없지만 술이야 없겠오. 갑시다. H군에게 가서 등을 칩시다. 그 주인집에 술이 있으니!”

실상 말하자면 나는 목도 말랐고 또 R형의 술먹는 것이 보고도 싶었다.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어느새 거리에는 전등이 커졌다. 광화문을 지나다가 나는 또 물었다.

“전화로 한다던 말은 무어요?”

“잔소리 퍽 한다. 차츰 말 안 하리?”

핀잔을 주는 바람에 나는 그만 기가 죽었다.

H군은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아무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나는 낯이 붉어져서 씨근덕씨근덕하면서도 술잔을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내 신경은 무엇이 무엇인지를 분간할 수 없이 흐리멍텅하게 마취되었다.

“이제 정말 취했구나!”

R형은 나를 보고 빙긋하더니,

“자 전화로 하자던 말은 이것이다.”

하면서 엽서 한 장을 꺼내 준다.

─—백금이 사월 열 나흗날 죽었다. 너는 잘 아는 터이니 동정을 보아서, 백금이 아버지에게 이 말을 전해도 좋고 전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하여튼 백금이 아버지의 감정을 상하게는 말어라─— 나는 술기운이 몽롱한 눈으로 읽었다. R형은 전등을 쳐다보는 나를 한참 보더니,

“내가 떠날 때 어머니가 성진에 나오셨는데 그때는 그년(백금이)이 무탈하더니 죽었구나! 에헴! 내가 회령 갔을 때 목욕탕을 찾아갔던 것이 어제 같은데!”

하고 가벼운 한숨을 쉰다. 그의 눈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옛 기억을 쫓는 듯하였다. 술에 마취된 나는 얼떨떨한 것이 그저 가슴만 몽깃할 뿐이었다.

나는 흥! 빙긋 웃으면서 그 엽서를 쭉쭉 찢어 버리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창에는 햇빛이 벌겋고 밖에는 사람들 소리가 요란하다. 나는 오장을 벤 듯이 속이 쓰리고 머리가 띵한 것이 지금 저녁 때인지 아침인지 분간치 못하다가 정신이 차차 맑아서 내가 누운 것이 H군 방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어제 저녁 기억이 점점 분명하게 떠올랐다. 모든 것이 한바탕 꿈속 같았다.

“백금이가 죽어?”

나는 나도 알 수 없이 혼자 뇌이면서 눈을 감았다. 미닫이 열리는 소리가 드윽 나더니,

“이 사람 어서 일어나게나!”

H군이 소리를 치면서 내가 덮은 담요를 벗긴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어느새 낯을 씻고 수건질을 하면서,

“자네 웬 술을 그리 먹나? 그 큰일 났네! 허허.”

H군은 한바탕 웃었다.

“흥! 술먹는 자는 행복이니라! 고통을 모르니 행복이니라! 허허.”

“미친 녀석! 저 한길가에 나와서 외쳐라!”

“응! 내가 예수였더면 무리들아 미쳐라! 아니어든 술을 마셔라……. 아멘!

했을테다. 하하하…….”

나는 H군과 같이 크게 웃었으나, 가슴에는 못이 박힌 듯이 찡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내 가슴에 박힌 검은 못은 더 커지고 더 굳어진다.

하기 방학에 고향 갔다 온 생질녀가 전하는 말을 듣고는 더욱 질렸다.

“백금이는 죽을 때 약을 안 먹으려고 떼를 쓰다가, 백금아 이 약을 먹고 아버지 있는 데로 가자! 하니까 벌떡 일어나서 꿀꺽꿀꺽 마시더래요! 그리고 그 전에도 할머니가 새 옷만 입으시면 할머니! 아버지 있는 데 가니? 응 할머니! 아버지 어디 갔니? 하고서는 울더래요.”

말을 마치지 못하여 생질녀는 눈물을 씻었다.

나는 온몸이 꽁꽁 얼고 오장에 얼음덩이가 묵직이 차는 듯하더니 가슴에서 현기가 핑핑 돌면서 간장이 찢기는 듯했다.

나는 이를 빡 갈았다. 가슴을 힘껏 쳤다. 소리를 아앙 지르고 뛰어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짓밟았으면 가슴이 풀릴 것 같았다. 눈물이 나고 소리가 난다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렇게 되고 보니 속으로 은근히 피만 터진다. 나는 한참 만에 한숨을 휴─— 쉬었다. 오장을 우려나오는 그 숨은 숨이 아니라 피비린내 엉킨 검은 연기였다.

작년에 내가 떠날 때에 그는 네 살이었으니 지금은 다섯 살이다. 그 어린 가슴에 아버지 생각는 정이 얼마나 애통하고 아쉬었으면 그처럼 하였으랴?

그가 제 가슴에 헤칠 만한 말을 할 줄 알았더면 그 말은 말이 아니라 피였을 것이다.

“에구 아저씨 왜 낯빛이 저래요? 제가 공연한 말씀을 여쭈어서…….”

생질녀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다.”

나는 이렇게 뇌었으나 그 때문에 괴롬이 조금도 덜하지는 않았다.

집 떠난 지 두 해에 한 일이 무어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때면 큰 죄를 짊어진 사람같이 양심의 가책을 몹시 받는다. 온 식구가 내 몸에 칼을 박는다 하여도 대답할 말이 없다.

지금까지 이웃집 어린애 소리만 나도 가슴이 떨리고 오장이 찢기는 듯하다. 이 현상은 내 기억이 스러지기 전에는, 이 눈에 흙이 들기 전에는 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간신히 백금의 수척한 꼴, 아내의 흘긴 눈, 가슴을 치는 어머니의 모양이 내 눈앞을 언듯언듯 지나간다.

나는 그때마다 주먹을 부르쥐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세상을 노려본다.


오오 백금아!

너는 내 맘속에 늘 있어라!

너는 영원히 나의 딸이요,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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